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맛지마 니까야 MN 119

인용된 가르침 44구절

이 경을 9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숨을 알아차리며 몸을 닦다 4구절

고요한 곳에 앉아 몸을 바로 세우고, 들숨과 날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설명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느니라.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무르셨느니라. 그때 탁발에서 돌아와 공양을 마친 여러 수행자들이 강당에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가 나왔나니, “놀랍고 신기하구나, 벗들이여. 알고 보시는 아라한이시며 완전히 깨달으신 세존께서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고 많이 닦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Atha kho sambahulānaṁ bhikkhūnaṁ pacchābhattaṁ piṇḍapātapaṭikkantānaṁ upaṭṭhānasālāyaṁ sannisinnānaṁ sannipatitānaṁ ayamantarākathā udapādi: “acchariyaṁ, āvuso, abbhutaṁ, āvuso. Yāvañcidaṁ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vuttā mahānisaṁsā”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경의 첫머리로,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무르실 때의 장면을 엽니다. 탁발을 마치고 돌아온 여러 수행자들이 강당에 모여, 세존께서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두고 놀라움을 나누는 대목입니다. 이 감탄은 아직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되기 전에 놓여, 뒤이어 펼쳐질 열네 가지 수행법 전체에 대한 기대를 열어 줍니다. 이 경 전체는 이 감탄에 대한 세존 자신의 상세한 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이것 하나만 꾸준히 해도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정말인지 궁금해졌던 적이 있나요? 지금 이 경을 읽어 가면서,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왜 그렇게 말해지는지 하나씩 따라가 볼 수 있을까요?

그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을 때 세존께서 선정에서 나와 강당으로 오시어 마련된 자리에 앉으신 뒤 말씀하셨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앉아 있었는가?” 수행자들은 방금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세존께 말씀드렸나니, “세존이시여,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놀랍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Ayañca hidaṁ tesaṁ bhikkhūnaṁ antarākathā vippakatā hoti, atha kho bhagavā sāyanhasamayaṁ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yena upaṭṭhānasāl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Nisajj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kāya nuttha, bhikkhave, etarahi kathāya sannisinnā, kā ca pana vo antarākathā vippakatā”ti? “Idha, bhante, amhākaṁ pacchābhattaṁ piṇḍapātapaṭikkantānaṁ upaṭṭhānasālāyaṁ sannisinnānaṁ sannipatitānaṁ ayamantarākathā udapādi: ‘acchariyaṁ, āvuso, abbhutaṁ, āvuso. Yāvañcidaṁ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vuttā mahānisaṁsā’ti. Ayaṁ kho no, bhante, antarākathā vippakatā, atha bhagavā anuppatto”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수행자들의 대화가 끝나기 전에 세존께서 좌선에서 나와 강당으로 오시는 장면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가”라는 물음에 수행자들은 방금 자신들이 나눈 감탄을 그대로 되풀이해 전합니다. 빠알리 원문은 이 되풀이를 실제로 같은 문장으로 두 번 적어 두었는데, 여기서는 같은 말이 그대로 반복되었다는 사실만 옮기고 문장을 다시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이 대화는 다음 대목에서 세존께서 “그렇다면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를 몸소 풀어 주시는 계기가 됩니다.

묵상

누군가 내가 방금 나눈 이야기를 물었을 때, 그대로 다시 옮겨 본 경험이 있나요? 같은 말을 다시 할 때 처음과는 다른 무게로 다가온 적이 있는지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떠올려 보아도 괜찮아요.

수행자들이여,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닦아야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는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며 얼굴 앞에 알아차림을 두고 앉느니라.

“Kathaṁ bhāvitā ca, bhikkhave, kāyagatāsati katha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Idha, bhikkhave, bhikkhu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nisīdati pallaṅkaṁ ābhujitvā ujuṁ kāyaṁ paṇidhāya parimukhaṁ satiṁ upaṭṭhapetvā.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세존께서 앞선 감탄에 스스로 답하시며 몸에 대한 알아차림의 구체적인 수행법을 풀어 가시는 자리입니다.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이 경의 나머지 전체를 이끄는 표제가 됩니다. 첫 수행법은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이며, 숲이나 나무 밑, 빈집처럼 고요한 곳을 택해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는 준비 단계로 시작합니다. 몸을 곧게 세우는 일은 억지로 꼿꼿하게 만들라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안정되도록 몸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묵상

지금 앉은 자리에서 몸을 살짝 곧게 세워 볼까요?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세운 자세와 구부정한 자세는 마음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요? 정답을 찾을 필요는 없고, 지금 몸의 느낌을 가볍게 알아차려 보아도 좋아요.

오직 알아차리며 숨을 들이쉬고 오직 알아차리며 숨을 내쉬나니, 길게 들이쉬고 내쉴 때는 ‘길다’고 알고, 짧게 들이쉬고 내쉴 때는 ‘짧다’고 알며, ‘온몸을 느끼며 들이쉬고 내쉬리라’ 하고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들이쉬고 내쉬리라’ 하고 익히느니라.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지내는 이에게는 재가의 삶에 얽힌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져 하나로 모이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 dīghaṁ vā assasanto ‘dīghaṁ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ṁ vā passasanto ‘dīgh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ṁ vā assasanto ‘rassaṁ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ṁ vā passasanto ‘rass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sabbakāyapaṭisaṁ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ṁ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passasissāmī’ti sikkhati. Tassa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Tesaṁ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ṁ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Evaṁ,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의 본문으로, 호흡이 긴지 짧은지를 아는 두 단계에 이어 온몸을 느끼며 호흡하기와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호흡하기라는 두 단계가 더해져 모두 네 단계를 이룹니다. 애써 호흡을 길게 늘이거나 억지로 고르게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호흡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재가의 삶에 얽힌 생각”은 집이나 살림에 대한 잡념을 뜻하며, 이 알아차림이 꾸준해지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잦아들고 마음이 안으로 가라앉아 하나로 모입니다. 이 문장은 이 뒤에 나오는 몸에 대한 열세 가지 수행법 모두를 마무리짓는 정형구이기도 합니다.

묵상

오늘 숨 하나를 알아차려 본다면, 그 숨이 긴지 짧은지 먼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애써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지금 그대로의 숨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몇 번의 호흡 뒤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라앉는 게 느껴지는지, 혹은 별 변화가 없는지도 편하게 지켜볼 수 있을까요?

2 걷고 서고 앉고 눕는 그대로 알다 1구절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는 몸의 자세를 그때그때 그대로 아는 수행을 설명합니다.

다시 수행자는 걸을 때는 ‘걷는다’고 알고, 서 있을 때는 ‘서 있다’고 알며,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다’고 알고, 누워 있을 때는 ‘누워 있다’고 아나니, 몸이 어떤 자세로 있든 그대로 아느니라. 이렇게 지내는 이에게는 재가의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져 하나로 모이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gacchanto vā ‘gacchāmī’ti pajānāti, ṭhito vā ‘ṭhitomhī’ti pajānāti, nisinno vā ‘nisinnomhī’ti pajānāti, sayāno vā ‘sayānomhī’ti pajānāti. Yathā yathā vā panassa kāyo paṇihito hoti tathā tathā naṁ pajānāti. Tassa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Tesaṁ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ṁ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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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 두 번째 수행법으로, 앞선 호흡 관찰에 이어 걷고 서고 앉고 눕는 일상의 네 자세로 넘어갑니다. “몸이 어떤 자세로 있든 그대로 안다”는 구절이 이 대목을 아우르는 결론이며, 특별한 자세를 새로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몸이 실제로 하고 있는 동작을 그때그때 알아차리라는 뜻입니다. 앞 절의 호흡 수행과 마찬가지로 “재가의 삶에 얽힌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같은 결과로 마무리되어, 서로 다른 대상을 살펴도 마음이 같은 방향으로 다잡힌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지금 이 순간 몸이 어떤 자세로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앉아 있다면 앉아 있음을, 서 있다면 서 있음을 그저 알아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오늘 하루 자세를 바꾸는 순간을 몇 번이나 알아차릴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3 하는 일마다 분명히 알다 1구절

오가고 먹고 씻는 일상의 자잘한 동작 하나하나를 분명히 알아차리며 행하는 수행을 설명합니다.

다시 수행자는 나아가고 물러날 때 분명히 알아차리며 행하고, 앞을 보고 곁을 볼 때, 팔다리를 굽히고 펼 때, 가사와 발우를 지닐 때,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 대소변을 볼 때, 가고 서고 앉고 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할 때에도 분명히 알아차리며 행하나니, 이렇게 지내는 이에게는 마음이 고요해져 하나로 모이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Tassa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Tesaṁ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ṁ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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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 세 번째 수행법은 걷고 서는 것을 넘어 일상의 자잘한 동작 전체로 넓어집니다. 나아가고 물러남, 눈을 움직임, 팔다리를 굽히고 폄, 가사와 발우를 지님, 먹고 마시는 일, 대소변을 보는 일, 가고 서고 앉고 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하는 일까지 열거되어 있으며, 이는 수행자의 하루 동작을 빠짐없이 아우르려는 목록입니다. “분명히 알아차리며 행한다”는 것은 그저 멍하니 몸을 움직이지 않고, 지금 무엇을 왜 하는지 아는 채로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동작이 수행의 자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오늘 걷거나 밥을 먹거나 문을 여닫을 때, 그 동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이 있었나요? 없었다면 지금부터 한 가지 동작만 골라 잠깐 알아차려 볼 수 있을까요? 특별히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4 몸 안을 채운 것들을 보다 2구절

머리털에서 오줌에 이르기까지 몸을 채운 서른한 가지를 곡식 자루에 비유해 살피는 수행을 설명합니다.

다시 수행자는 이 몸을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털에서 아래로 살갗에 감싸여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살피나니,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장간막, 위 속 음식,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기름기,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고 아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uddhaṁ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ṁ pūraṁ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ṁsaṁ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ṁ vakkaṁ hadayaṁ yakanaṁ kilomakaṁ pihakaṁ papphāsaṁ antaṁ antaguṇaṁ udariyaṁ karīsaṁ pittaṁ semhaṁ pubbo lohitaṁ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 네 번째 수행법으로, 몸을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머리끝에서 발바닥까지 두 방향으로 훑어 살핍니다. 머리털부터 오줌까지 서른한 가지를 낱낱이 짚는 이 목록은 몸을 아름답거나 추한 대상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저 여러 물질이 모여 있는 것으로 있는 그대로 보게 합니다. 좋다 나쁘다는 판단이 끼어들기 전에 몸을 구성물의 모임으로 보는 이 관찰은, 몸을 “나”라는 하나의 특별한 존재로 붙드는 마음을 느슨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묵상

지금 몸에서 하나만 골라 그 부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가만히 떠올려 볼까요? 좋다 싫다는 평가 없이, 그저 몸이 여러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만 바라본다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마치 양쪽이 트인 자루에 좋은 쌀, 벼, 녹두, 완두콩, 참깨, 논벼 같은 온갖 곡식이 담겨 있어 눈 밝은 사람이 자루를 열어 ‘이것은 좋은 쌀, 이것은 벼, 이것은 녹두, 이것은 완두콩, 이것은 참깨, 이것은 논벼다’라고 알아보듯, 수행자도 이와 같이 이 몸을 살펴 앞서와 같은 서른한 가지가 이 몸에 있다고 아나니, 이렇게 지내는 이에게는 마음이 고요해지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ubhatomukhā putoḷi pūrā nānāvihitassa dhaññassa, seyyathidaṁ— sālīnaṁ vīhīnaṁ muggānaṁ māsānaṁ tilānaṁ taṇḍulānaṁ, tamenaṁ cakkhumā puriso muñcitvā paccavekkheyya: ‘ime sālī ime vīhī ime muggā ime māsā ime tilā ime taṇḍulā’ti;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uddhaṁ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ṁ pūraṁ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ṁsaṁ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ṁ vakkaṁ hadayaṁ yakanaṁ kilomakaṁ pihakaṁ papphāsaṁ antaṁ antaguṇaṁ udariyaṁ karīsaṁ pittaṁ semhaṁ pubbo lohitaṁ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Tassa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Tesaṁ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ṁ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앞 절의 서른한 가지 목록을 곡식 자루의 비유로 다시 확인하는 대목입니다. 양쪽이 트인 자루에 여러 곡식이 섞여 있어도, 눈 밝은 사람이 열어 보면 쌀은 쌀로 벼는 벼로 낱낱이 가려낼 수 있다는 비유입니다. 원문은 이 비유 뒤에 앞서 나온 서른한 가지 몸의 목록 전체를 글자 그대로 다시 한 번 적어 두는데, 여기서는 같은 목록이 그대로 되풀이되었다는 사실만 “앞서와 같은 서른한 가지”로 옮기고 다시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비유가 가리키는 것은 뒤섞여 보이는 몸도 자세히 살피면 여러 구성물로 또렷이 나뉜다는 점입니다.

묵상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어 보이던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구별되던 경험이 있나요? 몸을 볼 때도 “나”라는 하나의 덩어리 대신, 여러 가지가 모여 있는 것으로 바라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5 네 요소로 몸을 보다 2구절

몸을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이라는 네 요소로 나누어 살피는 수행을 설명합니다.

다시 수행자는 이 몸을 놓여 있는 그대로, 어떤 자세로 있든 요소로써 살피나니,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아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yathāṭhitaṁ yathāpaṇihitaṁ dhātus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 다섯 번째 수행법으로, 몸을 땅·물·불·바람이라는 네 요소로 나누어 살핍니다. 땅의 요소는 단단함, 물의 요소는 젖어 있음과 응집, 불의 요소는 온기, 바람의 요소는 움직임을 가리킵니다. 이 넷은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성질들입니다. “놓여 있는 그대로, 어떤 자세로 있든”이라는 조건은 특별한 상태로 만들어 놓고 보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태 그대로 보라는 뜻입니다.

묵상

지금 몸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은 어디인가요? 무게가 실려 있는 곳은요? 잘생겼다 못났다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지금 몸을 살펴본다면, 어떤 느낌들이 남을까요? 답이 잘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마치 능숙한 백정이나 그 제자가 소를 잡아 네거리에 부위별로 나누어 놓고 앉아 있는 것과 같이, 수행자도 이와 같이 이 몸을 살펴 앞서와 같은 네 요소가 있다고 아나니, 이렇게 지내는 이에게는 재가의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져 하나로 모이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goghātako vā goghātakantevāsī vā gāviṁ vadhitvā catumahāpathe bilaso vibhajitvā nisinno assa;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yathāṭhitaṁ yathāpaṇihitaṁ dhātus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Tassa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Tesaṁ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ṁ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앞 절의 네 요소 관찰을 백정의 비유로 확인하는 대목입니다. 소를 잡아 부위별로 나누어 놓듯 몸을 요소로 나누어 본다는 비유는 잔인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몸을 “나”라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여러 요소의 결합으로 담담히 보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원문은 이 비유 뒤에 앞서 나온 네 요소의 문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는데, 여기서는 “앞서와 같은 네 요소”로 옮겨 중복을 줄였습니다. 이 절도 앞선 수행법들과 같은 후렴으로 마무리됩니다.

묵상

소를 부위별로 나누어 보듯 내 몸을 몇 가지 요소로 나누어 본다면, 지금 어느 부분이 가장 또렷하게 느껴지나요? 판단 없이 그저 성질을 알아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오늘은 그중 하나에만 잠깐 머물러 보아도 좋아요.

6 무덤가에서 몸의 끝을 보다 4구절

무덤가에 버려진 시신이 단계를 거쳐 스러져 가는 모습을 자신의 몸에 견주어 살피는 수행을 설명합니다.

다시 수행자는 무덤가에 버려진 시신을 보듯이 하나니, 죽은 지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 되어 부풀어 오르고 검푸르게 되고 고름이 흐르는 시신을 보고,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보느니라. ‘이 몸도 그러한 성질을 지녔으며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살피나니, 이렇게 지내는 이에게는 재가의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ekāhamataṁ vā dvīhamataṁ vā tīhamataṁ vā uddhumātakaṁ vinīlakaṁ vipubbakajātaṁ.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Tassa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Tesaṁ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ṁ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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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알아차림은 여기서부터 무덤가에서 시신이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처님 당시 실제로 행해지던 아홉 단계의 관찰로 이어집니다. 첫 단계는 죽은 지 하루에서 사흘 된, 부풀고 검푸르게 변한 시신입니다. 이 관찰의 목적은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도 언젠가 같은 성질을 지녔음을 있는 그대로 보아 몸에 대한 집착을 조금씩 내려놓기 위한 것입니다. 아프거나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면 이 대목이 낯설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으니, 잠시 건너뛰고 다음 수행법으로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이 대목이 지금 마음에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잠시 건너뛰고 다음으로 넘어가도 괜찮아요. 몸이 언젠가 변하고 스러진다는 사실을, 지금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요?

다시 수행자는 무덤가에 버려진 시신을 까마귀와 매와 독수리와 왜가리가 뜯어 먹고 개와 호랑이와 표범과 승냥이와 온갖 작은 것들이 파먹는 것을 보고 이 몸에 견주어 보느니라. ‘이 몸도 그러한 성질을 지녔으며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살피나니, 앞서와 같이 마음이 고요해져 하나로 모이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kākehi vā khajjamānaṁ kulalehi vā khajjamānaṁ gijjhehi vā khajjamānaṁ kaṅkehi vā khajjamānaṁ sunakhehi vā khajjamānaṁ byagghehi vā khajjamānaṁ dīpīhi vā khajjamānaṁ siṅgālehi vā khajjamānaṁ vividhehi vā pāṇakajātehi khajjamānaṁ.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Tassa evaṁ appamattassa …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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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부풀어 오른 시신의 모습에 이어, 이번에는 까마귀·매·독수리·왜가리·개·호랑이·표범·승냥이와 온갖 작은 것들에게 뜯기는 시신을 살피는 대목입니다. 두 대목은 하나의 관찰이 단계적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별개의 새로운 가르침이 아닙니다. 원문은 이 절 끝의 “방일하지 않고 지내는 이에게는”이라는 후렴을 “…pe…”로 줄여 앞 절과 같은 말이 되풀이됨을 나타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관찰의 목적은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몸이 변하고 흩어지는 것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묵상

죽음과 관련된 상실을 겪었다면, 이 대목은 지금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준비가 되었을 때, 몸이 자연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사실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요?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시 수행자는 무덤가에 버려진 시신이 살과 피가 남아 힘줄로 이어진 해골로, 살은 없이 피만 묻어 힘줄로 이어진 해골로, 살도 피도 없이 힘줄로만 이어진 해골로, 마침내 힘줄마저 사라져 손뼈는 여기 발뼈는 저기 사방으로 흩어진 뼈로 변해 가는 것을 보고 이 몸에 견주어 보느니라. ‘이 몸도 그러한 성질을 지녔다’고 살피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aṭṭhikasaṅkhalikaṁ samaṁsalohitaṁ nhārusambandhaṁ …pe… aṭṭhikasaṅkhalikaṁ nimmaṁsalohitamakkhitaṁ nhārusambandhaṁ …pe… aṭṭhikasaṅkhalikaṁ apagatamaṁsalohitaṁ nhārusambandhaṁ …pe… aṭṭhikāni apagatasambandhāni disāvidisāvikkhittāni aññena hatthaṭṭhikaṁ aññena pādaṭṭhikaṁ aññena gopphakaṭṭhikaṁ aññena jaṅghaṭṭhikaṁ aññena ūruṭṭhikaṁ aññena kaṭiṭṭhikaṁ aññena phāsukaṭṭhikaṁ aññena piṭṭhiṭṭhikaṁ aññena khandhaṭṭhikaṁ aññena gīvaṭṭhikaṁ aññena hanukaṭṭhikaṁ aññena dantaṭṭhikaṁ aññena sīsakaṭāhaṁ.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Tassa evaṁ appamattassa …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무덤가 관찰은 계속 이어져, 이번에는 살이 흩어지고 뼈만 남아 가는 네 단계입니다. 살과 피가 남은 해골에서, 피만 남은 해골로, 살도 피도 없이 힘줄로만 이어진 해골로, 마침내 힘줄마저 사라져 손뼈는 여기 발뼈는 저기 사방으로 흩어진 모습에 이릅니다. 원문 자체가 각 단계 사이를 “…pe…”라는 생략 표시로 줄여 두어, 같은 문형이 되풀이됨을 보여 줍니다. 뼈가 흩어지는 이 모습은 몸이 애초에 하나의 고정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부분이 잠시 모여 있던 것일 뿐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여러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던 것이 흩어지는 모습을 볼 때, 놀람과 슬픔 외에 다른 감정도 함께 있을 수 있나요? 어떤 감정이 와도 괜찮고, 지금은 아무 느낌이 없어도 괜찮아요. 이 대목이 힘들다면 잠시 건너뛰어도 좋아요.

다시 수행자는 무덤가에 버려진 시신의 뼈가 조개껍데기처럼 하얗게 바래고, 무더기로 쌓여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썩어 가루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이 몸에 견주어 보느니라. ‘이 몸도 그러한 성질을 지녔으며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살피나니, 이렇게 지내는 이에게는 마음이 고요해져 하나로 모이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aṭṭhikāni setāni saṅkhavaṇṇapaṭibhāgāni …pe… aṭṭhikāni puñjakitāni terovassikāni …pe… aṭṭhikāni pūtīni cuṇṇakajātāni.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Tassa evaṁ appamattassa … 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무덤가 관찰의 마지막 세 단계입니다. 조개껍데기처럼 하얗게 바랜 뼈, 무더기로 쌓여 세월이 흐른 뼈, 마침내 썩어 가루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뼈를 차례로 살핍니다. 아홉 단계에 걸친 이 관찰은 두려움이 아니라 담담함으로 마무리됩니다. 가루가 된 뼈는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기보다, 자연스러운 흐름의 끝처럼 보입니다. 이 관찰을 통해 전하려는 것은, 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수록 오히려 지금 이 삶을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수행법부터는 몸으로 드는 네 가지 선정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가루가 되어 가는 뼈를 상상할 때, 처음의 놀람이 조금씩 가라앉는 순간이 있나요? 몸이 변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지금 이 삶을 소홀히 여길 필요는 없다는 것도, 함께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7 네 가지 선정도 몸으로 든다 8구절

떠남에서 생긴 기쁨부터 청정한 평정에 이르기까지, 네 가지 선정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 전체를 채우는 수행을 설명합니다.

다시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을 여의고 해로운 것들을 여의어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살핌이 있고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이 있는 첫 번째 선정을 갖추어 머무나니, 그는 이 몸을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으로 적시고 채워 몸 어디에도 그것이 퍼지지 않은 곳이 없게 하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pe…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 여섯 번째 수행법부터는 네 가지 선정으로 이어집니다.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들을 여읜 첫 번째 선정에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살핌, 그리고 세속을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앞선 수행법들이 몸의 각 부분이나 요소를 살피는 것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선정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을 몸 전체에 고루 퍼지게 하는 수행으로 바뀝니다. “몸 어디에도 퍼지지 않은 곳이 없다”는 표현은 이 기쁨과 즐거움이 부분적인 느낌이 아니라 몸 전체를 채우는 경험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지금까지 느껴 본 편안함 가운데, 몸 전체에 고루 퍼지는 듯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런 순간이 잘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몸에서 조금이라도 편안한 부분이 있다면 그곳부터 가만히 느껴 볼 수 있을까요?

마치 능숙한 목욕 시중꾼이 놋대야에 목욕가루를 붓고 물을 조금씩 뿌려 반죽하면 그 덩이가 물기를 머금어 안팎으로 고루 젖되 흘러내리지 않는 것과 같이, 수행자도 이와 같이 이 몸에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을 두루 퍼지게 하나니, 이렇게 지내는 이에게는 마음이 고요해지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nhāpako vā nhāpakantevāsī vā kaṁsathāle nhānīyacuṇṇāni ākiritvā udakena paripphosakaṁ paripphosakaṁ sanneyya, sāyaṁ nhānīyapiṇḍi snehānugatā snehaparetā santarabāhirā phuṭā snehena na ca pagghariṇī;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Tassa evaṁ appamattassa … 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첫 번째 선정의 기쁨과 즐거움이 몸에 퍼지는 모습을 목욕가루의 비유로 보여 줍니다. 놋대야에 목욕가루를 붓고 물을 조금씩 뿌려 반죽하면, 그 덩이가 안팎으로 고루 물기를 머금으면서도 물이 흘러내리지는 않습니다. 이는 기쁨과 즐거움이 몸 전체에 스며들되 넘쳐 흩어지지 않는 상태를 그립니다. 억지로 힘을 주어 만드는 상태가 아니라, 조건이 갖추어지면 자연스럽게 고루 스며드는 과정이라는 점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묵상

물이 마른 것에 서서히 스며드는 모습을 떠올려 볼까요? 마음의 편안함도 억지로 밀어 넣기보다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라면, 지금 무엇을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 볼 수 있을까요?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아요.

다시 수행자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살핌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으로 모여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살핌 없이 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이 있는 두 번째 선정을 갖추어 머무나니, 그는 이 몸을 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으로 적시고 채워 몸 어디에도 그것이 퍼지지 않은 곳이 없게 하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pe…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두 번째 선정에서는 첫 번째 선정에 있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살핌이 가라앉고, 그 자리에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인 상태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들어섭니다. “삼매에서 생긴”이라는 말은 이 기쁨과 즐거움이 더 이상 생각의 작용에 기대지 않고, 마음이 한 곳에 모인 상태 그 자체에서 비롯됨을 가리킵니다. 앞 단계와 마찬가지로 이 기쁨과 즐거움 또한 몸 전체에 고루 퍼지게 하는 수행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생각을 굳이 이어 가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애써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고요해지는 경험을, 지금 살짝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이 문장만 천천히 다시 읽어 보아도 좋아요.

마치 샘에서 물이 솟는 깊은 호수가 동서남북 어디에도 물이 흘러드는 곳이 없고 하늘에서도 때맞춰 비가 내리지 않아도 오직 호수 바닥에서 솟는 찬물이 호수 전체에 고루 퍼지듯, 수행자도 이와 같이 이 몸에 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을 두루 퍼지게 하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udakarahado gambhīro ubbhidodako. Tassa nevassa puratt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na pacc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na uttar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na dakkhiṇ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devo ca na kālena kālaṁ sammā dhāraṁ anuppaveccheyya; atha kho tamhāva udakarahadā sītā vāridhārā ubbhijjitvā tameva udakarahadaṁ sītena vārinā abhisandeyya parisandeyya paripūreyya paripphareyya, nāssa kiñci sabbāvato udakarahadassa sītena vārinā apphuṭaṁ assa;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Tassa evaṁ appamattassa …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두 번째 선정의 기쁨과 즐거움을 깊은 호수의 비유로 보여 줍니다. 동서남북 어디에도 물이 흘러드는 곳이 없고 비도 내리지 않지만, 호수 바닥 샘에서 솟아나는 찬물만으로 호수 전체가 고루 채워집니다. 바깥에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저절로 솟아나 퍼진다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며, 이는 두 번째 선정의 기쁨과 즐거움이 바깥 자극이 아니라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인 데서 비롯됨을 보여 줍니다.

묵상

바깥에서 무언가를 끌어오지 않아도 마음 안에서 편안함이 솟아난 적이 있나요? 지금 잠시 눈을 감고,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오는 고요함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시 수행자는 희열이 사라져 평정하게 머물며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몸으로 즐거움을 겪나니, 성자들이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즐거움에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을 갖추어 머무나니, 그는 이 몸을 희열 없는 즐거움으로 적시고 채워 몸 어디에도 그것이 퍼지지 않은 곳이 없게 하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pe…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세 번째 선정에서는 앞선 두 선정에 있던 기쁨마저 사라지고, 평정과 알아차림 속에서 몸으로 즐거움을 겪습니다. 성자들이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즐거움에 머문다”고 말하는 상태로, 들뜬 기쁨이 가라앉고 더 고요한 즐거움만 남는 단계입니다. 앞의 두 선정보다 한층 가라앉은 상태이지만 즐거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오히려 기쁨이라는 자극이 빠진 자리에 더 안정된 즐거움이 몸 전체에 퍼집니다.

묵상

들뜨지 않으면서도 편안했던 순간을 떠올려 볼 수 있나요? 기쁨과 즐거움이 꼭 같은 것은 아니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편안함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요? 구별이 잘 안 되어도 괜찮아요.

마치 푸른 연꽃과 붉은 연꽃과 흰 연꽃이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 밖으로 오르지 않은 채 물속에 잠겨 자라며 뿌리에서 꽃까지 찬물로 두루 젖어 있듯이, 수행자도 이와 같이 이 몸에 기쁨 없는 즐거움을 두루 퍼지게 하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uppaliniyaṁ vā paduminiyaṁ vā puṇḍarīkiniyaṁ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nimuggaposīni, tāni yāva caggā yāva ca mūlā sītena vārinā abhisannāni parisannāni paripūrāni paripphuṭāni, nāssa kiñci sabbāvataṁ uppalānaṁ vā padumānaṁ vā puṇḍarīkānaṁ vā sītena vārinā apphuṭaṁ assa;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ṁ hoti. Tassa evaṁ appamattassa …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세 번째 선정의 즐거움을 연꽃의 비유로 보여 줍니다. 물 밖으로 오르지 않고 물속에 잠긴 채 자라는 연꽃은 뿌리부터 꽃잎까지 찬물로 고루 젖어 있습니다. 물 밖으로 드러나 화려하게 피어나는 모습이 아니라, 안으로 조용히 젖어드는 모습이라는 점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이는 세 번째 선정의 즐거움이 겉으로 드러나는 흥분이 아니라 안으로 고요하게 스며드는 성질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속으로 충분히 채워졌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쁨과 스스로 조용히 느끼는 편안함의 차이를 잠시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둘 다 소중할 수 있어요.

다시 수행자는 즐거움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며 앞서 기쁨과 근심이 사라졌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정하고 알아차림이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갖추어 머무나니, 그는 청정하고 밝은 마음으로 이 몸에 두루 퍼져 앉아 있어 몸 어디에도 그것이 퍼지지 않은 곳이 없게 하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pe…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네 가지 선정 가운데 마지막인 네 번째 선정에서는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앞서 있던 기쁨과 근심마저 모두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과 청정한 알아차림만 남습니다. 앞선 세 선정이 저마다 다른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채웠다면, 이 단계에서는 그 대신 청정하고 밝은 마음으로 몸 전체에 두루 퍼져 앉습니다. 특정한 느낌이 아니라 마음 자체의 청정함이 몸 전체를 채운다는 점에서 앞의 세 선정과 결이 다릅니다.

묵상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그저 고요하기만 한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런 순간이 지금 잘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이 얼마나 고요한지 그저 살펴보아도 좋아요. 애써 고요함을 만들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머리까지 흰 천으로 감싸고 앉아 몸 어디에도 그 흰 천이 덮이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이, 수행자도 이와 같이 청정하고 밝은 마음으로 이 몸에 두루 퍼져 앉나니, 이렇게 지내는 이에게는 재가의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져 하나로 모이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odātena vatthena sasīsaṁ pārupitvā nisinno assa,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odātena vatthena apphuṭaṁ assa;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ṁ hoti. Tassa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Tesaṁ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ṁ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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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선정의 청정한 마음을 흰 천의 비유로 보여 줍니다. 머리까지 흰 천으로 감싸 몸 어디에도 덮이지 않은 곳이 없는 모습은,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몸 전체를 빈틈없이 감싸는 상태를 그립니다. 이로써 들숨날숨부터 시작해 자세·일상 동작·몸의 구성물·네 요소·무덤가 관찰·네 가지 선정에 이르는 열 가지 수행법이 모두 마무리됩니다. 다음 대목부터는 이렇게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았을 때 실제로 무엇이 열리는지를 설명합니다.

묵상

몸 전체를 무언가로 빈틈없이 감싸는 상상을 해 본다면, 지금 어떤 느낌이 드나요? 청정함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 정도로 바꾸어 떠올려도 괜찮아요. 잘 그려지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아요.

8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여는 것 10구절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유익한 것들을 모두 품고, 닦지 않으면 마라가 틈을 얻지만 닦으면 틈을 얻지 못하며, 마음을 기울이는 곳마다 스스로 증명하게 됨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누구든지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고 많이 닦으면 그 안에 앎으로 이끄는 유익한 것들이 모두 담기나니, 마치 누구든지 마음으로 큰 바다를 떠올리면 그 안에 바다로 흘러드는 모든 시냇물이 담기는 것과 같으니라.

Yassa kassaci, bhikkhave,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antogadhāvāssa kusalā dhammā ye keci vijjābhāgiyā. Seyyathāpi, bhikkhave, yassa kassaci mahāsamuddo cetasā phuṭo, antogadhāvāssa kunnadiyo yā kāci samuddaṅgamā;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antogadhāvāssa kusalā dhammā ye keci vijjābhāgiyā.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지금까지 살펴본 열 가지 수행법을 마친 뒤, 몸에 대한 알아차림 전체가 지니는 힘을 요약하는 대목입니다.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으면 그 안에 “앎으로 이끄는 유익한 것들”이 모두 담긴다고 하며, 이를 큰 바다에 비유합니다. 큰 바다를 마음에 떠올리면 그리로 흘러드는 모든 시냇물이 함께 떠올려지듯, 몸에 대한 알아차림 하나를 잘 닦으면 다른 여러 유익한 자질들이 저절로 그 안에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여러 수행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다른 수행들을 담아내는 큰 그릇과 같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한 가지를 꾸준히 챙기다 보니 다른 것들도 자연스레 따라왔던 경험이 있나요? 지금 몸에 대한 알아차림처럼, 하나만 붙들어도 여러 가지가 함께 따라올 수 있는 것이 내 삶에도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지 않고 많이 닦지 않으면 마라가 틈을 얻고 대상을 얻나니, 마치 어떤 사람이 무거운 돌덩이를 젖은 진흙 더미에 던지면 그 돌덩이가 진흙 속으로 파고들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지 않으면 마라가 틈을 얻고 대상을 얻느니라.

Yassa kassaci, bhikkhave, kāyagatāsati abhāvitā abahulīkatā, labhati tassa māro otāraṁ, labhati tassa māro ārammaṇaṁ.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garukaṁ silāguḷaṁ allamattikāpuñje pakkhipeyya. Taṁ kiṁ maññatha, bhikkhave, api nu taṁ garukaṁ silāguḷaṁ allamattikāpuñje labhetha otāran”ti? “Evaṁ, bhante”.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abhāvitā abahulīkatā, labhati tassa māro otāraṁ, labhati tassa māro ārammaṇaṁ.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지 않았을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세 가지 비유로 보여 주는 첫 번째 대목입니다. 무거운 돌덩이가 젖은 진흙 더미에 쉽게 파고들듯,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없는 마음에는 마라, 곧 수행을 가로막는 힘이 쉽게 틈을 얻고 대상을 얻습니다. 세존께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물으시고 수행자들이 “그러합니다”라고 답하는 문답 형식은 뒤이은 두 비유(마른 나무의 불, 빈 물동이)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진흙이 무른 성질을 가리키듯, 여기서 무름은 마음이 알아차림 없이 쉽게 흔들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묵상

마음이 쉽게 흔들렸던 때를 떠올려 보면, 그때 몸이나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었나요, 없었나요? 판단하지 않고 그저 그 차이만 가볍게 살펴볼 수 있을까요? 지금 답이 분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마치 마른 나무토막이 있어 어떤 사람이 마찰 막대를 가지고 와서 ‘불을 피우고 열을 내리라’ 생각한다 하자. ‘그렇게 마찰 막대로 마른 나무토막을 비비면 불을 피우고 열을 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지 않으면 마라가 틈을 얻고 대상을 얻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sukkhaṁ kaṭṭhaṁ koḷāpaṁ; atha puriso āgaccheyya uttarāraṇiṁ ādāya: ‘aggiṁ abhinibbattessāmi, tejo pātukarissāmī’ti. Taṁ kiṁ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amuṁ sukkhaṁ kaṭṭhaṁ koḷāpaṁ uttarāraṇiṁ ādāya abhimanthento aggiṁ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ā”ti? “Evaṁ, bhante”.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abhāvitā abahulīkatā, labhati tassa māro otāraṁ, labhati tassa māro ārammaṇaṁ.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지 않았을 때의 두 번째 비유입니다. 마른 나무토막은 마찰 막대로 비비면 쉽게 불이 붙습니다. 앞선 진흙의 비유가 무른 것에 쉽게 파고드는 모습이었다면, 이 비유는 마른 것에 쉽게 불이 붙는 모습으로 같은 뜻을 다시 보여 줍니다.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없을 때 마음은 이 마른 나무처럼 자극에 쉽게 반응하고 휩쓸립니다. 수행자들이 “그렇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은 이 비유가 누구나 아는 당연한 사실임을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묵상

무언가에 쉽게 불이 붙듯 마음이 확 타올랐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 순간 몸의 감각으로 잠시 주의를 돌렸다면 무엇이 달라졌을지, 지금 가볍게 상상만 해 보아도 괜찮아요. 실제로 해내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마치 빈 물동이가 받침대 위에 놓여 있는데 어떤 사람이 물을 지고 와서 붓는다 하자. ‘그 사람이 물동이에 물을 부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지 않으면 마라가 틈을 얻고 대상을 얻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udakamaṇiko ritto tuccho ādhāre ṭhapito; atha puriso āgaccheyya udakabhāraṁ ādāya. Taṁ kiṁ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labhetha udakassa nikkhepanan”ti? “Evaṁ, bhante”.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abhāvitā abahulīkatā, labhati tassa māro otāraṁ, labhati tassa māro ārammaṇaṁ.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지 않았을 때의 세 번째 비유입니다. 빈 물동이에는 누구나 쉽게 물을 부을 수 있듯,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없는 마음에는 무엇이든 쉽게 흘러들어 옵니다. 진흙에 파고드는 돌, 마른 나무에 붙는 불, 빈 그릇에 채워지는 물이라는 세 비유가 나란히 놓여, 알아차림 없는 마음이 얼마나 쉽게 틈을 내주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확인시켜 줍니다. 다음 대목부터는 이 세 비유가 정반대로 뒤집혀, 알아차림을 닦았을 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묵상

빈 그릇처럼 마음이 텅 비어 무엇이든 쉽게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나요? 지금 그 그릇에 알아차림이라는 것을 조금 담아 둔다면, 다음에는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한 번에 다 채우지 않아도 괜찮아요.

수행자들이여,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고 많이 닦으면 마라가 틈을 얻지 못하고 대상을 얻지 못하나니, 마치 어떤 사람이 가벼운 실뭉치를 온통 단단한 재질로 된 빗장 판자에 던진다 하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으면 마라가 틈을 얻지 못하고 대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Yassa kassaci, bhikkhave,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na tassa labhati māro otāraṁ, na tassa labhati māro ārammaṇaṁ.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lahukaṁ suttaguḷaṁ sabbasāramaye aggaḷaphalake pakkhipeyya. Taṁ kiṁ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taṁ lahukaṁ suttaguḷaṁ sabbasāramaye aggaḷaphalake labhetha otāran”ti? “No hetaṁ, bhante”.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na tassa labhati māro otāraṁ, na tassa labhati māro ārammaṇaṁ.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이번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았을 때의 모습을 앞선 세 비유와 정반대로 보여 줍니다. 가벼운 실뭉치는 온통 단단한 나무로 된 빗장 판자에 부딪혀도 파고들지 못합니다. 앞서 무른 진흙에 쉽게 파고들던 돌의 비유와 짝을 이루어, 알아차림을 닦은 마음이 얼마나 단단하게 자극을 받아넘기는지를 보여 줍니다. 수행자들이 “아닙니다”라고 답하는 것은 실뭉치가 단단한 판자를 뚫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묵상

무언가에 부딪혀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순간을 떠올려 볼 수 있나요? 그때 마음이 단단했던 것은 애써 버틴 것이었나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그러했나요? 둘 다여도 괜찮고, 잘 모르겠어도 괜찮아요.

마치 물기 있는 생나무가 있어 어떤 사람이 마찰 막대를 가지고 와서 ‘불을 피우고 열을 내리라’ 생각한다 하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물기 있는 생나무를 마른 땅에서 마찰 막대로 비벼서는 불을 피우고 열을 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으면 마라가 틈을 얻지 못하고 대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allaṁ kaṭṭhaṁ sasnehaṁ; atha puriso āgaccheyya uttarāraṇiṁ ādāya: ‘aggiṁ abhinibbattessāmi, tejo pātukarissāmī’ti. Taṁ kiṁ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amuṁ allaṁ kaṭṭhaṁ sasnehaṁ uttarāraṇiṁ ādāya abhimanthento aggiṁ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ā”ti? “No hetaṁ, bhante”.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na tassa labhati māro otāraṁ, na tassa labhati māro ārammaṇaṁ.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았을 때의 두 번째 비유로, 앞서 마른 나무에 쉽게 불이 붙던 것과 짝을 이룹니다. 물기 있는 생나무는 아무리 마찰 막대로 비벼도 불이 붙지 않습니다. 알아차림을 닦은 마음은 이 생나무처럼 자극이 와도 쉽게 타오르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가라앉습니다. 마른 나무와 생나무라는 대조는 같은 자극이라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짐을 보여 줍니다.

묵상

쉽게 타오르지 않고 가라앉힐 수 있었던 감정이 있었나요? 그때 몸에 어떤 감각이 있었는지, 지금 천천히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런 순간이 떠오르지 않아도 이 물음만 마음에 담아 두어도 좋아요.

마치 물동이가 가득 차서 까마귀도 마실 만큼 물이 넘실대며 받침대 위에 놓여 있는데 어떤 사람이 물을 지고 와서 붓는다 하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으면 마라가 틈을 얻지 못하고 대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udakamaṇiko pūro udakassa samatittiko kākapeyyo ādhāre ṭhapito; atha puriso āgaccheyya udakabhāraṁ ādāya. Taṁ kiṁ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labhetha udakassa nikkhepanan”ti? “No hetaṁ, bhante”.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na tassa labhati māro otāraṁ, na tassa labhati māro ārammaṇaṁ.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았을 때의 세 번째 비유로, 앞서 빈 물동이에 쉽게 물이 채워지던 것과 짝을 이룹니다. 이미 가득 찬 물동이에는 더 이상 물을 부을 수 없듯, 알아차림으로 이미 채워진 마음에는 새로운 것이 함부로 밀고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이로써 알아차림이 없을 때와 있을 때를 각각 세 비유로 대조해 보여 주는 여섯 개의 비유가 마무리되며, 다음 대목부터는 알아차림을 닦았을 때 실제로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로 넘어갑니다.

묵상

이미 가득 차 있어서 더는 흔들리지 않았던 마음의 순간이 있었나요? 무엇이 그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지, 지금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지금은 텅 비어 있다고 느껴져도 괜찮아요.

수행자들이여,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고 많이 닦으면 곧바른 앎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마음을 기울이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증명할 힘을 얻나니, 마치 물동이가 가득 차서 까마귀도 마실 만큼 놓여 있을 때 힘센 사람이 어느 쪽으로 기울여도 물이 쏟아지듯, 이와 같이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으면 마음을 기울이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증명할 힘을 얻느니라.

Yassa kassaci, bhikkhave,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so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ṁ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 Seyyathāpi, bhikkhave, udakamaṇiko pūro udakassa samatittiko kākapeyyo ādhāre ṭhapito. Tamenaṁ balavā puriso yato yato āviñcheyya, āgaccheyya udakan”ti? “Evaṁ, bhante”.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so,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ṁ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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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았을 때 얻는 또 다른 힘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곧바른 앎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이란 뒤에 나올 신통·천이·타심·숙명·천안·번뇌의 다함 같은 높은 앎들을 가리키며, 마음을 기울이는 곳마다 스스로 증명할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물이 가득 찬 물동이는 어느 쪽으로 기울여도 물이 쏟아지듯, 알아차림으로 가득 찬 마음은 어느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든 그 결과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힘을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득 찬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모습을 그립니다.

묵상

이미 준비되어 있어서 마음만 기울이면 되었던 일이 있었나요? 지금 당장 큰 힘을 낼 수 없어도 괜찮아요. 조금씩 채워 가는 과정 자체를 지켜볼 수 있을까요?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마치 평평한 땅 위에 네모난 연못이 있어 둑으로 둘러싸이고 까마귀도 마실 만큼 물이 가득한데 힘센 사람이 어느 쪽 둑을 터도 물이 쏟아지듯, 이와 같이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으면 마음을 기울이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증명할 힘을 얻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same bhūmibhāge caturassā pokkharaṇī assa āḷibandhā pūrā udakassa samatittikā kākapeyyā. Tamenaṁ balavā puriso yato yato āḷiṁ muñceyya āgaccheyya udakan”ti? “Evaṁ, bhante”.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so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ṁ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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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물동이의 비유에 이어, 이번에는 네모난 연못의 비유로 같은 뜻을 다시 보여 줍니다. 둑으로 둘러싸여 물이 가득 찬 연못은 어느 쪽 둑을 터도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물동이보다 더 큰 규모의 비유로 옮겨 가며, 알아차림으로 채워진 마음이 지닌 힘이 한 방향에 그치지 않고 어느 쪽으로도 열릴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힘을 새로 만들어 내라는 요구가 아니라, 이미 갖추어진 것이 여러 갈래로 흘러나올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묵상

여러 방향으로 열릴 수 있었던 가능성을 지금 하나라도 떠올려 볼 수 있나요? 아직 열어 보지 않은 방향이 있다면, 서두르지 않고 언제 열어 볼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 지금 당장 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마치 좋은 땅 네거리에 준마가 매인 수레가 채찍을 꽂은 채 서 있는데 능숙한 조련사가 올라타 왼손에 고삐를, 오른손에 채찍을 쥐고 원하는 대로 마음껏 몰고 돌아오듯, 이와 같이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으면 마음을 기울이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증명할 힘을 얻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subhūmiyaṁ catumahāpathe ājaññaratho yutto assa ṭhito odhastapatodo; tamenaṁ dakkho yoggācariyo assadammasārathi abhiruhitvā vāmena hatthena rasmiyo gahetvā dakkhiṇena hatthena patodaṁ gahetvā yenicchakaṁ yadicchakaṁ sāreyyāpi paccāsāreyyāpi;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so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ṁ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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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른 앎을 다루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비유로, 준비된 수레와 능숙한 조련사를 듭니다. 준마가 매인 수레가 이미 갖추어져 있어도 그것을 원하는 대로 모는 것은 능숙한 조련사의 몫이듯, 알아차림으로 마음이 갖추어져 있어도 그것을 원하는 방향으로 쓰는 데는 익힘이 필요합니다. 물동이와 연못의 비유가 이미 채워진 상태 자체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 비유는 그것을 다루는 능숙함까지 함께 보여 줍니다. 이로써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여는 힘에 대한 설명이 마무리되고, 다음 대목부터는 이 수행이 가져오는 열 가지 이익이 하나씩 이어집니다.

묵상

이미 갖추어진 것을 능숙하게 다루기까지, 무엇을 더 익혀야 했던 경험이 있나요? 지금 당장 능숙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조금씩 다루는 법을 익혀 가는 중이라고 여겨 볼 수 있을까요?

9 닦으면 얻는 열 가지 이익 12구절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꾸준히 닦았을 때 따라오는 열 가지 이익을, 즐겁지 않음을 이겨 냄부터 번뇌의 다함까지 하나씩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자주 행하고 닦고 많이 닦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으며 꾸준히 이어 가고 익히고 잘 정진하면 열 가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느니라.

Kāyagatāya, bhikkhave, satiyā āsevitāya bhāvitāya bahulīkatāya yānīkatāya vatthukatāya anuṭṭhitāya paricitāya susamāraddhāya dasānisaṁsā pāṭikaṅkhā.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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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여는 힘을 설명한 뒤, 이제 그것을 실제로 꾸준히 닦았을 때 따라오는 열 가지 이익을 하나씩 밝히기 시작하는 표제 문장입니다. “자주 행하고 닦고 많이 닦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는다”는 표현은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한두 번의 경험이 아니라 삶의 이동 수단이자 발판으로 삼을 만큼 꾸준히 익혀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그 열 가지 이익이 즐겁지 않음을 이겨 냄부터 번뇌의 다함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열거됩니다.

묵상

무언가를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는다”는 말이 지금 내 삶의 어떤 습관과 닮아 있나요? 그런 것이 아직 없어도 괜찮아요. 지금부터 조금씩 쌓아 갈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즐겁지 않음을 이겨 내는 이가 되어, 일어난 즐겁지 않음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이겨 내며 머무느니라.

Aratiratisaho hoti, na ca taṁ arati sahati, uppannaṁ aratiṁ abhibhuyya viha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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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첫 번째로, 아라띠(arati)라 불리는 즐겁지 않음, 곧 수행이나 삶의 어떤 자리에서 느끼는 권태와 불만족을 이겨 내는 힘입니다. 이 즐겁지 않음이 일어나지 않게 막아 준다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이겨 내며 머문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감정 자체를 없애 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일어났을 때 흔들리지 않을 힘을 준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묵상

지루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머물렀던 경험이 있나요? 그런 순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에 그런 마음이 있는지만 가볍게 살펴보아도 좋아요.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는 이가 되어, 일어난 두려움과 무서움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이겨 내며 머무느니라.

Bhayabheravasaho hoti, na ca taṁ bhayabheravaṁ sahati, uppannaṁ bhayabheravaṁ abhibhuyya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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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두 번째로,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는 힘입니다. 앞선 즐겁지 않음의 이익과 같은 문형으로 서술되어, 두려움 역시 아예 일어나지 않게 막는 것이 아니라 일어났을 때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이겨 내며 머무는 힘임을 보여 줍니다.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는 마음은 두려운 상황 앞에서도 몸의 감각으로 돌아갈 곳이 있어, 두려움에 온전히 휩쓸리지 않을 발판을 지닙니다.

묵상

두려운 순간에 몸의 감각으로 잠시 주의를 돌려 본 적이 있나요?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면, 다음에 두려움이 찾아올 때 발밑이나 호흡 하나만 살짝 느껴 보아도 괜찮아요.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춥고 덥고 배고프고 목마름을 견디며, 등에·모기·바람·볕·기어다니는 것들의 닿음과 험하고 나쁜 말을 견디며, 몸에 일어난 날카롭고 거세고 쓰라리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며 목숨을 위협하는 괴로운 느낌들도 참고 견디는 성질을 지니느니라.

Khamo hoti sītassa uṇhassa jighacchāya pipāsāya ḍaṁsamakasavātātapasarīsapasamphassānaṁ duruttānaṁ durāgatānaṁ vacanapathānaṁ, uppannānaṁ sārīrikānaṁ vedanānaṁ dukkhānaṁ tibbānaṁ kharānaṁ kaṭukānaṁ asātānaṁ amanāpānaṁ pāṇaharānaṁ adhivāsakajātik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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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세 번째로,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목마름 같은 몸의 불편함, 벌레와 날씨의 거슬림, 험한 말, 그리고 목숨을 위협할 만큼 극심한 몸의 괴로운 느낌까지 견디는 힘입니다. 이 목록은 가벼운 불편부터 생명을 위협하는 고통까지 폭넓게 나열되어 있으며,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이런 괴로움을 없애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괴로움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견디는 성질을 길러 준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묵상

몸이 힘든 순간에 그것을 밀어내려 하기보다 그저 견뎌 본 경험이 있나요? 지금 당장 무언가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 질문은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견디는 것과 참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도 천천히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높은 마음에 속하며 지금 여기서 즐거움에 머무는 네 가지 선정을 원할 때마다 어려움 없이 힘들이지 않고 얻느니라.

Catunnaṁ jhānānaṁ ābhicetasikānaṁ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naṁ nikāmalābhī hoti akicchalābhī akasiralābhī.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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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네 번째로, 앞서 몸으로 드는 네 가지 선정을 원할 때마다 어려움 없이 얻는 힘입니다. “높은 마음에 속하며 지금 여기서 즐거움에 머무는”이라는 수식은 이 네 선정이 먼 미래의 결과가 아니라 지금 이 삶에서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임을 강조합니다. 애써 조건을 만들어야만 겨우 드는 것이 아니라,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충분히 익으면 원할 때마다 쉽게 그 상태에 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이익의 핵심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원할 때마다 어려움 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이 있나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러워진 습관을 하나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 습관이 자리 잡기까지 걸린 시간도 함께 떠올려 보아요.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몸소 겪나니,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며 … 몸으로 범천의 세계에까지 위력을 미치느니라.

So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ānubhoti. 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āvibhāvaṁ …pe…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열 가지 이익 가운데 다섯 번째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첫째인 신통을 얻습니다.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는 변화부터 몸으로 범천의 세계에까지 위력을 미치는 데 이르기까지, 원문은 중간의 여러 신통 목록을 “…pe…”라는 생략 표시로 줄여 두었습니다. 이는 다른 경들에서 이미 자세히 나열된 신통의 목록을 되풀이하지 않고 대표적인 처음과 끝만 남긴 것이며, 인용에서도 원문과 같은 자리에 “…”로 그 생략을 표시했습니다.

묵상

몸을 원하는 대로 다루는 신통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나요? 신통을 직접 경험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지금 이 대목에서 눈에 들어오는 낱말 하나만 가만히 살펴보아도 좋아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그대로 남겨 두어도 됩니다.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천이로 하늘과 인간의 소리를 모두 듣나니, 멀거나 가깝거나 …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a …pe….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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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여섯째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둘째인 천이를 얻습니다. 인간의 귀를 뛰어넘어 하늘과 인간의 소리를 가리지 않고 멀든 가깝든 듣는 능력입니다. 원문은 “멀거나 가깝거나” 다음에 이어질 세부 설명을 “…pe…”로 줄여 두었으며, 이는 다른 경에서 이미 자세히 설해진 정형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편집임을 보여 줍니다. 앞선 신통과 마찬가지로, 이 앎 역시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충분히 무르익은 자리에서 저절로 뒤따르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묵상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소리가 들려오고 있나요? 그 가운데 하나만 골라 잠시 귀 기울여 볼 수 있을까요?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지금 들리는 소리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먼 소리와 가까운 소리를 구별해 보아도 좋아요.

다른 이들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헤아려 아나니, 탐욕이 있거나 여읜 마음을, 성냄이 있거나 여읜 마음을, 어리석음이 있거나 여읜 마음을, 위축되거나 산란한 마음을, 고귀하거나 고귀하지 않은 마음을, 위가 있거나 위없는 마음을, 집중되거나 집중되지 않은 마음을, 해탈했거나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낱낱이 ‘그러하다’고 아느니라.

Parasattānaṁ parapuggalānaṁ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Sarāgaṁ vā cittaṁ ‘sarāg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ṁ vā cittaṁ …pe… sadosaṁ vā cittaṁ … vītadosaṁ vā cittaṁ … samohaṁ vā cittaṁ … vītamohaṁ vā cittaṁ … saṅkhittaṁ vā cittaṁ … vikkhittaṁ vā cittaṁ … mahaggataṁ vā cittaṁ … amahaggataṁ vā cittaṁ … sauttaraṁ vā cittaṁ … anuttaraṁ vā cittaṁ … samāhitaṁ vā cittaṁ … asamāhitaṁ vā cittaṁ … vimuttaṁ vā cittaṁ … avimuttaṁ vā cittaṁ ‘avimuttaṁ cittan’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열 가지 이익 가운데 일곱째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셋째인 타심, 곧 남의 마음을 헤아려 아는 앎을 얻습니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있는 마음과 여읜 마음, 위축되거나 산란한 마음, 고귀하거나 그렇지 않은 마음, 위가 있거나 위없는 마음, 집중되거나 되지 않은 마음, 해탈했거나 하지 않은 마음까지 여덟 쌍을 낱낱이 아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원문은 각 쌍마다 “그 마음을 그러하다고 안다”는 서술을 되풀이하는데, 첫 항목과 마지막 항목만 온전히 적고 가운데는 “…”로 줄였으며, 이는 남의 마음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비추어 아는 앎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짐작해 본 뒤 실제로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 있나요? 짐작과 실제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낱낱이 기억하나니, 한 생, 두 생 … 이렇게 그 모습과 자세한 내용을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하느니라.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pe…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열 가지 이익 가운데 여덟째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넷째인 숙명, 곧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앎을 얻습니다. 한 생, 두 생으로 시작해 그 모습과 자세한 내용까지 갖추어 기억한다고 하며, 원문은 구체적인 생의 수를 나열하는 부분을 “…pe…”로 줄였습니다. 이는 다른 경에서 이미 자세히 설해진 숙명통의 정형구를 되풀이하지 않는 편집이며, 전생의 수를 세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이 유일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님을 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지금의 나를 이루기까지 거쳐 온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려 본 적이 있나요? 전생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지금의 나도 계속 변해 온 과정 위에 있다는 사실만 잠시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답을 정하지 않고 그저 물음으로 남겨 두어도 괜찮아요.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나니, 천하거나 뛰어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좋은 곳에 가거나 나쁜 곳에 가는 중생들을 보며 지은 업을 따라 나아가는 중생들을 아느니라.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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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아홉째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다섯째인 천안, 곧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앎을 얻습니다. 천하거나 뛰어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좋은 곳에 가거나 나쁜 곳에 간다는 대조되는 쌍들을 통해 중생들의 처지가 저마다 다름을 보여 주고, 그 차이가 “지은 업을 따라” 나아간 결과임을 밝힙니다. 이는 누군가의 처지를 함부로 심판하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행위가 앞으로의 삶에 이어진다는 인과의 원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묵상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앞으로의 삶에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 가운데 다시 눈여겨보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심판할 필요는 없어요. 나 자신에게도 같은 너그러움을 가져 볼 수 있을까요?

번뇌들이 다함으로써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뛰어난 앎으로 실현하고 그것을 갖추어 머무느니라.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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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열째이자 마지막으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여섯째이자 가장 마지막인 번뇌가 다함을 얻습니다. 앞선 다섯 앎이 신통이나 여러 대상을 아는 능력이었다면, 이 마지막 앎은 번뇌 자체가 다하여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라는 말은 이 실현이 죽은 뒤나 먼 미래가 아니라 이 삶 안에서 이루어짐을 강조합니다. 이로써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가져오는 열 가지 이익이 모두 갖추어집니다.

묵상

지금 이 순간에 이룰 수 있는 것과 먼 훗날에야 이룰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을, 잠시 구별해 볼 수 있나요? 번뇌의 다함이 아득하게 느껴져도 괜찮아요. 지금 이 순간의 알아차림 하나로 충분해요.

수행자들이여,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자주 행하고 닦고 많이 닦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으며 꾸준히 이어 가고 익히고 잘 정진하면 이 열 가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느니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수행자들은 만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였느니라.

Kāyagatāya, bhikkhave, satiyā āsevitāya bhāvitāya bahulīkatāya yānīkatāya vatthukatāya anuṭṭhitāya paricitāya susamāraddhāya ime dasānisaṁsā pāṭikaṅkhā”ti.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경 전체를 마무리하는 대목으로, 첫머리의 표제 문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열 가지 이익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이어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수행자들은 만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였느니라”라는 경의 통상적인 종결 형식이 따르고, 마지막으로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그 아홉 번째 경이 이로써 끝나느니라”라는 편집자의 종료 표시가 붙습니다. 이 표시는 경의 내용이 아니라 이 경이 맛지마 니까야 안에서 아홉 번째 경임을 밝히는 전승상의 매듭입니다. 첫 대목의 감탄에서 시작해 열네 가지 수행법과 열 가지 이익을 거쳐 온 이 경 전체가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묵상

이 경을 처음 열었을 때의 마음과 지금 다 읽은 뒤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가요? 열네 가지 수행법 가운데 지금 하나만 골라 오늘 잠깐 시도해 본다면, 어느 것을 골라 보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