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행자는 이 몸을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털에서 아래로
살갗에 감싸여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살피나니,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장간막, 위 속 음식,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기름기,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고 아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uddhaṁ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ṁ pūraṁ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ṁsaṁ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ṁ vakkaṁ hadayaṁ yakanaṁ kilomakaṁ pihakaṁ papphāsaṁ antaṁ antaguṇaṁ udariyaṁ karīsaṁ pittaṁ semhaṁ pubbo lohitaṁ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 네 번째 수행법으로, 몸을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머리끝에서 발바닥까지 두 방향으로 훑어 살핍니다. 머리털부터 오줌까지 서른한 가지를 낱낱이 짚는 이 목록은 몸을 아름답거나 추한 대상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저 여러 물질이 모여 있는 것으로 있는 그대로 보게 합니다. 좋다 나쁘다는 판단이 끼어들기 전에 몸을 구성물의 모임으로 보는 이 관찰은, 몸을 “나”라는 하나의 특별한 존재로 붙드는 마음을 느슨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묵상
지금 몸에서 하나만 골라 그 부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가만히 떠올려 볼까요? 좋다 싫다는 평가 없이, 그저 몸이 여러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만 바라본다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마치 양쪽이 트인 자루에 좋은 쌀, 벼, 녹두,
완두콩, 참깨, 논벼 같은 온갖 곡식이 담겨 있어
눈 밝은 사람이 자루를 열어
‘이것은 좋은 쌀, 이것은 벼, 이것은 녹두,
이것은 완두콩, 이것은 참깨, 이것은 논벼다’라고 알아보듯,
수행자도 이와 같이 이 몸을 살펴 앞서와 같은 서른한 가지가
이 몸에 있다고 아나니, 이렇게 지내는 이에게는 마음이 고요해지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ubhatomukhā putoḷi pūrā nānāvihitassa dhaññassa, seyyathidaṁ— sālīnaṁ vīhīnaṁ muggānaṁ māsānaṁ tilānaṁ taṇḍulānaṁ, tamenaṁ cakkhumā puriso muñcitvā paccavekkheyya: ‘ime sālī ime vīhī ime muggā ime māsā ime tilā ime taṇḍulā’ti;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uddhaṁ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ṁ pūraṁ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ṁsaṁ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ṁ vakkaṁ hadayaṁ yakanaṁ kilomakaṁ pihakaṁ papphāsaṁ antaṁ antaguṇaṁ udariyaṁ karīsaṁ pittaṁ semhaṁ pubbo lohitaṁ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Tassa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Tesaṁ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ṁ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앞 절의 서른한 가지 목록을 곡식 자루의 비유로 다시 확인하는 대목입니다. 양쪽이 트인 자루에 여러 곡식이 섞여 있어도, 눈 밝은 사람이 열어 보면 쌀은 쌀로 벼는 벼로 낱낱이 가려낼 수 있다는 비유입니다. 원문은 이 비유 뒤에 앞서 나온 서른한 가지 몸의 목록 전체를 글자 그대로 다시 한 번 적어 두는데, 여기서는 같은 목록이 그대로 되풀이되었다는 사실만 “앞서와 같은 서른한 가지”로 옮기고 다시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비유가 가리키는 것은 뒤섞여 보이는 몸도 자세히 살피면 여러 구성물로 또렷이 나뉜다는 점입니다.
묵상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어 보이던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구별되던 경험이 있나요? 몸을 볼 때도 “나”라는 하나의 덩어리 대신, 여러 가지가 모여 있는 것으로 바라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