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으면 얻는 열 가지 이익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꾸준히 닦았을 때 따라오는 열 가지 이익을, 즐겁지 않음을 이겨 냄부터 번뇌의 다함까지 하나씩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자주 행하고 닦고 많이 닦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으며 꾸준히 이어 가고 익히고 잘 정진하면 열 가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느니라.

Kāyagatāya, bhikkhave, satiyā āsevitāya bhāvitāya bahulīkatāya yānīkatāya vatthukatāya anuṭṭhitāya paricitāya susamāraddhāya dasānisaṁsā pāṭikaṅkhā.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여는 힘을 설명한 뒤, 이제 그것을 실제로 꾸준히 닦았을 때 따라오는 열 가지 이익을 하나씩 밝히기 시작하는 표제 문장입니다. “자주 행하고 닦고 많이 닦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는다”는 표현은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한두 번의 경험이 아니라 삶의 이동 수단이자 발판으로 삼을 만큼 꾸준히 익혀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그 열 가지 이익이 즐겁지 않음을 이겨 냄부터 번뇌의 다함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열거됩니다.

묵상

무언가를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는다”는 말이 지금 내 삶의 어떤 습관과 닮아 있나요? 그런 것이 아직 없어도 괜찮아요. 지금부터 조금씩 쌓아 갈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즐겁지 않음을 이겨 내는 이가 되어, 일어난 즐겁지 않음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이겨 내며 머무느니라.

Aratiratisaho hoti, na ca taṁ arati sahati, uppannaṁ aratiṁ abhibhuyya viha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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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첫 번째로, 아라띠(arati)라 불리는 즐겁지 않음, 곧 수행이나 삶의 어떤 자리에서 느끼는 권태와 불만족을 이겨 내는 힘입니다. 이 즐겁지 않음이 일어나지 않게 막아 준다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이겨 내며 머문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감정 자체를 없애 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일어났을 때 흔들리지 않을 힘을 준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묵상

지루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머물렀던 경험이 있나요? 그런 순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에 그런 마음이 있는지만 가볍게 살펴보아도 좋아요.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는 이가 되어, 일어난 두려움과 무서움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이겨 내며 머무느니라.

Bhayabheravasaho hoti, na ca taṁ bhayabheravaṁ sahati, uppannaṁ bhayabheravaṁ abhibhuyya viha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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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두 번째로,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는 힘입니다. 앞선 즐겁지 않음의 이익과 같은 문형으로 서술되어, 두려움 역시 아예 일어나지 않게 막는 것이 아니라 일어났을 때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이겨 내며 머무는 힘임을 보여 줍니다.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는 마음은 두려운 상황 앞에서도 몸의 감각으로 돌아갈 곳이 있어, 두려움에 온전히 휩쓸리지 않을 발판을 지닙니다.

묵상

두려운 순간에 몸의 감각으로 잠시 주의를 돌려 본 적이 있나요?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면, 다음에 두려움이 찾아올 때 발밑이나 호흡 하나만 살짝 느껴 보아도 괜찮아요.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춥고 덥고 배고프고 목마름을 견디며, 등에·모기·바람·볕·기어다니는 것들의 닿음과 험하고 나쁜 말을 견디며, 몸에 일어난 날카롭고 거세고 쓰라리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며 목숨을 위협하는 괴로운 느낌들도 참고 견디는 성질을 지니느니라.

Khamo hoti sītassa uṇhassa jighacchāya pipāsāya ḍaṁsamakasavātātapasarīsapasamphassānaṁ duruttānaṁ durāgatānaṁ vacanapathānaṁ, uppannānaṁ sārīrikānaṁ vedanānaṁ dukkhānaṁ tibbānaṁ kharānaṁ kaṭukānaṁ asātānaṁ amanāpānaṁ pāṇaharānaṁ adhivāsakajātiko h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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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세 번째로,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목마름 같은 몸의 불편함, 벌레와 날씨의 거슬림, 험한 말, 그리고 목숨을 위협할 만큼 극심한 몸의 괴로운 느낌까지 견디는 힘입니다. 이 목록은 가벼운 불편부터 생명을 위협하는 고통까지 폭넓게 나열되어 있으며,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이런 괴로움을 없애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괴로움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견디는 성질을 길러 준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묵상

몸이 힘든 순간에 그것을 밀어내려 하기보다 그저 견뎌 본 경험이 있나요? 지금 당장 무언가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 질문은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견디는 것과 참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도 천천히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높은 마음에 속하며 지금 여기서 즐거움에 머무는 네 가지 선정을 원할 때마다 어려움 없이 힘들이지 않고 얻느니라.

Catunnaṁ jhānānaṁ ābhicetasikānaṁ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naṁ nikāmalābhī hoti akicchalābhī akasiralābh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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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네 번째로, 앞서 몸으로 드는 네 가지 선정을 원할 때마다 어려움 없이 얻는 힘입니다. “높은 마음에 속하며 지금 여기서 즐거움에 머무는”이라는 수식은 이 네 선정이 먼 미래의 결과가 아니라 지금 이 삶에서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임을 강조합니다. 애써 조건을 만들어야만 겨우 드는 것이 아니라,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충분히 익으면 원할 때마다 쉽게 그 상태에 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이익의 핵심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원할 때마다 어려움 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이 있나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러워진 습관을 하나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 습관이 자리 잡기까지 걸린 시간도 함께 떠올려 보아요.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몸소 겪나니,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며 … 몸으로 범천의 세계에까지 위력을 미치느니라.

So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ānubhoti. 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āvibhāvaṁ …pe…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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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다섯 번째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첫째인 신통을 얻습니다.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는 변화부터 몸으로 범천의 세계에까지 위력을 미치는 데 이르기까지, 원문은 중간의 여러 신통 목록을 “…pe…”라는 생략 표시로 줄여 두었습니다. 이는 다른 경들에서 이미 자세히 나열된 신통의 목록을 되풀이하지 않고 대표적인 처음과 끝만 남긴 것이며, 인용에서도 원문과 같은 자리에 “…”로 그 생략을 표시했습니다.

묵상

몸을 원하는 대로 다루는 신통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나요? 신통을 직접 경험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지금 이 대목에서 눈에 들어오는 낱말 하나만 가만히 살펴보아도 좋아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그대로 남겨 두어도 됩니다.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천이로 하늘과 인간의 소리를 모두 듣나니, 멀거나 가깝거나 …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a …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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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여섯째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둘째인 천이를 얻습니다. 인간의 귀를 뛰어넘어 하늘과 인간의 소리를 가리지 않고 멀든 가깝든 듣는 능력입니다. 원문은 “멀거나 가깝거나” 다음에 이어질 세부 설명을 “…pe…”로 줄여 두었으며, 이는 다른 경에서 이미 자세히 설해진 정형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편집임을 보여 줍니다. 앞선 신통과 마찬가지로, 이 앎 역시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충분히 무르익은 자리에서 저절로 뒤따르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묵상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소리가 들려오고 있나요? 그 가운데 하나만 골라 잠시 귀 기울여 볼 수 있을까요?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지금 들리는 소리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먼 소리와 가까운 소리를 구별해 보아도 좋아요.

다른 이들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헤아려 아나니, 탐욕이 있거나 여읜 마음을, 성냄이 있거나 여읜 마음을, 어리석음이 있거나 여읜 마음을, 위축되거나 산란한 마음을, 고귀하거나 고귀하지 않은 마음을, 위가 있거나 위없는 마음을, 집중되거나 집중되지 않은 마음을, 해탈했거나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낱낱이 ‘그러하다’고 아느니라.

Parasattānaṁ parapuggalānaṁ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Sarāgaṁ vā cittaṁ ‘sarāg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ṁ vā cittaṁ …pe… sadosaṁ vā cittaṁ … vītadosaṁ vā cittaṁ … samohaṁ vā cittaṁ … vītamohaṁ vā cittaṁ … saṅkhittaṁ vā cittaṁ … vikkhittaṁ vā cittaṁ … mahaggataṁ vā cittaṁ … amahaggataṁ vā cittaṁ … sauttaraṁ vā cittaṁ … anuttaraṁ vā cittaṁ … samāhitaṁ vā cittaṁ … asamāhitaṁ vā cittaṁ … vimuttaṁ vā cittaṁ … avimuttaṁ vā cittaṁ ‘avimuttaṁ cittan’ti pajān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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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일곱째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셋째인 타심, 곧 남의 마음을 헤아려 아는 앎을 얻습니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있는 마음과 여읜 마음, 위축되거나 산란한 마음, 고귀하거나 그렇지 않은 마음, 위가 있거나 위없는 마음, 집중되거나 되지 않은 마음, 해탈했거나 하지 않은 마음까지 여덟 쌍을 낱낱이 아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원문은 각 쌍마다 “그 마음을 그러하다고 안다”는 서술을 되풀이하는데, 첫 항목과 마지막 항목만 온전히 적고 가운데는 “…”로 줄였으며, 이는 남의 마음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비추어 아는 앎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짐작해 본 뒤 실제로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 있나요? 짐작과 실제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낱낱이 기억하나니, 한 생, 두 생 … 이렇게 그 모습과 자세한 내용을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하느니라.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pe…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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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여덟째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넷째인 숙명, 곧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앎을 얻습니다. 한 생, 두 생으로 시작해 그 모습과 자세한 내용까지 갖추어 기억한다고 하며, 원문은 구체적인 생의 수를 나열하는 부분을 “…pe…”로 줄였습니다. 이는 다른 경에서 이미 자세히 설해진 숙명통의 정형구를 되풀이하지 않는 편집이며, 전생의 수를 세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이 유일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님을 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지금의 나를 이루기까지 거쳐 온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려 본 적이 있나요? 전생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지금의 나도 계속 변해 온 과정 위에 있다는 사실만 잠시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답을 정하지 않고 그저 물음으로 남겨 두어도 괜찮아요.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나니, 천하거나 뛰어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좋은 곳에 가거나 나쁜 곳에 가는 중생들을 보며 지은 업을 따라 나아가는 중생들을 아느니라.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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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아홉째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다섯째인 천안, 곧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앎을 얻습니다. 천하거나 뛰어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좋은 곳에 가거나 나쁜 곳에 간다는 대조되는 쌍들을 통해 중생들의 처지가 저마다 다름을 보여 주고, 그 차이가 “지은 업을 따라” 나아간 결과임을 밝힙니다. 이는 누군가의 처지를 함부로 심판하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행위가 앞으로의 삶에 이어진다는 인과의 원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묵상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앞으로의 삶에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 가운데 다시 눈여겨보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심판할 필요는 없어요. 나 자신에게도 같은 너그러움을 가져 볼 수 있을까요?

번뇌들이 다함으로써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뛰어난 앎으로 실현하고 그것을 갖추어 머무느니라.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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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이익 가운데 열째이자 마지막으로, 여섯 가지 높은 앎 가운데 여섯째이자 가장 마지막인 번뇌가 다함을 얻습니다. 앞선 다섯 앎이 신통이나 여러 대상을 아는 능력이었다면, 이 마지막 앎은 번뇌 자체가 다하여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라는 말은 이 실현이 죽은 뒤나 먼 미래가 아니라 이 삶 안에서 이루어짐을 강조합니다. 이로써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가져오는 열 가지 이익이 모두 갖추어집니다.

묵상

지금 이 순간에 이룰 수 있는 것과 먼 훗날에야 이룰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을, 잠시 구별해 볼 수 있나요? 번뇌의 다함이 아득하게 느껴져도 괜찮아요. 지금 이 순간의 알아차림 하나로 충분해요.

수행자들이여,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자주 행하고 닦고 많이 닦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으며 꾸준히 이어 가고 익히고 잘 정진하면 이 열 가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느니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수행자들은 만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였느니라.

Kāyagatāya, bhikkhave, satiyā āsevitāya bhāvitāya bahulīkatāya yānīkatāya vatthukatāya anuṭṭhitāya paricitāya susamāraddhāya ime dasānisaṁsā pāṭikaṅkhā”ti.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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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전체를 마무리하는 대목으로, 첫머리의 표제 문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열 가지 이익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이어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수행자들은 만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였느니라”라는 경의 통상적인 종결 형식이 따르고, 마지막으로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그 아홉 번째 경이 이로써 끝나느니라”라는 편집자의 종료 표시가 붙습니다. 이 표시는 경의 내용이 아니라 이 경이 맛지마 니까야 안에서 아홉 번째 경임을 밝히는 전승상의 매듭입니다. 첫 대목의 감탄에서 시작해 열네 가지 수행법과 열 가지 이익을 거쳐 온 이 경 전체가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묵상

이 경을 처음 열었을 때의 마음과 지금 다 읽은 뒤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가요? 열네 가지 수행법 가운데 지금 하나만 골라 오늘 잠깐 시도해 본다면, 어느 것을 골라 보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