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는 이에게 흘러드는 것이 다한다

흘러드는 것이 다하는 일은 다섯 무더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고 보는 이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사왓티에 머무셨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아는 이, 보는 이에게 흘러드는 것(아사와)이 다한다고 말한다. 알지 못하는 이, 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무엇을 아는 이, 무엇을 보는 이에게 흘러드는 것이 다하는가? ‘이것이 몸이고, 이것이 몸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몸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 이것이 인식이다 … 이것들이 지어내는 작용이다 … 이것이 의식이고,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아는 이, 이렇게 보는 이에게 흘러드는 것이 다한다.

Sāvatthiyaṁ viharati. “Jānato ahaṁ, bhikkhave, passato āsavānaṁ khayaṁ vadāmi, no ajānato no apassato. Kiñca, bhikkhave, jānato kiṁ passato āsavānaṁ khayo hoti? Iti rūpaṁ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iti vedanā …pe… iti saññā … iti saṅkhārā … iti viññāṇaṁ iti viññāṇassa samudayo iti viññāṇassa atthaṅgamoti. Evaṁ kho, bhikkhave, jānato evaṁ passato āsavānaṁ khayo hoti.

상윳따 니까야 SN 12.23 우빠니사 숫따 (바탕)

배경

경은 사왓티에서 시작해 곧바로 하나의 주장을 세웁니다. 흘러드는 것(아사와)이 다하는 일을 아는 이, 보는 이에게 두고, 알지 못하는 이, 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두지 않습니다. 이어 스스로 ‘무엇을 아는 이인가’ 하고 묻고, 다섯 무더기마다 ‘이것이 그것이고, 일어남이고, 사라짐이다’라고 답합니다. 원문은 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에서 ‘…pe…’로 같은 틀을 줄였고 번역도 같은 자리에 ‘…’를 두었습니다. 의식에서 틀이 온전히 다시 나오므로 앞의 셋도 같은 틀로 읽습니다. 여기서 알 것은 각 무더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사라지는지입니다.

묵상

알고 보는 일을 시험처럼 느끼는 날도 있을 수 있어요. 지금 몸이나 느낌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것이 일어나던 때와 가라앉던 때를 떠올릴 수 있나요?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없다는 답도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