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했음을 아는 앎의 바탕

다했음을 아는 앎의 바탕은 풀려남, 풀려남의 바탕은 탐냄이 빛바램이라고 거슬러 오릅니다.

수행자들이여, 다했음을 아는 앎에도 바탕(우빠니사)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바탕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다했음을 아는 앎의 바탕은 무엇인가? ‘풀려남’이라고 말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풀려남에도 바탕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바탕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풀려남의 바탕은 무엇인가? ‘탐냄이 빛바램’이라고 말해야 한다.

Yampissa taṁ, bhikkhave, khayasmiṁ khaye ñāṇaṁ, tampi saupanisaṁ vadāmi, no anupanisaṁ. Kā ca, bhikkhave, khaye ñāṇassa upanisā? ‘Vimuttī’tissa vacanīyaṁ. Vimuttimpāhaṁ, bhikkhave, saupanisaṁ vadāmi, no anupanisaṁ. Kā ca, bhikkhave, vimuttiyā upanisā? ‘Virāgo’tissa vacanīyaṁ.

상윳따 니까야 SN 12.23 우빠니사 숫따 (바탕)

배경

앞 대목에서 흘러드는 것이 다한다고 말한 뒤, 경은 그렇게 다했음을 아는 앎에도 바탕(우빠니사)이 있다고 말합니다. 같은 세 걸음이 되풀이됩니다. ‘바탕이 있다고 말하고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선언, ‘그 바탕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이것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답입니다. 이 카드에서는 다했음을 아는 앎의 바탕이 풀려남이고, 풀려남의 바탕이 탐냄이 빛바램입니다. 결과에서 출발해 그것을 받치는 조건으로 한 칸씩 물러나는 방향이며, 앎은 조건 없이 나타나는 것으로 말해지지 않습니다.

묵상

끝에 있는 앎이 앞의 조건에 기대어 있다고 읽으니 어떤 느낌이 드나요? 지금 풀려남이나 탐냄이 빛바램을 확인하려 하기보다, 이 순서를 그냥 한 번 따라 읽어 보는 정도로도 괜찮을까요? 잘 와닿지 않는다면 그것도 하나의 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