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믿음의 바탕은 무엇인가? ‘괴로움’이라고 말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에도 바탕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바탕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의 바탕은 무엇인가? ‘태어남’이라고 말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태어남에도 바탕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바탕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Kā ca, bhikkhave, saddhāya upanisā? ‘Dukkhan’tissa vacanīyaṁ. Dukkhampāhaṁ, bhikkhave, saupanisaṁ vadāmi, no anupanisaṁ. Kā ca, bhikkhave, dukkhassa upanisā? ‘Jātī’tissa vacanīyaṁ. Jātimpāhaṁ, bhikkhave, saupanisaṁ vadāmi, no anupanisaṁ.
상윳따 니까야 SN 12.23 우빠니사 숫따 (바탕)배경
믿음의 바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경은 괴로움(둑카)이라고 답합니다. 풀려남 쪽에서 거슬러 올라온 사슬이 여기서 괴로움에 닿습니다. 이어 괴로움의 바탕은 태어남(자띠)이라고 합니다. 원문은 둘 사이를 ‘바탕’이라는 한 낱말로만 잇고 원인을 설명하는 문장을 덧붙이지 않으며, 괴로움을 겪는 사람을 탓하는 문장도 없습니다. 물음과 답의 틀은 앞 구간과 같고, 바뀐 것은 물음의 주어가 믿음으로 옮겨 간 점입니다.
묵상
믿음이 괴로움을 바탕으로 한다는 말이 지금의 나에게 어떻게 들리나요? 힘든 시간을 지나며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졌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 마음을 어떻게 불러 볼 수 있을까요? 아직 말로 하기 어렵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