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켜쥠을 넘어선 고요

방심하지 않는 이들이 움켜쥠 없이 풀려나 지금 이 삶에서 고요해진다는 맺음 게송입니다.

“태어남과 죽음이 생겨나는 바탕, 움켜쥠(우빠다나)에서 두려움을 보고, 움켜쥐지 않아 풀려난다, 태어남과 죽음이 다한 데서. 그들은 방심하지 않고 행복하며 지금 이 삶에서 온전히 고요히 꺼졌다. 모든 원한과 두려움을 넘어서고 모든 괴로움을 벗어났다.”

Upādāne bhayaṁ disvā, jātimaraṇasambhave; Anupādā vimuccanti, jātimaraṇasaṅkhaye. Te appamattā sukhino, diṭṭhadhammābhinibbutā; Sabbaverabhayātītā, sabbadukkhaṁ upaccagu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36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경을 맺는 게송의 뒤 두 수입니다. 앞 게송의 착하고 참된 사람들이 어디에 이르는지를 말합니다. 그들은 태어남과 죽음이 생겨나는 바탕인 움켜쥠(우빠다나)에서 두려움을 보고, 움켜쥐지 않아 풀려나며, 그 풀려남은 태어남과 죽음이 다한 데서 이루어집니다. 이어 그들은 방심하지 않고 행복하며, 지금 이 삶에서 온전히 고요히 꺼졌고, 모든 원한과 두려움과 괴로움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전령으로 알아본 일이 움켜쥠을 내려놓는 데까지 이어지며 경이 끝납니다. ‘고요히 꺼졌다’로 옮긴 낱말(아비닙부따)은 고요히 꺼짐(닙바나)과 같은 뿌리의 말입니다. 다른 판본 몇 가지와 영어 번역은 ‘방심하지 않고’ 자리를 ‘안전한 곳에 이르러’로 읽으며, 이 카드는 정본의 독법을 따랐습니다.

묵상

‘움켜쥐지 않아 풀려난다’는 말에서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것 하나가 떠오르나요? 놓으라는 요구가 아니니, 쥐고 있다는 것만 알아차려도 괜찮을까요?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그것도 답이에요. 쥐고 있는 것이 소중한 것이어도 괜찮아요. 천천히 읽어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