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무리는 어찌하여 이토록 한껏 밝은 모습입니까?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천을 들고 즐거워합니까? 아수라들과 싸움이 벌어져 신들이 이기고 아수라들이 졌던 그때에도 이처럼 소름 돋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떤 놀라운 일을 보았기에 신들이 이토록 기뻐합니까? 환성을 지르고 노래하고 악기를 타며 팔을 치고 춤을 춥니다. 메루 산 꼭대기에 사는 분들께 묻습니다. 여러분, 어서 제 의심을 떨쳐 주십시오.”
“Kiṁ devasaṅgho atiriva kalyarūpo, Dussaṁ gahetvā ramayatha kiṁ paṭicca. Yadāpi āsī asurehi saṅgamo, Jayo surānaṁ asurā parājitā; Tadāpi netādiso lomahaṁsano, Kimabbhutaṁ daṭṭhu marū pamoditā. Seḷenti gāyanti ca vādayanti ca, Bhujāni phoṭenti ca naccayanti ca; Pucchāmi vohaṁ merumuddhavāsine, Dhunātha me saṁsayaṁ khippa mārisā”.
숫따니빠따 Snp 3.11 날라까 숫따배경
아시따의 물음은 세 게송에 걸칩니다. 먼저 신들이 왜 이토록 밝은 모습이냐고 묻고, 이어 아수라와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조차 이런 일은 없었다고 견주며, 끝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늘어놓은 뒤 의심을 풀어 달라고 청합니다. 아수라는 신들과 맞서 싸우는 무리로, 니까야의 다른 경들에도 신들과 아수라의 싸움 이야기가 나옵니다. 논리의 중심은 견줌입니다. 신들이 크게 기뻐했을 승리보다 지금의 일이 더 크다는 것을 물음 안에서 먼저 세웁니다. ‘소름 돋는(lomahaṁsana)’이라는 낱말이 그 크기를 몸의 반응으로 보여 줍니다. 아시따는 짐작하지 않고 묻고, 그 물음이 다음 게송에서 탄생의 소식을 끌어냅니다.
묵상
큰 기쁨 앞에서 아시따는 의심을 숨기지 않고 물어요. 최근에 모르는 채로 두기보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나요? 아직 묻지 못했다면 무엇이 그 물음을 막고 있는지 한번 살펴볼 수 있을까요? 모르겠다면 모르겠다는 대로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