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이룰 이(보디삿따), 견줄 데 없는 으뜸가는 보배가 사람의 세상에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사꺄족의 마을, 룸비니 지방에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뻐하며 한껏 밝은 모습입니다. 그분은 모든 존재 가운데 가장 높은 으뜸가는 사람,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이며 모든 생명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선인(이시)이라 불리는 숲에서 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짐승들을 누르는 힘센 사자가 포효하듯이.”
“So bodhisatto ratanavaro atulyo, Manussaloke hitasukhatthāya jāto; Sakyāna gāme janapade lumbineyye, Tenamha tuṭṭhā atiriva kalyarūpā. So sabbasattuttamo aggapuggalo, Narāsabho sabbapajānamuttamo; Vattessati cakkamisivhaye vane, Nadaṁva sīho balavā migābhibhū”.
숫따니빠따 Snp 3.11 날라까 숫따배경
신들이 아시따의 물음에 답합니다. 첫 게송은 기쁨의 까닭을, 둘째 게송은 그 아기가 앞으로 할 일을 말합니다. 깨달음을 이룰 이(보디삿따)가 사람의 세상에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이 신들이 기뻐하는 이유이며, 태어난 곳은 사꺄족의 룸비니입니다. 보디삿따는 여기서 깨닫기 전의 고따마를 가리킵니다. ‘바퀴를 굴린다’는 말은 여기서 풀이 없이 나오고, 뒤에서 아시따가 ‘가르침의 바퀴’라고 밝힙니다. 이 경은 ‘선인이라 불리는 숲’의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습니다. 다른 경(SN 56.11)이 첫 가르침을 편 곳을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로 전하므로 흔히 그곳으로 읽습니다. 사자의 포효는 두려움 없이 힘 있게 말하는 모습의 비유입니다.
묵상
‘사람의 세상에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을 읽고 나서 마음에 먼저 떠오른 것은 무엇인가요? 누군가의 이로움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말이 낯설거나 멀게 느껴지면 그 느낌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요. 그런 느낌이 어디에서 오는지 잠시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