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남은 내 목숨은 길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나는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견줄 데 없는 짐을 진 분의 가르침을 나는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괴롭고, 불행에 빠져 아파합니다.”
Mamañca āyu na ciramidhāvaseso, Athantarā me bhavissati kālakiriyā; Sohaṁ na sossaṁ asamadhurassa dhammaṁ, Tenamhi aṭṭo byasanaṅgato aghāvī”.
숫따니빠따 Snp 3.11 날라까 숫따배경
눈물의 까닭이 아시따의 입으로 밝혀집니다. 아이가 깨달음을 이루어 가르침을 펼 때까지 자신의 목숨이 이어지지 않으니, 그 가르침을 듣지 못하리라는 슬픔입니다. ‘견줄 데 없는 짐을 진 분(asamadhura)’은 번역자 주석에 따르면 길을 처음 닦는 이로서 누구보다 큰 짐을 진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같은 말이 바로 다음 게송에서 다시 나옵니다. ‘그래서(tena)’라는 말이 괴로움의 까닭을 앞의 세 줄, 곧 남은 목숨이 짧아 그 가르침을 듣지 못한다는 사실에 묶습니다. 아이의 안위를 걱정한 사꺄족의 짐작과는 다른 까닭입니다. 경은 이 슬픔을 줄이거나 나무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둡니다.
묵상
듣고 싶었던 말을 끝내 듣지 못하게 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아플 수 있어요. 아시따처럼 아쉬움이 남은 일이 떠오르나요? 지금 그 마음을 달래려 하지 않고, 아쉬운 채로 있다는 것만 알아차려도 괜찮을까요? 떠오르는 것이 없으면 건너뛰어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