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삶을 사는 그는 사꺄족에게 큰 기쁨을 안겨 준 뒤 궁의 안채를 나섰다. 그는 조카를 몸소 가엾이 여겨 견줄 데 없는 짐을 진 분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일렀다. “‘붓다’라는 소리를 다른 이에게서 듣거든, 온전한 깨달음에 이르러 가르침의 길을 열어 보이는 이라 하거든, 그곳에 가서 그의 가르침을 자세히 여쭙고 그 부처님 곁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라.”
So sākiyānaṁ vipulaṁ janetvā pītiṁ, Antepuramhā niggamā brahmacārī; So bhāgineyyaṁ sayaṁ anukampamāno, Samādapesi asamadhurassa dhamme. “Buddhoti ghosaṁ yada parato suṇāsi, Sambodhipatto vivarati dhammamaggaṁ; Gantvāna tattha samayaṁ paripucchamāno, Carassu tasmiṁ bhagavati brahmacariyaṁ”.
숫따니빠따 Snp 3.11 날라까 숫따배경
머리 게송이 아시따에게서 조카 날라까로 넘어가는 대목입니다. 첫 게송은 아시따가 궁을 떠나며 조카에게 그 가르침을 따르라고 일러 두는 서술이고, 둘째 게송은 조카에게 한 말을 그대로 옮깁니다. 날라까는 붓다의 출현을 다른 이의 입을 통해(parato) 먼저 듣게 됩니다. 둘째 줄을 번역자 주석은 ‘붓다(깨달은 이)’라는 말의 짧은 정의로 읽습니다. 셋째 줄의 ‘사마야(samaya)’는 ‘가르침·주장’이라는 사전 풀이를 따라 옮겼고, 보디·노먼의 영어 번역도 같습니다. 번역자 주석(수자또)은 이것을 ‘깨달음의 체득(abhisamaya)’을 줄인 말로 봅니다. 아시따가 조카에게 맡긴 일은 소식을 들으면 찾아가 묻고, 그 곁에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묵상
아시따는 조카에게 소식을 들으면 직접 가서 물어보라고 일렀어요. 최근에 남에게서 전해 들은 말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지금은 확인할 힘이 없다면 그냥 두고 쉬어도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한 번 조용히 물어볼 수 있을까요? 모르겠다면 그대로 두어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