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나무 밑의 하루

적게 바라고 음식을 얻은 뒤 숲의 나무 밑에서 깊은 집중을 닦는 현자의 하루를 그립니다.

“배를 다 채우지 않고 음식을 알맞게 먹으며, 바람을 적게 갖고 탐내지 않아야 한다. 늘 바람에 굶주리지 않는 그는 바라는 것이 없고, 불이 꺼지듯 고요한 이(닙부따)가 된다. 음식을 얻으러 다닌 뒤 숲으로 가서 나무 밑에 이르러 현자(무니)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깊은 집중(자나)에 힘쓰는 슬기로운 그는 숲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나무 밑에서 깊은 집중을 닦으며 스스로를 기쁘게 해야 한다.”

Ūnūdaro mitāhāro, Appicchassa alolupo; Sadā icchāya nicchāto, Aniccho hoti nibbuto. Sa piṇḍacāraṁ caritvā, Vanantamabhihāraye; Upaṭṭhito rukkhamūlasmiṁ, Āsanūpagato muni. Sa jhānapasuto dhīro, Vanante ramito siyā; Jhāyetha rukkhamūlasmiṁ, Attānamabhitosayaṁ.

숫따니빠따 Snp 3.11 날라까 숫따

배경

대답이 현자의 하루로 넘어갑니다. 첫 게송은 먹는 양과 바람의 크기를 다루고, 그렇게 바라는 것이 없는 이를 ‘불이 꺼지듯 고요한 이(닙부따)’라고 부릅니다. 둘째 게송은 음식을 얻은 뒤 숲의 나무 밑에 앉는 순서이고, 셋째 게송은 거기서 깊은 집중(자나)을 닦으며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모습입니다. 첫 게송 셋째 줄의 ‘늘(sadā)’ 자리에 몇몇 판본은 ‘sa ve(그는 참으로)’를 두고 번역자 주석도 그 독법을 권하지만, 여기서는 원문의 ‘sadā’를 따랐습니다. 먹는 것, 머무는 곳, 마음 모음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바람을 줄이는 일이 고요해지는 일의 앞자리에 놓입니다.

묵상

‘바람을 적게 갖는다’는 말에서, 오늘 내가 가장 많이 바란 것은 무엇이었나요? 그 바람을 없애려 하기보다 이름만 붙여 볼 수 있을까요? 이름을 붙인 뒤 마음이 조금 고요해지는 느낌이 있다면 그것을, 없다면 없는 대로 알아차려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