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음의 길

홀로 앉고 길을 닦는 이들을 가까이 모시며, 슬기로운 이들의 말을 듣고 부끄러움과 믿음을 키우라고 합니다.

“홀로 앉는 일을 익히고 길을 닦는 이(사마나)들을 가까이 모시는 일도 익혀라. 홀로 있음이 현자의 길(모네이야)이라 일컬어진다. 그대가 홀로 즐거워한다면 그때 열 방향에 빛날 것이다. 슬기로운 이들, 깊은 집중(자나)을 닦는 이들, 감각의 즐거움을 버린 이들의 말을 듣고 나를 따르는 이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히리)과 믿음을 더욱 키워야 한다.”

Ekāsanassa sikkhetha, Samaṇūpāsanassa ca; Ekattaṁ monamakkhātaṁ, Eko ce abhiramissasi; Atha bhāhisi dasadisā. Sutvā dhīrānaṁ nighosaṁ, Jhāyīnaṁ kāmacāginaṁ; Tato hiriñca saddhañca, Bhiyyo kubbetha māmako.

숫따니빠따 Snp 3.11 날라까 숫따

배경

현자의 길이 ‘홀로 있음(ekatta)’으로 모입니다. 첫 게송은 홀로 앉는 일과 길을 닦는 이들을 가까이 모시는 일을 함께 익히라고 하고, 홀로 있음을 현자의 길이라 부릅니다. 홀로 즐거워하면 열 방향에 빛난다는 줄은 비유로 읽힙니다. 둘째 게송은 슬기로운 이들의 말을 듣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과 믿음을 키우라는 당부입니다. ‘말(nighosa)’을 주석서는 ‘명성’으로 풀고 보디·노먼도 이를 따르지만, 번역자 주석(수자또)은 ‘말, 가르침’으로 읽으며 여기서도 그렇게 옮겼습니다. 홀로 앉기와 길을 닦는 이들 곁에서 배우기가 한 게송에 함께 놓여, 홀로 있음 속에서도 배움의 끈을 잇게 합니다.

묵상

‘홀로 있음’과 ‘가까이 모심’이 한 게송에 함께 있어요. 오늘 혼자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그 시간은 편안했나요, 아니면 외로웠나요? 혼자 있는 일이 지금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 느낌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요. 곁에 있어 준 사람이 있다면 그 얼굴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