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이여, 만일 그들이 그것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 고따마 존자시여, 그들이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저의 것이 됩니다.
- 바라문이여, 그와 같이
우리는 욕하지 않는데 그대가 욕하고,
성내지 않는데 그대가 성내고,
다투지 않는데 그대가 다투나,
우리는 그것을 받지 않느니라.
바라문이여, 그것은 그대의 것이니라.
바라문이여, 그것은 그대의 것이니라.
“Sace kho pana te, brāhmaṇa, nappaṭiggaṇhanti, kassa taṁ hotī”ti? “Sace te, bho gotama, nappaṭiggaṇhanti, amhākameva taṁ hotī”ti. “Evameva kho, brāhmaṇa, yaṁ tvaṁ amhe anakkosante akkosasi, arosente rosesi, abhaṇḍante bhaṇḍasi, taṁ te mayaṁ nappaṭiggaṇhāma. Tavevetaṁ, brāhmaṇa, hoti; tavevetaṁ, brāhmaṇa, hoti.”
상윳따 니까야 SN 7.2 악구경 (Akkosasutta) 배경
욕쟁이 바라드와자라는 바라문이 자기 친족이 출가했다는 소식에 화가 나 부처님을 찾아와 거친 말로 욕을 퍼부었습니다. 부처님은 되받아치지 않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대의 집에 친지와 손님이 찾아오면 음식을 대접하는가? 그들이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것은 누구의 것이 되는가?” 바라문이 “제 것이 됩니다”라고 답하자, 부처님은 “그것은 그대의 것이니라”를 두 번 되풀이하셨습니다. 이것은 소극적 무시가 아니라 의식적 선택입니다. 받으면 내가 괴롭고, 받지 않으면 건넨 사람에게 남습니다. 부처님은 이어서 “성난 자에게 되받아 성내는 자는 자신을 더 나쁘게 만든다”는 게송도 읊으셨습니다. 이 바라문은 그 자리에서 귀의하고 출가하여, 뒤에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묵상
누군가가 나를 비판할 때, 자동으로 "받고" 있지는 않나요? 상처받고, 화내고, 반박하는 것이 "받는" 것입니다. 다음에 비판이 올 때, 마음속으로 "나는 이것을 받지 않겠다"고 말해보세요. 그 한 문장이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어줄 겁니다.
“수행자들이여, 남이 나·담마·승가를 헐뜯어도 분노하거나 불쾌해하거나 마음 상하지 마라.
수행자들이여, 그들이 세 대상을 헐뜯을 때 화내거나 언짢으면 그대들에게 장애가 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그때 남의 말이 잘됐는지 잘못됐는지 알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행자들이여, 그들이 세 대상을 헐뜯으면 사실 아닌 것을 ‘사실이 아니고 참되지 않으며 우리에게 없고 발견되지 않는다’고 풀어 밝혀라.”
“Mamaṁ vā, bhikkhave, pare avaṇṇaṁ bhāseyyuṁ, dhammassa vā avaṇṇaṁ bhāseyyuṁ, saṅghassa vā avaṇṇaṁ bhāseyyuṁ, tatra tumhehi na āghāto na appaccayo na cetaso anabhiraddhi karaṇīyā. Mamaṁ vā, bhikkhave, pare avaṇṇaṁ bhāseyyuṁ, dhammassa vā avaṇṇaṁ bhāseyyuṁ, saṅghassa vā avaṇṇaṁ bhāseyyuṁ, tatra ce tumhe assatha kupitā vā anattamanā vā, tumhaṁ yevassa tena antarāyo. Mamaṁ vā, bhikkhave, pare avaṇṇaṁ bhāseyyuṁ, dhammassa vā avaṇṇaṁ bhāseyyuṁ, saṅghassa vā avaṇṇaṁ bhāseyyuṁ, tatra ce tumhe assatha kupitā vā anattamanā vā, api nu tumhe paresaṁ subhāsitaṁ dubbhāsitaṁ ājāneyyāthā”ti? “No hetaṁ, bhante”. “Mamaṁ vā, bhikkhave, pare avaṇṇaṁ bhāseyyuṁ, dhammassa vā avaṇṇaṁ bhāseyyuṁ, saṅghassa vā avaṇṇaṁ bhāseyyuṁ, tatra tumhehi abhūtaṁ abhūtato nibbeṭhetabbaṁ: ‘itipetaṁ abhūtaṁ, itipetaṁ atacchaṁ, natthi cetaṁ amhesu, na ca panetaṁ amhesu saṁvijjatī’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세존은 비난과 칭찬 가운데 먼저 비난에 대한 태도를 답하십니다. “수행자들이여” 네 번과 질문 뒤 수행자들의 부정 답변을 보존하며, 분노의 세 양상은 분별의 장애가 되고 거짓 주장은 거짓이라는 사실로 풀어야 한다고 잇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라는 말에 그치지 않고, 화가 판단을 막는 인과와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는 대응을 함께 제시합니다. 분노하지 않음은 비난을 묵인하는 침묵이 아니라, 거짓을 거짓이라고 정확히 풀어 밝힐 수 있게 하는 전제입니다.
묵상
비난을 들었을 때 분노가 사실 판단을 가린다는 인과 가운데 어느 대목이 가장 선명한가요? 감정이 있는 채로도 말의 참과 거짓을 천천히 살필 작은 틈이 가능한지 궁금해할 수 있을까요? 분노·불쾌·마음 상함 가운데 사실 판단을 가장 빨리 흐리는 반응은 무엇인가요?
수행자들이여, 다섯 가지 말이 있으니 -
때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진실하거나 진실하지 않거나,
부드럽거나 거칠거나,
이로운 것이거나 이롭지 않거나,
자애의 마음이거나 악의의 마음이거나.
수행자들이여, 어떤 말을 듣더라도
그대들은 이렇게 수행해야 하느니라 -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으리라,
악한 말을 하지 않으리라,
상대에 대해서도 멧따의 마음으로 머무르리라.”
Pañcime bhikkhave vācāpathā yehi vo pare vadamānā vadeyyuṃ - kālena vā akālena vā, bhūtena vā abhūtena vā, saṇhena vā pharusena vā.
맛지마 니까야 MN 21 톱의 비유경 (Kakacūpamasutta) 배경
붓다는 다섯 가지 유형의 말을 나열하신 후, 어떤 유형이든 흔들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때에 맞든 안 맞든, 진실하든 아니든, 부드럽든 거칠든 - 어떤 비판이 오더라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멧따의 마음으로 머무르리라"가 핵심입니다. 비판자에게도 자비를 보내라는 것. 비판하는 사람도 자기 나름의 괴로움 때문에 그러는 것이니까. "저 사람은 왜 나를 비판하는가"가 아니라 "저 사람은 어떤 괴로움 때문에 저러는가"로 질문을 바꾸면, 비판이 덜 아프고 상대에 대한 이해가 생깁니다.
묵상
다음에 비판을 받을 때, 세 가지를 구분해 보세요. ① 내용이 맞나요? (감정 가라앉힌 후 판단) ② 상대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도우려는 것인가, 해치려는 것인가) ③ 나의 반응은 어떤가요? (방어인가, 수용인가) 이 세 단계를 거치면 비판이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
마치 땅에 묻힌 보물을 알려주는 자처럼,
그런 현자를 가까이 하라.
그를 가까이 하면 좋아지지,
나빠지지 않느니라.
Nidhīnaṃva pavattāraṃ, yaṃ passe vajjadassinaṃ; niggayhavādiṃ medhāviṃ, tādisaṃ paṇḍitaṃ bhaje; tādisaṃ bhajamānassa, seyyo hoti na pāpiyo.
법구경 Dhammapada 76 배경
비판을 다루는 이야기가 이 게송으로 전환됩니다. 앞의 세 가르침이 "비판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었다면, 이것은 "유익한 비판을 환영하라"입니다.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을 "땅에 묻힌 보물을 알려주는 자"에 비유합니다. 보물은 땅에 있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 누군가 파는 곳을 알려줘야 합니다. 당신의 결점도 마찬가지 - 스스로는 보이지 않지만, 남이 지적해주면 보입니다. 비판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보물을 묻어둔 채 사는 사람입니다. 비판을 환영하는 사람은 보물을 찾는 사람입니다.
묵상
당신의 삶에서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을 멀리하고 있지는 않나요? 불편한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벗입니다. 그 사람에게 감사해 보면 어떨까요 - 그가 당신의 보물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