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면 지는 것 같아요. 참는 게 바보 같아요.
같은 사람이 계속 선을 넘는 말을 하는데 그때마다 웃어넘기거나 참았어요. 그랬더니 상대는 더 편하게 말하고, 저만 손해 보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참는 제가 바보 같고, 한 번쯤은 되받아쳐야 하나 싶어요.
먼저
참았는데도 상대가 더 편하게 나오면 억울하고 허탈해요. 참는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해가 돼요.
부처님 때, 비슷한 자리
사왓티에서 부처님이 수행자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신들과 아수라(신과 맞서는 존재들)의 전쟁에서 아수라의 왕 웨빠찟띠가 져서 묶인 채 신들의 왕 삭까 앞에 끌려왔습니다. 웨빠찟띠는 삭까가 회의장을 드나들 때마다 거친 욕을 퍼부었습니다. 삭까의 마부 마탈리가 물었습니다. 두려워서입니까, 힘이 없어서입니까. 삭까는 게송으로 답했고, 마탈리는 반대 의견을 말했고, 삭까는 다시 답했습니다. 부처님은 이 이야기를 마치며 수행자들에게, 신들의 왕도 참음과 부드러움을 칭찬한다고 일렀습니다.
그때 수행자들이여, 마부 마탈리가 신들의 왕 삭까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마가와여, 삭까여, 두려워서입니까, 힘이 없어서입니까, 웨빠찟띠가 눈앞에서 하는 거친 말을 듣고도 참는 것은?’ ‘두려워서도 아니고 힘이 없어서도 아니다. 내가 웨빠찟띠를 참는 것은. 나 같은 슬기로운 이가 어리석은 자와 어찌 다투겠는가.’
빠알리 원문
Atha kho, bhikkhave, mātali saṅgāhako sakkaṁ devānamindaṁ gāthāhi ajjhabhāsi: ‘Bhayā nu maghavā sakka, dubbalyā no titikkhasi; Suṇanto pharusaṁ vācaṁ, sammukhā vepacittino’ti. ‘Nāhaṁ bhayā na dubbalyā, khamāmi vepacittino; Kathañhi mādiso viññū, bālena paṭisaṁyuje’ti.
‘어리석은 자들은 더 날뛸 것입니다, 막는 이가 없다면. 그러니 슬기로운 이는 엄한 벌로 어리석은 자를 막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를 막는 길은 내 생각에는 오직 이것이다. 남이 몹시 화난 것을 알고서 알아차리며(사띠) 가라앉는 것.’ ‘바사와여, 오직 이렇게 참기만 하는 데서 나는 허물을 본다. 어리석은 자가 이렇게 생각할 때, “이 사람은 나를 두려워해서 참는다” 하고 지혜 없는 자는 더 덤빈다, 달아나는 사람에게 더 달려드는 소처럼.’ ‘그가 생각하든 말든 내버려 두라, “이 사람은 나를 두려워해서 참는다”고. 자신의 이로움이 으뜸가는 이로움이니 참음보다 나은 것은 찾을 수 없다.
빠알리 원문
‘Bhiyyo bālā pabhijjeyyuṁ, no cassa paṭisedhako; Tasmā bhusena daṇḍena, dhīro bālaṁ nisedhaye’ti. ‘Etadeva ahaṁ maññe, bālassa paṭisedhanaṁ; Paraṁ saṅkupitaṁ ñatvā, yo sato upasammatī’ti. ‘Etadeva titikkhāya, vajjaṁ passāmi vāsava; Yadā naṁ maññati bālo, bhayā myāyaṁ titikkhati; Ajjhāruhati dummedho, gova bhiyyo palāyinan’ti. ‘Kāmaṁ maññatu vā mā vā, bhayā myāyaṁ titikkhati; Sadatthaparamā atthā, khantyā bhiyyo na vijjati.
힘이 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참아 주면 그것을 으뜸가는 참음이라 부른다. 힘이 약한 사람은 언제나 참을 수밖에 없다. 어리석음의 힘을 힘으로 삼는 사람의 그 힘은 힘없음이라고들 한다. 가르침의 지킴을 받는 힘센 이에게는 맞서 되받는 이가 없다. 화난 사람에게 되받아 화내는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더 나빠진다. 화난 사람에게 되받아 화내지 않는 사람은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이긴다. 남이 화난 것을 알고서 알아차리며(사띠) 가라앉는 사람은 자신과 남, 둘 모두의 이로움을 행한다. 자신과 남, 둘 모두를 고쳐 주는 사람을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리석다고들 여긴다.’
빠알리 원문
Yo have balavā santo, dubbalassa titikkhati; Tamāhu paramaṁ khantiṁ, niccaṁ khamati dubbalo. Abalaṁ taṁ balaṁ āhu, yassa bālabalaṁ balaṁ; Balassa dhammaguttassa, paṭivattā na vijjati. Tasseva tena pāpiyo, yo kuddhaṁ paṭikujjhati; Kuddhaṁ appaṭikujjhanto, saṅgāmaṁ jeti dujjayaṁ. Ubhinnamatthaṁ carati, attano ca parassa ca; Paraṁ saṅkupitaṁ ñatvā, yo sato upasammati. Ubhinnaṁ tikicchantānaṁ, attano ca parassa ca; Janā maññanti bāloti, ye dhammassa akovidā’ti.
부처님이 오늘 답한다면
따옴표 안의 말과 상자 안의 글만 경전의 말씀입니다. 나머지는 경에서 부처님이 답한 방식을 따라 편집자가 쓴 글입니다.
이 문답은 신들의 왕 삭까와 마부 마탈리가 나눈 게송이고, 부처님이 수행자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예요. 마탈리가 하는 질문은 지금 하는 질문과 같아요. 참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힘이 없어서인지 물어요.
삭까는 “두려워서도 아니고 힘이 없어서도 아니다”라고 답해요. 마탈리는 막는 이가 없으면 어리석은 자가 더 날뛴다고 말하고, 참기만 하면 “이 사람은 나를 두려워해서 참는다”고 생각하고 더 덤빈다고도 해요. 이 걱정은 ‘참으면 지는 것 같다’는 마음이 짚는 곳과 같아요.
삭까는 그 걱정을 없애지 않고 받아요.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내버려 두라고 하고, “참음보다 나은 것은 찾을 수 없다”고 해요. 참을지 말지를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맡기지 않아요.
삭까는 화난 사람에게 되받아 화내면 “바로 그 때문에 더 나빠진다”고 하고, 되받아 화내지 않으면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이긴다”고 해요. 참는 쪽이 지는 것으로 보일 때 경은 이 싸움을 다른 곳에서 세요. 이겼는지 졌는지는 내가 더 나빠졌는지로 재요.
끝에서 삭까는 둘 모두를 고쳐 주는 사람을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여긴다고 해요. 참는 일이 바보 같아 보이는 것도 경에 이미 적혀 있어요. 이 경을 위험한 자리에 계속 머무르라는 말로 읽지 않아도 돼요. 경은 화로 되받지 않는 법을 다루고, 상대가 해를 입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는 다루지 않아요.
오늘 해 볼 것
- 상대가 선을 넘는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되받기 전에 숨을 한 번 쉬고, 속으로 ‘화로 되받으면 내가 더 나빠진다’를 한 번 말해 보세요.
- 참는 것과 선을 긋는 것을 따로 놓아 보세요. 화내지 않고도 ‘그 말은 불편합니다’라고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어요.
- 같은 일이 반복되면 날짜와 들은 말을 짧게 적어 두세요.
이렇게 읽기 쉬워요
- 참는 것은 힘이 없거나 두려워서 하는 일이다
- 삭까는 두려움이나 힘없음 때문에 참는 것이 아니라고 답하고, 힘센 이가 약한 이를 참아 주는 것을 으뜸가는 참음이라고 부른다 sn11.4:3.1–3.4
- 참는다는 것은 폭언이나 폭행을 계속 받으라는 말이다
- 이 문답은 화난 이에게 화로 되받지 않는 법을 다룬다. 해를 입는 자리에 머물라는 말은 없다 sn11.4:10.1–10.4
- 화가 일어나는 것을 눌러야 한다
- 경은 남이 화난 것을 알고 알아차리며 가라앉는 사람을 말한다. 화가 일어나는 것 자체를 없애라는 말은 없다 sn11.4:5.1–5.4
경전 밖의 도움
부처님 말씀이 아닌 현실 안내입니다. 확인 2026-10-10
- 폭언·위협·괴롭힘이 반복되면 참고만 있지 말고 날짜와 내용을 기록해 두세요. 직장이면 사내 신고 창구나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 1350 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어요.
- 신체적 위협이나 폭행이 있으면 112 에 신고하세요. 가정 안에서의 폭력은 1366 (24시간)에서 상담받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