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하뱌까라나 숫따(질문에 답하기)

Pañhabyākaraṇ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4.42

단정·분석·되물음·제쳐 둠을 구별하고, 경우마다 가르침에 맞게 답하며 이로움을 취하는 지혜를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5구절

이 경을 5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질문에 답하는 네 가지 방식 1구절

단정·분석·되물음·제쳐 둠이라는 네 방식을 산문의 완전한 목록으로 제시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질문에 답하는 네 방식이 있다. 어떤 넷인가? 수행자들이여, 단정적으로 답해야 할 질문이 있고, 수행자들이여, 나누어 분석해 답해야 할 질문이 있고, 수행자들이여, 되물어 답해야 할 질문이 있으며, 수행자들이여, 제쳐 두어야 할 질문이 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질문에 답하는 네 방식이다.”

“Cattārimāni, bhikkhave, pañhabyākaraṇāni. Katamāni cattāri? Atthi, bhikkhave, pañho ekaṁsabyākaraṇīyo; atthi, bhikkhave, pañho vibhajjabyākaraṇīyo; atthi, bhikkhave, pañho paṭipucchābyākaraṇīyo; atthi, bhikkhave, pañho ṭhapanīyo. Imāni kho, bhikkhave, cattāri pañhabyākaraṇān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42 빤하뱌까라나 숫따 (질문에 답하기)

배경

경의 첫 산문 단락은 질문에 답하는 네 방식을 선언하고, “어떤 넷인가?”라고 물은 뒤 완전한 목록으로 답합니다. 하나는 한쪽으로 분명히 정하는 단정, 하나는 경우를 나누는 분석, 하나는 되묻기, 하나는 답을 제쳐 두기입니다. 이 “수행자들이여”라는 말은 모두 여섯 번 나옵니다. 질문의 성격에 맞는 응답 방식을 먼저 가립니다.

묵상

지금 마음에 남아 있는 질문은 네 방식 가운데 어디에 가까운가요? 곧바로 단정할 질문과 조건을 나누어 볼 질문은 어떻게 다른가요?

2 하나부터 넷까지 되풀이한 답변 1구절

첫 게송이 네 답변을 하나·다른 하나·셋째·넷째의 순서로 다시 고정합니다.

“하나는 단정하여 말하고, 다른 하나는 나누어 분석해 말하며, 셋째에는 되물어야 하고, 넷째는 제쳐 두어야 한다.”

Ekaṁsavacanaṁ ekaṁ, vibhajjavacanāparaṁ; Tatiyaṁ paṭipuccheyya, catutthaṁ pana ṭhāpa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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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산문 목록 직후의 첫 노래는 같은 네 방식을 “하나·다른 하나·셋째·넷째”라는 순서로 다시 묶습니다. 각 순서는 단정하여 말함, 나누어 말함, 되물음, 제쳐 둠을 하나씩 가리키며 서로 섞이지 않습니다. 앞에서 “답해야 할 질문”의 네 종류를 이름 붙였다면, 여기서는 답하는 이가 취할 네 동작으로 바꾸어 말합니다. 익숙한 한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네 선택지를 순서대로 구별해 보면 좋습니다.

묵상

질문을 들으면 네 방식 가운데 어느 하나가 습관처럼 먼저 나오나요? 다른 하나·셋째·넷째까지 차례로 놓아 보면 놓치고 있던 선택은 무엇인가요?

3 경우마다 가르침에 맞는 방식을 알다 1구절

네 방식을 외우는 데서 나아가 그때그때 가르침에 맞는 응답을 아는 능숙함을 말합니다.

“이 네 방식에서 그때그때 가르침에 맞는 방식을 아는, 그러한 수행자를 네 질문에 능숙한 이라 한다.”

Yo ca tesaṁ tattha tattha, jānāti anudhammataṁ; Catupañhassa kusalo, āhu bhikkhuṁ tathāvidh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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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둘째 노래는 네 방식의 목록에서 그것을 사용할 사람으로 초점을 옮깁니다. ‘그것들’은 앞의 네 방식을 받고, ‘곳곳에서’는 각각의 자리와 경우를 빠짐없이 가리킵니다. 가르침에 맞는 방식이라는 말은 성질이나 태도를 가리킵니다. 네 종류의 질문에 능숙하다는 평가는 경우마다 가르침에 맞는 응답을 아는 데서 나옵니다. 지금 질문이 요구하는 방식을 가려내면 됩니다.

묵상

같은 질문이라도 때와 맥락에 따라 알맞은 답변 방식이 달라졌던 경험이 있나요? 내가 편한 방식과 그 경우에 맞는 방식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4 깊고 무너지지 않으며 두 뜻에 능숙하다 1구절

질문에 능숙한 이의 네 강점과 이로운 것·해로운 것에 대한 두 갈래 앎을 밝힙니다.

“그는 함부로 맞서기 어렵고 이겨 내기 어려우며, 깊고 무너뜨리기 어려우니,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 두 가지 모두에 능숙하다.”

Durāsado duppasaho, gambhīro duppadhaṁsiyo; Atho atthe anatthe ca, ubhayassa hoti kov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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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셋째 노래는 네 질문에 능숙한 이의 성질을 네 표현으로 펼칩니다. 함부로 맞서기 어려움, 이겨 내기 어려움, 깊음, 무너뜨리기 어려움이라는 네 표현이 나옵니다. 이어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 둘 다 아는 사람이라고 닫습니다. 질문의 깊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로움과 해로움을 함께 살피는 안정된 태도가 드러납니다.

묵상

질문 앞에서 깊이 머무는 힘과 상대를 이기려는 힘을 같은 것으로 여기지는 않나요?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함께 살핀다면 답의 방향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5 해로운 것을 피하고 이로운 것을 취하다 1구절

마지막 게송이 해로움을 멀리하고 이로움을 취해 꿰뚫어 아는 지혜의 결론을 맺습니다.

“해로운 것을 멀리하고, 지혜로운 이는 이로운 것을 취한다. 현명한 이는 이로운 것을 꿰뚫어 알아 지혜로운 이라 불린다.”

Anatthaṁ parivajjeti, atthaṁ gaṇhāti paṇḍito; Atthābhisamayā dhīro, paṇḍitoti pavuccat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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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마지막 노래는 앞에서 나온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실제 선택의 순서로 바꿉니다. 먼저 해로운 것을 멀리하고, 이어 이로운 것을 취합니다. 피하고 취하는 두 동작이 반대 방향으로 분명히 놓입니다. 마지막 구절은 이로운 것을 꿰뚫어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 선택이 쌓여 해로움을 피하고 이로움을 아는 능숙함이 완성됩니다.

묵상

어떤 답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로 이롭다는 것을 따로 살펴본 적이 있나요? 지금의 질문에서 멀리할 해로움과 취할 이로움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