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 인드리야바와나경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을 막는 대신 조건 지어진 반응을 알아차려 평온과 자유에 이르는 훈련을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17구절

이 경을 4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감각을 닫는 것이 답일까 4구절

보지도 듣지도 않는 것을 감각 훈련이라 한 가르침의 한계를 밝히고 더 깊은 길을 엽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가장갈라의 대나무 숲에 머무셨느니라. 그때 빠라사리야 바라문의 제자인 젊은이 웃따라가 세존께 다가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느니라.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gajaṅgalāyaṁ viharati suveḷuvane. Atha kho uttaro māṇavo pārāsiviyantevāsī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맛지마 니까야의 마지막 경은 가장갈라의 대나무 숲에서 시작됩니다. 부처님을 찾아온 이는 수행자가 아니라 빠라사리야 바라문에게 배우는 젊은이 웃따라입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이 짧은 장면 뒤에 두 전통이 말하는 감각 훈련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이 경은 외부 자극을 보거나 듣지 않는 일을 완성으로 삼지 않고, 자극을 실제로 만난 자리에서 좋고 싫은 반응을 알아차리고 평온에 서는 능력을 가르칩니다. 서두는 그 문답의 인물과 장소를 분명히 합니다.

묵상

마음을 지키기 위해 불편한 사람이나 자극을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피하는 일이 필요한 때와, 실제로 마주하면서 반응을 돌보아야 할 때를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요?

인사와 안부를 나눈 뒤 웃따라가 한쪽에 앉자 세존께서 물으셨다. “웃따라여, 빠라사리야 바라문은 제자들에게 감각 기능을 닦는 길을 가르치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그는 어떻게 가르치는가?”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aṁ kho uttaraṁ māṇavaṁ pārāsiviyantevāsiṁ bhagavā etadavoca: “deseti, uttara, pārāsiviyo brāhmaṇo sāvakānaṁ indriyabhāvanan”ti? “Deseti, bho gotama, pārāsiviyo brāhmaṇo sāvakānaṁ indriyabhāvanan”ti. “Yathā kathaṁ pana, uttara, deseti pārāsiviyo brāhmaṇo sāvakānaṁ indriyabhāvanan”ti?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부처님은 다른 스승의 가르침을 소문으로 단정하지 않고, 그에게 직접 배우는 웃따라에게 먼저 확인하십니다. 감각 기능을 닦는다는 같은 이름을 쓰더라도 실제 내용은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은 두 단계로 이어집니다. 그런 가르침이 있는지를 묻고, 이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묻습니다. 이 태도는 이름이나 권위보다 실제 방법과 그 결과를 살피게 합니다. 경의 핵심 대조는 상대의 설명을 정확히 들은 뒤에 시작됩니다.

묵상

익숙한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어떤 방법의 실제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받아들인 적이 있나요? 마음을 닦는다는 말 뒤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어떤 자유를 얻는지 묻는다면 판단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웃따라가 대답하였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보지 않고 귀로 소리를 듣지 않는 것입니다. 빠라사리야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웃따라여, 그 말대로라면 보지 못하는 사람과 듣지 못하는 사람이 감각 기능을 닦은 이가 될 것이니라. 보지 못하는 이는 형상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는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이 말씀에 웃따라는 말없이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느니라.

“Idha, bho gotama, cakkhunā rūpaṁ na passati, sotena saddaṁ na suṇāti—evaṁ kho, bho gotama, deseti pārāsiviyo brāhmaṇo sāvakānaṁ indriyabhāvanan”ti. “Evaṁ sante kho, uttara, andho bhāvitindriyo bhavissati, badhiro bhāvitindriyo bhavissati; yathā pārāsiviyassa brāhmaṇassa vacanaṁ. Andho hi, uttara, cakkhunā rūpaṁ na passati, badhiro sotena saddaṁ na suṇātī”ti. Evaṁ vutte, uttaro māṇavo pārāsiviyantevāsī tuṇhībhūto maṅkubhūto pattakkhandho adhomukho pajjhāyanto appaṭibhāno nisīdi.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빠라사리야의 방법은 눈에 형상이 보이지 않고 귀에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 정의를 그대로 따르면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는 상태가 곧 감각 훈련의 완성이 된다는 모순을 짚으십니다. 감각 기관이 작동하지 않는 일과, 감각이 작동해도 마음이 끌려가지 않는 능력은 다릅니다. 웃따라가 풀이 죽어 침묵한 모습은 기존 설명으로 답할 수 없는 지점을 드러냅니다. 이 장면은 그를 조롱하기보다 더 깊은 가르침으로 넘어가는 전환입니다.

묵상

자극을 만나지 않은 평온과 자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을 같은 것으로 여겼나요? 상황이 잠잠해서 괜찮은 때와 마음이 실제로 자유로운 때는 내 경험에서 어떻게 다르게 드러나나요?

세존께서는 침묵한 웃따라를 아시고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여, 빠라사리야의 감각 훈련과 성스러운 가르침의 가장 뛰어난 훈련은 다르니라.”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을 설해 주십시오. 수행자들이 듣고 간직할 것입니다.” “그러면 잘 듣고 마음에 새기라. 내가 말하겠느니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Atha kho bhagavā uttaraṁ māṇavaṁ pārāsiviyantevāsiṁ tuṇhībhūtaṁ maṅkubhūtaṁ pattakkhandhaṁ adhomukhaṁ pajjhāyantaṁ appaṭibhānaṁ vid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aññathā kho, ānanda, deseti pārāsiviyo brāhmaṇo sāvakānaṁ indriyabhāvanaṁ, aññathā ca pan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hotī”ti. “Etassa, bhagavā, kālo; etassa, sugata, kālo yaṁ bhagavā ariyassa vinaye anuttaraṁ indriyabhāvanaṁ deseyya.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Tenahānanda, suṇāhi, sādhukaṁ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Bhagav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부처님은 대답하지 못하는 웃따라를 더 몰아붙이지 않고 아난다를 불러 자신의 가르침을 펼치십니다. 두 방법의 차이는 감각 대상을 없애느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이어질 가장 뛰어난 훈련은 눈과 귀가 실제로 보고 들을 때 일어나는 반응을 재료로 삼습니다. 아난다는 수행자들이 듣고 기억할 수 있도록 설법을 청하고, 부처님은 잘 듣고 마음에 새기라고 하십니다. 웃따라도 곁에 앉아 있으므로 반박에서 끝나지 않고 대안의 전 과정을 들을 수 있는 장면입니다.

묵상

내가 믿던 방법의 한계가 드러났을 때 변명하거나 마음을 닫는 편인가요? 잘못을 지적받는 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은 방법을 끝까지 들을 수 있다면, 배움의 자리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2 좋고 싫은 반응에서 평온으로 7구절

여섯 감각에서 생기는 반응을 조건 지어진 것으로 알아차려 평온에 서는 가장 뛰어난 훈련입니다.

“아난다여,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은 무엇인가? 수행자가 눈으로 형상을 보면 좋게 느껴지는 것과 싫게 느껴지는 것, 두 느낌이 뒤섞인 것이 생기느니라. 그는 이렇게 아느니라. ‘내게 생긴 이 반응은 조건 지어졌고 거칠며 다른 조건에 의존해 생겼다. 그러나 평정은 평화롭고 뛰어나다.’”

“Kathañc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hoti? Idhānanda, bhikkhuno cakkhunā rūpaṁ disvā uppajjati manāpaṁ, uppajjati amanāpaṁ, uppajjati manāpāmanāpaṁ. So evaṁ pajānāti: ‘uppannaṁ kho me idaṁ manāpaṁ, uppannaṁ amanāpaṁ, uppannaṁ manāpāmanāpaṁ. Tañca kho saṅkhataṁ oḷārikaṁ paṭiccasamuppannaṁ. Etaṁ santaṁ etaṁ paṇītaṁ yadidaṁ—upekkhā’ti.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은 눈을 감아 형상을 없애는 일이 아닙니다. 형상을 본 뒤 좋음과 싫음, 또는 두 반응이 함께 생겼음을 정확히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어 그 반응이 조건에 의해 만들어졌고 비교적 거칠며 다른 조건에 기대 일어났음을 봅니다. 따라서 반응은 고정된 나도, 반드시 따라야 할 명령도 아닙니다. 그보다 평화롭고 뛰어난 방향으로 평온을 알아봅니다. 부처님은 반응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것보다 자유로운 마음의 자리를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묵상

무언가를 보는 순간 생긴 좋고 싫은 느낌을 곧 내 판단이나 정체성으로 여기나요? 그 반응이 여러 조건에 기대 잠시 생긴 것이라고 안다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압박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그러면 생겨난 좋음과 싫음과 두 느낌이 뒤섞인 반응은 사라지고 평정이 자리 잡느니라. 눈 밝은 사람이 눈을 떴다가 감거나 감았다가 뜨는 것처럼, 그 반응은 그토록 빠르고 수월하게 사라지며 평정이 자리 잡느니라. 이것이 눈으로 아는 형상에 관한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이니라.”

Tassa taṁ uppannaṁ manāpaṁ uppannaṁ amanāpaṁ uppannaṁ manāpāmanāpaṁ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 Seyyathāpi, ānanda, cakkhumā puriso ummīletvā vā nimīleyya, nimīletvā vā ummīleyya;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ṁsīghaṁ evaṁtuvaṭaṁ evaṁappakasirena uppannaṁ manāpaṁ uppannaṁ amanāpaṁ uppannaṁ manāpāmanāpaṁ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ayaṁ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cakkhuviññeyyesu rūpe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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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반응이 조건 지어진 것임을 아는 순간, 좋고 싫은 마음은 빠르게 사라지고 평온이 안정됩니다. 부처님은 눈을 떴다 감는 짧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비유하십니다. 억지로 감정을 누르거나 오랜 시간 자신을 설득하는 모습이 아니라, 분명한 앎으로 반응을 놓아 주는 숙련을 말합니다. 이 빠르기는 처음부터 갖춘 재능이라기보다 감각이 닿을 때마다 조건성과 평온을 되새겨 길러진 능력입니다. 눈을 계속 사용하면서도 형상에 끌려가지 않는 것이 감각 기능의 개발입니다.

묵상

좋고 싫은 반응은 오래 지속되어야만 진짜라고 믿나요? 반응이 일어난 사실은 인정하되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만큼 가볍게 놓을 수 있다면, 무엇을 붙들 필요가 줄어들까요? 그 짧은 틈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또한 귀로 소리를 들으면 좋음과 싫음과 두 반응이 뒤섞인 것이 생기느니라. … 힘센 사람이 어렵지 않게 손가락을 튕기듯 빠르게 평정이 자리 잡느니라. 이것이 귀로 아는 소리에 관한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이니라.”

Puna caparaṁ, ānanda, bhikkhuno sotena saddaṁ sutvā uppajjati manāpaṁ, uppajjati amanāpaṁ, uppajjati manāpāmanāpaṁ. … Seyyathāpi, ānanda, balavā puriso appakasireneva accharaṁ pahareyya;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ṁsīghaṁ evaṁtuvaṭaṁ evaṁappakasirena uppannaṁ manāpaṁ uppannaṁ amanāpaṁ uppannaṁ manāpāmanāpaṁ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ayaṁ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sotaviññeyyesu sadde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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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귀로 소리를 들은 뒤에도 좋음과 싫음, 두 반응이 뒤섞인 것이 생깁니다. 그 반응이 조건 지어졌고 거칠며 다른 조건에 의존해 생겼음을 알고, 평화롭고 뛰어난 평온을 알아보면 반응은 멎고 평온이 섭니다. 부처님은 그 빠르기를 힘센 사람이 어렵지 않게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에 비유하십니다. 칭찬이나 비난, 반가운 목소리나 거슬리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만든 반응을 분명히 보고 빠르고 수월하게 풀어 내는 능력입니다.

묵상

어떤 말이나 소리가 끝난 뒤에도 마음속에서 여러 번 되풀이한 적이 있나요? 소리와 그 소리에 대한 반응을 구별하고, 반응이 조건 지어진 것임을 안다면 무엇을 조금 더 빨리 놓을 수 있을까요?

“또한 코로 냄새를 맡으면 좋음과 싫음과 두 반응이 뒤섞인 것이 생기느니라. … 살짝 기울어진 연잎에서 물방울이 머물지 않고 굴러가듯 평정이 자리 잡느니라. 이것이 코로 아는 냄새에 관한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이니라.”

Puna caparaṁ, ānanda, bhikkhuno ghānena gandhaṁ ghāyitvā uppajjati manāpaṁ, uppajjati amanāpaṁ, uppajjati manāpāmanāpaṁ. … Seyyathāpi, ānanda, īsakampoṇe padumapalāse udakaphusitāni pavattanti, na saṇṭhanti;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ṁsīghaṁ evaṁtuvaṭaṁ evaṁappakasirena uppannaṁ manāpaṁ uppannaṁ amanāpaṁ uppannaṁ manāpāmanāpaṁ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ayaṁ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ghānaviññeyyesu gandhesu.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코로 냄새를 맡을 때에도 좋고 싫은 반응이 생기지만, 그것이 조건 지어지고 다른 조건에 의존해 생겼음을 알면 평온에 설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 놓임을 살짝 기울어진 연잎의 물방울에 비유하십니다. 물방울은 잎에 닿아도 달라붙어 고이지 않고 곧 굴러갑니다. 감각을 닦은 마음도 향기로운 냄새를 붙잡거나 불쾌한 냄새를 밀어내며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냄새는 분명히 맡되 그 반응이 마음에 눌러앉지 않는 가벼움이 평온의 모습입니다.

묵상

좋거나 싫은 냄새가 마음에 오래 고여 하루의 분위기를 정한 적이 있나요? 연잎의 물방울처럼 경험은 분명히 닿되 달라붙지 않고 지나간다면 어떤 가벼움이 남을까요? 그때 다음 냄새를 만나는 마음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또한 혀로 맛을 보면 좋음과 싫음과 두 반응이 뒤섞인 것이 생기느니라. … 힘센 사람이 혀끝에 모인 침을 수월하게 뱉어 내듯 평정이 자리 잡느니라. 이것이 혀로 아는 맛에 관한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이니라.”

Puna caparaṁ, ānanda, bhikkhuno jivhāya rasaṁ sāyitvā uppajjati manāpaṁ, uppajjati amanāpaṁ, uppajjati manāpāmanāpaṁ. … Seyyathāpi, ānanda, balavā puriso jivhagge kheḷapiṇḍaṁ saṁyūhitvā appakasirena vameyya;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ṁsīghaṁ evaṁtuvaṭaṁ evaṁappakasirena uppannaṁ manāpaṁ uppannaṁ amanāpaṁ uppannaṁ manāpāmanāpaṁ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ayaṁ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jivhāviññeyyesu rasesu.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혀로 맛을 볼 때에도 좋고 싫은 반응이 생기지만, 그것을 조건 지어진 것으로 알면 평온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혀끝에 모인 침을 어렵지 않게 뱉는 모습에 그 빠르기와 수월함을 비유하십니다. 초점은 몸을 싫어하거나 맛을 혐오하는 데 있지 않고, 이미 생긴 반응을 힘들이지 않고 내보내는 데 있습니다. 맛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더 가져야 한다거나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를 덧붙이지 않을 때, 감각 경험은 지나가고 마음은 평온에 섭니다.

묵상

좋은 맛을 더 오래 붙잡거나 싫은 맛을 계속 떠올리며 경험을 늘린 적이 있나요? 맛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요구를 알아차리고 놓는다면, 만족과 절제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요?

“또한 몸으로 닿는 것을 느끼면 좋음과 싫음과 두 반응이 뒤섞인 것이 생기느니라. …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빠르게 평정이 자리 잡느니라. 이것이 몸으로 아는 접촉에 관한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이니라.”

Puna caparaṁ, ānanda, bhikkhuno kāyena phoṭṭhabbaṁ phusitvā uppajjati manāpaṁ, uppajjati amanāpaṁ, uppajjati manāpāmanāpaṁ. … Seyyathāpi, ānanda, balavā puriso samiñjitaṁ vā bāhaṁ pasāreyya, pasāritaṁ vā bāhaṁ samiñjeyya;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ṁsīghaṁ evaṁtuvaṭaṁ evaṁappakasirena uppannaṁ manāpaṁ uppannaṁ amanāpaṁ uppannaṁ manāpāmanāpaṁ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ayaṁ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kāyaviññeyyesu phoṭṭhabbe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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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몸에 닿는 감촉에도 같은 알아차림이 적용됩니다. 반응이 조건 지어진 것임을 알고 평온을 더 평화롭고 뛰어난 자리로 알아보면, 좋고 싫은 반응은 빠르게 사라집니다. 부처님은 이를 굽힌 팔을 펴고 편 팔을 굽히는 자연스러운 동작에 비유하십니다. 편안한 감촉을 움켜쥐거나 불편한 감촉에 마음 전체를 빼앗기는 대신, 몸의 느낌과 마음의 반응을 구별하고 반응을 놓습니다. 몸을 떠나지 않고 몸 안에서 자유를 기르는 것이 이 감각 훈련의 핵심입니다.

묵상

몸이 편하거나 불편할 때 그 감촉이 곧 마음 전체의 상태가 되나요? 감촉을 정직하게 느끼면서도 좋고 싫은 반응만 팔을 펴고 굽히듯 놓을 수 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어디에서 먼저 연습할까요?

“또한 마음으로 생각을 알면 좋음과 싫음과 두 반응이 뒤섞인 것이 생기느니라. … 온종일 달군 쇠솥에 물 두세 방울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려도 곧 말라 사라지듯 평정이 자리 잡느니라. 이것이 마음으로 아는 생각에 관한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이니라. 이와 같이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이 이루어지느니라.”

Puna caparaṁ, ānanda, bhikkhuno manasā dhammaṁ viññāya uppajjati manāpaṁ, uppajjati amanāpaṁ, uppajjati manāpāmanāpaṁ. … Seyyathāpi, ānanda, balavā puriso divasaṁsantatte ayokaṭāhe dve vā tīṇi vā udakaphusitāni nipāteyya. Dandho, ānanda, udakaphusitānaṁ nipāto, atha kho naṁ khippameva parikkhayaṁ pariyādānaṁ gaccheyya;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ṁsīghaṁ evaṁtuvaṭaṁ evaṁappakasirena uppannaṁ manāpaṁ uppannaṁ amanāpaṁ uppannaṁ manāpāmanāpaṁ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 … ayaṁ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manoviññeyyesu dhammesu. Evaṁ kho, 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h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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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여섯 번째는 마음에 떠오른 생각입니다. 생각을 알 때에도 좋고 싫고 복합적인 반응이 생기지만, 그것을 조건 지어진 것으로 보고 평온에 설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온종일 달군 쇠솥에 떨어진 물방울에 비유하십니다. 방울이 떨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려도 솥에 닿은 뒤에는 금세 말라 없어집니다. 생각이나 반응이 아예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생긴 것이 머물 연료를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여섯 감각 모두에서 평온이 서는 것이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입니다.

묵상

한 생각이 떠오른 뒤 계속 설명하고 반박하며 오래 살려 둔 적이 있나요? 생각이 생기는 일은 막지 않되 붙잡아 줄 연료를 더하지 않는다면, 그 생각은 얼마나 빨리 힘을 잃을 수 있을까요?

3 배우는 이와 자유로운 이 5구절

반응을 괴로워하는 훈련 단계와, 인식을 자유롭게 다루며 평온에 머무는 완성 단계를 구별합니다.

“아난다여, 길을 닦는 배우는 이는 어떠한가? 수행자가 눈으로 형상을 보아 좋음과 싫음과 두 반응이 뒤섞인 것이 생기면, 그는 그렇게 생긴 반응을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며 싫어하느니라.”

Kathañcānanda, sekho hoti pāṭipado? Idhānanda, bhikkhuno cakkhunā rūpaṁ disvā uppajjati manāpaṁ, uppajjati amanāpaṁ, uppajjati manāpāmanāpaṁ. So tena uppannena manāpena uppannena amanāpena uppannena manāpāmanāpena aṭṭīyati harāyati jigucchati.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부처님은 가장 뛰어난 감각 개발을 밝힌 뒤 아직 길을 닦는 배우는 이의 모습을 구별합니다. 이 단계에서도 좋고 싫은 반응은 일어나며, 수행자는 그 반응에 편안히 머물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며 싫어합니다. 완성된 평온처럼 즉시 놓지는 못하지만, 반응을 당연한 나로 받아들여 즐기지도 않습니다. 이 불편함은 자신을 미워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집착의 반응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훈련의 표지입니다. 경은 과정에 있는 사람과 완성된 사람을 같은 기준으로 몰아세우지 않습니다.

묵상

좋지 않은 반응이 일어났다는 이유로 자신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단정하나요? 그 반응을 따르고 싶지 않은 불편함도 길을 배우는 과정이라면, 자기비난 없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귀로 소리를 들을 때도 … 코로 냄새를 맡을 때도 … 혀로 맛을 볼 때도 … 몸으로 접촉을 느낄 때도 그러하느니라. 마음으로 생각을 알아 좋음과 싫음과 두 반응이 뒤섞인 것이 생길 때에도, 그는 그 반응을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며 싫어하느니라. 이와 같이 그는 길을 닦는 배우는 이이니라.”

Sotena saddaṁ sutvā …pe… ghānena gandhaṁ ghāyitvā … jivhāya rasaṁ sāyitvā … kāyena phoṭṭhabbaṁ phusitvā … manasā dhammaṁ viññāya uppajjati manāpaṁ, uppajjati amanāpaṁ, uppajjati manāpāmanāpaṁ. So tena uppannena manāpena uppannena amanāpena uppannena manāpāmanāpena aṭṭīyati harāyati jigucchati. Evaṁ kho, ānanda, sekho hoti pāṭipado.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눈에서 본 배우는 이의 반응은 귀·코·혀·몸·마음에도 이어집니다. 소리와 냄새, 맛, 접촉, 생각에서 좋고 싫은 반응이 일어날 때 그는 그 반응을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며 싫어합니다. 아직 감각 반응을 즉시 평온으로 바꾸지는 못해도, 좋고 싫음에 그대로 끌려가는 상태를 편안히 여기지 않고 떠나려 합니다. 이는 성숙하지 못했다는 비난보다 성장의 위치를 알려 주는 지도에 가깝습니다. 어느 감각에서든 반응을 알아차리고 그것이 자유롭지 않음을 아는 순간, 이미 배우는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묵상

어떤 감각에서는 반응을 잘 알아차리면서 다른 감각에서는 쉽게 휩쓸리나요? 가장 어려운 한 영역에서도 반응을 정당화하지 않고 배울 과제로 볼 수 있다면, 다음 선택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아난다여, 감각 기능을 닦은 성스러운 이는 어떠한가? 수행자가 눈으로 형상을 보아 좋음과 싫음과 두 반응이 뒤섞인 것이 생길 때, 그가 원한다면 꺼려지는 것에서 꺼려지지 않음을 인식하며 머무느니라.”

Kathañcānanda, ariyo hoti bhāvitindriyo? Idhānanda, bhikkhuno cakkhunā rūpaṁ disvā uppajjati manāpaṁ, uppajjati amanāpaṁ, uppajjati manāpāmanāpaṁ. So sace ākaṅkhati: ‘paṭikūle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ap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감각 기능을 온전히 닦은 이는 반응에 끌려가지 않을 뿐 아니라 인식의 방향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습니다. 먼저 꺼려지는 대상에서도 꺼려지지 않는 면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해로운 일을 좋다고 꾸미라는 뜻이 아니라, 첫 반응이 대상의 전부라고 고정하지 않는 능력입니다. 불쾌함 속에서도 다른 조건과 관점, 자비나 무상함을 볼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이라는 말은 자동 반응 대신 의도적으로 인식을 선택할 자유가 생겼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처음 꺼려진 사람이나 상황을 그 한 반응만으로 전부 규정한 적이 있나요? 해로움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면, 자동적인 미움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무엇을 새로 보게 되나요?

“귀로 소리를, 코로 냄새를, 혀로 맛을, 몸으로 접촉을, 마음으로 생각을 알 때도 좋음과 싫음과 두 반응이 뒤섞인 것이 생기면, 원한다면 꺼려짐에서 꺼려지지 않음을, 꺼려지지 않음에서 꺼려짐을, 뒤섞인 것에서도 꺼려짐이나 꺼려지지 않음을 뜻대로 인식하며 머무느니라. 또 원한다면 꺼려짐과 꺼려지지 않음을 모두 떠나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며 평정하게 머무느니라. 이와 같이 그는 감각 기능을 닦은 성스러운 이이니라.”

Puna caparaṁ, ānanda, bhikkhuno sotena saddaṁ sutvā …pe… ghānena gandhaṁ ghāyitvā … jivhāya rasaṁ sāyitvā … kāyena phoṭṭhabbaṁ phusitvā … manasā dhammaṁ viññāya uppajjati manāpaṁ, uppajjati amanāpaṁ, uppajjati manāpāmanāpaṁ. So sace ākaṅkhati: ‘paṭikūle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ap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ṅkhati: ‘appaṭikūle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ṅkhati: ‘paṭikūle ca appaṭikūle ca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ap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ṅkhati: ‘appaṭikūle ca paṭikūle ca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ṅkhati: ‘paṭikūlañca appaṭikūlañca tadubhayampi abhinivajjetvā upekkhako vihareyyaṁ sato sampajāno’ti, upekkhako tattha viharati sato sampajāno. Evaṁ kho, ānanda, ariyo hoti bhāvitindriyo.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성스러운 이는 한 방향으로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매력적인 대상에서도 위험과 한계를 볼 수 있고, 뒤섞인 대상에서 좋은 면이나 좋지 않은 면을 필요에 따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좋고 싫다는 두 틀을 모두 떠나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지닌 채 평온에 머뭅니다. 핵심은 원하는 해석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일이 아니라, 자동 반응에 갇히지 않고 여러 면을 보며 끝내 어느 쪽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입니다.

묵상

좋은 면만 보려 하거나 나쁜 면만 찾아야 안전하다고 느끼나요? 상황에 따라 두 면을 볼 수 있고 끝내 어느 판단에도 갇히지 않는다면, 평온은 무관심과 어떻게 다르게 느껴질까요? 평온할 때에도 놓치지 않는 알아차림과 배려는 무엇인가요?

“귀로 소리를 들을 때도 … 코로 냄새를 맡을 때도 … 혀로 맛을 볼 때도 … 몸으로 접촉을 느낄 때도 … 마음으로 생각을 알아 좋음과 싫음과 두 반응이 뒤섞인 것이 생길 때에도 그러하느니라. … 이와 같이 그는 감각 기능을 닦은 성스러운 이이니라.”

Puna caparaṁ, ānanda, bhikkhuno sotena saddaṁ sutvā …pe… ghānena gandhaṁ ghāyitvā … jivhāya rasaṁ sāyitvā … kāyena phoṭṭhabbaṁ phusitvā … manasā dhammaṁ viññāya uppajjati manāpaṁ, uppajjati amanāpaṁ, uppajjati manāpāmanāpaṁ. … Evaṁ kho, ānanda, ariyo hoti bhāvitindriyo.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눈에서 설명한 다섯 가지 자유는 귀·코·혀·몸·마음에도 적용됩니다. 각 감각에서 꺼려지는 것에서 꺼려지지 않음을, 그 반대를, 뒤섞인 것의 좋은 면과 좋지 않은 면을 자유롭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끝내 양쪽을 모두 떠나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지닌 채 평온에 머뭅니다. 자동으로 붙드는 첫 반응이 무엇이든, 그것을 유일한 관점으로 삼지 않고 필요에 따라 다르게 보며 놓을 수 있습니다. 특정 감각 하나를 다스리는 기술이 아니라 경험 전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묵상

보기에는 여유가 있어도 말이나 생각에는 쉽게 휩쓸리는 차이가 있나요? 앞서 본 여러 인식의 자유를 가장 어려운 감각에도 적용한다면 어느 반응을 먼저 살펴볼까요? 그 반응에서 꺼려짐과 꺼려지지 않음을 모두 놓으면 말과 행동의 선택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4 가르침을 삶에서 확인하다 1구절

세 단계를 모두 밝힌 부처님이 직접 명상하고 방일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경을 맺습니다.

“아난다여, 나는 성스러운 가르침의 가장 뛰어난 감각 훈련과 길을 닦는 배우는 이, 감각 기능을 닦은 성스러운 이를 가르쳤느니라. 제자들의 이익을 바라고 연민하는 스승이 할 일을 나는 그대들에게 다했느니라. 여기 나무 밑과 빈 거처가 있으니 깊이 명상하라. 게으름하지 말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가르침이니라.”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기뻐하며 그 말씀을 받아들였느니라.

Iti kho, ānanda, desitā mayā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desito sekho pāṭipado, desito ariyo bhāvitindriyo. Yaṁ kho, ānanda, satthārā karaṇīyaṁ sāvakānaṁ hitesinā anukampakena anukampaṁ upādāya, kataṁ vo taṁ mayā. Etāni, ānanda, rukkhamūlāni, etāni suññāgārāni, jhāyathānanda, mā pamādattha,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Ayaṁ vo amhākaṁ anusāsanī”ti. Idamavoca bhagavā. Attamano āyasmā āna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īti.

맛지마 니까야 MN 152 감각 기능을 닦는 경 (Indriyabhāvanāsutta)

배경

부처님은 경 전체를 세 모습으로 요약합니다. 반응을 조건 지어진 것으로 알아 평온에 서는 가장 뛰어난 훈련, 아직 반응을 괴롭게 여기며 길을 닦는 배우는 이, 인식을 자유롭게 다루고 양쪽을 떠날 수 있는 성스러운 이입니다. 스승으로서 설명할 일을 마쳤으니 이제 나무 밑과 빈 거처에서 직접 명상하고 방일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지식을 더 모으는 데서 끝내지 않고 실제 감각 경험에서 확인하라는 요청입니다. 경은 아난다가 기쁘게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닫힙니다.

묵상

나는 지금 세 모습 가운데 어디에 더 가깝다고 느끼나요? 완성된 사람과 비교해 낙담하기보다, 오늘 한 번의 감각 반응을 알아차리고 평온으로 돌아오는 구체적인 연습은 무엇일까요? 오늘 언제 시작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