깟짜나곳따 숫따

Kaccānagott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12.15

있음과 없음의 양극단을 떠나 조건에 따른 일어남과 소멸로 보는 바른 견해를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5구절

이 경을 3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바른 견해를 묻다 1구절

사왓티에서 까짜나곳따 님이 바른 견해의 기준을 여쭙는 도입

부처님께서는 사왓티에 머무셨다. 까짜나곳따 님이 부처님께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부처님, ‘바른 견해, 바른 견해’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로 바른 견해가 있습니까?”

Sāvatthiyaṁ viharati. Atha kho āyasmā kaccānago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kaccānagotto bhagavantaṁ etadavoca: “‘sammādiṭṭhi sammādiṭṭhī’ti, bhante, vuccati. Kittāvatā nu kho, bhante, sammādiṭṭhi hotī”ti?

상윳따 니까야 SN 12.15 깟짜나곳따 숫따

배경

경은 사왓티라는 장소를 밝힌 뒤 까짜나곳따 님이 부처님께 나아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질문에서 “바른 견해”를 두 번 되풀이한 것은 익숙한 명칭을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기준을 묻는 형식입니다. 아직 답의 내용을 미리 넣지 않고 열린 질문으로 두었으며, 다음 대목부터 부처님이 직접 답하십니다.

묵상

“바른 견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것과 그 기준을 분명히 아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익숙해서 이미 안다고 넘긴 말 하나가 있다면, 까짜나곳따처럼 그 뜻을 처음부터 다시 물어볼 수 있나요?

2 있음과 없음에 매이지 않기 2구절

세상의 일어남과 소멸을 보고 움켜쥠과 자아 고정에서 벗어나는 바른 견해

“까짜나여, 이 세상은 대부분 ‘있음’과 ‘없음’이라는 둘에 의지한다. 세상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는 이에게는 세상에 대한 ‘없음’이 없고, 세상이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는 이에게는 세상에 대한 ‘있음’이 없다.”

“Dvayanissito khvāyaṁ, kaccāna, loko yebhuyyena—atthitañceva natthitañca. Lokasamudayaṁ kho, kaccāna,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passato yā loke natthitā sā na hoti. Lokanirodhaṁ kho, kaccāna,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passato yā loke atthitā sā na hoti.

상윳따 니까야 SN 12.15 깟짜나곳따 숫따

배경

부처님의 답은 세상이 대체로 의지하는 둘을 “있음”과 “없음”으로 정확히 짝지으며 시작합니다. 이어 일어남을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는 경우에는 세상에 대한 “없음”이 없고, 사라짐을 그렇게 보는 경우에는 “있음”이 없다고 각각 부정합니다. 그러니 한쪽만 보고 세상이 완전히 있다거나 전혀 없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이 바른 견해입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함께 보는 바른 견해는, 현상이 조건 따라 나타나고 멎는 모습을 그대로 보는 앎입니다.

묵상

어떤 경험을 “완전히 있다”거나 “전혀 없다”고 곧바로 굳혀 말했던 순간이 있나요? 그 경험이 일어나는 모습과 사라지는 모습을 각각 살펴보면 처음의 판단과 무엇이 달라지나요?

“까짜나여, 이 세상은 대부분 다가감과 집착과 고집에 얽매여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다가감과 집착, 마음의 고정, 고집의 잠재 성향에 다가가지 않고 취하지 않으며, ‘나의 자아’라고 굳혀 세우지 않는다. ‘일어나는 것은 오직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은 오직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의심하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그의 앎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까짜나여, 이만큼으로 바른 견해가 있다.”

Upayupādānābhinivesavinibandho khvāyaṁ, kaccāna, loko yebhuyyena. Tañcāyaṁ upayupādānaṁ cetaso adhiṭṭhānaṁ abhinivesānusayaṁ na upeti na upādiyati nādhiṭṭhāti: ‘attā me’ti. ‘Dukkhameva uppajjamānaṁ uppajjati, dukkhaṁ nirujjhamānaṁ nirujjhatī’ti na kaṅkhati na vicikicchati aparapaccayā ñāṇamevassa ettha hoti. Ettāvatā kho, kaccāna, sammādiṭṭhi hoti.

상윳따 니까야 SN 12.15 깟짜나곳따 숫따

배경

있음과 없음의 둘을 밝힌 뒤, 부처님은 그 둘에 매이는 마음의 작동을 다가감·집착·고집과 얽매임으로 설명하십니다. 바른 견해를 지닌 이는 그 작동에 다가가지도, 취하지도, 마음에 굳혀 세우지도 않으며 “나의 자아”라고 고정하지 않습니다. 이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각각 오직 괴로움의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알아 의심과 망설임이 없고, 그 앎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결론짓습니다.

묵상

생각이나 느낌이 일어났을 때 곧바로 “나” 또는 “나의 것”이라고 굳혀 붙인 적이 있나요? 그 경험을 잠시 “괴로움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으로만 바라본다면 무엇이 달라 보이나요?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그 반응 자체를 살펴볼 수 있어요.

3 두 극단을 떠난 조건의 중도 2구절

있음과 없음의 두 극단을 떠나 열두 연기의 발생과 소멸로 설한 중도

“까짜나여,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이 한 극단이고, ‘모든 것이 없다’는 것이 둘째 극단이다.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이 두 극단으로 나아가지 않고 중도로 가르침을 편다. 모름을 조건으로 지어내는 작용이 생기고, 지어내는 작용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기며 …,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온 무더기가 일어난다.”

‘Sabbamatthī’ti kho, kaccāna, ayameko anto. ‘Sabbaṁ natthī’ti ayaṁ dutiyo anto. Ete te, kaccāna, ubho ante anupagamma majjhena tathāgato dhammaṁ deseti: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ṁ …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상윳따 니까야 SN 12.15 깟짜나곳따 숫따

배경

바른 견해를 정의한 뒤 부처님은 “모든 것이 있다”와 “모든 것이 없다”를 두 극단으로 밝히고 곧바로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가르침을 펴십니다. 중도는 현상을 조건의 흐름으로 보는 길입니다. 생략된 가운데 고리를 풀면, 모름에서 지어내는 작용이, 지어내는 작용에서 의식이, 의식에서 정신과 물질이, 정신과 물질에서 여섯 감각 영역이, 그것에서 접촉이, 접촉에서 느낌이, 느낌에서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갈망에서 집착이, 집착에서 존재가,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남에서 늙음과 죽음, 이어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겨납니다.

묵상

두 극단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느꼈다가, 결과보다 그 결과를 만든 조건을 살펴본 적이 있나요? 지금 일어난 반응 하나에서 바로 앞 조건 하나를 본다면 처음의 판단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오직 모름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사라짐으로써 지어내는 작용이 사라지고, 지어내는 작용이 사라짐으로 의식이 사라지며 …,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온 무더기가 사라진다.”

Avijjāya tveva asesavirāganirodhā saṅkhāranirodho; saṅkhār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상윳따 니까야 SN 12.15 깟짜나곳따 숫따

배경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설명 뒤에는 같은 원인과 결과가 멎는 방향이 이어집니다. 모름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 한 조건이 멎으면 다음 조건도 차례로 멎습니다. 생략된 가운데 고리를 풀면, 지어내는 작용에서 의식, 정신과 물질, 여섯 감각 영역, 접촉, 느낌, 갈망, 집착, 존재, 태어남,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차례로 사라집니다. 이는 괴로움의 무더기가 조건과 함께 멎을 수 있음을 보여 주어, 수행이 나아갈 방향을 밝힙니다.

묵상

어떤 조건이 약해졌을 때 그 뒤의 반응도 함께 약해진 경험이 있나요?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조건 하나와, 그것이 사라질 때 달라지는 다음 반응 하나를 살펴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