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쩰라깟사빠 숫따(벌거벗은 수행자 깟사빠)

Acelakassap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12.17

괴로움을 누가 만들고 누가 겪는다는 두 극단을 떠나 조건 발생과 조건 소멸의 중도를 깟사빠에게 가르친다.

인용된 가르침 12구절

이 경을 4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음식 얻으러 가는 길에 세 번 청한 질문 2구절

라자가하에서 음식을 얻으러 다니던 부처님을 만난 깟사빠가 때가 아니라는 답에도 세 차례 질문을 청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부처님께서 라자가하 대나무 숲에 머무실 때 아침에 음식을 얻으러 라자가하로 들어가셨다. 벌거벗은 수행자 깟사빠가 멀리서 보고 다가와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서서 말씀드렸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rājagahe viharati veḷuvane kalandakanivāpe.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rājagahaṁ piṇḍāya pāvisi. Addasā kho acelo kassapo bhagavantaṁ dūratova āgacchantaṁ. Disvān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acelo kassapo bhagavantaṁ etadavoca:

상윳따 니까야 SN 12.17 아쩰라깟사빠 숫따 (벌거벗은 수행자 깟사빠)

배경

경은 정식으로 가르침을 펴는 자리가 아니라, 부처님이 마을 안으로 음식을 얻으러 들어가는 길에서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묵상

내 질문이 중요하더라도 상대의 시간과 상황을 먼저 살피고 있나요?

깟사빠가 질문할 기회를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 우리는 마을 안에 들어와 있다”고 하셨다. 두 번째에도 같은 답을 하셨고, 세 번째에도 … 마을 안이라고 하셨다. 많이 묻지 않겠다는 말에 “원하는 것을 물어라”고 허락하셨다.

“puccheyyāma mayaṁ bhavantaṁ gotamaṁ kañcideva desaṁ, sace no bhavaṁ gotamo okāsaṁ karoti pañhassa veyyākaraṇāyā”ti. “Akālo kho tāva, kassapa, pañhassa; antaragharaṁ paviṭṭhamhā”ti. Dutiyampi kho acelo kassapo bhagavantaṁ etadavoca: “puccheyyāma mayaṁ bhavantaṁ gotamaṁ kañcideva desaṁ, sace no bhavaṁ gotamo okāsaṁ karoti pañhassa veyyākaraṇāyā”ti. “Akālo kho tāva, kassapa, pañhassa; antaragharaṁ paviṭṭhamhā”ti. Tatiyampi kho acelo kassapo …pe… antaragharaṁ paviṭṭhamhāti. Evaṁ vutte, acelo kassapo bhagavantaṁ etadavoca: “na kho pana mayaṁ bhavantaṁ gotamaṁ bahudeva pucchitukāmā”ti. “Puccha, kassapa, yadākaṅkhas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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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세 번 청하고 세 번 거절당한 뒤, 많이 묻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대화가 열립니다. 벌거벗은 수행자 깟사빠가 묻고 싶다고 청할 때마다 부처님은 마을 안에 있다는 이유로 때가 아니라고 하셨고, 많이 묻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원하는 것을 물으라고 허락하셨습니다.

묵상

질문을 꼭 해야 할 때 끈기와 상대의 경계를 함께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상대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할 때,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 본 적이 있나요?

2 네 가지 원인설을 모두 물리치다 3구절

괴로움이 자신·타인·양쪽에 의해 생기는지 우연히 생기는지를 차례로 물으나 모두 그대로는 답하지 않습니다.

깟사빠가 물었다. “괴로움은 스스로 만든 것입니까? 남이 만든 것입니까? 스스로도 남도 함께 만든 것입니까? 스스로도 남도 만들지 않고 우연히 생긴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네 물음마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답하셨다.

“Kiṁ nu kho, bho gotama, ‘sayaṅkataṁ dukkhan’ti? ‘Mā hevaṁ, kassapā’ti bhagavā avoca. ‘Kiṁ pana, bho gotama, paraṅkataṁ dukkhan’ti? ‘Mā hevaṁ, kassapā’ti bhagavā avoca. ‘Kiṁ nu kho, bho gotama, sayaṅkatañca paraṅkatañca dukkhan’ti? ‘Mā hevaṁ, kassapā’ti bhagavā avoca. ‘Kiṁ pana, bho gotama, asayaṅkāraṁ aparaṅkāraṁ adhiccasamuppannaṁ dukkhan’ti? ‘Mā hevaṁ, kassapā’ti bhagavā av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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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괴로움의 기원을 네 가지 가능한 행위자 조합으로 나누지만 부처님은 어느 명제도 그대로 승인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었다는 것도, 남이 지었다는 것도, 둘 다 지었다는 것도, 원인 없이 우연히 생겼다는 것도 모두 물리치십니다. 괴로움이 일어나는 방식은 이런 단순한 틀로 가둘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원인을 한 사람의 탓이나 순전한 우연으로만 돌릴 때 빠지는 조건은 무엇인가요?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에도 그런 조건이 있는지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 괴로움이 없습니까?” “괴로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괴로움은 있다.” “그렇다면 고따마 님은 괴로움을 알지도 보지도 못합니까?” “나는 괴로움을 모르거나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괴로움을 알고 본다.”

‘Kiṁ nu kho, bho gotama, natthi dukkhan’ti? ‘Na kho, kassapa, natthi dukkhaṁ. Atthi kho, kassapa, dukkhan’ti. ‘Tena hi bhavaṁ gotamo dukkhaṁ na jānāti, na passatī’ti. ‘Na khvāhaṁ, kassapa, dukkhaṁ na jānāmi, na passāmi. Jānāmi khvāhaṁ, kassapa, dukkhaṁ; passāmi khvāhaṁ, kassapa, dukkh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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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 짧은 문답은 네 가지 설명을 물리친 것일 뿐, 괴로움이 있다는 사실이나 그것을 안다는 사실까지 부정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깟사빠가 거듭 되묻자 부처님은 괴로움이 없다고 한 적도 없고, 괴로움을 모르거나 보지 못한다고 한 적도 없다고 분명히 답하십니다. 앞서 물리친 네 가지 설명과 괴로움이 있다는 사실, 그것을 안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묵상

내 설명이 거부되었을 때 사실 자체까지 부정되었다고 오해한 적은 없나요?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거부된 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다시 짚어 보세요.

깟사빠는 부처님께서 스스로 만든 것·남이 만든 것·둘 다 만든 것·우연히 생긴 것을 모두 물리치면서도 괴로움은 있고 그것을 알고 본다고 한 답을 하나씩 되짚었다. 그리고 “부처님, 제게 괴로움을 밝혀 설명해 주십시오”라고 청했다.

“Kiṁ nu kho, bho gotama, ‘sayaṅkataṁ dukkhan’ti iti puṭṭho samāno ‘mā hevaṁ, kassapā’ti vadesi. ‘Kiṁ pana, bho gotama, paraṅkataṁ dukkhan’ti iti puṭṭho samāno ‘mā hevaṁ, kassapā’ti vadesi. ‘Kiṁ nu kho, bho gotama, sayaṅkatañca paraṅkatañca dukkhan’ti iti puṭṭho samāno ‘mā hevaṁ, kassapā’ti vadesi. ‘Kiṁ pana, bho gotama, asayaṅkāraṁ aparaṅkāraṁ adhiccasamuppannaṁ dukkhan’ti iti puṭṭho samāno ‘mā hevaṁ, kassapā’ti vadesi. ‘Kiṁ nu kho, bho gotama, natthi dukkhan’ti iti puṭṭho samāno ‘na kho, kassapa, natthi dukkhaṁ, atthi kho, kassapa, dukkhan’ti vadesi. ‘Tena hi bhavaṁ gotamo dukkhaṁ na jānāti na passatī’ti iti puṭṭho samāno ‘na khvāhaṁ, kassapa, dukkhaṁ na jānāmi na passāmi. Jānāmi khvāhaṁ, kassapa, dukkhaṁ; passāmi khvāhaṁ, kassapa, dukkhan’ti vadesi. Ācikkhatu ca me, bhante, bhagavā dukkhaṁ. Desetu ca me, bhante, bhagavā dukkh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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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상대의 답을 빠짐없이 요약하여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한 뒤 긍정적인 설명을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깟사빠는 스스로 지었다는 것부터 우연히 생겼다는 것까지, 그리고 괴로움이 있고 그것을 안다는 답까지 하나하나 되짚은 뒤, 이제는 괴로움을 직접 밝혀 달라고 청합니다.

묵상

이해되지 않는 답을 들었을 때 내 해석을 되짚어 말하고 설명을 다시 청할 수 있나요?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들은 것을 한 번 더 말로 확인해 보세요.

3 두 극단 사이의 조건 발생 3구절

동일한 행위자와 경험자를 세우면 영원주의, 둘을 갈라 놓으면 단멸주의가 되므로 중도로 연기를 설합니다.

“‘그가 행하고 바로 그가 경험한다’고 처음부터 존재하는 이를 전제하며 ‘괴로움은 스스로 만든다’고 말하면 영원주의에 이른다.”

“‘So karoti so paṭisaṁvedayatī’ti kho, kassapa, ādito sato ‘sayaṅkataṁ dukkhan’ti iti vadaṁ sassataṁ etaṁ pareti.

상윳따 니까야 SN 12.17 아쩰라깟사빠 숫따 (벌거벗은 수행자 깟사빠)

배경

스스로 만들었다는 말이 시간 속에서 동일하게 지속되는 행위자와 경험자를 전제할 때 영원주의가 됨을 지적합니다.

묵상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완전히 같은 사람으로 고정할 때 어떤 책임 이해가 생기나요?

“깟사빠여, 느낌에 찔린 사람이 ‘한 사람이 행하고 다른 사람이 경험한다’고 하며 ‘괴로움은 남이 만든다’고 말하면 죽으면 끊어져 없어진다는 견해에 빠진다.”

‘Añño karoti añño paṭisaṁvedayatī’ti kho, kassapa, vedanābhitunnassa sato ‘paraṅkataṁ dukkhan’ti iti vadaṁ ucchedaṁ etaṁ par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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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행위자와 경험자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갈라 과거 행위와 현재 결과의 연속을 끊으면 죽으면 끊어져 없어진다는 견해가 됩니다. 괴로움을 겪는 것이 자신이면서도 그 원인을 남에게서만 찾을 때, 행위와 그 결과 사이의 이어짐은 사라져 버립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끊어 말하는 방식도 괴로움의 참된 모습이 아니라고 보십니다.

묵상

지금의 결과를 과거의 나와 전혀 무관하다고 여길 때 놓치는 원인과 결과는 무엇인가요? 지금 겪는 일과 예전의 내 선택 사이에 이어진 끈이 있는지 돌아보세요.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중도로 가르침을 편다. 모름을 조건으로 지어내는 작용이, 지어내는 작용을 조건으로 의식이 … 생겨 괴로움의 온 무더기가 일어난다. 모름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지어내는 작용이 멎고, 의식이 … 멎어 괴로움의 온 무더기가 사라진다.”

Ete te, kassapa, ubho ante anupagamma majjhena tathāgato dhammaṁ deseti: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ṁ …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Avijjāya tveva asesavirāganirodhā saṅkhāranirodho; saṅkhār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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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고정된 한 사람이나 단절된 두 사람 대신 조건들의 연쇄가 일어나고 조건이 사라질 때 멎는 중도를 제시합니다.

묵상

한 사람을 탓하기보다 조건의 연결을 본다면 지금 바꿀 수 있는 첫 조건은 무엇인가요?

4 귀의에서 직접 앎까지 4구절

가르침을 들은 깟사빠가 귀의하고 출가를 청해 시험 기간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마침내 완전한 자유에 이릅니다.

깟사빠가 말했다. “훌륭합니다, 부처님. 엎어진 것을 세우고 … 눈 있는 이가 보도록 가르침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부처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상가)에 귀의합니다.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어 온전히 계를 받게 해 주십시오.”

Evaṁ vutte, acelo kassapo bhagavantaṁ etadavoca: “abhikkantaṁ, bhante, abhikkantaṁ, bhante.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e…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ṁ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Esāhaṁ, bhante, bhagavant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Labheyyāhaṁ, bhante, bhagavato santike pabbajjaṁ, labheyyaṁ upasampadan”ti.

상윳따 니까야 SN 12.17 아쩰라깟사빠 숫따 (벌거벗은 수행자 깟사빠)

배경

조건 따라 일어남의 설명을 들은 깟사빠는 칭찬에서 귀의와 수행자 공동체에 들어가겠다는 요청으로 곧바로 나아갑니다.

묵상

마음을 움직인 이해를 실제 삶의 약속으로 옮긴다면 어떤 작은 행동이 뒤따라야 하나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전에 다른 교단에 있던 사람이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기를 원하면 넉 달 동안 시험 기간을 보낸다. 그 뒤 마음이 열린 수행자들이 그를 수행자로 받아들인다. 다만 나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음을 안다.”

“Yo kho, kassapa, aññatitthiyapubbo imasmiṁ dhammavinaye ākaṅkhati pabbajjaṁ, ākaṅkhati upasampadaṁ, so cattāro māse parivasati. Catunnaṁ māsānaṁ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i upasampādenti bhikkhubhāvāya. Api ca mayā puggalavemattatā vidit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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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새로운 확신이 생겨도 공동체의 검증 절차를 설명하되 사람마다 다른 사정을 살필 여지를 함께 둡니다. 다른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이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 수행자가 되고 싶어 하면 넉 달의 기간을 두고 지켜본 뒤에야 받아들인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부처님은 사람마다 사정이 다름을 알고 있다고 덧붙이십니다.

묵상

새로운 길을 선택할 때 열의와 함께 필요한 검증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지금 서두르고 싶은 결정이 있다면, 얼마쯤 지켜본 뒤에 내려도 될지 생각해 보세요.

“다른 교단에 있던 사람이 넉 달을 보내야 한다면 저는 넉 해를 보내겠습니다. 넉 해 뒤 마음이 열린 수행자들이 저를 수행자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Sace, bhante, aññatitthiyapubbo imasmiṁ dhammavinaye ākaṅkhati pabbajjaṁ, ākaṅkhati upasampadaṁ, cattāro māse parivasati. Catunnaṁ māsānaṁ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i upasampādenti bhikkhubhāvāya. Ahaṁ cattāri vassāni parivasissāmi, catunnaṁ vassānaṁ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u upasampādentu bhikkhubhāvāyā”ti.

상윳따 니까야 SN 12.17 아쩰라깟사빠 숫따 (벌거벗은 수행자 깟사빠)

배경

깟사빠는 요구된 기간보다 훨씬 긴 넉 해도 감수하겠다고 하여, 시간으로 결심을 보여 줍니다. 다른 교단에 있던 사람이 넉 달이면 된다고 들었음에도, 그는 넉 해를 보낸 뒤에 받아들여지겠다고 자청합니다.

묵상

내 결심을 말이 아니라 꾸준히 견딜 시간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 마음먹은 일이 있다면, 그것을 얼마나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깟사빠는 부처님 곁에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다. 오래지 않아 홀로 물러나 느슨해지지 않고 열심히 힘써 나아가, 좋은 집안의 사람들이 집을 떠나는 목적인 거룩한 삶의 완성을 현세에서 직접 알고 실현했다. 그는 ‘태어남은 다했고 거룩한 삶은 이루어졌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알았으며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Alattha kho acelo kassapo bhagavato santike pabbajjaṁ, alattha upasampadaṁ. Acirūpasampanno ca panāyasmā kassap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cirasseva—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nti tadanuttaraṁ—brahmacariyapariyosāna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Aññataro ca panāyasmā kassapo arahataṁ ahosīti.

상윳따 니까야 SN 12.17 아쩰라깟사빠 숫따 (벌거벗은 수행자 깟사빠)

배경

깟사빠는 집을 떠난 지 오래지 않아 혼자 물러나 꾸준히 힘써 나아갔고, 마침내 거룩한 삶의 완성을 스스로 알고 실현하여 완전히 깨달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묵상

결심 뒤에 혼자서도 이어 가야 할 반복적인 실천은 무엇인가요?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것이 있는지 떠올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