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히땃사 숫따

Rohitass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2.26

인용된 가르침 7구절

이 경을 3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걸어서 이를 수 있는가 1구절

신 로히땃사가 세상의 끝에 걸어서 이를 수 있는지를 묻고, 부처님이 답하십니다.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로히땃사라는 신이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부처님,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죽어 사라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곳, 그곳에 걸어가서 세상의 끝을 알거나 보거나 이를 수 있습니까?’ ‘벗이여,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죽어 사라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곳에는, 걸어가서 세상의 끝을 알거나 보거나 이를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Sāvatthinidānaṁ. Ekamantaṁ ṭhito kho rohitasso deva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yattha nu kho, bhante, na jāyati na jīyati na mīyati na cavati na upapajjati, sakkā nu kho so, bhante, gamanena lokassa anto ñātuṁ vā daṭṭhuṁ vā pāpuṇituṁ vā”ti? “Yattha kho, āvuso, na jāyati na jīyati na mīyati na cavati na upapajjati, nāhaṁ taṁ gamanena lokassa antaṁ ñāteyyaṁ daṭṭheyyaṁ patteyyanti vadāmī”ti.

상윳따 니까야 SN 2.26 로히땃사 숫따

배경

이 경은 상윳따 니까야 2장에서 여러 신이 부처님께 묻는 대화들 가운데 하나로, 경 전체의 문을 여는 질문입니다. 로히땃사라는 신은 태어남도 늙음도 죽음도 없는 곳, 즉 조건 지어진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 걸어서 이를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죽어 사라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곳’이라는 다섯 겹의 부정으로 그 상태를 가리키면서도, 그곳에 걸어서는 이를 수 없다고 분명히 잘라 말씀하십니다. 이 짧은 문답이 뒤에 이어지는 로히땃사의 전생 이야기와 부처님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실마리가 됩니다.

묵상

멀리 떠나거나 지금과는 다른 곳에 이르면 지금의 괴로움에서 놓여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 ‘여기만 아니면’, ‘이것만 지나면’ 하고 바란 순간이 있었나요? 그 바람이 정확히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 가만히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2 세상 끝까지 달려간 선인 4구절

로히땃사가 전생에 신통력으로 한 생애를 다 걸었지만 세상의 끝에 이르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놀랍습니다, 부처님. 경이롭습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

“Acchariyaṁ, bhante, abbhutaṁ, bhante. Yāvasubhāsitamidaṁ, bhante, bhagavatā: ‘yattha kho, āvuso, na jāyati na jīyati na mīyati na cavati na upapajjati, nāhaṁ taṁ gamanena lokassa antaṁ ñāteyyaṁ daṭṭheyyaṁ patteyyanti vadāmī’ti.

상윳따 니까야 SN 2.26 로히땃사 숫따

배경

부처님의 대답을 들은 로히땃사 신이 감탄하며 화답하는 대목입니다. ‘놀랍습니다, 경이롭습니다’라는 감탄사로 시작해, 방금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다섯 겹의 부정 그대로 되풀이해 인용합니다. 들은 말을 그대로 되돌려 말하는 것은,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묵상

누군가 내 마음속 생각을 정확히 짚어 말해 줄 때,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최근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 어떤 말이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부처님, 예전에 저는 보자의 아들이며 신통력이 있어 허공을 다니던, 로히땃사라는 선인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는 이러한 빠르기가 있었습니다. 비유하자면 강한 활을 지니고 잘 훈련되어 손에 익고 익숙하고 능숙한 궁수가 가벼운 화살로 힘들이지 않고 야자수 그늘을 가로질러 쏘는 것과 같았습니다.

Bhūtapubbāhaṁ, bhante, rohitasso nāma isi ahosiṁ bhojaputto iddhimā vehāsaṅgamo. Tassa mayhaṁ, bhante, evarūpo javo ahosi; seyyathāpi nāma daḷhadhammā dhanuggaho susikkhito katahattho katayoggo katūpāsano lahukena asanena appakasireneva tiriyaṁ tālacchāyaṁ atipātey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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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자신의 전생 이야기로 답하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예전에 로히땃사라는 이름의 선인으로서 신통력을 지녀 허공을 날아다녔다고 말합니다. 그 속도를 화살에 견주는데, 잘 훈련된 궁수가 야자수 그늘 하나를 가로질러 쏘는 가벼운 화살만큼 빨랐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을 보여 주면서도, 답은 속도에 있지 않음을 뒤에서 짐작하게 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더 잘하고 더 빠르게 해내면 지금의 힘든 마음이 풀릴 것 같은 기대를 품어 본 적이 있나요? 그 기대가 실제로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한 번 돌아보아도 좋아요.

부처님, 그런 저에게는 이러한 걸음이 있었으니, 마치 한 걸음이 동쪽 바다에서 서쪽 바다까지 이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러한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걸어서 세상의 끝에 이르리라’라고.

Tassa mayhaṁ, bhante, evarūpo padavītihāro ahosi; seyyathāpi nāma puratthimā samuddā pacchimo samuddo. Tassa mayhaṁ, bhante, evarūpaṁ icchāgataṁ uppajji: ‘ahaṁ gamanena lokassa antaṁ pāpuṇissām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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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서 말한 속도에 이어, 걸음의 크기까지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대목입니다. 한 걸음이 동쪽 바다에서 서쪽 바다에 이를 만큼 컸다고 말한 뒤, 바로 그 능력을 갖춘 자신에게 ‘걸어서 세상의 끝에 이르리라’는 바람이 일어났다고 전합니다. 이 바람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그 바람이 세상의 끝을 공간적으로 이동해 닿아야 할 장소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며, 이 전제가 이어지는 대목에서 무너집니다.

묵상

이룰 수만 있다면 지금의 어려움이 전부 해결될 것 같은 목표를 품어 본 적이 있나요? 그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 정작 눈앞의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살짝 돌아볼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면, 오늘 하루 무엇에 쫓기듯 움직였는지부터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부처님, 저는 그러한 빠르기와 그러한 걸음을 갖추고서도,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일과 대소변을 보는 일과 잠으로 피로를 더는 일 말고는 백 년의 수명을 다하도록 걸었으나, 세상의 끝에 이르지 못한 채 그 도중에 목숨을 마쳤습니다.

So khvāhaṁ, bhante, evarūpena javena samannāgato evarūpena ca padavītihārena, aññatreva asitapītakhāyitasāyitā aññatra uccārapassāvakammā aññatra niddākilamathapaṭivinodanā vassasatāyuko vassasatajīvī vassasataṁ gantvā appatvāva lokassa antaṁ antarāva kālaṅk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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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히땃사 선인의 이야기가 매듭지어지는 대목입니다. 그는 최고의 속도와 보폭을 갖추고, 먹고 마시고 잠자는 최소한의 시간 말고는 쉬지 않고 한 생애, 즉 백 년을 걸었지만 세상의 끝에 이르지 못한 채 도중에 죽었다고 말합니다. 가장 빠른 존재도 한 생애를 다 바쳐 실패했다는 사실은, 세상의 끝이 걸어서 닿는 거리에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묵상

평생을 다해 애썼는데도 바라던 곳에 이르지 못했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든 적이 있다면, 그 애씀 자체는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3 이 한 길 몸 안에서 2구절

세상의 끝은 이동해 닿는 곳이 아니라 이 몸 안에서 알아차리는 자리임을 밝힙니다.

놀랍습니다, 부처님. 경이롭습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 벗이여, 그러나 나는 세상의 끝에 이르지 않고서는 괴로움의 끝을 낼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바로 이 한 길 몸, 인식과 마음을 지닌 이 몸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멎음과 세상의 멎음에 이르는 길을 알린다.

Acchariyaṁ, bhante, abbhutaṁ, bhante. Yāvasubhāsitamidaṁ, bhante, bhagavatā: ‘yattha kho, āvuso, na jāyati na jīyati na mīyati na cavati na upapajjati, nāhaṁ taṁ gamanena lokassa antaṁ ñāteyyaṁ daṭṭheyyaṁ patteyyanti vadāmī’”ti. “Na kho panāhaṁ, āvuso, appatvā lokassa antaṁ dukkhassa antakiriyaṁ vadāmi. Api ca khvāhaṁ, āvuso, imasmiṁyeva byāmamatte kaḷevare sasaññimhi samanake lokañca paññapemi lokasamudayañca lokanirodhañca lokanirodhagāminiñca paṭipad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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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히땃사가 자신의 실패담을 마치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되풀이합니다. 부처님은 이 지점에서 경 전체의 핵심을 드러내십니다. 걸어서는 세상의 끝에 이를 수 없다고 하시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끝에 이르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낼 수 없다고 다시 못 박으십니다. 그리고 그 모순을 이렇게 푸십니다. 세상의 끝은 인식과 마음을 지닌 이 한 길 몸 안에서 세상과 그 일어남과 멎음과 멎음에 이르는 길을 그대로 알아차릴 때 만나는 자리입니다. 이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의 얼개(괴로움·일어남·멎음·길)를 그대로 되비칩니다.

묵상

멀리 떠나야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뜻밖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답을 발견한 경험이 있나요?

걸어서는 세상의 끝에 끝내 이를 수 없으니, 세상의 끝에 이르지 않고는 괴로움에서 벗어남도 없다. 그러므로 세상을 아는 지혜로운 이는 거룩한 삶을 마치고 세상의 끝에 이르러 고요해진 채 세상의 끝을 알고서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는다.

Gamanena na pattabbo, lokassanto kudācanaṁ; Na ca appatvā lokantaṁ, dukkhā atthi pamocanaṁ. Tasmā have lokavidū sumedho, Lokantagū vusitabrahmacariyo; Lokassa antaṁ samitāvi ñatvā, Nāsīsati lokamimaṁ parañc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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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을 맺는 노래로, 앞의 산문 대화에서 밝힌 결론을 요약합니다. 앞의 두 행은 걸어서는 세상의 끝에 이를 수 없으면서도 그 끝에 이르지 않고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역설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합니다. 뒤의 네 행은 그 역설이 풀린 자리, 곧 거룩한 삶(수행)을 마치고 고요해진 채 세상의 끝을 안 지혜로운 이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는다고 마무리되는데, 이는 앞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 한 길 몸 안에서 세상의 끝을 안다’는 가르침이 실현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묵상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당장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 그 바람이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어떤 무게로 얹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