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질이다, 물질은 나의 것이다’라고 사로잡히지 않은 자에게는, 그 물질이 변하고 달라지더라도, 물질이 변하고 달라짐으로 인해 슬픔과 울부짖음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이 생기지 않는다.
Tassa ‘ahaṁ rūpaṁ, mama rūpan’ti apariyuṭṭhaṭṭhāyino, taṁ rūpaṁ vipariṇamati aññathā hoti. Tassa rūpa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nuppajj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배경
나꿀라삐따는 늙고 병든 집주인입니다. 부처님을 찾아와 “저는 늙고 노쇠하여 몸이 병들었고 늘 아픕니다. 저를 훈계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부처님의 답은 이것입니다. “내 몸은 병들었어도 내 마음은 병들지 않겠다, 이렇게 수행해야 한다.” 그 뜻을 자세히 풀어 준 이는 사리뿟따 님입니다. 물질·느낌·인식·형성·의식을 ‘나’라고 붙잡고 있으면, 그것이 변하고 달라질 때 슬픔과 울부짖음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붙잡지 않는 ‘잘 배운 거룩한 제자’에게는 몸이 변해도 마음까지 무너지지 않습니다. 건강도, 젊음도, 관계도 변하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 위에 무엇을 ‘나의 것’으로 얹을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묵상
몸이 아플 때 마음까지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나요? 상실이 왔을 때, 상실 자체의 고통에 ‘왜 나에게’,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저항의 고통이 더해지고 있지는 않나요?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어요.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은 조금씩 내려놓아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