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 숫따(화살)

Sallasutta

흔히 부르는 이름 화살 경

상윳따 니까야 SN 36.6

몸의 고통이 첫 번째 화살이라면, 거기에 성내고 슬퍼하는 마음이 두 번째 화살이다.

인용된 가르침 10구절

이 경을 4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같은 느낌과 서로 다른 반응 2구절

배우지 못한 사람과 배운 거룩한 제자가 모두 세 느낌을 겪지만 그 반응은 어떻게 다른지 묻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은 즐거운 느낌도 괴로운 느낌도 덤덤한 느낌도 겪는다. 수행자들이여, 배운 거룩한 제자도 즐거운 느낌도 괴로운 느낌도 덤덤한 느낌도 겪는다. 수행자들이여, 그렇다면 둘 사이에 어떤 차이와 구별과 다름이 있는가?” “부처님, 저희 가르침은 부처님께 뿌리를 둡니다. …”

“Assutavā, bhikkhave, puthujjano sukhampi vedanaṁ vedayati, dukkhampi vedanaṁ vedayati, adukkhamasukhampi vedanaṁ vedayati. Sutavā, bhikkhave, ariyasāvako sukhampi vedanaṁ vedayati, dukkhampi vedanaṁ vedayati, adukkhamasukhampi vedanaṁ vedayati. Tatra, bhikkhave, ko viseso ko adhippayāso kiṁ nānākaraṇaṁ sutavato ariyasāvakassa assutavatā puthujjanenā”ti? Bhagavaṁmūlakā no, bhante, dhammā …pe…

상윳따 니까야 SN 36.6 살라 숫따 (화살)

배경

경의 첫 물음은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과 배운 거룩한 제자의 공통점부터 세웁니다. 두 사람 모두 즐거운 느낌·괴로운 느낌·덤덤한 느낌이라는 세 종류를 겪으며, 이어 차이·구별·다름을 세 낱말로 묻습니다. 수행자들의 답 뒤에 남은 줄임표는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부분을 줄인 것입니다. 이 경이 가르는 기준은 같은 느낌과 맺는 서로 다른 관계입니다.

묵상

괴로운 느낌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수행을 잘못했다고 판단한 적이 있나요? 느낌이 오는 것과 그다음 반응을 잠시 나누어 보면 어떤 차이가 보이나요? 지금 아픔이 크다면, 분석하지 않고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수행자들이여,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은 괴로운 느낌에 닿으면 슬퍼하고 지치고 한탄하며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혼란에 빠진다. 그는 몸과 마음의 두 느낌을 겪는다. 수행자들이여, 화살을 맞은 뒤 두 번째 화살까지 맞은 사람과 같다. 수행자들이여, 그는 두 화살의 느낌을 겪는다. 수행자들이여, 이처럼 그는 슬퍼하고 지치고 한탄하며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혼란에 빠져 몸과 마음의 두 느낌을 겪는다.”

assutavā, bhikkhave, puthujjano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ṁ kandati sammohaṁ āpajjati. So dve vedanā vedayati— kāyikañca, cetasikañca. Seyyathāpi, bhikkhave, purisaṁ sallena vijjheyya. Tamenaṁ dutiyena sallena anuvedhaṁ vijjheyya. Evañhi so, bhikkhave, puriso dvisallena vedanaṁ vedayati. Evameva kho,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ṁ kandati sammohaṁ āpajjati. So dve vedanā vedayati— kāyikañca, cetasikañca.

상윳따 니까야 SN 36.6 살라 숫따 (화살)

배경

첫 답변은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이 괴로운 느낌을 겪은 뒤 슬퍼하고 지치고 한탄하며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차례로 보여 줍니다. 몸과 마음이라는 두 느낌을 화살을 맞고 다시 두 번째 화살까지 맞는 사람에 견주며, 비유 뒤에 같은 반응과 두 느낌을 온전히 반복합니다. 두 번째 화살은 첫 아픔 뒤에 더해지는 마음의 반응을 가리킵니다. 현대적 적용에서는 슬픔을 잘못으로 단정하거나 고통을 혼자 견디라는 뜻으로 읽지 않습니다.

묵상

지금 겪는 어려움에서 이미 일어난 아픔과 그 뒤에 이어지는 생각이나 반응을 나누어 볼 수 있나요? 둘이 구별되지 않거나 살피기 벅차다면 그대로 두고 도움을 구해도 괜찮을까요?

2 성냄과 감각적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고리 2구절

괴로운 느낌에 저항하고 감각적 즐거움에서 도피처를 찾을 때 세 가지 잠재 성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밝힙니다.

“그는 괴로운 느낌에 닿으면 그것에 맞선다. 괴로운 느낌에 맞서는 그에게 괴로운 느낌을 향한 성냄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는다. 그는 괴로운 느낌에 닿으면 감각적 즐거움을 반긴다. 왜인가? 수행자들이여,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은 감각적 즐거움 말고 괴로운 느낌에서 벗어날 길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반기는 그에게 즐거운 느낌을 향한 탐냄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는다.”

Tassāyeva kho pana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paṭighavā hoti. Tamenaṁ dukkhāya vedanāya paṭighavantaṁ, yo dukkhāya vedanāya paṭighānusayo, so anuseti. So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kāmasukh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Na hi so, bhikkhave, pajānāti assutavā puthujjano aññatra kāmasukhā dukkhāya vedanāya nissaraṇaṁ, tassa kāmasukhañca abhinandato, yo sukhāya vedanāya rāgānusayo, so anus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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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두 화살의 비유 뒤에는 괴로운 느낌에 맞서는 반응에서 성냄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는 과정이 나옵니다. 이어 감각적 즐거움을 반기고, 다른 벗어남을 알지 못한다는 원인 때문에 즐거운 느낌을 향한 탐냄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습니다. 맞서는 마음, 감각적 즐거움을 반김, 다른 벗어남을 모름, 탐냄이 이렇게 차례로 이어집니다. 즐거움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날 다른 길을 모르기 때문에 즐거움을 유일한 도피처로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묵상

힘든 느낌을 피하려 할 때 내가 자동으로 찾는 즐거움이나 주의 돌리기는 무엇인가요? 그것을 당장 끊으라는 질문이 아니에요. 잠깐 편안해지는 일과 실제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이 같은지 차분히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그는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덤덤한 느낌을 향한 알지 못함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는다. 그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덤덤한 느낌을 모두 얽매인 채 겪는다. 수행자들이여, 그를 태어남·늙음·죽음과 슬픔·울부짖음·아픔·근심·절망에 얽매이고, 괴로움에 얽매인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이라고 나는 말한다.”

So tāsaṁ ved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nappajānāti. Tassa tāsaṁ ved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appajānato, yo adukkhamasukhāya vedanāya avijjānusayo, so anuseti. So sukhañce vedanaṁ vedayati, saññutto naṁ vedayati. Dukkhañce vedanaṁ vedayati, saññutto naṁ vedayati. Adukkhamasukhañce vedanaṁ vedayati, saññutto naṁ vedayati. Ayaṁ vuccati,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saññutto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saññutto dukkhasmā’ti vadā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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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성냄과 탐냄의 잠재 성향을 밝힌 뒤, 느낌의 일어남·사라짐·달콤함·위험·벗어남이라는 다섯 측면을 알지 못하는 상태를 설명합니다. 그 때문에 덤덤한 느낌을 향한 알지 못함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고, 즐거움·괴로움·덤덤함의 세 느낌을 모두 얽매인 채 겪습니다. 끝에서는 태어남·늙음·죽음과 슬픔·울부짖음·아픔·근심·절망, 그리고 괴로움에 얽매였다고 부처님께서 말합니다.

묵상

강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덤덤한 느낌에서도 습관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나요? 특별한 답이나 깊은 분석을 요구하지 않아요. 오늘 한 순간의 느낌이 생기고 달라지고 사라지는 모습 가운데 알아차릴 수 있는 한 부분만 있을까요?

3 한 화살만 겪는 배운 제자 4구절

배운 거룩한 제자는 몸의 아픔을 겪되 두 번째 화살을 더하지 않고 느낌의 성질과 벗어남을 압니다.

“수행자들이여, 배운 거룩한 제자는 괴로운 느낌에 닿아도 슬퍼하거나 지치거나 한탄하거나 가슴을 치고 울부짖거나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몸의 느낌 하나를 겪고 마음의 느낌은 겪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화살을 맞아도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은 이와 같다. 수행자들이여, 그는 한 화살만 겪는다. 수행자들이여, 이처럼 그는 슬퍼하거나 지치거나 한탄하거나 가슴을 치고 울부짖거나 혼란에 빠지지 않고 몸의 느낌 하나를 겪고 마음의 느낌은 겪지 않는다.”

Sutavā ca kho, bhikkhave, ariyasāvako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na socati, na kilamati, na paridevati, na urattāḷiṁ kandati, na sammohaṁ āpajjati. So ekaṁ vedanaṁ vedayati— kāyikaṁ, na cetasikaṁ. Seyyathāpi, bhikkhave, purisaṁ sallena vijjheyya. Tamenaṁ dutiyena sallena anuvedhaṁ na vijjheyya. Evañhi so, bhikkhave, puriso ekasallena vedanaṁ vedayati. Evameva kho,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na socati, na kilamati, na paridevati, na urattāḷiṁ kandati, na sammohaṁ āpajjati. So ekaṁ vedanaṁ vedayati— kāyikaṁ, na cetasikaṁ.

상윳따 니까야 SN 36.6 살라 숫따 (화살)

배경

앞서 나온 보통 사람과 달리, 배운 거룩한 제자도 괴로운 느낌에 닿지만 슬픔에서 혼란까지의 여섯 반응을 더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몸의 느낌 하나만 겪고 마음의 느낌은 겪지 않는다는 말이 비유 앞뒤에 두 번 나오며,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아 한 화살만 겪는 사람에 견줍니다. 이 하나와 둘의 차이에서 ‘화살’이라는 경의 제목이 나옵니다. 현대적 적용에서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도움 없이 고통을 견디라는 지침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묵상

아픔을 없앨 수 없는 순간에도 그 위에 자신을 비난하는 생각까지 더하지 않을 여지가 있나요? 몸에서 느껴지는 것과 마음이 말하는 것을 잠시 따로 이름 붙여 보는 일이 지금 안전하고 가능할까요?

“그는 괴로운 느낌에 닿아도 그것에 맞서지 않는다. 괴로운 느낌에 맞서지 않는 그에게 성냄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지 않는다. 그는 괴로운 느낌에 닿아도 감각적 즐거움을 반기지 않는다. 왜인가? 수행자들이여, 배운 거룩한 제자는 감각적 즐거움 말고도 괴로운 느낌에서 벗어날 길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반기지 않는 그에게 즐거운 느낌을 향한 탐냄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지 않는다.”

Tassāyeva kho pana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paṭighavā na hoti. Tamenaṁ dukkhāya vedanāya appaṭighavantaṁ, yo dukkhāya vedanāya paṭighānusayo, so nānuseti. So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kāmasukha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Pajānāti hi so,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aññatra kāmasukhā dukkhāya vedanāya nissaraṇaṁ. Tassa kāmasukhaṁ nābhinandato yo sukhāya vedanāya rāgānusayo, so nānuseti.

상윳따 니까야 SN 36.6 살라 숫따 (화살)

배경

한 화살의 비유 뒤에는 앞서 나온 원인과 결과를 다시 짚습니다. 배운 거룩한 제자는 괴로운 느낌에 맞서지 않으므로 성냄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지 않고, 감각적 즐거움을 반기지 않으므로 즐거운 느낌을 향한 탐냄의 잠재 성향도 자리 잡지 않습니다. 전환의 이유는 감각적 즐거움 말고도 괴로운 느낌에서 벗어날 길을 안다는 데 있습니다. 다른 벗어남을 아는 앎이 이 두 반응의 고리를 끊습니다.

묵상

괴로움을 밀어내거나 반대되는 즐거움으로 덮는 것 말고 내가 알고 있는 안전한 돌봄은 무엇인가요? 지금 가능한 것이 없다면 없다고 알아차려도 될까요?

“그는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 그래서 덤덤한 느낌을 향한 알지 못함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지 않는다. 그는 즐거운 느낌을 겪어도 풀려난 채 겪고, 괴로운 느낌을 겪어도 풀려난 채 겪으며, 덤덤한 느낌을 겪어도 풀려난 채 겪는다.”

So tāsaṁ ved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ṁ 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pajānāti. Tassa tāsaṁ ved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pajānato, yo adukkhamasukhāya vedanāya avijjānusayo, so nānuseti. So sukhañce vedanaṁ vedayati, visaññutto naṁ vedayati. Dukkhañce vedanaṁ vedayati, visaññutto naṁ vedayati. Adukkhamasukhañce vedanaṁ vedayati, visaññutto naṁ vedayati.

상윳따 니까야 SN 36.6 살라 숫따 (화살)

배경

앞에서 알지 못했다고 한 느낌의 다섯 측면을 이제 있는 그대로 안다고 되풀이합니다. 느낌의 일어남·사라짐·달콤함·위험·벗어남을 알기 때문에 덤덤한 느낌을 향한 알지 못함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지 않습니다. 이어 즐거운 느낌·괴로운 느낌·덤덤한 느낌을 각각 겪어도 모두 풀려난 채 겪는다고 세 번 나누어 말합니다. 세 종류의 느낌은 그대로 있어도, 그 느낌과 얽매임은 서로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즐거움·괴로움·덤덤함 가운데 하나를 느끼면서도 그것이 곧 나 전부는 아니라고 볼 수 있는 순간이 있나요? 느낌을 밀어내거나 붙들지 않고 변화를 알아차리는 일이 지금 가능할까요? 어렵다면 한 번의 변화만 기억해도 괜찮을까요?

“수행자들이여, 그를 태어남·늙음·죽음과 슬픔·울부짖음·아픔·근심·절망에서 풀려나고, 괴로움에서 풀려난 배운 거룩한 제자라고 나는 말한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과 배운 거룩한 제자 사이의 차이와 구별과 다름이다.”

Ayaṁ vuccati,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visaññutto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visaññutto dukkhasmā’ti vadāmi. Ayaṁ kho, bhikkhave, viseso, ayaṁ adhippayāso, idaṁ nānākaraṇaṁ sutavato ariyasāvakassa assutavatā puthujjanenāti.

상윳따 니까야 SN 36.6 살라 숫따 (화살)

배경

산문 가르침의 결론은 배운 거룩한 제자가 태어남·늙음·죽음과 슬픔·울부짖음·아픔·근심·절망에서 풀려났고, 괴로움에서 풀려났다고 부처님께서 말하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어 첫 질문의 세 표현을 그대로 받아 차이·구별·다름을 각각 확인합니다. 둘을 가르는 기준은 얽매인 채 겪는가, 풀려난 채 겪는가입니다. 처음의 물음과 긴 산문 답변이 여기에서 닫히고 다음 시로 넘어갑니다.

묵상

같은 일을 겪어도 반응 방식에 따라 괴로움과의 관계가 달라졌던 경험이 있나요? 얽매였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순간도 배움의 일부로 보면서, 그때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볼까요?

4 느낌을 넘어선 지혜의 게송 2구절

느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좋아함과 싫어함에 흔들리지 않는 지혜가 차이를 만든다고 게송으로 맺습니다.

“지혜롭고 많이 배운 이는 즐거운 느낌도 괴로운 느낌도 겪지 않는다. 이것이 슬기롭고 능숙한 이와 보통 사람 사이의 큰 차이이다. 가르침을 헤아리고 많이 배워 이 세상과 저세상을 통찰하는 이는 바라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바라지 않는 것에도 맞서지 않는다.”

Na vedanaṁ vedayati sapañño, Sukhampi dukkhampi bahussutopi; Ayañca dhīrassa puthujjanena, Mahā viseso kusalassa hoti. Saṅkhātadhammassa bahussutassa, Vipassato lokamimaṁ parañca; Iṭṭhassa dhammā na mathenti cittaṁ, Aniṭṭhato no paṭighātameti.

상윳따 니까야 SN 36.6 살라 숫따 (화살)

배경

산문의 결론 뒤에 오는 첫 시는 지혜롭고 많이 배운 이가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을 겪지 않는다고 노래합니다. 이것을 슬기롭고 능숙한 이와 보통 사람 사이의 큰 차이라고 한 뒤, 가르침을 헤아리고 많이 배워 이 세상과 저세상을 통찰하는 이는 바라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바라지 않는 것에도 맞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묵상

이 시는 바라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바라지 않는 것에도 맞서지 않는다고 두 방향을 나란히 놓아요. 내 경험을 수행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로 판단하지 않고, 본문에서 나란히 놓인 바람과 맞섬이라는 두 표현만 확인해 볼 수 있나요?

“그의 좋아함과 맞섬은 흩어지고 사라져 더는 없다. 티 없고 슬픔 없는 상태를 알고, 존재를 건너간 이는 바르게 이해한다.”

Tassānurodhā athavā virodhā, Vidhūpitā atthagatā na santi; Padañca ñatvā virajaṁ asokaṁ, Sammā pajānāti bhavassa pāragū”ti.

상윳따 니까야 SN 36.6 살라 숫따 (화살)

배경

마지막 시는 앞서 나온 바람과 맞섬을 좋아함과 맞섬이라는 두 반응으로 받아, 둘이 흩어지고 사라져 더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어 티 없고 슬픔 없는 상태를 알고 존재를 건너간 이는 바르게 이해한다고 경을 맺습니다. 여기서 ‘존재’는 있음 또는 되어 감을 뜻하며, 꼭 다시 태어남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지금 슬퍼하는 사람에게 감정을 없애라고 요구하는 말이 아닙니다. 경은 이 장면을 풀려남의 마무리로 전합니다.

묵상

좋아함과 맞섬이 “흩어지고 사라져 더는 없다”는 마지막 시에서 경의 결론을 이루는 말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본문이 좋아함·맞섬·존재를 어떤 순서로 놓는지만 살펴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