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떳떳하지 못한 일도 했어요. 죽음이 가까워지니 두려워요.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를 대느라 서류를 사실과 다르게 손본 적이 있고, 거래처에 거짓으로 말한 일도 있어요. 그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큰 병을 앓고 죽음이 가까이 느껴지니 그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가족 때문이었다고 스스로 말해 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먼저

가족을 지키려고 한 일들이 마지막이 가까워진 지금 마음을 누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그 무게를 혼자 들고 있으면 두려움은 더 커질 수 있어요.

부처님 때, 비슷한 자리

부처님의 제자 사리뿟따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다난자니라는 브라흐마나(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를 찾아갔습니다. 존자는 다난자니가 왕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서 빼앗고 사람들의 이름으로 왕에게서 빼앗는다는 말을 한 수행자에게서 들은 터였습니다. 존자가 방심하지 않고 지내느냐고 묻자 다난자니는 부모와 처자, 일꾼과 친척, 손님과 왕, 자기 몸까지 돌볼 곳이 너무 많아 그럴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존자는 그 이유로 한 일의 결과를 피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고, 바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있다고 일렀습니다. 훗날 다난자니는 병이 깊어지자 사람을 보내 존자를 집으로 청했습니다. 존자는 말없이 받아들여 찾아갔고, 몸 상태부터 물은 다음 자애(멧따)로 마음을 채우는 길을 가르쳤습니다.

“다난자니여, 그대는 방심하지 않고 지내고 있습니까?” “사리뿟따 존자여, 우리에게 어떻게 방심하지 않음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부모를 부양해야 하고, 아내와 자식을 부양해야 하고, 하인과 일꾼을 부양해야 합니다. 친구와 동료에게 해야 할 도리를 하고, 친척에게 해야 할 도리를 하고, 손님에게 해야 할 도리를 하고, 돌아가신 조상에게 해야 할 도리를 하고, 신들에게 해야 할 도리를 하고, 왕에게 해야 할 도리를 해야 합니다. 이 몸도 먹이고 키워야 합니다.” “다난자니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이 부모를 위해서라며 바르지 못하고 어긋나게 행동했다고 합시다. 그렇게 바르지 못하고 어긋나게 행동한 탓에 지옥의 옥졸들이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고 합시다. 그가 ‘나는 부모를 위해 바르지 못하고 어긋나게 행동했으니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지 마라’ 하고 얻어 낼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그의 부모가 ‘그는 우리를 위해 바르지 못하고 어긋나게 행동했으니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지 마라’ 하고 얻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여. 울부짖는 그를 옥졸들이 지옥에 던져 넣을 것입니다.”
MN 97 다난자니 숫따 (다난자니) 5.3–6.5
빠알리 원문

“kaccāsi, dhanañjāni, appamatto”ti? “Kuto, bho sāriputta, amhākaṁ appamādo yesaṁ no mātāpitaro posetabbā, puttadāro posetabbo, dāsakammakarā posetabbā, mittāmaccānaṁ mittāmaccakaraṇīyaṁ kātabbaṁ, ñātisālohitānaṁ ñātisālohitakaraṇīyaṁ kātabbaṁ, atithīnaṁ atithikaraṇīyaṁ kātabbaṁ, pubbapetānaṁ pubbapetakaraṇīyaṁ kātabbaṁ, devatānaṁ devatākaraṇīyaṁ kātabbaṁ, rañño rājakaraṇīyaṁ kātabbaṁ, ayampi kāyo pīṇetabbo brūhetabbo”ti? “Taṁ kiṁ maññasi, dhanañjāni, idhekacco mātāpitūnaṁ hetu adhammacārī visamacārī assa, tamenaṁ adhammacariyāvisamacariyāhetu nirayaṁ nirayapālā upakaḍḍheyyuṁ. Labheyya nu kho so ‘ahaṁ kho mātāpitūnaṁ hetu adhammacārī visamacārī ahosiṁ, mā maṁ nirayaṁ nirayapālā’ti, mātāpitaro vā panassa labheyyuṁ ‘eso kho amhākaṁ hetu adhammacārī visamacārī ahosi, mā naṁ nirayaṁ nirayapālā’”ti? “No hidaṁ, bho sāriputta. Atha kho naṁ vikkandantaṁyeva niraye nirayapālā pakkhipeyyuṁ”.

“다난자니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모를 위해서라며 바르지 못하고 어긋나게 행동하는 사람과, 부모를 위해 바르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낫습니까?” “사리뿟따 존자여, 부모를 위해서라며 바르지 못하고 어긋나게 행동하는 사람은 더 낫지 않습니다. 부모를 위해 바르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여기서는 더 낫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여, 바르지 못하고 어긋난 행동보다 바르고 올바른 행동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다난자니여, 바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로 부모를 부양할 수 있고, 나쁜 짓을 하지 않을 수 있고, 복을 짓는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MN 97 다난자니 숫따 (다난자니) 16.1–16.6
빠알리 원문

“Taṁ kiṁ maññasi, dhanañjāni, yo vā mātāpitūnaṁ hetu adhammacārī visamacārī assa, yo vā mātāpitūnaṁ hetu dhammacārī samacārī assa; katamaṁ seyyo”ti? “Yo hi, bho sāriputta, mātāpitūnaṁ hetu adhammacārī visamacārī assa, na taṁ seyyo; yo ca kho, bho sāriputta, mātāpitūnaṁ hetu dhammacārī samacārī assa, tadevettha seyyo. Adhammacariyāvisamacariyāhi, bho sāriputta, dhammacariyāsamacariyā seyyo”ti. “Atthi kho, dhanañjāni, aññesaṁ hetukā dhammikā kammantā, yehi sakkā mātāpitaro ceva posetuṁ, na ca pāpakammaṁ kātuṁ, puññañca paṭipadaṁ paṭipajjituṁ.

“‘사리뿟따 존자께서 연민을 내시어 다난자니 브라흐마나의 집에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말없이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서 사리뿟따 존자는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겉옷을 들고 다난자니 브라흐마나의 집으로 갔다. 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아 다난자니 브라흐마나에게 말했다. “다난자니여, 견딜 만합니까? 지낼 만합니까? 괴로운 느낌이 가라앉고 심해지지 않습니까? 가라앉는 기미가 보이고 심해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까?”
MN 97 다난자니 숫따 (다난자니) 27.17–28.2
빠알리 원문

‘sādhu kira, bhante, āyasmā sāriputto yena dhanañjānissa brāhmaṇassa nivesanaṁ tenupasaṅkamatu anukampaṁ upādāyā’”ti. Adhivāsesi kho āyasmā sāriputto tuṇhībhāvena.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yena dhanañjānissa brāhmaṇassa nivesan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Nisajja kho āyasmā sāriputto dhanañjāniṁ brāhmaṇaṁ etadavoca: “kacci te, dhanañjāni, khamanīyaṁ, kacci yāpanīyaṁ? Kacci dukkhā vedanā paṭikkamanti, no abhikkamanti? Paṭ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abhikkamo”ti?

부처님이 오늘 답한다면

따옴표 안의 말과 상자 안의 글만 경전의 말씀입니다. 나머지는 경에서 부처님이 답한 방식을 따라 편집자가 쓴 글입니다.

경에 나오는 다난자니는 사리뿟따 존자 앞에서 “이 몸도 먹이고 키워야 합니다”까지 줄줄이 대며 사정을 말해요. 가족과 여러 도리를 챙기느라 방심하지 않고 지낼 수 없다는 말이 이 사람의 입에서 나왔어요. 그 말에 사리뿟따 존자는 나무라지 않고 되물었어요.

이 부분은 듣기 어려운 말이에요. 이 대목은 가족을 위해서라는 이유가 결과를 대신 막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줘요. 이 말은 ‘어떤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다면’ 하는 물음에서 나왔고, 다난자니나 읽는 사람에게 내린 판정으로 적혀 있지는 않아요.

존자의 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바르지 못하게 행동하는 사람보다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낫다는 답을 다난자니 스스로 하게 한 뒤, “바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있습니다”라고 일렀어요. 부양하는 일 자체는 나무라지 않았어요. 부양하면서도 나쁜 짓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어요.

다난자니가 병이 깊어져 존자를 청했을 때, 존자는 말없이 받아들여 집으로 갔어요. 잘못을 따지기 전에 “견딜 만합니까? 지낼 만합니까?” 하고 몸부터 살폈어요.

“다난자니여, 그대에게 브라흐마와 함께하는 길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마음에 잘 새기십시오. 말하겠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여, 그렇게 하십시오.” 다난자니 브라흐마나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가 말했다. “다난자니여, 브라흐마와 함께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여기 수행자가 자애(멧따)가 깃든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며 지내고, 둘째 방향도, 셋째 방향도, 넷째 방향도 그렇게 합니다. 이처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든 이를 자기처럼 여기며, 자애가 깃든 마음으로 온 세상을 가득 채우며 지냅니다. 그 마음은 넓고, 커지고, 한이 없고, 원한이 없고, 해침이 없습니다. 다난자니여, 이것이 브라흐마와 함께하는 길입니다.”
MN 97 다난자니 숫따 (다난자니) 31.8–32.3
빠알리 원문

“Brahmānaṁ te, dhanañjāni, sahabyatāya maggaṁ desessāmi; taṁ suṇāhi, sādhukaṁ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Evaṁ, bho”ti kho dhanañjāni brāhmaṇo āyasmato sāriputtassa paccassosi. Āyasmā sāriputto etadavoca: “katamo ca, dhanañjāni, brahmānaṁ sahabyatāya maggo? Idha, dhanañjāni, bhikkhu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ṁ disaṁ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ṁ, tathā tatiyaṁ, tathā catutthaṁ; iti uddhamadho tiriyaṁ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ṁ lokaṁ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ati. Ayaṁ kho, dhanañjāni, brahmānaṁ sahabyatāya maggo.

존자가 병석의 그에게 가르친 길은 자애였어요. “자애가 깃든 마음으로 온 세상을 가득 채우며 지냅니다”라고 해요. 지난 일을 바꿀 수는 없어도, 지금 마음을 어디에 두고 머물지는 오늘 정할 수 있어요. 이 길이 두려움을 없애 준다는 약속은 경에 없어요. 그래도 존자가 아픈 사람에게 건넨 것은 이것이었어요.

오늘 해 볼 것

  1. 마음에 걸리는 일 중 한 가지만 골라, 믿는 사람(가족, 종교인, 상담자)에게 소리 내어 이야기해 보세요. 해결하려 하지 않고 말하기만 해도 돼요.
  2. 바로잡을 수 있는 일(사과, 갚기, 돌려주기)이 있는지 살펴보고, 할 수 있는 것 하나만 이번 주에 해 보세요. 할 수 없는 일은 적어 두기만 해도 돼요.
  3. 잠들기 전에 숨을 쉬면서 가족, 나, 내가 마음 상하게 했을지 모르는 사람을 차례로 떠올리고 ‘편안하기를’ 하고 속으로 말해 보세요.

이렇게 읽기 쉬워요

가족을 위해서 한 일이면 나쁜 일도 용서된다.
사리뿟따가 부모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결과를 피할 수 있느냐고 묻자 다난자니는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 mn97:6.1–6.5
경은 나를 지옥행이라고 선고한다.
6장은 ‘어떤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다고 하면’ 하는 가정의 물음이다. 다난자니에게 내린 선고가 아니다. 이어 사리뿟따는 병석의 그를 찾아가 자애의 길을 가르친다. mn97:6.1–6.2
가족을 부양하는 일을 그만두라는 말이다.
바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로 부모를 부양하면서 나쁜 짓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mn97:16.1–16.6

경전 밖의 도움

부처님 말씀이 아닌 현실 안내입니다. 확인 2026-10-10

  • 죽음이 가까워지며 두려움과 후회가 커지면 호스피스·완화의료 팀에서 정서·영적 돌봄 상담을 받을 수 있어요. 가까운 호스피스 기관은 국가호스피스센터(또는 건강보험 호스피스 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 마음에 걸리면 대한법률구조공단(국번 없이 132)에서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어요.
  • 밤에도 이야기할 곳이 필요하면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1577-0199 (24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