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사로빠마 숫따(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Mahāsāropam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29

명예와 계행과 집중과 앎을 나무의 겉부분에 빗대어 해탈이라는 심재를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15구절

이 경을 4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왜 길을 나섰는가 4구절

괴로움을 끝내려던 처음 뜻과 명예에서 멈추는 첫 번째 위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 머무셨다. 데와닷따가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곳에서 부처님께서는 데와닷따를 두고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rājagahe viharati gijjhakūṭe pabbate acirapakkante devadatte. Tatra kho bhagavā devadattaṁ ārabbha bhikkhū āmantes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맛지마 니까야 스물아홉 번째 경의 서두입니다.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 머무셨고, 데와닷따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바로 그를 두고 수행자들에게 이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특정 인물에 대한 비난을 길게 늘어놓지 않고, 수행의 목적을 잃는 보편적인 과정을 나무에 빗대어 밝히십니다. 이렇게 때와 장소를 밝히며 시작해, 이어지는 가르침이 부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누군가의 실패를 보며 그 사람만 탓하는 데 오래 머문 적이 있나요? 같은 위험이 내 마음에도 생길 수 있음을 차분히 살핀다면, 남의 이야기가 자신을 비추는 정직한 거울이 될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어떤 좋은 집안의 사람이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간다고 하자. 그는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몸과 마음의 괴로움과 절망에 잠겨 있다. 이 괴로움의 무더기 전체를 끝낼 길이 보이면 좋겠다.’ 그러나 집을 떠난 뒤 재물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된다.

“Idha, bhikkhave, 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hoti: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So evaṁ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ṁ abhinibbattet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길을 나서는 처음 동기는 괴로움 전체를 끝내려는 절실함입니다.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아픔과 절망에 둘러싸인 현실을 보고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수행이 시작되자 재물과 존경과 명성이 따라옵니다. 그것들은 처음 목적이 아니었지만 성취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부처님은 처음의 진실한 마음을 먼저 보여 주어, 목적이 어떻게 조금씩 바뀌는지 살피게 합니다.

묵상

처음 어떤 일을 시작하게 한 가장 절실한 이유를 아직 선명하게 기억하나요? 과정에서 얻은 칭찬과 편안함이 어느새 처음 목적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되돌아볼 수 있을까요?

그는 재물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여 바라던 것을 모두 이루었다고 여긴다. 그 때문에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며 말한다. ‘나는 재물과 존경과 명성이 있지만 다른 수행자들은 알려지지 않았고 영향력도 없다.’ 그는 거기에 취해 게을러지고, 게으른 채 괴롭게 머문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attānukkaṁseti paraṁ vambheti: ‘ahamasmi lābhasakkārasilokavā, ime panaññe bhikkhū appaññātā appesakkhā’ti.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majjati pamajjati pamādaṁ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ṁ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명예를 얻은 사실보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를 만듭니다. 그는 충분히 이루었다고 여기고 자신을 높이며 다른 수행자를 낮춥니다. 비교가 시작되자 처음 목표였던 괴로움의 끝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재물과 존경과 인기가 성공의 기준이 됩니다. 그 결과 게을러지고 다시 괴로움 속에 머뭅니다. 바깥의 인정은 수행을 돕는 조건일 수 있지만, 자신과 남의 가치를 재는 자가 되는 순간 길을 가로막습니다.

묵상

사람들의 인정이 갑자기 줄어들면 내가 이룬 것까지 사라진 듯 느끼나요? 칭찬과 영향력이 아니라 마음의 자유라는 처음 기준으로 돌아갈 때, 지금의 성공을 어떻게 다르게 볼 수 있을까요?

마치 심재가 필요하여 심재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심재가 든 큰 나무를 만났다고 하자. 그는 심재와 속재목과 나무껍질과 새순을 모두 지나쳐 가지와 잎만 잘라 들고는 심재라고 여기며 떠난다. 눈 밝은 이는 그가 나무의 어느 부분도 구별하지 못해 가지와 잎을 심재로 잘못 알았다고 말할 것이니, 심재로 만들려던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atikkamma phegguṁ atikkamma tacaṁ atikkamma papaṭikaṁ, sākhāpalāsaṁ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Tamenaṁ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ṁ vadeyya: ‘na vatāyaṁ bhavaṁ puriso aññāsi sāraṁ, na aññāsi phegguṁ, na aññāsi tacaṁ, na aññāsi papaṭikaṁ,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ṁ. Tathā hayaṁ bhavaṁ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atikkamma phegguṁ atikkamma tacaṁ atikkamma papaṭikaṁ, sākhāpalāsaṁ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ṁ tañcassa atthaṁ nānubhaviss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첫 비유에서 명예는 나무의 가지와 잎에 해당합니다. 눈에 잘 띄고 무성하지만 단단한 물건을 만드는 심재의 역할은 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심재라고 착각한 데 있습니다. 수행에서 따라오는 인정도 완전히 버려야 할 악은 아니지만, 괴로움을 끝내는 풀려남과 같지는 않습니다. 처음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큰 나무 앞에서도 겉부분만 들고 돌아가게 됩니다.

묵상

눈에 잘 보이고 많은 사람이 알아주는 성과를 가장 깊은 성취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 손에 든 것이 가지와 잎인지 내가 정말 찾던 심재인지 어떤 분명한 기준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요?

2 겉껍질에 멈추지 않다 6구절

명예를 지나 계행과 집중을 얻어도 자신을 높이면 다시 멈추게 되는 과정

수행자들이여,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간 좋은 집안의 사람이 다시 있다고 하자. … 그는 재물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지 않고 바라던 것을 다 이루었다 여기지 않는다. 그는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남을 낮추지도 않는다. 그는 거기에 취하지 않고 게을러지지 않으니, 부지런히 계행을 성취한다.

Idha pana, bhikkhave, 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hoti: …pe…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ṁseti, na paraṁ vambheti.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ṁ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īlasampadaṁ ārādhet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재물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해 거룩한 삶의 가지와 잎에서 멈추는 수행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마음으로 집을 떠난 이들이 모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또 다른 수행자는 똑같이 재물과 존경과 명성을 얻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높이지도 남을 낮추지도 않으며, 거기에 취해 게을러지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 대신 부지런히 계행을 갖추어 나갑니다. 부처님은 이 대조를 통해 같은 상황에서도 길이 갈릴 수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다음 걸음을 결정합니다.

묵상

지금 이룬 것에 만족해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있지는 않나요? 얻은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거기 머물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런 마음은 오늘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요?

이를 거룩한 삶의 가지와 잎을 붙잡고 거기서 멈춘 수행자라 한다. … 그러나 부지런한 이는 계행을 성취한다. 그가 계행에 만족하여 모두 이루었다고 여기고 자신을 높이며 남을 낮추어 말한다. ‘나는 계행이 바르고 성품이 좋지만 다른 수행자들은 계행이 없고 성품이 나쁘다.’ 그는 계행에 취해 게을러지고 괴롭게 머문다.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sākhāpalāsaṁ aggahesi brahmacariyassa; tena ca vosānaṁ āpādi. … Appamatto samāno sīlasampadaṁ ārādheti.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So tāya sīlasampadāya attānukkaṁseti, paraṁ vambheti: ‘ahamasmi sīlavā kalyāṇadhammo, ime panaññe bhikkhū dussīlā pāpadhammā’ti. So tāya sīlasampadāya majjati pamajjati pamādaṁ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ṁ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괴로움을 끝내려 집을 떠났지만 재물과 존경과 명성에 취해 거룩한 삶의 가지와 잎에서 멈추는 수행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은 절실함으로 길을 나서 명예를 얻고도 거기에 취하지 않고 계행으로 나아가는 수행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행을 모두 이룬 최종 목적이라고 여기고 자신을 높이며 남을 낮추면 다시 게을러지고 괴롭게 머뭅니다. 명예를 넘어선 진전도 새로운 자만의 근거가 되는 순간 길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묵상

바른 행동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낮추는 마음으로 바뀐 적은 없나요? 좋은 기준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것으로 나와 남의 우열을 함부로 가르지 않는 길은 어떤 모습일까요?

또 다른 이는 재물과 존경과 명성에도 만족하지 않아 바라던 것을 다 이루었다 여기지 않으며,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남을 낮추지도 않고 거기에 취하지 않아, 부지런히 계행을 성취한다. 그러나 그는 계행에 만족하나 아직 다 이루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는 그것으로도 자신을 높이지도 남을 낮추지도 않으며, 거기에 취하지도 게을러지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ṁseti, na paraṁ vambheti.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ṁ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īlasampadaṁ ārādheti.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So tāya sīlasampadāya na attānukkaṁseti, na paraṁ vambheti. So tāya sīla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ṁ āpajjat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이 수행자는 앞서 재물과 존경과 명성에도 만족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지런히 갖춘 계행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계행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기쁘긴 하되 아직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 않고,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도 않습니다. 그는 계행에 취해 게을러지는 대신 다시 부지런히 나아가 집중을 성취합니다. 좋은 성취일수록 거기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커지지만, 이 수행자는 매 단계에서 같은 물음을 되풀이합니다. 이것이 정말 마지막인가. 그 물음이 다음 걸음을 열어 줍니다.

묵상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오히려 더 배우고 나아갈 필요를 가리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의 만족스러운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다시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심재를 찾는 사람이 큰 나무를 만나 심재와 속재목과 나무껍질을 지나쳐 새순만 잘라 들고 심재라고 여긴다면, 눈 밝은 이는 그가 나무의 부분을 구별하지 못해 심재로 만들 일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 이를 거룩한 삶의 새순을 붙잡고 거기서 멈춘 수행자라 한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atikkamma phegguṁ atikkamma tacaṁ, papaṭikaṁ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Tamenaṁ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ṁ vadeyya: ‘na vatāyaṁ bhavaṁ puriso aññāsi sāraṁ, na aññāsi phegguṁ, na aññāsi tacaṁ, na aññāsi papaṭikaṁ,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ṁ. Tathā hayaṁ bhavaṁ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atikkamma phegguṁ atikkamma tacaṁ, papaṭikaṁ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ṁ tañcassa atthaṁ nānubhavissatī’ti. …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papaṭikaṁ aggahesi brahmacariyassa; tena ca vosānaṁ āpād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계행은 나무의 새순에 비유됩니다. 가지와 잎이라는 명예보다 목적에 가까운 중요한 진전이지만 아직 심재는 아닙니다. 눈 밝은 사람은 새순을 가져가 심재라고 여기는 사람이 나무의 부분을 구별하지 못해 목적한 일을 이루지 못한다고 봅니다. 수행자도 괴로움을 끝내려던 첫 뜻과 명예를 넘어 계행을 얻었더라도, 계행에 취해 거기서 멈추면 거룩한 삶의 심재에는 닿지 못합니다.

묵상

이전보다 분명히 나아졌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여기지는 않나요? 중요한 진전은 충분히 기뻐하되 아직 더 깊이 살펴야 할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을 함께 지닐 수 있을까요?

부지런한 이는 집중을 성취한다. 그가 집중에 만족하여 모두 이루었다고 여기고 자신을 높이며 남을 낮추어 말한다. ‘나는 마음이 집중되고 하나로 모였지만 다른 수행자들은 집중되지 않아 마음이 흩어져 있다.’ 그는 집중에 취해 게을러지고 괴롭게 머문다.

Appamatto samāno samādhisampadaṁ ārādheti.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ānukkaṁseti, paraṁ vambheti: ‘ahamasmi samāhito ekaggacitto, ime panaññe bhikkhū asamāhitā vibbhantacittā’ti. So tāya samādhisampadāya majjati pamajjati pamādaṁ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ṁ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다음 수행자는 괴로움을 끝내려 길을 나서 명예와 계행을 차례로 얻지만, 어느 것에도 취하지 않고 계속 부지런히 나아가 집중을 성취합니다. 그러나 깊고 하나 된 마음도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는 근거가 되면 또 하나의 정거장이 됩니다. 집중이 아무리 평온하고 뛰어나 보여도 그것을 소유한 나를 세우는 순간 게으름이 생깁니다. 그렇게 머문다면 집을 떠날 때 품었던 괴로움 전체를 끝내려던 목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묵상

고요하거나 집중이 잘된 경험을 특별하고 뛰어난 나의 증거로 붙들고 있지는 않나요? 좋은 마음 상태를 편안히 누리면서도 그것이 오고 가는 조건임을 알고 다음 이해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심재를 찾는 사람이 큰 나무를 만나 심재와 속재목을 지나쳐 나무껍질만 잘라 들고 심재라고 여긴다면, 눈 밝은 이는 그가 나무의 부분을 구별하지 못해 심재로 만들 일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 이를 거룩한 삶의 나무껍질을 붙잡고 거기서 멈춘 수행자라 한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atikkamma phegguṁ tacaṁ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Tamenaṁ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ṁ vadeyya ‘na vatāyaṁ bhavaṁ puriso aññāsi sāraṁ, na aññāsi phegguṁ, na aññāsi tacaṁ, na aññāsi papaṭikaṁ,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ṁ. Tathā hayaṁ bhavaṁ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atikkamma phegguṁ tacaṁ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ṁ tañcassa atthaṁ nānubhavissatī’ti. …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tacaṁ aggahesi brahmacariyassa; tena ca vosānaṁ āpād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집중은 나무껍질에 비유됩니다. 비유의 단계에서는 새순보다 심재에 더 가깝고 단단하지만 여전히 심재는 아닙니다. 집중에 취한 수행자는 깊은 고요를 얻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며, 더 나아갈 필요가 없다고 여겨 게을러집니다. 눈 밝은 사람이 나무껍질과 심재를 구별하듯, 수행자는 평온한 집중과 흔들리지 않는 풀려남을 구별해야 합니다. 단계가 깊어질수록 멈춤이 더 그럴듯해지므로 처음 목적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묵상

겉으로도 아주 깊어 보이는 성취라서 더 이상 진지하게 질문하지 않게 된 것은 없나요? 지금의 고요와 능력이 괴로움을 완전히 끝냈는지, 처음 목적에 비추어 다시 살펴볼 수 있을까요?

3 앎도 마지막은 아니다 2구절

집중 뒤에 얻은 앎과 봄마저 자만의 근거가 되면 속재목에 머무는 과정

그는 집중에 만족하나 아직 다 이루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는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남을 낮추지도 않는다. 그는 집중의 성취에 취해 게을러지지 않고 부지런히 앎과 봄을 성취한다. 그가 그 앎과 봄에 만족하여 모두 이루었다고 여기고 자신을 높이며 남을 낮추어 말한다. ‘나는 알고 보며 머물지만 다른 수행자들은 알지도 보지도 못하며 머문다.’ 그는 앎과 봄에 취해 게을러지고 괴롭게 머문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attānukkaṁseti, na paraṁ vambheti.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ṁ āpajjati appamatto samāno ñāṇadassanaṁ ārādheti.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ānukkaṁseti, paraṁ vambheti: ‘ahamasmi jānaṁ passaṁ viharāmi. Ime panaññe bhikkhū ajānaṁ apassaṁ viharantī’ti. So tena ñāṇadassanena majjati pamajjati pamādaṁ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ṁ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어떤 수행자는 처음 집을 떠난 뜻을 잊지 않고 명예와 계행과 집중을 차례로 얻으면서도 그 어느 것에도 취하지 않습니다. 집중에서도 게을러지지 않고 부지런히 나아가 마침내 앎과 봄을 성취합니다. 그러나 통찰조차 비교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알고 남은 모른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앎이 모름을 끝내지 못하고 자만을 비추는 조명이 되고 맙니다. 무엇을 보았는지만큼 그 앎이 집착을 실제로 끝냈는지가 중요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깊이 이해한 뒤 아직 이해하지 못한 사람을 답답하게 여기거나 낮춘 적이 있나요? 참된 앎이라면 우월감보다 따뜻한 연민과 자유를 키워야 하지 않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을까요?

심재를 찾는 사람이 큰 나무를 만나 심재를 지나쳐 속재목만 잘라 들고 심재라고 여긴다면, 눈 밝은 이는 그가 나무의 부분을 구별하지 못해 심재로 만들 일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 이를 거룩한 삶의 속재목을 붙잡고 거기서 멈춘 수행자라 한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phegguṁ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Tamenaṁ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ṁ vadeyya: ‘na vatāyaṁ bhavaṁ puriso aññāsi sāraṁ na aññāsi phegguṁ na aññāsi tacaṁ na aññāsi papaṭikaṁ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ṁ. Tathā hayaṁ bhavaṁ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phegguṁ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ṁ tañcassa atthaṁ nānubhavissatī’ti. …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phegguṁ aggahesi brahmacariyassa; tena ca vosānaṁ āpād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앎과 봄은 심재 바로 바깥의 속재목에 비유됩니다. 가장 깊은 성취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앎에 만족해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는 수행자는 속재목을 심재라고 여기는 사람처럼 거기서 멈춥니다. 계행과 집중을 지나 분명한 통찰을 얻었다는 사실도 집착이 완전히 끝났음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거의 다 왔다는 느낌이 마지막 자만과 붙잡음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으므로, 앎이 실제로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묵상

가장 깊고 흔들림 없이 확실해 보이는 이해를 마지막 진리라고 붙들고 있지는 않나요? 그 앎이 자만과 집착을 남기는지, 아니면 정말로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 주는지 결과로 다시 확인할 수 있을까요?

4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자유 3구절

모든 중간 성취를 지나 심재인 되돌릴 수 없는 풀려남에 이르는 완성

그는 앎과 봄에 만족하나 아직 다 이루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는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남을 낮추지도 않는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So tena ñāṇadassanena na attānukkaṁseti, na paraṁ vambhet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재물과 명성에서, 계행에서, 집중에서 만족해 멈추는 수행자들이 있을 수 있고, 앎과 봄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 이 수행자는 분명한 앎과 봄을 얻고 기뻐하면서도 그것으로 다 이루었다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을 높이지도 남을 낮추지도 않습니다. 가장 깊고 확실해 보이는 성취조차 마지막 정거장으로 삼지 않을 때, 비로소 그 너머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묵상

가장 확신에 찬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다시 한번 물어야 할 때는 아닐까요? 분명히 안다고 느껴질 때조차 아직 더 나아갈 여지가 남아 있는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다시 물어볼 수 있을까요?

그는 앎과 봄에 취해 게을러지지 않고 부지런히 되돌릴 수 없는 풀려남을 성취한다. 그 수행자가 그 풀려남에서 물러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심재를 찾는 사람이 심재가 든 큰 나무를 만나 심재만을 잘라 들고 그것이 심재임을 안다고 하자. 눈 밝은 이는 그가 나무의 모든 부분을 구별하여 심재만을 제대로 가져갔다고 말할 것이며, 그는 심재로 만들려던 일을 이룰 것이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ṁ āpajjati, appamatto samāno asamayavimokkhaṁ ārādheti. Aṭṭhānametaṁ, bhikkhave, anavakāso yaṁ so bhikkhu tāya asamayavimuttiyā parihāyetha.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sāraññeva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jānamāno. Tamenaṁ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ṁ vadeyya: ‘aññāsi vatāyaṁ bhavaṁ puriso sāraṁ, aññāsi phegguṁ, aññāsi tacaṁ, aññāsi papaṭikaṁ, aññāsi sākhāpalāsaṁ. Tathā hayaṁ bhavaṁ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sāraññeva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jānamāno.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ṁ tañcassa atthaṁ anubhaviss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마지막 수행자는 괴로움을 끝내려던 첫 뜻을 지키며 명예와 계행과 집중과 앎을 차례로 얻되 어느 것에도 취하지 않습니다. 앎과 봄에서도 게을러지지 않고 부지런히 나아가 되돌릴 수 없는 풀려남을 이룹니다. 이번에는 나무의 부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심재만 가져가 목적한 일을 이룹니다. 중간 성취마다 제 위치에 놓고 끝까지 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풀려남은 비교와 자만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자유입니다.

묵상

과정에서 얻은 소중하고 좋은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최종 목적과 혼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칭찬과 성취가 모두 흔들려도 물러나지 않는 마음의 자유는 지금 내게 어떤 의미인가요?

수행자들이여, 이 거룩한 삶은 재물과 존경과 명성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며, 계행의 성취나 집중의 성취나 앎과 봄을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풀려남, 이것이 거룩한 삶의 목적이며 이것이 심재이고 마지막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수행자들은 기뻐하며 그 말씀을 받아들였다.

Iti kho, bhikkhave, nayidaṁ brahmacariyaṁ lābhasakkārasilokānisaṁsaṁ, na sīlasampadānisaṁsaṁ, na samādhisampadānisaṁsaṁ, na ñāṇadassanānisaṁsaṁ. Yā ca kho ayaṁ, bhikkhave, akuppā cetovimutti—etadatthamidaṁ, bhikkhave, brahmacariyaṁ, etaṁ sāraṁ etaṁ pariyosānan”ti.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맛지마 니까야 MN 29 마하사로빠마 숫따 (나무 속심의 비유에 관한 긴 이야기)

배경

심재의 비유가 마지막 선언으로 정리됩니다. 앞의 성공한 수행자는 괴로움을 끝내려던 뜻에서 출발해 명예와 계행과 집중과 앎을 얻으면서도 어느 단계에도 취하지 않았고, 마침내 되돌릴 수 없는 풀려남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은 재물과 존경과 명성, 계행과 집중, 앎과 봄 어느 것도 거룩한 삶의 최종 목적은 아니라고 밝히십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풀려남만이 심재이자 마지막이며, 수행자들은 이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묵상

내가 지금 걷는 길의 최종 목적을 가장 정직한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무엇인가요? 남에게 보이는 성취가 모두 사라져도 남는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향해 가고 있는지 조용히 확인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