랏타빨라 숫따

Raṭṭhapāl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82

모든 조건을 갖춘 젊은 랏타빨라가 세상의 네 가지 진실을 보고 출가한 이야기.

인용된 가르침 55구절

이 경을 5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부족함 없이도 떠나다 14구절

가르침을 듣고 출가를 결심해 부모의 허락을 받고 완성에 이르는 과정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많은 수행자들과 함께 꾸루족의 땅을 유행하시다가 툴라꼿티까라는 꾸루족의 마을에 이르셨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kurūsu cārikaṁ caramāno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thullakoṭṭhikaṁ nāma kurūnaṁ nigamo tadavasar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맛지마 니까야 82번째 경, 랏타빨라경의 첫머리입니다. 부처님께서 많은 수행자들과 함께 꾸루족의 땅을 유행하시다가 툴라꼿티까라는 마을에 이르신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랏타빨라라는 청년이 부처님을 만나면서 경 전체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첫 구절은 부처님 곁에서 직접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한다는 뜻으로, 초기 경전들이 한결같이 이 말로 시작합니다.

묵상

낯선 마을에 이르는 짧은 여행의 문장 하나에서 시작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꾸는 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지금 내가 보내는 평범한 하루도 돌아보면 훗날 어떤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기억될지 알 수 없지 않을까요?

툴라꼿티까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과 집안의 가장들은 이런 소식을 들었다. “석가족의 아들로 석가 가문에서 집을 떠난 수행자 고따마가 마을에 이르렀다. 그 고따마 님에게는 이런 훌륭한 명성이 따른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 지혜와 실천을 갖추신 분, 잘 가신 분, 세상을 아시는 분, 위없는 분, 사람을 길들이는 분, 신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부처님이시다. 그분은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은 가르침을 펴시고, 온전하고 깨끗한 거룩한 삶을 밝히신다.’ 그런 분을 뵙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Assosuṁ kho thullakoṭṭhikā brāhmaṇagahapatikā: “samaṇo khalu, bho, gotamo sakyaputto sakyakulā pabbajito kurūsu cārikaṁ caramāno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thullakoṭṭhikaṁ anuppatto. Taṁ kho pana bhavantaṁ gotamaṁ evaṁ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itipi s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ti. So imaṁ lokaṁ sadevakaṁ samārakaṁ sabrahmakaṁ sassamaṇabrāhmaṇiṁ pajaṁ sadevamanussa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So dhammaṁ deseti ādikalyāṇaṁ majjhekalyāṇaṁ pariyosānakalyāṇaṁ sātthaṁ sabyañjanaṁ, kevalaparipuṇṇaṁ parisuddhaṁ brahmacariyaṁ pakāseti. Sādhu kho pana tathārūpānaṁ arahataṁ dassanaṁ h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마을 사람들이 부처님께서 마을에 이르셨다는 소식과 함께, 그분에 대해 떠도는 명성을 그대로 전해 듣습니다.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으로 시작하는 이 구절은 여러 경전에서 그대로 되풀이되는 말로, 부처님을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그분이 어떤 분인지 소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은 소문만으로도 “그런 분을 뵙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라며 마을을 나섭니다. 아직 랏타빨라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 소문이 곧 그의 삶을 바꿀 계기가 됩니다.

묵상

직접 만나기도 전에,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마음이 크게 움직인 적이 있나요? 그렇게 소문으로 품었던 기대와 실제로 마주했을 때 느낀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떠올려 보세요.

그들은 부처님께 다가갔다. 어떤 이는 절하고 한쪽에 앉았고, 어떤 이는 인사를 나눈 뒤 앉았으며, 어떤 이는 합장하고 한쪽에 앉았다. 어떤 이는 이름과 가문을 알리고 앉았고, 어떤 이는 말없이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앉아 있는 그들을 가르침의 이야기로 보여 주고 받아들이게 하며 북돋우고 기쁘게 하셨다.

Atha kho thullakoṭṭhikā brāhmaṇagahapatik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appekacce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bhagavatā saddhiṁ sammodiṁsu,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yena bhagavā tenañjaliṁ paṇām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bhagavato santike nāmagottaṁ sāv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tuṇhībhūtā ekamantaṁ nisīdiṁsu. Ekamantaṁ nisinne kho thullakoṭṭhike brāhmaṇagahapatike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ṁses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마을 사람들이 부처님을 찾아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인사하고 자리를 잡는 장면입니다. 절하는 이, 인사말을 건네는 이, 합장하는 이, 이름을 밝히는 이, 그저 조용히 앉는 이까지 다섯 가지 태도를 나란히 보여 주는데, 이는 초기 경전에서 대중이 모이는 장면에 흔히 쓰이는 표현입니다. 사람마다 다가서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모두를 하나의 가르침으로 아우르셨습니다.

묵상

같은 자리에 있어도 사람마다 다가서는 방식은 저마다 다릅니다. 절하는 사람, 말을 건네는 사람, 그저 조용히 앉는 사람 가운데, 낯선 자리에서 나는 주로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되나요?

그때 툴라꼿티까에서 으뜸가는 집안의 아들 랏타빨라도 그 모임에 앉아 있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내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을 이해한 바로는, 집에 살면서 닦고 윤낸 소라처럼 한결같이 완전하고 깨끗한 거룩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든 옷을 입어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면 어떨까?’

Tena kho pana samayena raṭṭhapālo nāma kulaputto tasmiṁyeva thullakoṭṭhike aggakulassa putto tissaṁ parisāyaṁ nisinno hoti. Atha kho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etadahosi: “yathā yathā khvāhaṁ bhagavatā dhammaṁ desitaṁ ājānāmi, nayidaṁ sukaraṁ agāraṁ ajjhāvasatā ekantaparipuṇṇaṁ ekantaparisuddhaṁ saṅkhalikhitaṁ brahmacariyaṁ carituṁ. Yannūnāhaṁ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eyyan”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이 경의 주인공 랏타빨라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마을에서 으뜸가는 집안의 아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스스로 든 생각 때문에 집을 떠나는 것을 떠올립니다. “닦고 윤낸 소라처럼 한결같이 완전하고 깨끗한 거룩한 삶”이라는 표현은 집에 살면서 지키기 어려운 삶의 기준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후 이어지는 모든 이야기가 바로 이 한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묵상

무언가 부족하거나 힘들어서가 아니라, 더 온전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방향을 바꾸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런 마음은 대개 어디에서, 어떤 계기로 조용히 시작되어 자라나던가요?

마을 사람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랏타빨라는 부처님께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앉아 말씀드렸다. “부처님, 제가 이해한 가르침으로는 집에 살면서 온전하고 깨끗한 거룩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든 옷을 입어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부처님 앞에서 집을 떠나 정식으로 수행자가 되는 의식을 치르고 싶습니다.”

Atha kho thullakoṭṭhikā brāhmaṇagahapatikā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ā samādapitā samuttejitā sampahaṁsitā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pakkamiṁsu. Atha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acirapakkantesu thullakoṭṭhikesu brāhmaṇagahapatikesu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yathā yathāhaṁ, bhante, bhagavatā dhammaṁ desitaṁ ājānāmi, nayidaṁ sukaraṁ agāraṁ ajjhāvasatā ekantaparipuṇṇaṁ ekantaparisuddhaṁ saṅkhalikhitaṁ brahmacariyaṁ carituṁ. Icchāmahaṁ, bhante,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uṁ. Labheyyāhaṁ, bhante, bhagavato santike pabbajjaṁ, labheyyaṁ upasampadaṁ. Pabbājetu maṁ bhagavā”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마을 사람들이 돌아간 뒤, 랏타빨라가 홀로 남아 부처님께 직접 집을 떠나겠다고 청하는 장면입니다. 앞서 속으로만 품었던 생각을 이제 말로 옮깁니다. 함께 청한 것은 정식으로 수행자 공동체(상가)의 일원이 되는 의식까지 받는 것이었습니다. 랏타빨라는 누구의 권유도 없이 스스로 다가가 청했습니다. 오래 마음에 품어 온 결심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앞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던 속마음을, 그들이 떠난 뒤에야 부처님께 조용히 밝힙니다.

묵상

마음속으로만 정리해 둔 결심을 소리 내어 말해 본 적이 있나요? 누구의 권유도 없이 스스로 다가가 말로 꺼내는 순간, 그 결심은 나에게 어떤 무게로 다르게 다가오던가요? 지금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같은 말을 같은 방식으로 꺼내겠나요?

“랏타빨라여, 부모에게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받았는가?” “아닙니다, 부처님.” “랏타빨라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자식을 집을 떠나게 하지 않는다.” “부처님, 부모가 허락하도록 하겠습니다.”

“Anuññātosi pana tvaṁ, raṭṭhapāla, mātāpitūh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Na khohaṁ, bhante, anuññāto mātāpitūh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Na kho, raṭṭhapāla, tathāgatā ananuññātaṁ mātāpitūhi puttaṁ pabbājentī”ti. “Svāhaṁ, bhante, tathā karissāmi yathā maṁ mātāpitaro anujānissan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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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겠다고 청한 랏타빨라에게 부처님께서 가장 먼저 확인하신 것은 부모의 허락입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자식을 집을 떠나게 하지 않는다”는 이 원칙은 수행자 공동체(상가) 전체가 지켜 온 규율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랏타빨라의 결심을 존중하면서도 부모와의 관계를 함부로 끊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 짧은 문답이 앞으로 이어질 부모와의 긴 갈등의 출발점이 됩니다.

묵상

혼자 내린 결심이라도 주변 사람의 동의를 먼저 구해야 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 절차가 번거롭게만 느껴졌나요, 아니면 서로의 관계를 지키는 데 오히려 필요한 시간으로 느껴졌나요? 그 절차를 건너뛰었다면 관계는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랏타빨라는 부모에게 가서 말하였다. “어머니, 아버지, 집에 살면서 온전하고 깨끗한 거룩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집을 떠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부모가 대답하였다. “사랑하는 랏타빨라야, 너는 우리의 외아들이며 사랑스럽고 귀하다. 죽음으로도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살아 있는 너를 어찌 집을 떠나게 하겠는가?” 랏타빨라는 두 번, 세 번을 거듭 청했으나 부모는 세 번 다 똑같이 대답하였다.

Atha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yena mātāpitar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mātāpitaro etadavoca: “ammatātā, yathā yathāhaṁ bhagavatā dhammaṁ desitaṁ ājānāmi, nayidaṁ sukaraṁ agāraṁ ajjhāvasatā ekantaparipuṇṇaṁ ekantaparisuddhaṁ saṅkhalikhitaṁ brahmacariyaṁ carituṁ. Icchāmahaṁ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uṁ. Anujānātha ma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Evaṁ vutte,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mātāpitaro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etadavocuṁ: “tvaṁ khosi, tāta raṭṭhapāla, amhākaṁ ekaputtako piyo manāpo sukhedhito sukhaparibhato. Na tvaṁ, tāta raṭṭhapāla, kassaci dukkhassa jānāsi. (…) Maraṇenapi te mayaṁ akāmakā vinā bhavissāma. Kiṁ pana mayaṁ taṁ jīvantaṁ anujānissām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Dutiyampi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pe… tatiyampi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mātāpitaro etadavoca: “ammatātā, yathā yathāhaṁ bhagavatā dhammaṁ desitaṁ ājānāmi, nayidaṁ sukaraṁ agāraṁ ajjhāvasatā ekantaparipuṇṇaṁ ekantaparisuddhaṁ saṅkhalikhitaṁ brahmacariyaṁ carituṁ. Icchāmahaṁ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uṁ. Anujānātha ma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Tatiyampi kho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mātāpitaro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etadavocuṁ: “tvaṁ khosi, tāta raṭṭhapāla, amhākaṁ ekaputtako piyo manāpo sukhedhito sukhaparibhato. Na tvaṁ, tāta raṭṭhapāla, kassaci dukkhassa jānāsi. Maraṇenapi te mayaṁ akāmakā vinā bhavissāma. Kiṁ pana mayaṁ taṁ jīvantaṁ anujānissām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랏타빨라가 부모에게 처음으로 집을 떠나겠다고 청하고, 세 번 거듭 청했지만 세 번 다 같은 대답을 들은 장면입니다. 부모는 그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외아들이며 사랑스럽고 귀하다”는 이유로, 죽음으로도 원치 않는 이별을 살아서 스스로 만들 수는 없다며 거절합니다. 세 번 거듭 청하고 세 번 다 같은 대답을 들었습니다. 랏타빨라의 뜻은 그만큼 굳었고, 부모의 거절도 그만큼 단단했습니다.

묵상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의 뜻을 막아선 적이 있나요? 그때 사랑과 두려움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면, 지금 돌아볼 때 그 마음을 어떻게 풀어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지금이라면 그 두려움에 다른 방식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나요?

랏타빨라는 ‘부모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 자리의 맨땅에 누워 말하였다. “나는 바로 여기서 죽거나 집을 떠날 것이다.” 그는 한 끼도 먹지 않았고, 두 끼도, 세 끼도, 네 끼도, 다섯 끼도, 여섯 끼도, 일곱 끼도 먹지 않았다.

Atha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na maṁ mātāpitaro anujānan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tattheva anantarahitāya bhūmiyā nipajji: “idheva me maraṇaṁ bhavissati pabbajjā vā”ti. Atha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ekampi bhattaṁ na bhuñji, dvepi bhattāni na bhuñji, tīṇipi bhattāni na bhuñji, cattāripi bhattāni na bhuñji, pañcapi bhattāni na bhuñji, chapi bhattāni na bhuñji, sattapi bhattāni na bhuñj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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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청해도 소용없자 랏타빨라는 단식을 택했습니다. 그는 부모를 원망하거나 집을 뛰쳐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이레 동안 먹기를 그쳤습니다. 이는 자신의 뜻이 얼마나 확고한지를 몸으로 보여 주는 행동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 장면에서 부모는 이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태도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묵상

말로는 다 전해지지 않던 마음을, 결국 몸으로 보여 줄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때의 나를 가만히 떠올려 보세요. 지금 돌아보면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부모는 맨땅에 누운 랏타빨라에게 말하였다. “사랑하는 랏타빨라야, 너는 우리의 외아들이며 사랑스럽고 귀하다. 일어나 먹고 마시며 즐겨라.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고 공덕을 지으며 기쁘게 살아라. 우리는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랏타빨라는 말없이 있었다. 부모는 두 번, 세 번을 거듭 말하였으나 그는 세 번 다 말없이 있었다. 부모는 그의 벗들에게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였다.

Atha kho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mātāpitaro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etadavocuṁ: “tvaṁ khosi, tāta raṭṭhapāla, amhākaṁ ekaputtako piyo manāpo sukhedhito sukhaparibhato. Na tvaṁ, tāta raṭṭhapāla, kassaci, dukkhassa jānāsi. Maraṇenapi te mayaṁ akāmakā vinā bhavissāma. Kiṁ pana mayaṁ taṁ jīvantaṁ anujānissām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Uṭṭhehi, tāta raṭṭhapāla, bhuñja ca piva ca paricārehi ca; bhuñjanto pivanto paricārento kāme paribhuñjanto puññāni karonto abhiramassu. Na taṁ mayaṁ anujānām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Maraṇenapi te mayaṁ akāmakā vinā bhavissāma. Kiṁ pana mayaṁ taṁ jīvantaṁ anujānissām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Evaṁ vutte, raṭṭhapālo kulaputto tuṇhī ahosi. Dutiyampi kho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mātāpitaro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etadavocuṁ …pe… dutiyampi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tuṇhī ahosi. Tatiyampi kho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mātāpitaro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etadavocuṁ: “tvaṁ khosi, tāta raṭṭhapāla, amhākaṁ ekaputtako piyo manāpo sukhedhito sukhaparibhato. Na tvaṁ, tāta raṭṭhapāla, kassaci dukkhassa jānāsi. Maraṇenapi te mayaṁ akāmakā vinā bhavissāma, kiṁ pana mayaṁ taṁ jīvantaṁ anujānissām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Uṭṭhehi, tāta raṭṭhapāla, bhuñja ca piva ca paricārehi ca; bhuñjanto pivanto paricārento kāme paribhuñjanto puññāni karonto abhiramassu. Na taṁ mayaṁ anujānām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Maraṇenapi te mayaṁ akāmakā vinā bhavissāma. Kiṁ pana mayaṁ taṁ jīvantaṁ anujānissām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단식하는 아들 앞에서 부모가 세 번 거듭 타이르지만, 랏타빨라는 세 번 다 침묵으로 답합니다. 침묵은 반항이 아니라 이미 말로 다 전한 뜻을 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로 읽힙니다. 부모 역시 더는 스스로 설득할 방법이 없다고 느끼자, 아들의 벗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부모와 아들 모두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이 팽팽한 상황이, 다음 장면에서 벗들이 나서는 계기가 됩니다.

묵상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침묵을 선택해 본 적이 있나요? 그 침묵이 이미 전한 뜻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때 나는 무엇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걸까요? 돌이켜 보면 그 선택은 옳았나요?

랏타빨라의 벗들이 찾아와 말하였다. “벗 랏타빨라야, 너는 부모님의 외아들이며 사랑스럽고 귀하다. 일어나 먹고 마시며 즐겨라.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고 공덕을 지으며 기쁘게 살아라. 부모님은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랏타빨라는 말없이 있었다. 벗들이 두 번, 세 번을 거듭 말하였으나 그는 세 번 다 말없이 있었다.

Tatiyampi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tuṇhī ahosi. Atha kho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sahāyakā yena raṭṭhapālo kulaputto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etadavocuṁ: “tvaṁ khosi, samma raṭṭhapāla, mātāpitūnaṁ ekaputtako piyo manāpo sukhedhito sukhaparibhato. Na tvaṁ, samma raṭṭhapāla, kassaci dukkhassa jānāsi. Maraṇenapi te mātāpitaro akāmakā vinā bhavissanti. Kiṁ pana te taṁ jīvantaṁ anujānissan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Uṭṭhehi, samma raṭṭhapāla, bhuñja ca piva ca paricārehi ca; bhuñjanto pivanto paricārento kāme paribhuñjanto puññāni karonto abhiramassu. Na taṁ mātāpitaro anujānissan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Maraṇenapi te mātāpitaro akāmakā vinā bhavissanti. Kiṁ pana te taṁ jīvantaṁ anujānissan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Evaṁ vutte, raṭṭhapālo kulaputto tuṇhī ahosi. Dutiyampi kho … tatiyampi kho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sahāyakā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etadavocuṁ: “tvaṁ khosi, samma raṭṭhapāla, mātāpitūnaṁ ekaputtako piyo manāpo sukhedhito sukhaparibhato, na tvaṁ, samma raṭṭhapāla, kassaci dukkhassa jānāsi, maraṇenapi te mātāpitaro akāmakā vinā bhavissanti. Kiṁ pana te taṁ jīvantaṁ anujānissan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Uṭṭhehi, samma raṭṭhapāla, bhuñja ca piva ca paricārehi ca, bhuñjanto pivanto paricārento kāme paribhuñjanto puññāni karonto abhiramassu. Na taṁ mātāpitaro anujānissan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maraṇenapi te mātāpitaro akāmakā vinā bhavissanti. Kiṁ pana te taṁ jīvantaṁ anujānissan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Tatiyampi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tuṇhī ahos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부모에 이어 이번에는 랏타빨라의 벗들이 찾아와 같은 말로 세 번 거듭 설득합니다. 부모의 말과 벗들의 말이 거의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는 것은, 그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부모나 벗이나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랏타빨라의 대답 또한 똑같이 침묵이었습니다. 이 반복을 통해 그의 결심이 부모 앞에서만이 아니라 가까운 벗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음이 드러납니다.

묵상

가족뿐 아니라 가까운 벗들까지 나서서 말려도 끝내 바뀌지 않았던 내 마음이 있었나요? 그런 확신은 대체로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단단해지는지 떠올려 보세요. 그런 확신을 흔들림 없이 지켜 낸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벗들은 부모에게 가서 말하였다. “어머니, 아버지, 랏타빨라는 맨땅에 누워 ‘나는 바로 여기서 죽거나 집을 떠날 것이다’라고 합니다. 허락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을 것입니다. 허락하시면 집을 떠난 모습으로라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집을 떠난 생활을 즐기지 못한다면 달리 어디로 가겠습니까? 바로 이곳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부모가 말하였다. “허락하마. 다만 집을 떠난 뒤 부모를 찾아와야 한다.”

Atha kho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sahāyakā yena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mātāpitaro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mātāpitaro etadavocuṁ: “ammatātā, eso raṭṭhapālo kulaputto tattheva anantarahitāya bhūmiyā nipanno: ‘idheva me maraṇaṁ bhavissati pabbajjā vā’ti. Sace tumhe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nānujānissath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tattheva maraṇaṁ āgamissati. Sace pana tumhe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anujānissath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pabbajitampi naṁ dakkhissatha. Sace raṭṭhapālo kulaputto nābhiramissa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kā tassa aññā gati bhavissati? Idheva paccāgamissati. Anujānātha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ā”ti. “Anujānāma, tātā,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Pabbajitena ca pana mātāpitaro uddassetabbā”ti. Atha kho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sahāyakā yena raṭṭhapālo kulaputto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raṭṭhapālaṁ kulaputtaṁ etadavocuṁ: “uṭṭhehi, samma raṭṭhapāla, anuññātosi mātāpitūh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Pabbajitena ca pana te mātāpitaro uddassetabbā”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랏타빨라의 벗들이 이번에는 부모를 찾아가 설득하는 장면입니다. 벗들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허락하지 않으면 죽고, 허락하면 다시 볼 수 있다”는 현실적인 논리로 부모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특히 “즐기지 못한다면 바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은 부모에게 최악의 상황조차 되돌릴 수 있다는 안심을 줍니다. 마침내 부모는 “집을 떠난 뒤 부모를 찾아와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허락합니다. 이 조건은 훗날 랏타빨라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의 복선이 됩니다.

묵상

벼랑 끝에 선 사람을 설득할 때, 감정에 호소하는 말보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오히려 더 큰 힘이 되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나에게 어떤 존재였나요?

랏타빨라는 일어나 기력을 되찾은 뒤 부처님께 가서 말씀드렸다. “부처님, 부모에게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저를 집을 떠나게 해 주십시오.” 랏타빨라는 부처님 앞에서 집을 떠나 정식 수행자가 되었다. 그가 정식 수행자가 된 지 보름쯤 되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사왓티로 떠나셨다. 차례로 유행하여 사왓티에 이르러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다.

Atha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uṭṭhahitvā balaṁ gāh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anuññāto ahaṁ, bhante, mātāpitūh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jāya. Pabbājetu maṁ bhagavā”ti. Alattha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bhagavato santike pabbajjaṁ, alattha upasampadaṁ. Atha kho bhagavā acirūpasampanne āyasmante raṭṭhapāle aḍḍhamāsupasampanne thullakoṭṭhike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yena sāvatthi tena cārikaṁ pakkāmi. Anupubbena cārikaṁ caramāno yena sāvatthi tadavasari. Tatra sud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이레 동안의 단식 끝에 마침내 부모의 허락을 받아 낸 랏타빨라가, 다시 몸을 추스른 뒤 부처님 앞에서 집을 떠나 정식 수행자가 되는 장면입니다. 오랜 갈등 끝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경전은 이 순간을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정식 수행자가 된 지 보름 만에 부처님께서 사왓티로 떠나시고, 랏타빨라도 함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으로 옮겨 갑니다. 이제부터는 홀로 수행하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묵상

오래 원했던 일을 마침내 이루었을 때, 그 순간이 기대했던 만큼 극적이었나요, 아니면 뜻밖에 담담하게 지나갔나요? 그 담담함은 나에게 무엇을 말해 주었는지 돌아보세요. 담담함 뒤에 숨어 있던 감정은 무엇이었을지도 헤아려 보세요.

랏타빨라 님은 홀로 물러나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굳세게 머물렀다. 오래지 않아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그 위없는 목적, 거룩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분명히 알고 실현하여 머물렀다. 그는 분명히 알았다. “태어남은 다했고, 거룩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랏타빨라 님은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Atha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cirasseva—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nti, tadanuttaraṁ—brahmacariyapariyosāna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Aññataro kho panāyasmā raṭṭhapālo arahataṁ ahos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사왓티에 이른 뒤 랏타빨라가 홀로 수행하여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곧 더는 배울 것이 없는 완성에 이르는 장면입니다. “태어남은 다했고, 거룩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 구절은 초기 경전에서 완전히 깨달은 이의 자리를 증명할 때 되풀이되는 말입니다. 부모의 거절과 이레의 단식으로 시작된 그가 집을 떠난 일이, 여기서 하나의 완성을 이룹니다. 이제 그는 부모를 찾아갈 자격과 이유를 함께 갖추게 됩니다.

묵상

무엇을 이루었다고 스스로 분명히 아는 순간이 있었나요? 그것을 알아본 것은 다른 사람의 인정이었나요, 아니면 오직 나 자신만의 확신이었는지 가만히 떠올려 보세요. 그 앎은 지금까지도 흔들리지 않고 남아 있나요?

랏타빨라 님은 부처님께 가서 말씀드렸다. “부처님, 허락하신다면 부모를 찾아뵙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으로 랏타빨라의 마음을 살펴보셨다. 그가 수행을 버리고 낮은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임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랏타빨라여, 이제 그대가 때라고 여기는 대로 해라.”

Atha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bhagavantaṁ etadavoca: “icchāmahaṁ, bhante, mātāpitaro uddassetuṁ, sace maṁ bhagavā anujānātī”ti. Atha kho bhagavā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cetasā ceto paricca manasākāsi. Yathā bhagavā aññāsi: “abhabbo kho raṭṭhapālo kulaputto sikkhaṁ paccakkhāya hīnāyāvattitun”ti,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raṭṭhapālaṁ etadavoca: “yassadāni tvaṁ, raṭṭhapāla, kālaṁ maññasī”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가 된 랏타빨라가 부처님께 부모를 찾아뵙겠다고 청하는 장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곧바로 허락하지 않으시고, 먼저 그의 마음을 직접 살피셨습니다. 그가 다시 세속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임을 확인하신 뒤에야 “그대가 때라고 여기는 대로 해라”며 길을 열어 주십니다. 집을 떠날 때는 부모의 허락이 필요했던 그가, 이제는 스스로 때를 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앞선 갈등과 대비를 이룹니다.

묵상

누군가 나를 믿고 스스로 정하도록 맡겨 준 순간이 있었나요? 그 믿음은 나에게 자유로움으로 다가왔나요, 아니면 오히려 더 무거운 책임으로 다가왔는지 천천히 떠올려 보세요. 그 책임을 짊어지면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자라났나요?

2 옛집 문 앞에서 12구절

집 없는 사람이 되어 돌아온 아들과 그를 되돌리려는 가족의 만남

랏타빨라 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 거처를 정리하고 음식 그릇과 겉옷을 챙겨 툴라꼿티까로 떠났다. 차례로 유행하여 그곳에 이르러 꼬라뱌왕의 사슴 동산에 머물렀다. 아침에 옷을 입고 음식 그릇과 겉옷을 지닌 채 마을로 음식을 얻으러 들어가 집을 가리지 않고 돌다가 자기 아버지의 집에 이르렀다.

Atha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senāsanaṁ saṁsāmetvā pattacīvaramādāya yena thullakoṭṭhikaṁ tena cārikaṁ pakkāmi. Anupubbena cārikaṁ caramāno yena thullakoṭṭhiko tadavasari. Tatra sudaṁ āyasmā raṭṭhapālo thullakoṭṭhike viharati rañño korabyassa migacīre. Atha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thullakoṭṭhikaṁ piṇḍāya pāvisi. Thullakoṭṭhike sapadānaṁ piṇḍāya caramāno yena sakapitu nivesanaṁ tenupasaṅkam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가 된 랏타빨라가 마침내 고향 툴라꼿티까로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그는 곧장 부모의 집으로 가지 않고 왕이 관리하는 사슴 동산에 머물며, 다음 날 아침 여느 수행자와 다름없이 집을 가리지 않고 차례로 음식을 얻으러 다니다가 자연스럽게 자기 아버지의 집 앞에 이르게 됩니다. 오랜 갈등 끝에 집을 나섰던 그가 신분을 감추지 않은 채,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옛집 앞에 서는 순간입니다.

묵상

오래 떠나 있던 곳으로 돌아갈 때,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지금의 나로 서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었나요?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서 있었나요? 그 자리에서 나는 무엇으로 나 자신을 소개하고 싶었나요?

그때 아버지는 가운데 문간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멀리서 랏타빨라 님이 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저 삭발한 가짜 수행자들이 우리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집을 떠나게 했다.” 랏타빨라 님은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베풂도 정중한 거절도 받지 못하고 오직 욕설만 들었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itā majjhimāya dvārasālāya ullikhāpeti. Addasā kho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itā āyasmantaṁ raṭṭhapālaṁ dūratova āgacchantaṁ. Disvāna etadavoca: “imehi muṇḍakehi samaṇakehi amhākaṁ ekaputtako piyo manāpo pabbājito”ti. Atha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sakapitu nivesane neva dānaṁ alattha na paccakkhānaṁ; aññadatthu akkosameva alattha.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문 앞에 선 아들을 보고도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 채, 오히려 그를 집을 떠나게 한 이들을 원망하는 말을 내뱉습니다. 수행자에게는 응당 베풂을 하거나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예의였는데, 랏타빨라는 그마저도 받지 못하고 욕설만 들었습니다. 자기 집 문 앞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이 장면은, 그가 떠난 자리가 얼마나 완전히 지워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알아보지 못한 아버지의 슬픔이 오히려 낯선 이를 향한 원망으로 터져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묵상

누군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낯선 사람처럼 대할 때, 서운함보다 먼저 헤아려야 할 그 사람의 마음이 있었나요? 그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밝히고 싶었나요? 오해를 받으면서도 곧바로 해명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때 집안의 하녀가 전날 먹다 남은 죽을 버리려 하였다. 랏타빨라 님이 말하였다. “누이여, 버릴 것이라면 내 음식 그릇에 담아 주시오.” 하녀는 죽을 담다가 그의 손과 발과 목소리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말하였다. “마님, 도련님 랏타빨라가 돌아오셨습니다.” “네 말이 참이라면 너를 자유롭게 해 주겠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가서 말하였다. “여보, 우리 아들 랏타빨라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ñātidāsī ābhidosikaṁ kummāsaṁ chaḍḍetukāmā hoti. Atha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taṁ ñātidāsiṁ etadavoca: “sacetaṁ, bhagini, chaḍḍanīyadhammaṁ, idha me patte ākirā”ti. Atha kho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ñātidāsī taṁ ābhidosikaṁ kummāsaṁ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atte ākirantī hatthānañca pādānañca sarassa ca nimittaṁ aggahesi. Atha kho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ñātidāsī yenāyasmato raṭṭhapālassa māt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mātaraṁ etadavoca: “yaggheyye, jāneyyāsi: ‘ayyaputto raṭṭhapālo anuppatto’”ti. “Sace, je, saccaṁ bhaṇasi, adāsiṁ taṁ karomī”ti. Atha kho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mātā yen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it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itaraṁ etadavoca: “yagghe, gahapati, jāneyyāsi: ‘raṭṭhapālo kira kulaputto anuppatto’”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아버지도 알아보지 못한 아들을, 정작 알아본 것은 죽을 버리려던 하녀였습니다. 손과 발과 목소리라는 몸에 새겨진 것들이 신분이나 옷차림보다 먼저 그를 증명했습니다. “네 말이 참이라면 너를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에서, 아들의 귀환이 하녀에게는 뜻밖의 자유를 가져다줄 만큼 큰 사건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시작된 소식은 곧바로 아버지에게까지 전해집니다.

묵상

겉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어도 끝내 남아 있는, 그 사람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나의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요? 오래 곁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그것을 더 빨리 알아채던가요?

그때 랏타빨라 님은 담 아래에 기대어 전날 먹다 남은 죽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다가와 말하였다. “사랑하는 랏타빨라야, 어찌 이런 묵은 죽을 먹는가? 네 집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가장이여, 집 없는 우리에게 어디에 집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대의 집에 가서 음식도 거절도 없이 욕설만 들었다.” “오너라, 집으로 가자.” “그만두어라, 오늘 식사는 이미 마쳤다.” “그렇다면 내일 식사를 받아 다오.” 랏타빨라 님은 침묵으로 받아들였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raṭṭhapālo taṁ ābhidosikaṁ kummāsaṁ aññataraṁ kuṭṭamūlaṁ nissāya paribhuñjati. Atha kho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itā yenāyasmā raṭṭhapāl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ṁ raṭṭhapālaṁ etadavoca: “atthi nāma, tāta raṭṭhapāla, ābhidosikaṁ kummāsaṁ paribhuñjissasi? Nanu, tāta raṭṭhapāla, sakaṁ gehaṁ gantabban”ti? “Kuto no, gahapati, amhākaṁ geha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ānaṁ? Anagārā mayaṁ, gahapati. Agamamha kho te, gahapati, gehaṁ, tattha neva dānaṁ alatthamha na paccakkhānaṁ; aññadatthu akkosameva alatthamhā”ti. “Ehi, tāta raṭṭhapāla, gharaṁ gamissāmā”ti. “Alaṁ, gahapati, kataṁ me ajja bhattakiccaṁ”. “Tena hi, tāta raṭṭhapāla, adhivāsehi svātanāya bhattan”ti. Adhivāsesi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tuṇhībhāvena.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아들을 알아본 아버지가 담 아래에서 식은 죽을 먹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다가와 집으로 가자고 청하지만, 랏타빨라는 “우리에게 어디에 집이 있겠습니까”라며 자신이 더는 그 집의 아들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아버지는 낳고 기른 관계로 그를 부르고, 랏타빨라는 집을 떠난 사람으로서의 자리를 지킵니다. 그런데도 다음 날의 식사 초대는 침묵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는 거절도 완전한 수락도 아닌 여지를 남긴 응답입니다.

묵상

한때 나의 자리였던 곳을 이제는 그렇게 부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상대에게 어떻게 전했나요?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으면서도 선을 긋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완전한 거절도 수락도 아닌 여지를 남겨 둔 적이 있나요?

아버지는 랏타빨라가 초대를 받아들인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갔다. 금화와 금붙이를 큰 더미로 쌓아 자리를 덮어 가리고, 랏타빨라의 옛 아내들에게 말하였다. “며느리들아, 예전에 랏타빨라가 가장 좋아했던 모습으로 치장하여라.” 밤이 지나자 맛있는 씹을 것과 먹을 것을 마련하고 “시간이 되었다. 식사가 준비되었다”라고 알렸다.

Atha kho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itā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adhivāsanaṁ viditvā yena sakaṁ nivesan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mahantaṁ hiraññasuvaṇṇassa puñjaṁ kārāpetvā kilañjehi paṭicchādetvā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urāṇadutiyikā āmantesi: “etha tumhe, vadhuyo, yena alaṅkārena alaṅkatā pubbe raṭṭhapālassa kulaputtassa piyā hotha manāpā tena alaṅkārena alaṅkarothā”ti. Atha kho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itā tassā rattiyā accayena sake nivesane paṇītaṁ khādanīyaṁ bhojanīyaṁ paṭiyādāpetvā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kālaṁ ārocesi: “kālo, tāta raṭṭhapāla, niṭṭhitaṁ bhattan”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아들을 되돌리기 위한 아버지의 준비가 시작됩니다. 그는 큰 금더미를 마련해 감춰 두고, 랏타빨라의 옛 아내들에게 예전에 그가 좋아하던 모습으로 치장하라고 이릅니다. 재물과 옛 사랑, 두 가지를 함께 동원하는 이 준비는 그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준비가 얼마나 치밀했는지는 다음 장면에서 금 더미를 직접 열어 보이는 순간에 드러납니다.

묵상

누군가를 붙잡고 싶을 때 가장 좋았던 시절의 모습을 다시 꺼내 보인 적이 있나요? 그 마음은 상대를 향한 것이었나요, 지나간 시간을 향한 것이었나요? 그렇게 꺼낸 마음은 상대에게 그대로 전해졌나요?

랏타빨라 님은 아침에 옷을 입고 음식 그릇과 겉옷을 지닌 채 아버지 집으로 가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는 덮개를 벗겨 금 더미를 보이며 말하였다. “사랑하는 랏타빨라야, 이것은 어머니 쪽 재산이고, 아버지 쪽 재산과 할아버지에게서 온 재산도 따로 있다. 재물을 누리면서 공덕도 지을 수 있다. 낮은 삶으로 돌아와 재물을 누리고 공덕을 지어라.”

Atha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yena sakapitu nivesan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Atha kho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itā taṁ hiraññasuvaṇṇassa puñjaṁ vivarāpetvā āyasmantaṁ raṭṭhapālaṁ etadavoca: “idaṁ te, tāta raṭṭhapāla, mātu mattikaṁ dhanaṁ, aññaṁ pettikaṁ, aññaṁ pitāmahaṁ. Sakkā, tāta raṭṭhapāla, bhoge ca bhuñjituṁ puññāni ca kātuṁ. Ehi tvaṁ, tāta raṭṭhapāla, hīnāyāvattitvā bhoge ca bhuñjassu puññāni ca karohī”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약속대로 다음 날 아침 랏타빨라가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자, 아버지는 감춰 두었던 금 더미를 열어 보이며 재물의 규모를 하나하나 밝힙니다. 그는 “재물을 누리면서 공덕도 지을 수 있다”는 말로, 재물이 있어도 공덕을 지으며 살 수 있으니 떠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미리 준비해 와 있었습니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설득이 이 장면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어머니 쪽, 아버지 쪽, 할아버지 쪽 재산을 하나하나 짚는 대목에서 그 준비의 치밀함이 드러납니다.

묵상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인 적이 있나요? 그 정성이 상대에게는 어떻게 가닿았을지 헤아려 보세요. 정성을 다한 설득이 통하지 않았을 때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집주인이여, 내 말을 따른다면 이 금과 재물을 수레에 싣고 가 갠지스강 한가운데 빠뜨려라. 무엇 때문인가? 이것 때문에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Sace me tvaṁ, gahapati, vacanaṁ kareyyāsi, imaṁ hiraññasuvaṇṇassa puñjaṁ sakaṭe āropetvā nibbāhāpetvā majjhegaṅgāya nadiyā sote opilāpeyyāsi. Taṁ kissa hetu? Ye uppajjissanti hi te, gahapati, tatonidāna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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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정성껏 준비한 금 더미 앞에서 랏타빨라가 내놓은 답입니다. 그는 재물을 나누어 가지거나 거절하는 대신, 아예 강물에 던져 버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이 바로 그 재물에서 비롯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짧은 대답은 아버지의 오랜 준비에 대한 정면의 응답이자, 그가 왜 그 삶을 떠났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묵상

내가 애써 지키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나요? 그것을 놓아 버린다면 무엇이 가장 먼저 가벼워질 것 같나요? 그것을 붙들고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랏타빨라의 옛 아내들은 저마다 그의 발을 붙잡고 물었다. “도련님, 어떤 하늘 세계의 여인들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사십니까?” “누이들이여, 우리는 하늘 세계의 여인들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도련님 랏타빨라가 우리를 누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Atha kho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urāṇadutiyikā paccekaṁ pādesu gahetvā āyasmantaṁ raṭṭhapālaṁ etadavocuṁ: “kīdisā nāma tā, ayyaputta, accharāyo yāsaṁ tvaṁ hetu brahmacariyaṁ carasī”ti? “Na kho mayaṁ, bhaginī, accharānaṁ hetu brahmacariyaṁ carāmā”ti. “Bhaginivādena no ayyaputto raṭṭhapālo samudācaratī”ti tā tattheva mucchitā papatiṁsu.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치장하고 기다리던 옛 아내들이 랏타빨라의 발을 붙잡으며, 혹시 더 아름다운 하늘 세계의 여인을 얻으려 집을 떠난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담담했고, 무엇보다 그들을 “누이”라고 부른 그 한마디가 아내들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내라는 관계가 이제 그에게 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른 어떤 설명보다 그 호칭 하나가 분명히 전한 것입니다. 그가 옛 아내들을 미워하거나 밀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묵상

관계가 이미 달라졌다는 사실을, 긴 설명보다 짧은 말 한마디로 실감한 순간이 있었나요? 그 말은 누구에게 더 아프게 다가왔을까요? 호칭 하나가 관계를 이토록 정확히 밝혀 준다는 것이 놀랍지 않나요?

랏타빨라 님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집주인이여, 음식을 줄 것이라면 줘라. 우리를 괴롭히지 마라.” “먹어라, 랏타빨라야. 식사가 준비되었다.” 아버지는 손수 맛있는 씹을 것과 먹을 것을 내어 랏타빨라 님이 만족하도록 대접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손과 음식 그릇을 거둔 랏타빨라 님은 그 자리에 선 채 다음 게송을 읊었다.

Atha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pitaraṁ etadavoca: “sace, gahapati, bhojanaṁ dātabbaṁ, detha; mā no viheṭhethā”ti. “Bhuñja, tāta raṭṭhapāla, niṭṭhitaṁ bhattan”ti. Atha kho āyasmato raṭṭhapālassa pitā āyasmantaṁ raṭṭhapālaṁ paṇītena khādanīyena bhojanīyena sahatthā santappesi sampavāresi. Atha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bhuttāvī onītapattapāṇī ṭhitakova imā gāthā abhās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옛 아내들이 쓰러지는 소동 속에서도 랏타빨라는 감정을 높이지 않고, 그저 “음식을 줄 것이라면 줘라. 우리를 괴롭히지 마라”라고 담담히 청합니다. 아버지는 결국 손수 음식을 대접하고, 식사를 마친 랏타빨라는 자리에 선 채 게송을 읊기 시작합니다. 재물과 옛 정으로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마음이, 이제 직접 노래로 표현되는 대목으로 이어집니다. 소란 속에서도 그가 요청한 것은 오직 한 끼의 식사뿐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묵상

설득과 소동이 이어지는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야 할 것에만 집중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나를 붙들어 준 것은 무엇이었나요? 소란이 가라앉은 뒤에도 그 평정심은 그대로 남아 있었나요?

“보라, 꾸며 놓은 이 인형을. 상처투성이 몸을 쌓아 올렸고, 병들어 있으면서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 그 무엇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보라, 보석과 귀걸이로 꾸민 이 모습을. 뼈를 가죽으로 싸고 옷으로 아름답게 보이게 했을 뿐이다.”

“Passa cittīkataṁ bimbaṁ, arukāyaṁ samussitaṁ; Āturaṁ bahusaṅkappaṁ, yassa natthi dhuvaṁ ṭhiti. Passa cittīkataṁ rūpaṁ, maṇinā kuṇḍalena ca; Aṭṭhi tacena onaddhaṁ, saha vatthebhi sobh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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랏타빨라가 옛집 앞에서 읊은 노래의 첫 두 연입니다. 화려하게 치장한 몸을 “꾸며 놓은 인형”이라 부르며, 그 안이 실은 상처와 병으로 가득한 채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임을 노래합니다. 이어 보석과 귀걸이로 꾸민 모습 또한 결국 뼈를 가죽으로 감싸고 옷으로 가린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옛 아내들의 치장을 직접 겨냥한 말이라기보다, 몸을 꾸미는 모든 치장이 지닌 한계를 짚는 노래입니다.

묵상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과 그 안의 연약함을 함께 본 적이 있나요? 그 둘을 동시에 보면서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나요?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볼 때도 그렇게 두 가지를 함께 볼 수 있나요?

“붉게 칠한 발과 분을 바른 얼굴은 어리석은 이를 홀리기에는 충분하나 저 언덕을 찾는 이를 홀리지는 못한다. 여덟 갈래로 땋은 머리와 먹을 칠한 눈은 어리석은 이를 홀리기에는 충분하나 저 언덕을 찾는 이를 홀리지는 못한다.”

Alattakakatā pādā, mukhaṁ cuṇṇakamakkhitaṁ; Alaṁ bālassa mohāya, no ca pāragavesino. Aṭṭhāpadakatā kesā, nettā añjanamakkhitā; Alaṁ bālassa mohāya, no ca pāragaves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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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연에 이어 화장과 머리 장식을 구체적으로 짚는 대목입니다. “저 언덕을 찾는 이”란 마음을 흐리는 것들의 이쪽 언덕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수행자를 뜻하는 표현으로, 이 경전 곳곳에서 되풀이됩니다. 같은 구절이 두 번 반복되며 리듬을 이루는데, 어떤 치장으로도 닿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노래로 각인시킵니다.

묵상

누군가를 붙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을 위해 꾸미거나 가꾸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요? 같은 반복이 노래처럼 마음에 새겨질 때, 어떤 문장이 나에게 그렇게 남아 있나요?

“썩어 가는 몸을 새로 칠한 화장 상자처럼 꾸민 것은 어리석은 이를 홀리기에는 충분하나 저 언덕을 찾는 이를 홀리지는 못한다. 사냥꾼은 덫을 놓았으나 사슴은 덫을 밟지 않았다. 우리는 미끼를 먹고 떠나나니, 사냥꾼은 뒤에서 탄식한다.” 랏타빨라 님은 선 채로 이 노래를 읊고 꼬라뱌왕의 사슴 동산으로 가서 어느 나무 아래 앉아 낮 동안 명상하였다.

Añjanīva navā cittā, pūtikāyo alaṅkato; Alaṁ bālassa mohāya, no ca pāragavesino. Odahi migavo pāsaṁ, nāsadā vākaraṁ migo; Bhutvā nivāpaṁ gacchāma, kandante migabandhake”ti. Atha kho āyasmā raṭṭhapālo ṭhitakova imā gāthā bhāsitvā yena rañño korabyassa migacīr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aññatarasmiṁ rukkhamūle divāvihāraṁ nisī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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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마지막 연은 몸을 “새로 칠한 화장 상자”에 비유하며 앞선 노래를 마무리한 뒤, 사냥꾼과 사슴의 비유로 이어집니다. 사냥꾼이 놓은 덫을 사슴이 밟지 않고, 미끼만 먹고 유유히 떠나 사냥꾼이 뒤에서 탄식한다는 이 비유는 재물과 옛 정이라는 미끼 앞에서 랏타빨라 자신이 취한 태도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노래를 마친 그는 곧장 사슴 동산으로 돌아가 나무 아래 앉아 명상에 듭니다.

묵상

누군가 나를 붙잡으려 던진 미끼를, 그 마음은 받아들이되 미끼 자체는 밟지 않고 지나온 적이 있나요? 그 후 상대의 탄식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나요? 뒤에 남은 사람의 아쉬움까지 헤아릴 여유가 있었나요?

3 쇠퇴해서 떠난 것이 아니다 8구절

왕의 방문과 사람들이 출가하는 네 가지 쇠퇴, 랏타빨라에게 그것이 없었던 까닭

꼬라뱌왕은 사냥터지기에게 사슴 동산을 정돈하라고 명했다. 사냥터지기는 동산을 정돈하다 나무 아래 명상하는 랏타빨라를 보고 왕에게 알렸다. “폐하, 동산은 정돈되었습니다. 폐하께서 자주 칭찬하시던 이 마을 으뜸가는 집안의 아들 랏타빨라가 나무 아래 앉아 명상하고 있습니다.”

Atha kho rājā korabyo migavaṁ āmantesi: “sodhehi, samma migava, migacīraṁ uyyānabhūmiṁ; gacchāma subhūmiṁ dassanāyā”ti. “Evaṁ, devā”ti kho migavo rañño korabyassa paṭissutvā migacīraṁ sodhento addasa āyasmantaṁ raṭṭhapālaṁ aññatarasmiṁ rukkhamūle divāvihāraṁ nisinnaṁ. Disvāna yena rājā koraby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rājānaṁ korabyaṁ etadavoca: “suddhaṁ kho te, deva, migacīraṁ. Atthi cettha raṭṭhapālo nāma kulaputto imasmiṁyeva thullakoṭṭhike aggakulassa putto yassa tvaṁ abhiṇhaṁ kittayamāno ahosi, so aññatarasmiṁ rukkhamūle divāvihāraṁ nisinno”ti. “Tena hi, samma migava, alaṁ dānajja uyyānabhūmiyā. Tameva dāni mayaṁ bhavantaṁ raṭṭhapālaṁ payirupāsissām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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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동산을 다스리는 꼬라뱌왕이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왕은 사냥터지기에게 동산을 정돈하라고 명하는데, 정작 사냥터지기가 발견한 것은 그 자리에 나무 아래 앉아 명상하는 랏타빨라였습니다. “폐하께서 자주 칭찬하시던”이라는 말에서, 랏타빨라가 집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왕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이 우연한 발견이 왕과 랏타빨라의 긴 대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묵상

누군가 나를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뜻밖의 순간에 알게 된 적이 있나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조용히 지켜본 적이 있나요?

왕은 동산 구경을 그만두고 랏타빨라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준비한 음식을 모두 나누어 주게 하고 좋은 수레들을 갖추어 왕의 큰 위세를 드러내며 길을 나섰다. 수레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뒤 내려서 신하들과 걸어갔다.

Atha kho rājā korabyo “yaṁ tattha khādanīyaṁ bhojanīyaṁ paṭiyattaṁ taṁ sabbaṁ vissajjethā”ti vatvā bhadrāni bhadrāni yānāni yojāpetvā bhadraṁ yānaṁ abhiruhitvā bhadrehi bhadrehi yānehi thullakoṭṭhikamhā niyyāsi mahaccarājānubhāvena āyasmantaṁ raṭṭhapālaṁ dassanāya. Yāvatikā yānassa bhūmi yānena gantvā yānā paccorohitvā pattikova ussaṭāya ussaṭāya parisāya yenāyasmā raṭṭhapāl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tā raṭṭhapālena saddhiṁ sammodi.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rājā korabyo āyasmantaṁ raṭṭhapālaṁ etadavoca: “idha bhavaṁ raṭṭhapālo hatthatthare nisīdat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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랏타빨라의 소식을 들은 왕이 곧바로 그를 만나러 나서는 장면입니다. 본래 계획했던 동산 구경은 뒤로 미루고, 큰 위세를 갖추어 길을 나서지만 정작 랏타빨라 가까이에서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갑니다. 왕으로서의 격식과 한 수행자를 향한 예의가 함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준비한 음식을 모두 나누어 주게 했다는 구절에서도 이 만남을 대하는 왕의 태도가 예사롭지 않았음이 드러납니다.

묵상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낮추어 다가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어디까지 격식을 내려놓을 수 있나요?

인사를 나눈 왕이 말하였다. “랏타빨라 님, 이 코끼리 깔개에 앉으시오.” “그만두어라, 대왕이여. 그대가 앉아라. 나는 내 자리에 앉아 있다.” 왕은 마련된 자리에 앉아 말하였다. “랏타빨라 님, 사람들이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든 옷을 입어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네 가지 쇠퇴가 있소. 늙음의 쇠퇴, 질병의 쇠퇴, 재산의 쇠퇴, 친족의 쇠퇴이오.”

“Alaṁ, mahārāja, nisīda tvaṁ; nisinno ahaṁ sake āsane”ti. Nisīdi rājā korabyo paññatte āsane. Nisajja kho rājā korabyo āyasmantaṁ raṭṭhapālaṁ etadavoca: “Cattārimāni, bho raṭṭhapāla, pārijuññāni yehi pārijuññehi samannāgatā idhekacce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nti. Katamāni cattāri? Jarāpārijuññaṁ, byādhipārijuññaṁ, bhogapārijuññaṁ, ñātipārijuññ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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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자신의 화려한 자리를 권하지만 랏타빨라는 정중히 사양하고 이미 앉아 있던 자리를 지킵니다. 이 짧은 사양 속에서 그가 왕 앞에서도 위축되거나 격식에 맞추지 않는 사람임이 드러납니다. 이어 왕은 사람들이 집을 떠나는 데는 늙음, 질병, 재산, 친족이라는 네 가지 쇠퇴가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힙니다. 이 네 가지는 곧 랏타빨라에게 하나씩 던져지는 질문의 틀이 됩니다.

묵상

상대가 권하는 좋은 자리를 정중히 사양하고 내 자리를 지켜 본 적이 있나요? 그 선택은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나요? 사람이 크게 무너지는 이유를 나라면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늙음의 쇠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늙고 나이 들어 삶의 마지막에 이르렀다고 합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오. ‘재산을 더 얻기는 쉽지 않다. 집을 떠나면 어떨까?’ 이것을 늙음의 쇠퇴라 하오. 그러나 랏타빨라 님은 젊고 검은 머리이며 한창때이니 늙음의 쇠퇴가 없소. 무엇을 알고 보고 들어 집을 떠났소?”

Katamañca, bho raṭṭhapāla, jarāpārijuññaṁ? Idha, bho raṭṭhapāla, ekacco jiṇṇo hoti vuḍḍ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patto. So iti paṭisañcikkhati: ‘ahaṁ khomhi etarahi jiṇṇo vuḍḍ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patto. Na kho pana mayā sukaraṁ anadhigataṁ vā bhogaṁ adhigantuṁ adhigataṁ vā bhogaṁ phātiṁ kātuṁ. Yannūnāhaṁ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eyyan’ti. So tena jarāpārijuññena samannāgato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ti. Idaṁ vuccati, bho raṭṭhapāla, jarāpārijuññaṁ. Bhavaṁ kho pana raṭṭhapālo etarahi daharo yuvā susukāḷakeso bhadrena yobbanena samannāgato paṭhamena vayasā. Taṁ bhoto raṭṭhapālassa jarāpārijuññaṁ natthi. Kiṁ bhavaṁ raṭṭhapālo ñatvā vā disvā vā sutvā 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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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제시한 첫 번째 쇠퇴, 늙음에 대한 설명입니다. 나이 들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 사람이 이제 와 새로 재산을 늘리기도 어렵다고 판단해 집을 떠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왕은 곧바로 랏타빨라가 아직 젊고 한창때임을 짚으며, 그에게는 이 이유가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그가 대체 무엇 때문에 집을 떠났는지를 묻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묵상

더는 잃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잃을 것이 많은데도 방향을 바꾸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사람들은 나에게 무엇을 알고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물었나요? 나는 그 물음에 어떻게 답했나요?

“질병의 쇠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병들어 괴로워하고 몹시 아프다고 합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오. ‘재산을 더 얻기는 쉽지 않다. 집을 떠나면 어떨까?’ 이것을 질병의 쇠퇴라 하오. 그러나 랏타빨라 님은 병이 드물고 몸이 고르니 질병의 쇠퇴가 없소. 무엇을 알고 보고 들어 집을 떠났소?”

Katamañca, bho raṭṭhapāla, byādhipārijuññaṁ? Idha, bho raṭṭhapāla, ekacco ābādhiko hoti dukkhito bāḷhagilāno. So iti paṭisañcikkhati: ‘ahaṁ khomhi etarahi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Na kho pana mayā sukaraṁ anadhigataṁ vā bhogaṁ adhigantuṁ adhigataṁ vā bhogaṁ phātiṁ kātuṁ. Yannūnāhaṁ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eyyan’ti. So tena byādhipārijuññena samannāgato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ti. Idaṁ vuccati, bho raṭṭhapāla, byādhipārijuññaṁ. Bhavaṁ kho pana raṭṭhapālo etarahi appābādho appātaṅko samavepākiniyā gahaṇiyā samannāgato nātisītāya nāccuṇhāya. Taṁ bhoto raṭṭhapālassa byādhipārijuññaṁ natthi. Kiṁ bhavaṁ raṭṭhapālo ñatvā vā disvā vā sutvā 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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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쇠퇴인 질병에 대한 설명입니다. 몹시 아파 앞으로 재산을 더 얻기 어렵다고 느낀 사람이 집을 떠나는 길을 택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왕은 이번에도 랏타빨라가 병치레가 드물고 몸이 고르다는 사실을 짚으며, 이 이유 역시 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늙음에 이어 질병까지 하나씩 지워 가는 이 문답은, 랏타빨라가 집을 떠난 선택이 궁지에 몰려 나온 것이 아님을 차근차근 확인해 가는 과정입니다.

묵상

몸이 성할 때와 아플 때,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던가요? 아프지 않은데도 삶의 방향을 바꾸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건강할 때일수록 오히려 놓치기 쉬운 것은 무엇일까요?

“재산의 쇠퇴란 무엇인가? 부유하던 사람의 재산이 차츰 줄어든다고 합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오. ‘재산을 더 얻기는 쉽지 않다. 집을 떠나면 어떨까?’ 이것을 재산의 쇠퇴라 하오. 그러나 랏타빨라 님은 이 마을 으뜸가는 집안의 아들이니 재산의 쇠퇴가 없소. 무엇을 알고 보고 들어 집을 떠났소?”

Katamañca, bho raṭṭhapāla, bhogapārijuññaṁ? Idha, bho raṭṭhapāla, ekacco aḍḍho hoti mahaddhano mahābhogo. Tassa te bhogā anupubbena parikkhayaṁ gacchanti. So iti paṭisañcikkhati: ‘ahaṁ kho pubbe aḍḍho ahosiṁ mahaddhano mahābhogo. Tassa me te bhogā anupubbena parikkhayaṁ gatā. Na kho pana mayā sukaraṁ anadhigataṁ vā bhogaṁ adhigantuṁ adhigataṁ vā bhogaṁ phātiṁ kātuṁ. Yannūnāhaṁ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eyyan’ti. So tena bhogapārijuññena samannāgato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ti. Idaṁ vuccati, bho raṭṭhapāla, bhogapārijuññaṁ. Bhavaṁ kho pana raṭṭhapālo imasmiṁyeva thullakoṭṭhike aggakulassa putto. Taṁ bhoto raṭṭhapālassa bhogapārijuññaṁ natthi. Kiṁ bhavaṁ raṭṭhapālo ñatvā vā disvā vā sutvā 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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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쇠퇴인 재산에 대한 설명입니다. 한때 부유했던 사람이 재산을 차츰 잃어 가며 더는 늘리기 어렵다고 느껴 집을 떠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랏타빨라는 정반대로 마을에서 으뜸가는 집안의 아들이었으니, 이 이유 또한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늙음도 질병도 아니고, 궁핍조차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이 그를 떠나게 했는지 왕의 의문은 앞선 두 문답을 지나며 점점 더 깊어집니다.

묵상

가진 것이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가진 것이 넉넉한데도 무언가 다른 것을 찾아 나서 본 적이 있나요? 그때 주변 사람들은 나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나는 그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나요?

“친족의 쇠퇴란 무엇인가? 벗과 신하와 친척이 많던 사람에게 그 친족들이 차츰 줄어든다고 합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오. ‘재산을 더 얻기는 쉽지 않다. 집을 떠나면 어떨까?’ 이것을 친족의 쇠퇴라 하오. 그러나 랏타빨라 님에게는 이 마을에 벗과 신하와 친척이 많으니 친족의 쇠퇴가 없소. 무엇을 알고 보고 들어 집을 떠났소?”

Katamañca, bho raṭṭhapāla, ñātipārijuññaṁ? Idha, bho raṭṭhapāla, ekaccassa bahū honti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Tassa te ñātakā anupubbena parikkhayaṁ gacchanti. So iti paṭisañcikkhati: ‘mamaṁ kho pubbe bahū ahesuṁ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Tassa me te anupubbena parikkhayaṁ gatā. Na kho pana mayā sukaraṁ anadhigataṁ vā bhogaṁ adhigantuṁ adhigataṁ vā bhogaṁ phātiṁ kātuṁ. Yannūnāhaṁ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eyyan’ti. So tena ñātipārijuññena samannāgato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ti. Idaṁ vuccati, bho raṭṭhapāla, ñātipārijuññaṁ. Bhoto kho pana raṭṭhapālassa imasmiṁyeva thullakoṭṭhike bahū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Taṁ bhoto raṭṭhapālassa ñātipārijuññaṁ natthi. Kiṁ bhavaṁ raṭṭhapālo ñatvā vā disvā vā sutvā 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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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네 번째 쇠퇴인 친족에 대한 설명입니다. 곁에 있던 벗과 친척들이 하나둘 떠나가 외로워진 사람이 집을 떠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랏타빨라에게는 여전히 이 마을에 많은 벗과 친척이 있었으니, 이 이유마저도 그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늙음, 질병, 재산, 친족이라는 네 가지 쇠퇴를 모두 짚었지만 어느 것도 랏타빨라에게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제 분명해집니다.

묵상

곁에 사람이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곁에 사람이 많은데도 혼자만의 길을 걷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그런 선택을 외로움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나라면 그 물음에 뭐라고 답했을까요?

“이 네 가지 쇠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든 옷을 입어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지만, 그대에게는 그 네 가지가 하나도 없소. 그렇다면 무엇을 알고 보고 들어 집을 떠났소?”

Imāni kho, bho raṭṭhapāla, cattāri pārijuññāni, yehi pārijuññehi samannāgatā idhekacce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nti. Tāni bhoto raṭṭhapālassa natthi. Kiṁ bhavaṁ raṭṭhapālo ñatvā vā disvā vā sutvā 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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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질병, 재산, 친족이라는 네 가지 쇠퇴를 하나씩 짚어 온 왕이 마침내 던지는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집을 떠나게 되는 네 가지 이유 가운데 랏타빨라에게는 단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그를 떠나게 했는지를 정면으로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랏타빨라의 답이 바로 이어지는 “세상을 꿰뚫는 네 문장”입니다.

묵상

주변 사람들이 흔히 짐작하는 이유들이 정작 나에게는 하나도 맞지 않았던 선택이 있었나요?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무엇이라고 스스로 설명할 수 있었나요? 그 답을 찾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4 세상을 꿰뚫는 네 문장 14구절

랏타빨라가 출가한 까닭을 밝히는 네 가지 가르침과 왕의 확인

랏타빨라 님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알고 보시는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네 가지 가르침의 요약을 말씀하셨다. 나는 그것을 알고 보고 들은 뒤 집을 떠났다. 첫째, ‘세상은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간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 가르침의 요약이다.”

“Atthi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cattāro dhammuddesā uddiṭṭhā, ye 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Katame cattāro? ‘Upaniyyati loko addhuvo’ti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paṭhamo dhammuddeso uddiṭṭho,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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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거듭된 질문에 랏타빨라가 마침내 답을 내놓는 장면입니다. 그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가르침의 요약”을 알고 보고 들었기에 집을 떠났다고 밝힙니다. 이 네 문장은 앞으로 하나씩 왕과의 문답을 거치며 그 뜻이 풀이됩니다. 첫 번째 문장 “세상은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간다”는 그대로 있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로, 이어지는 대화의 출발점이 됩니다.

묵상

누군가 나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배워서 알게 된 것을 근거로 답한 적이 있나요? 그 배움은 어디에서, 어떻게 나에게 스며들었는지 천천히 되짚어 보세요.

“둘째, ‘세상에는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가르침의 요약이다. 셋째, ‘세상에는 진정한 소유자가 없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한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세 번째 가르침의 요약이다.”

‘Atāṇo loko anabhissaro’ti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dutiyo dhammuddeso uddiṭṭho,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Assako loko, sabbaṁ pahāya gamanīyan’ti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tatiyo dhammuddeso uddiṭṭho,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랏타빨라가 밝히는 네 문장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입니다.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다”는 말은 누구도 대신 겪어 줄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뜻이며, “진정한 소유자가 없다”는 말은 죽음 앞에서는 무엇도 온전히 내 것으로 지닐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두 문장은 각각 이어지는 왕과의 대화에서 병과 재산이라는 구체적인 예로 하나씩 풀이됩니다. 첫 번째 문장이 몸으로 확인되었듯, 나머지 세 문장도 왕 자신의 삶에서 하나씩 검증됩니다.

묵상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결국 나 대신 겪어 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적이 있나요? 그리고 죽음 앞에서는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그 두 가지 사실은 나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오나요?

“넷째, ‘세상은 모자라고 만족할 줄 모르며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의 종이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네 번째 가르침의 요약이다. 대왕이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네 가지를 알고 보고 들은 뒤 나는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갔다.”

‘Ūno loko atitto taṇhādāso’ti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catuttho dhammuddeso uddiṭṭho,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Ime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cattāro dhammuddesā uddiṭṭhā, ye 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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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문장 가운데 마지막 문장과, 그 전체를 마무리하는 랏타빨라의 말입니다. “갈망의 종”이라는 표현에서 “갈망”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같은 집착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네 문장을 모두 밝힌 랏타빨라는, 이것이 자신이 집을 떠난 온전한 이유였다고 다시 한번 밝힙니다. 이제 왕은 이 네 문장을 하나씩 짚으며 그 뜻을 캐묻기 시작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손에 넣어도 곧 다음 것을 원하게 되는 마음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그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대상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면 마음 자체의 성질 때문일까요? 그 답을 스스로 찾아본 적이 있나요?

“‘세상은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간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오?” “대왕이여, 스무 살이나 스물다섯 살 때 코끼리와 말과 전차를 잘 다루고 활과 칼에도 능하며, 다리와 팔에 힘이 있고 싸움에 익숙했는가?” “그러했소. 때로는 신통력이 있는 듯했고, 힘으로 나와 견줄 이를 보지 못했소.”

“‘Upaniyyati loko addhuvo’ti— bhavaṁ raṭṭhapālo āha. Imassa, bho raṭṭhapāla, bhāsitassa kathaṁ attho daṭṭhabbo”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tvaṁ vīsativassuddesikopi paṇṇavīsativassuddesikopi hatthismimpi katāvī assasmimpi katāvī rathasmimpi katāvī dhanusmimpi katāvī tharusmimpi katāvī ūrubalī bāhubalī alamatto saṅgāmāvacaro”ti? “Ahosiṁ ahaṁ, bho raṭṭhapāla, vīsativassuddesikopi paṇṇavīsativassuddesikopi hatthismimpi katāvī assasmimpi katāvī rathasmimpi katāvī dhanusmimpi katāvī tharusmimpi katāvī ūrubalī bāhubalī alamatto saṅgāmāvacaro. Appekadāhaṁ, bho raṭṭhapāla, iddhimāva maññe na attano balena samasamaṁ samanupassāmī”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배경

왕이 첫 번째 문장의 뜻을 묻자, 랏타빨라는 곧바로 답을 주는 대신 왕에게 되묻습니다. 젊은 시절 코끼리와 말과 전차를 다루고 활과 칼에 능했는지, 힘으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왕은 그 시절을 자랑스럽게 회고하며 “힘으로 나와 견줄 이를 보지 못했다”고 답합니다. 이 자신만만한 회고가 다음 장면에서 뒤집히며 그대로 있지 않음의 뜻이 드러납니다.

묵상

한때 자신 있었던 능력이나 힘을 되돌아보며 그 시절을 자랑스럽게 떠올린 적이 있나요?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를 나란히 놓고 본다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그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나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강하고 싸움에 익숙한가?” “아니오. 지금은 늙어 여든 살이오. 때로는 이곳에 발을 디디려 해도 다른 곳에 디디게 되오.” “대왕이여, 바로 이것을 두고 부처님께서 ‘세상은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간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것을 알고 보고 들어 집을 떠났다.” 왕이 말하였다. “놀랍고도 훌륭하오. 부처님께서 참으로 잘 말씀하셨소. 세상은 정말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가오.”

evameva tvaṁ etarahi ūrubalī bāhubalī alamatto saṅgāmāvacaro”ti? “No hidaṁ, bho raṭṭhapāla. Etarahi jiṇṇo vuḍḍ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patto āsītiko me vayo vattati. Appekadāhaṁ, bho raṭṭhapāla, ‘idha pādaṁ karissāmī’ti aññeneva pādaṁ karomī”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upaniyyati loko addhuvo’ti,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Acchariyaṁ, bho raṭṭhapāla, abbhutaṁ, bho raṭṭhapāla. Yāva subhāsitañcidaṁ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upaniyyati loko addhuvo’ti. Upaniyyati hi, bho raṭṭhapāla, loko addhu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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랏타빨라의 되물음에 왕은 이제 여든 살이 되어 발을 디디려 해도 다른 곳에 디디게 될 만큼 몸이 약해졌다고 고백합니다. 젊은 시절의 힘과 지금의 몸을 나란히 놓고 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간다”는 말이 왕 자신의 몸에서 그대로 확인됩니다. 왕은 이 말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첫 번째 문장에 스스로 동의합니다.

묵상

예전에는 당연히 되던 일이 이제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느껴 본 순간이 있었나요? 그 변화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것과 싸우려 했나요, 아니면 있는 그대로 알아보려 했나요?

“이 왕실에는 코끼리 부대와 기병과 전차 부대와 보병이 있어 어려움이 닥치면 지켜 줄 것이오. 그런데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다’고 했소. 어떻게 이해해야 하오?” “대왕이여, 오래된 병이 있는가?” “있소. 때로 벗과 친척들이 나를 둘러싸고 ‘이제 왕이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오.” “그들에게 ‘모두 내 고통을 나누어 덜 아프게 해 달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오직 대왕이 느껴야 하는가?”

Saṁvijjante kho, bho raṭṭhapāla, imasmiṁ rājakule hatthikāyāpi assakāyāpi rathakāyāpi pattikāyāpi, amhākaṁ āpadāsu pariyodhāya vattissanti. ‘Atāṇo loko anabhissaro’ti— bhavaṁ raṭṭhapālo āha. Imassa pana, bho raṭṭhapāla, bhāsitassa kathaṁ attho daṭṭhabbo”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atthi te koci anusāyiko ābādho”ti? “Atthi me, bho raṭṭhapāla, anusāyiko ābādho. Appekadā maṁ, bho raṭṭhapāla,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parivāretvā ṭhitā honti: ‘idāni rājā korabyo kālaṁ karissati, idāni rājā korabyo kālaṁ karissatī’”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labhasi tvaṁ te mittāmacce ñātisālohite: ‘āyantu me bhonto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sabbeva santā imaṁ vedanaṁ saṁvibhajatha, yathāhaṁ lahukatarikaṁ vedanaṁ vediyeyyan’ti— udāhu tvaṁyeva taṁ vedanaṁ vediyas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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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장에 대해 왕은 자신의 군대가 어떤 어려움에서든 지켜 줄 것이라 자신하지만, 랏타빨라는 몸의 병이라는 전혀 다른 영역으로 화제를 옮깁니다. 아무리 많은 군대와 신하가 곁에 있어도, 정작 병으로 인한 고통 그 자체는 누구도 대신 나누어 질 수 없다는 사실을 왕 스스로 확인하도록 이끄는 질문입니다.

묵상

아무리 많은 사람이 곁에 있어도, 결국 나 혼자 감당해야 했던 아픔이 있었나요? 그 순간 곁에 있던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위로가 되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럴 수 없었나요? 그 한계를 알고 나서 관계를 보는 눈이 달라졌나요?

“그들에게 나누게 할 수 없소. 오직 내가 느껴야 하오.” “대왕이여, 바로 이것을 두고 부처님께서 ‘세상에는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왕이 말하였다. “놀랍고도 훌륭하오. 부처님께서 참으로 잘 말씀하셨소. 세상에는 정말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소.”

“Nāhaṁ, bho raṭṭhapāla, labhāmi te mittāmacce ñātisālohite: ‘āyantu me bhonto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sabbeva santā imaṁ vedanaṁ saṁvibhajatha, yathāhaṁ lahukatarikaṁ vedanaṁ vediyeyyan’ti. Atha kho ahameva taṁ vedanaṁ vediyāmī”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atāṇo loko anabhissaro’ti,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Acchariyaṁ, bho raṭṭhapāla, abbhutaṁ, bho raṭṭhapāla. Yāva subhāsitaṁ cidaṁ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atāṇo loko anabhissaro’ti. Atāṇo hi, bho raṭṭhapāla, loko anabhiss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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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결국 자신의 고통을 누구에게도 나누어 줄 수 없고 오직 스스로 느껴야 한다고 인정합니다. 코끼리 부대와 기병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이 고독한 사실 앞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다”는 두 번째 문장의 뜻이 분명해집니다. 왕은 다시 한번 “정말 그렇다”며 감탄합니다. 힘과 재물로 가장 든든해 보이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고백이라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묵상

힘든 순간에 누군가 대신 아파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게 느껴진 적이 있나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오히려 무엇이 더 선명해지던가요?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외로움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왕실에는 땅 위와 땅 아래에 보관한 금화와 금붙이가 아주 많소. 그런데 ‘세상에는 진정한 소유자가 없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한다’고 했소. 그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오?” “대왕이여, 지금 다섯 가지 감각적 즐거움을 갖추어 누리듯이 다음 세상에서도 똑같이 누리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다른 이들이 이 재산을 차지하고, 대왕은 자기 행위에 따라 가야 하는가?” “다음 세상에서도 똑같이 누리리라고 보장할 수 없소.”

Saṁvijjati kho, bho raṭṭhapāla, imasmiṁ rājakule pahūtaṁ hiraññasuvaṇṇaṁ bhūmigatañca vehāsagatañca. ‘Assako loko, sabbaṁ pahāya gamanīyan’ti— bhavaṁ raṭṭhapālo āha. Imassa pana, bho raṭṭhapāla, bhāsitassa kathaṁ attho daṭṭhabbo”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yathā tvaṁ etarahi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si, lacchasi tvaṁ paratthāpi: ‘evamevāhaṁ imeheva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mī’ti, udāhu aññe imaṁ bhogaṁ paṭipajjissanti, tvaṁ pana yathākammaṁ gamissasī”ti? “Yathāhaṁ, bho raṭṭhapāla, etarahi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mi, nāhaṁ lacchāmi paratthā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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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문장에 대해 왕은 이번에는 땅 위아래에 쌓아 둔 막대한 금을 근거로 듭니다. 랏타빨라는 그 재산이 지금 여기서는 누릴 수 있어도, 다음 생에서도 똑같이 이어질 수 있을지를 되묻습니다. 왕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도 죽음의 문턱을 함께 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이 짧은 문답 속에서 조용히 드러납니다.

묵상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언젠가는 나를 떠나거나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다는 사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나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재산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이들이 재산을 차지하고 나는 내 행위에 따라 가야 하오.” “대왕이여, 바로 이것을 두고 부처님께서 ‘세상에는 진정한 소유자가 없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왕이 말하였다. “놀랍고도 훌륭하오. 부처님께서 참으로 잘 말씀하셨소. 세상에는 정말 진정한 소유자가 없고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하오.”

‘evameva imeheva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mī’ti. Atha kho aññe imaṁ bhogaṁ paṭipajjissanti; ahaṁ pana yathākammaṁ gamissāmī”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assako loko, sabbaṁ pahāya gamanīyan’ti,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Acchariyaṁ, bho raṭṭhapāla, abbhutaṁ, bho raṭṭhapāla. Yāva subhāsitaṁ cidaṁ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assako loko, sabbaṁ pahāya gamanīyan’ti. Assako hi, bho raṭṭhapāla, loko sabbaṁ pahāya gamanīy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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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결국 자신이 죽은 뒤에는 재산을 다른 이들이 차지하고, 자신은 오직 스스로 지은 행위에 따라 가야 한다고 인정합니다. 이로써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세 번째 문장, “세상에는 진정한 소유자가 없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한다”는 말의 뜻이 왕 자신의 재산을 통해 확인됩니다. 이제 마지막 네 번째 문장, 만족을 모르는 세상에 대한 대화가 뒤이어 펼쳐집니다.

묵상

내가 죽은 뒤에 남길 것과, 내가 끝까지 지니고 갈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지금 시간을 쏟고 있는 일 가운데 정말로 나와 함께 갈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요? 그 앎을 얻은 뒤에도 여전히 재산을 붙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는 않나요?

“‘세상은 모자라고 만족할 줄 모르며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의 종이다’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오?” “대왕이여, 번영한 꾸루국을 다스리고 있는가?” “그렇소.”

‘Ūno loko atitto taṇhādāso’ti— bhavaṁ raṭṭhapālo āha. Imassa, bho raṭṭhapāla, bhāsitassa kathaṁ attho daṭṭhabbo”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phītaṁ kuruṁ ajjhāvasasī”ti? “Evaṁ, bho raṭṭhapāla, phītaṁ kuruṁ ajjhāvasām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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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의 대화도 이제 마지막 네 번째 문장에 이릅니다. 랏타빨라는 이번에도 곧바로 설명하는 대신, 왕이 다스리는 꾸루국이 얼마나 번영한 나라인지부터 확인합니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이 물음은 아무리 크고 풍요로운 나라를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의 성질을 드러내는 실마리가 됩니다. 왕은 짧게 “그렇소”라고 답하며 대화에 응합니다. 만족을 모르는 마음은 이미 넉넉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묵상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스스로 느껴 본 적이 있나요? 그 느낌은 오래갔나요, 아니면 금세 다음 바람으로 옮겨 갔나요? 그 다음 바람은 어디에서 온 것이었는지도 함께 떠올려 보세요.

“믿을 만한 사람이 동쪽에서 와서 말한다 하자. ‘대왕이여, 그곳에서 번영하고 사람이 아주 많은 큰 나라를 보았습니다. 코끼리 부대와 기병과 전차 부대와 보병이 많고, 돈과 곡식이 많으며, 금이 많고, 차지할 여인도 많습니다. 지금 가진 군대만으로 정복할 수 있으니 정복하십시오.’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정복하여 다스리겠소.”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idha puriso āgaccheyya puratthimāya disāya saddhāyiko paccayiko. So taṁ upasaṅkamitvā evaṁ vadeyya: ‘yagghe, mahārāja, jāneyyāsi, ahaṁ āgacchāmi puratthimāya disāya? Tatthaddasaṁ mahantaṁ janapadaṁ iddhañceva phītañca bahujanaṁ ākiṇṇamanussaṁ. Bahū tattha hatthikāyā assakāyā rathakāyā pattikāyā; bahu tattha dhanadhaññaṁ; bahu tattha hiraññasuvaṇṇaṁ akatañceva katañca; bahu tattha itthipariggaho. Sakkā ca tāvatakeneva balamattena abhivijinituṁ. Abhivijina, mahārājā’ti, kinti naṁ kareyyāsī”ti? “Tampi mayaṁ, bho raṭṭhapāla, abhivijiya ajjhāvaseyyāmā”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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랏타빨라는 가상의 상황을 하나 제시합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찾아와, 동쪽에 정복하기 쉬운 크고 풍요로운 나라가 있다고 알려 준다면 어찌하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왕은 망설임 없이 “정복하여 다스리겠다”고 답합니다. 이미 번영한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면서도 더 가지려는 마음이 곧바로 드러난 것입니다. 다음 장면에서 이 물음은 서쪽과 북쪽과 남쪽으로도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묵상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손쉽게 더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흔들리던가요? 그 순간의 망설임 없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요? 그 흔들림을 알아차린 뒤에는 어떤 선택을 했나요?

“서쪽에서 온 사람도, 북쪽에서 온 사람도, 남쪽에서 온 사람도 같은 말을 한다면 어찌하겠는가? 또 바다 건너에서 온 믿을 만한 사람이 다가와 같은 말을 한다 하자.”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idha puriso āgaccheyya pacchimāya disāya … uttarāya disāya … dakkhiṇāya disāya … parasamuddato saddhāyiko paccayiko. So taṁ upasaṅkamitvā evaṁ vadey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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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 이어 랏타빨라는 서쪽과 북쪽과 남쪽에서도 똑같은 제안이 온다면 어찌할 것인지 되풀이해 묻습니다. 왕의 대답은 매번 다르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어 랏타빨라는 이번에는 바다 건너에서 온 사람의 제안까지 언급하며, 이 물음의 범위를 세상 끝까지 넓힙니다. 사방과 바다 건너까지 정복해도 만족은 끝내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음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묵상

하나를 이루고 나면 다음, 그다음을 계속 바라게 되는 마음의 흐름을 스스로 느껴 본 적이 있나요? 그 흐름은 어디쯤에서 멈출 수 있을 것 같나요? 그 흐름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곳에서 번영하고 사람이 아주 많은 큰 나라를 보았습니다. 코끼리 부대와 기병과 전차 부대와 보병이 많고, 돈과 곡식이 많으며, 금이 많고, 차지할 여인도 많습니다. 지금 가진 군대만으로 정복할 수 있으니 정복하십시오.’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그곳도 정복하여 다스리겠소.”

‘yagghe, mahārāja, jāneyyāsi, ahaṁ āgacchāmi parasamuddato? Tatthaddasaṁ mahantaṁ janapadaṁ iddhañceva phītañca bahujanaṁ ākiṇṇamanussaṁ. Bahū tattha hatthikāyā assakāyā rathakāyā pattikāyā; bahu tattha dhanadhaññaṁ; bahu tattha hiraññasuvaṇṇaṁ akatañceva katañca; bahu tattha itthipariggaho. Sakkā ca tāvatakeneva balamattena abhivijinituṁ. Abhivijina, mahārājā’ti, kinti naṁ kareyyāsī”ti? “Tampi mayaṁ, bho raṭṭhapāla, abhivijiya ajjhāvaseyyām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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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에서 온 사람이 앞서와 똑같은 말로 풍요로운 나라를 알려 주자, 왕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그곳도 정복하여 다스리겠다”고 답합니다. 이미 번영한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동서남북과 바다 건너까지 모두 가지려 하는 이 대답 속에서 만족을 모르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랏타빨라는 이제 이 대답을 근거로 마지막 문장의 뜻을 밝힙니다. 왕 스스로 내놓은 대답이 곧 부처님의 말씀을 증명합니다.

묵상

얻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 스스로도 놀란 순간이 있었나요? 그 마음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나요? 그 순간 나는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루었나요?

“대왕이여, 바로 이것을 두고 부처님께서 ‘세상은 모자라고 만족할 줄 모르며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의 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왕이 말하였다. “놀랍고도 훌륭하오. 부처님께서 참으로 잘 말씀하셨소. 세상은 정말 모자라고 만족할 줄 모르며 갈망의 종이오.”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ūno loko atitto taṇhādāso’ti,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Acchariyaṁ, bho raṭṭhapāla, abbhutaṁ, bho raṭṭhapāla. Yāva subhāsitañcidaṁ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ūno loko atitto taṇhādāso’ti. Ūno hi, bho raṭṭhapāla, loko atitto taṇhādās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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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까지 정복해도 만족하지 않겠다는 왕 자신의 대답을 통해, 마지막 네 번째 문장 “세상은 모자라고 만족할 줄 모르며 갈망의 종이다”의 뜻이 확인됩니다. 이로써 왕은 랏타빨라가 밝힌 네 문장 모두에 스스로 동의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과 병과 재산과 욕심을 하나씩 짚어 가며 얻어 낸 이 동의는 스스로 확인한 앎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묵상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믿기보다, 나 자신의 경험으로 직접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 것이 있나요? 그렇게 확인한 앎은 전해 들은 것과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그런 확인의 과정을 지금 내 삶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을까요?

5 지혜가 재물보다 낫다 7구절

부와 죽음과 행위의 결과를 노래하며 경을 맺는 랏타빨라의 마지막 게송

랏타빨라 님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 노래를 읊었다. “나는 세상의 부유한 사람들이 재물을 얻고도 어리석음 때문에 나누지 않는 것을 본다. 탐내며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감각적 즐거움을 더욱 바란다.”

Idamavoca āyasmā raṭṭhapālo. Idaṁ vatvā athāparaṁ etadavoca: “Passāmi loke sadhane manusse, Laddhāna vittaṁ na dadanti mohā; Luddhā dhanaṁ sannicayaṁ karonti, Bhiyyova kāme abhipatthayan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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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의 긴 문답을 마친 랏타빨라가 이제 마지막 노래를 읊기 시작합니다. 앞선 산문 대화가 왕 자신의 경험을 통해 네 문장을 하나씩 확인해 가는 방식이었다면, 이 노래는 세상을 넓게 바라보며 그 이치를 풀어냅니다. 첫 연은 재물을 얻고도 나누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욕심을 내는 부유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며 시작합니다. 이 경의 결말을 여는 첫 노래입니다.

묵상

가진 것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더 많이 원하게 되는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서 지켜본 적이 있나요? 그 모습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인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언제였나요? 그때 나는 무엇을 나누지 못하고 있었나요?

“왕이 힘으로 바다 끝까지 땅을 정복해 다스려도 바다 이쪽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다시 저쪽 해안까지 바란다. 왕과 수많은 사람은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을 버리지 못한 채 죽음을 맞고, 여전히 모자란 채 몸을 버린다. 이 세상의 감각적 즐거움에는 만족이 없다.”

Rājā pasayhā pathaviṁ vijitvā, Sasāgarantaṁ mahimāvasanto; Oraṁ samuddassa atittarūpo, Pāraṁ samuddassapi patthayetha. Rājā ca aññe ca bahū manussā, Avītataṇhā maraṇaṁ upenti; Ūnāva hutvāna jahanti dehaṁ, Kāmehi lokamhi na hatthi ti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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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서 왕이 스스로 답했던 정복의 이야기가 이제 시 속에서 다시 울립니다. 바다 끝까지 땅을 정복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 너머까지 바라는 왕의 모습은, 앞선 산문 대화에서 왕 자신이 직접 인정했던 바로 그 마음입니다. 이 연은 그런 왕과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갈망을 버리지 못한 채 여전히 모자란 채로 죽음을 맞는다고 노래합니다.

묵상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던 순간이,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또 다른 바람의 시작점이었던 적이 있나요? 그 끝없는 흐름을 알아차린 뒤에는 무엇이 달라졌나요? 그 흐름을 멈출 수 있는 자리는 어디쯤일까요?

“친척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며 ‘아, 우리 님은 죽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한다. 시신을 한 벌의 천에 싸서 들고 나가 장작더미를 쌓아 불태운다. 모든 재물을 남겨 둔 채 한 벌의 천만 입고, 막대로 이리저리 찔리며 불탄다. 죽어 가는 이를 친척과 벗과 동료가 지켜 줄 수 없다.”

Kandanti naṁ ñātī pakiriya kese, Ahovatā no amarāti cāhu; Vatthena naṁ pārutaṁ nīharitvā, Citaṁ samādāya tatoḍahanti. So ḍayhati sūlehi tujjamāno, Ekena vatthena pahāya bhoge; Na mīyamānassa bhavanti tāṇā, Ñātīdha mittā atha vā sahāy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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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이제 죽음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립니다. 살아 있을 때 쌓아 둔 모든 재물을 남겨 둔 채, 결국 한 벌의 천에 싸여 화장되는 몸의 모습입니다. 친척들의 울음도, 곁을 지키던 벗과 동료도 죽어 가는 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장면은 앞서 왕과의 대화에서 나눈 두 번째 문장,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노래로 확인시켜 주는 대목입니다.

묵상

가까운 이의 죽음 앞에서, 그 어떤 사랑도 그 순간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느낀 적이 있나요? 그 무력함 속에서도 곁을 지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 곁을 지킨 시간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나요?

“상속자들은 그의 재물을 가져가고, 사람은 자기 행위에 따라 간다. 죽는 이를 따라가는 재물은 하나도 없다. 자식도 배우자도 재물도 나라도 따라가지 않는다. 재물로 오래 살 수 없고, 부로 늙음을 물리칠 수도 없다. 지혜로운 이들은 이 삶이 짧고 덧없으며 변하는 것이라 말한다.”

Dāyādakā tassa dhanaṁ haranti, Satto pana gacchati yena kammaṁ; Na mīyamānaṁ dhanamanveti kiñci, Puttā ca dārā ca dhanañca raṭṭhaṁ. Na dīghamāyuṁ labhate dhanena, Na cāpi vittena jaraṁ vihanti; Appaṁ hidaṁ jīvitamāhu dhīrā, Asassataṁ vippariṇāmadhamm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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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리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이 함께 가는지를 대비하는 대목입니다. 상속자들은 재물을 가져가지만, 정작 죽는 이를 따라가는 것은 자식도 배우자도 재물도 나라도 아니고 오직 스스로 지은 행위뿐입니다. “재물로 오래 살 수 없고 부로 늙음을 물리칠 수도 없다”는 구절은 앞서 왕과 나눈 세 번째 문장, 진정한 소유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다시 압축해서 들려줍니다.

묵상

내가 지금 시간과 마음을 쏟고 있는 것 가운데, 죽음의 문턱까지 정말로 나와 함께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답을 알면서도 삶의 우선순위는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자도 가난한 이도 삶의 부딪힘을 겪고,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똑같이 그것과 마주친다. 어리석은 이는 제 어리석음에 얻어맞아 쓰러지지만, 지혜로운 이는 부딪힘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혜가 재물보다 나으니, 지혜로 지금 여기에서 완성에 이르기 때문이다. 완성에 이르지 못한 채 떠돌면 사람들은 어리석음에 빠져 나쁜 행위를 짓는다.”

Aḍḍhā daliddā ca phusanti phassaṁ, Bālo ca dhīro ca tatheva phuṭṭho; Bālo ca bālyā vadhitova seti, Dhīro ca na vedhati phassaphuṭṭho. Tasmā hi paññāva dhanena seyyo, Yāya vosānamidhādhigacchati; Abyositattā hi bhavābhavesu, Pāpāni kammāni karonti moh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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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의 제목이기도 한 “지혜가 재물보다 낫다”는 구절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이든, 어리석은 이든 지혜로운 이든 누구나 삶의 부딪힘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서 갈립니다. 어리석은 이는 그 부딪힘에 그대로 쓰러지지만, 지혜로운 이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재물이 지켜 주지 못하는 자리를 지혜가 지켜 줍니다.

묵상

같은 어려움을 겪고도 흔들리는 사람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그 차이를 만드는 지혜를 어디에서 길러 왔는지 돌아보세요.

“여러 존재를 오가며 완성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어리석음 때문에 나쁜 행위를 짓는다. 거듭 태어나고 다음 세상으로 가며 되풀이되는 삶을 이어 가고, 지혜가 적은 이는 그것을 믿고 따르며 또다시 태어나 다음 세상으로 간다. 마치 집을 뚫다 붙잡힌 도둑이 자기 악행으로 벌을 받듯이,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뒤 다음 세상에서 자기가 지은 악행으로 벌을 받는다.”

Upeti gabbhañca parañca lokaṁ, Saṁsāramāpajja paramparāya; Tassappapañño abhisaddahanto, Upeti gabbhañca parañca lokaṁ. Coro yathā sandhimukhe gahito, Sakammunā haññati pāpadhammo; Evaṁ pajā pecca paramhi loke, Sakammunā haññati pāpadham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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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은 이제 죽음 이후로 시선을 넓힙니다. 완성에 이르지 못한 이들이 어리석음으로 나쁜 행위를 지으며 거듭 태어남을 이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집을 뚫다 붙잡힌 도둑”의 비유는 자기가 지은 행위의 결과를 결국 자기가 받는다는 이치를 생생하게 그립니다. 앞서 여러 차례 등장했던 “자기 행위에 따라 간다”는 구절이 이 비유를 통해 더 구체적인 상으로 다가옵니다.

묵상

지금 내가 짓고 있는 행위가 나중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도둑과 벌의 비유처럼 눈앞에 그려 본 적이 있나요? 그 그림은 지금의 선택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만들어 주는지 가만히 살펴보세요.

“감각적 즐거움은 갖가지로 달고 마음에 들지만 여러 모습으로 마음을 뒤흔든다.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을 보았기에 나는 집을 떠났다, 대왕이여. 나무 열매가 떨어지듯 사람은 젊은이도 늙은이도 몸이 무너지면 떨어진다. 이것을 보았기에 나는 집을 떠났다, 대왕이여. 틀림없는 수행자의 삶이 더 낫다.”

Kāmāhi citrā madhurā manoramā, Virūparūpena mathenti cittaṁ; Ādīnavaṁ kāmaguṇesu disvā, Tasmā ahaṁ pabbajitomhi rāja. Dumapphalāneva patanti māṇavā, Daharā ca vuḍḍhā ca sarīrabhedā; Etampi disvā pabbajitomhi rāja, Apaṇṇakaṁ sāmaññameva seyy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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랏타빨라의 마지막 게송이자 이 경 전체를 맺는 대목입니다. 그는 감각적 즐거움이 달콤하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뒤흔든다는 위험을 보았기에 집을 떠났다고 다시 한번 밝히고, 나무 열매가 익으면 떨어지듯 젊은이도 늙은이도 몸이 무너지면 떨어진다는 비유로 삶의 마지막을 그립니다. “틀림없는 수행자의 삶이 더 낫다”는 마지막 문장으로 게송과 경 전체가 함께 마무리됩니다.

묵상

달콤함과 위태로움이 함께 있는 것들을 지금 내 삶에서 떠올려 본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그 둘을 함께 보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선택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