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부처님께서는 석가족의 나라 까삘라왓투에 있는 니그로다 승원에 머무셨다. 그때 석가족 마하나마가 부처님께 다가갔다. 다가가 부처님께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석가족 마하나마가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부처님, 어디까지로 집에 사는 신도가 됩니까?” “마하나마여, 부처님께 귀의하고, 가르침에 귀의하고, 수행자 공동체(상가)에 귀의했을 때, 마하나마여, 이만큼으로 집에 사는 신도가 된다.”
Ekaṁ samayaṁ bhagavā sakkesu viharati kapilavatthusmiṁ nigrodhārāme. Atha kho mahānāmo sakk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mahānāmo sakko bhagavantaṁ etadavoca: “Kittāvatā nu kho, bhante, upāsako hotī”ti? “Yato kho, mahānāma, buddhaṁ saraṇaṁ gato hoti, dhammaṁ saraṇaṁ gato hoti, saṅghaṁ saraṇaṁ gato hoti—ettāvatā kho, mahānāma, upāsako hotī”ti.
배경
경의 도입 장면과 첫 문답을 함께 담습니다. 석가족 마하나마가 부처님을 찾아 절하고 한쪽에 앉은 뒤, 집에 사는 신도를 어디까지로 정의하는지 묻습니다. 답은 부처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의 세 귀의처를 같은 표현으로 잇고 ‘이만큼으로’라고 맺습니다. 여기서 귀의는 집에 사는 신도가 되는 첫 기준입니다. 이어지는 네 문답은 이미 집에 사는 신도인 사람이 계·믿음·베풂·지혜를 각각 어떻게 갖추는지를 차례로 풉니다.
묵상
“이만큼으로 집에 사는 신도가 된다”는 말과 세 귀의처를 함께 읽을 때, 지금 가장 또렷하게 다가오는 귀의처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