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타마나나띳티야 숫따(여러 다른 교단 사람들, 첫째)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우다나 Ud 6.4

인용된 가르침 21구절

이 경을 4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저마다 다른 견해에 사로잡히다 6구절

사왓티에 모인 여러 외도들이 세상과 자아, 죽음 이후를 놓고 열 가지 다른 주장을 서로 옳다고 내세웁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무셨다. 그 무렵 사왓티에는 저마다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여러 사람이 머물고 있었다.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사마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브라흐마나), 떠돌며 수행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견해, 다른 믿음, 다른 취향을 지니고 저마다 다른 견해에 기대어 있었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nānātitthiyasamaṇabrāhmaṇaparibbājakā sāvatthiyaṁ paṭivasanti nānādiṭṭhikā nānākhantikā nānārucikā nānādiṭṭhinissayanissitā.

우다나 Ud 6.4 빠타마나나띳티야 숫따 (여러 다른 교단 사람들, 첫째)

배경

이 경은 사왓티 제따 숲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그 무렵 사왓티에는 서로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사마나, 브라흐마나, 떠돌며 수행하는 이들이 함께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견해와 믿음과 취향이 저마다 달랐고, 각자 자기가 기대는 견해만을 옳다고 여겼습니다. 뒤에는 열 가지 견해를 둘러싼 다툼이 이어지고, 부처님께서 눈먼 이들과 코끼리의 비유를 드십니다. 이 장면은 그 다툼이 벌어지는 자리를 미리 보여 줍니다.

묵상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쪽이 옳은지 가리고 싶어진 적이 있나요? 지금 마음에 떠오르는 의견 하나를 붙잡기 전에, 그것이 내가 본 만큼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곁에 두어 볼 수 있을까요?

사마나와 브라흐마나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녔다.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녔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Sant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ssato loko,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Santi pan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sassato loko,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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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열 가지 견해 가운데 첫째와 둘째로, 세상이 영원한가 아닌가를 놓고 정반대로 주장하는 두 무리를 나란히 보여 줍니다. 둘 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는 같은 문구로 자기 주장을 못박습니다. 뒤에서 부처님께서는 이들이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기 때문에 다툰다고 말씀하시고, 이를 눈먼 이들과 코끼리의 비유로 보여 주십니다. 이 대목에서는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가려 주지 않습니다.

묵상

‘이것만이 참’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었던 생각이 최근에 있었나요? 그 생각이 내가 겪은 한 부분에서 나온 것인지, 전체를 다 보고 나온 것인지 잠시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그 말 뒤에 ‘아직 모르는 구석도 있다’는 한마디를 붙여 보면 어떨까요?

사마나와 브라흐마나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녔다. “세상은 끝이 있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녔다. “세상은 끝이 없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Sant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ntavā loko,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Santi pan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nantavā loko,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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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셋째와 넷째 견해로, 이번에는 세상의 크기를 두고 끝이 있다는 쪽과 끝이 없다는 쪽이 맞섭니다. 앞에서 세상이 영원한가를 두고 다투던 것과 같은 틀이 되풀이됩니다. 다투는 대상만 바뀌고 ‘이것만이 참’이라고 단정하는 태도는 그대로입니다. 뒤에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맞서는 이들을 코끼리의 한 부분만 알고 다투는 눈먼 이들에 빗대십니다.

묵상

크기나 범위를 놓고 ‘이렇다, 아니다’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질문을 떠올릴 수 있나요? 그 질문에 서둘러 답을 정하지 않고 곁에 두면 마음은 어떤가요?

사마나와 브라흐마나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녔다. “영혼(지와)이 곧 몸이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녔다. “영혼과 몸은 다른 것이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Sant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taṁ jīvaṁ taṁ sarīra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Santi pan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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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다섯째와 여섯째 견해로, 영혼과 몸이 하나인가 다른가를 놓고 갈라집니다. 몸이 죽으면 나도 끝나는지를 묻는 오래된 물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앞의 두 쌍과 똑같이 서로 다른 주장을 ‘이것만이 참’이라고 단정하는 모습이 세 번째로 되풀이됩니다.

묵상

몸과 마음의 관계를 두고 ‘이렇다’라고 결론 내리고 싶었던 순간이 있나요? 확실히 알지 못하는 채로 그 물음을 곁에 두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결론을 서두르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의 몸과 마음은 이미 여기 있다는 것을 함께 느껴 볼 수 있을까요?

사마나와 브라흐마나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녔다.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에도 있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녔다. “깨달음에 이른 이는 죽은 뒤에는 없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Sant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Santi pan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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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일곱째와 여덟째 견해로, 깨달음에 이른 이가 죽은 뒤에도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다툽니다. 이 대목은 ‘이것만이 참’이라고 단정하는 두 견해를 나란히 보여 줄 뿐입니다. 같은 다툼의 형식이 네 번째로 되풀이됩니다.

묵상

죽음 뒤의 일을 두고 확신에 찬 답을 듣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그 답을 모르는 채로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두어 보면 어떨까요?

사마나와 브라흐마나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녔다. “깨달음에 이른 이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녔다. “깨달음에 이른 이는 죽은 뒤에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이들은 다투고 싸우고 언쟁하며 입의 창으로 서로를 찌르며 지냈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것이 진리다.”

Sant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Santi pan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Te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ṁ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ediso dhammo, nediso dhammo; nediso dhammo, ediso dhamm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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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아홉째와 열째 견해입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가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견해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는 견해가 나오면서 열 가지 견해가 모두 채워집니다. 열 가지를 다 늘어놓은 뒤, 원문은 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지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투고 싸우고 언쟁하며 서로를 ‘입의 창’으로 찔렀다는 표현은 말이 상처를 입히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그립니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를 되뇌는 마지막 대목은 뒤에 나올 눈먼 이들의 다툼과 그대로 겹칩니다.

묵상

의견이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다가 그 말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던 적이 있나요? ‘이렇다, 이렇지 않다’를 주고받기 전에 잠시 멈추어 볼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2 다툼을 전해 듣고 눈먼 이들이라 이르시다 3구절

음식을 얻으러 다녀온 수행자들이 외도들의 다툼을 전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보지 못한 채 단정한다고 진단하십니다.

그때 여러 수행자가 아침에 옷을 입고 음식을 받는 그릇과 겉옷을 챙겨 음식을 얻으러 사왓티에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음식을 얻어 식사를 마친 뒤 돌아와 부처님께 나아갔다.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수행자들이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sambahulā bhikkhū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āvatthiṁ piṇḍāya pāvisiṁsu. Sāvatthiyaṁ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ṁ piṇḍapātapaṭikkant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Ekamantaṁ nisinnā kho te bhikkhū bhagavantaṁ etadavocu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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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장면이 바뀌어,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다투는 모습을 전하러 수행자들이 부처님을 찾아옵니다. 옷을 입고 그릇을 챙겨 음식을 얻으러 다녀온 뒤 부처님께 절하고 앉는 순서를 차례로 밝힌 다음에야 수행자들이 입을 엽니다. 이런 도입은 여러 경에서 되풀이되는 틀입니다. 사왓티의 다툼과 부처님의 말씀 사이에 이 일상의 장면이 놓여 이야기의 시간과 자리를 분명히 해 줍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전할 때, 있는 그대로 담담히 전하기와 자기 생각을 보태어 전하기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오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한다면 어느 쪽에 가까울지 잠시 떠올려 볼까요?

“부처님, 여기 사왓티에는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여러 무리가 머물고 있습니다.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사마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브라흐마나), 떠돌며 수행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견해, 다른 믿음, 다른 취향을 지니고 저마다 다른 견해에 기대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사마나와 브라흐마나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 이들은 다투고 싸우고 언쟁하며 입의 창으로 서로를 찌르며 지냅니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것이 진리다.’ 하고 말입니다.”

“Idha, bhante, sambahulā nānātitthiyasamaṇabrāhmaṇaparibbājakā sāvatthiyaṁ paṭivasanti nānādiṭṭhikā nānākhantikā nānārucikā nānādiṭṭhinissayanissitā— Sant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ssato loko,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pe… te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ṁ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ediso dhammo, nediso dhammo; nediso dhammo, ediso dhamm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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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행자들이 음식을 얻어 식사를 마치고 부처님께 가서 한쪽에 앉아 전하는 말입니다. 앞서 나온 사왓티의 여러 무리와 그들의 다툼 이야기를 수행자들이 거의 그대로 되풀이해 말합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나머지 아홉 견해는 줄였습니다. 줄어든 자리에는 앞에서 나온 순서 그대로 이어집니다.

묵상

사람들이 저마다 ‘이것만이 참이다’ 하며 말로 서로를 찌르는 다툼을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나요? 그때 보고 들은 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떠돌이 수행자들은 눈이 멀어 볼 수 없다. 이로운 것을 알지 못하고 이롭지 않은 것을 알지 못하며, 진리를 알지 못하고 진리가 아닌 것을 알지 못한다. 이로운 것과 이롭지 않은 것,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을 알지 못하기에 다투고 싸우고 언쟁하며 입의 창으로 서로를 찌르며 지낸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것이 진리다.’ 하고 말한다.

“Aññatitthiyā, bhikkhave, paribbājakā andhā acakkhukā; atthaṁ na jānanti, anatthaṁ na jānanti, dhammaṁ na jānanti, adhammaṁ na jānanti. Te atthaṁ ajānantā anatthaṁ ajānantā dhammaṁ ajānantā adhammaṁ ajānantā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ṁ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ediso dhammo, nediso dhammo; nediso dhammo, ediso dhamm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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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행자들의 보고를 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목입니다.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떠돌이 수행자들이 눈이 멀어 볼 수 없다고 하시는데, 뒤에 나올 눈먼 이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말입니다. 이로운 것과 이롭지 않은 것,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을 모른다는 말이 두 번 겹쳐 나오고, 이 모름에서 다툼이 나온다고 하십니다.

묵상

내가 다 보지 못한 것을 두고 ‘이렇다’ 하고 말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아직 그 부분을 보지 못했다고 인정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그 인정이 한숨 돌리는 여유로 다가올 때도 있을까요?

3 장님과 코끼리 10구절

왕이 나면서부터 눈먼 이들을 모아 코끼리의 각기 다른 부위를 만지게 하니, 저마다 다른 것을 코끼리라 말하며 다툽니다.

수행자들이여, 옛날 바로 이 사왓티에 어떤 왕이 있었다. 수행자들이여, 그 왕이 한 사람을 불러 말했다. ‘이보게, 사왓티에서 나면서부터 눈먼 이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오게.’ ‘그리하겠습니다, 대왕이시여.’ 수행자들이여, 그 사람은 이렇게 왕에게 대답하고 사왓티의 눈먼 이들을 모두 데리고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아뢰었다.

Bhūtapubbaṁ, bhikkhave, imissāyeva sāvatthiyā aññataro rājā ahosi. Atha kho, bhikkhave, so rājā aññataraṁ purisaṁ āmantesi: ‘ehi tvaṁ, ambho purisa, yāvatakā sāvatthiyā jaccandhā te sabbe ekajjhaṁ sannipātehī’ti. ‘Evaṁ, devā’ti kho, bhikkhave, so puriso tassa rañño paṭissutvā yāvatakā sāvatthiyā jaccandhā te sabbe gahetvā yena so rāj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aṁ rājānaṁ etadav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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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부처님께서 눈먼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하시는 첫머리입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서로 다투고 있는 바로 그 사왓티입니다. 옛날 그곳에 있던 어떤 왕이 한 사람을 불러, 나면서부터 눈먼 이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오라고 이릅니다. 그 사람은 그대로 따라 눈먼 이들을 데리고 왕에게 나아갑니다. 왕은 그를 ‘이보게’ 하고 부르고, 그는 왕을 ‘대왕이시여’ 하고 높여 부릅니다.

묵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을 처음 알아 가야 했던 때가 떠오르나요? 그때 나는 무엇에 기대어 그것을 짐작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그 짐작이 얼마나 맞았는지 나중에 알게 된 적도 있나요?

‘대왕이시여, 사왓티의 눈먼 이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보게, 눈먼 이들에게 코끼리를 보여 주게.’ ‘그리하겠습니다, 대왕이시여.’ 수행자들이여, 그 사람은 이렇게 왕에게 대답하고 눈먼 이들에게 코끼리를 보여 주었다.

‘sannipātitā kho te, deva, yāvatakā sāvatthiyā jaccandhā’ti. ‘Tena hi, bhaṇe, jaccandhānaṁ hatthiṁ dassehī’ti. ‘Evaṁ, devā’ti kho, bhikkhave, so puriso tassa rañño paṭissutvā jaccandhānaṁ hatthiṁ dasse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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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모아 온 눈먼 이들에게 왕이 코끼리를 보여 주라고 명하는 대목입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코끼리가 여기서 처음 나옵니다. 어느 부위를 보여 주는지는 이어지는 대목에서 나옵니다. 명령과 대답이 짧게 오가고, 그 사람은 곧바로 눈먼 이들에게 코끼리를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대상이라도 사람마다 만나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 나는 상대가 만난 부분이 어땠는지 물어보았나요? 상대가 만난 부분과 내가 만난 부분을 함께 놓아 보면 무엇이 보일까요?

그 사람은 눈먼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는 코끼리의 머리를 보여 주며 ‘눈먼 이들이여, 코끼리는 이렇다’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코끼리의 귀를 보여 주며 ‘눈먼 이들이여, 코끼리는 이렇다’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상아를 보여 주며 ‘눈먼 이들이여, 코끼리는 이렇다’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코를 보여 주며 ‘눈먼 이들이여, 코끼리는 이렇다’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몸통을 보여 주며 ‘눈먼 이들이여, 코끼리는 이렇다’ 했다.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sīs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kaṇṇ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dant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soṇḍ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kāy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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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왕의 명을 받은 사람이 눈먼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는 이 부위를, 어떤 이들에게는 저 부위를 보여 주는 장면이 시작됩니다. 머리, 귀, 상아, 코, 몸통을 보게 된 무리마다 그 사람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무리마다 만난 것은 코끼리의 한 부분뿐이었습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어떤 일의 일부만 보여 주고 전체처럼 말한 적이 있나요? 반대로 일부만 전해 듣고 전체를 안다고 여긴 적은 없었나요? 그 순간을 지금 다시 떠올리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그 사람은 눈먼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는 코끼리의 다리를 보여 주며 ‘눈먼 이들이여, 코끼리는 이렇다’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코끼리의 넓적다리를 보여 주며 ‘눈먼 이들이여, 코끼리는 이렇다’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꼬리를 보여 주며 ‘눈먼 이들이여, 코끼리는 이렇다’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꼬리털 끝을 보여 주며 ‘눈먼 이들이여, 코끼리는 이렇다’ 했다.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pād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satthi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naṅguṭṭh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vāladhi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우다나 Ud 6.4 빠타마나나띳티야 숫따 (여러 다른 교단 사람들, 첫째)

배경

앞에서 머리, 귀, 상아, 코, 몸통을 보여 준 데 이어 다리, 넓적다리, 꼬리, 꼬리털 끝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코끼리를 보여 주는 장면이 여기서 끝납니다. 무리마다 만난 부위는 달랐지만, 들은 말은 똑같이 ‘코끼리는 이렇다’였습니다. 뒤에서 왕이 물을 때 이들의 대답은 서로 갈라집니다.

묵상

작은 경험 하나가 전체를 다 아는 것 같은 확신으로 이어졌던 적이 있나요? 그 확신과 실제로 겪은 것의 크기를 나란히 놓아 보면 어떨까요? 둘 사이의 틈을 알아차릴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수행자들이여, 그 사람은 눈먼 이들에게 코끼리를 보여 준 뒤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저 눈먼 이들이 코끼리를 보았습니다. 이제 때를 보아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Atha kho, bhikkhave, so puriso jaccandhānaṁ hatthiṁ dassetvā yena so rāj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aṁ rājānaṁ etadavoca: ‘diṭṭho kho tehi, deva, jaccandhehi hatthī; yassadāni kālaṁ maññasī’ti.

우다나 Ud 6.4 빠타마나나띳티야 숫따 (여러 다른 교단 사람들, 첫째)

배경

코끼리를 보여 준 그 사람이 왕에게 돌아가 알리는 짧은 대목입니다. 그는 눈먼 이들이 코끼리를 ‘보았다’고 아뢰고, 이제 때를 보아 좋으실 대로 하시라고 왕에게 청합니다. 나면서부터 눈먼 이들인데도 ‘보았다’는 말이 그대로 쓰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왕이 눈먼 이들을 찾아가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묻습니다.

묵상

‘보았다’는 말과 ‘겪어 보았다’는 말이 서로 다르게 느껴진 적이 있나요? 두 말의 차이를 가만히 짚어 보면 어떨까요? 평소 내가 쓰는 ‘안다’는 말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수행자들이여, 그때 왕은 눈먼 이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눈먼 이들이여, 그대들은 코끼리를 보았는가?’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저희는 코끼리를 보았습니다.’ ‘눈먼 이들이여, 말해 보게. 코끼리는 어떻게 생겼는가?’

Atha kho, bhikkhave, so rājā yena te jaccandh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e jaccandhe etadavoca: ‘diṭṭho vo, jaccandhā, hatthī’ti? ‘Evaṁ, deva, diṭṭho no hatthī’ti. ‘Vadetha, jaccandhā, kīdiso hatth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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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에서 왕의 명을 받은 사람이 눈먼 이들에게 코끼리의 서로 다른 부위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왕이 직접 눈먼 이들에게 다가가 코끼리를 보았는지 묻고, 그들은 보았다고 답합니다. 왕이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보라고 하자, 이어지는 대목에서 아홉 가지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옵니다.

묵상

‘그렇다, 나는 안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가 나중에 그것이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은 적이 있나요? 그것을 알아차린 때는 언제, 무엇 때문이었나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먼저 물어보고 싶나요?

수행자들이여, 코끼리의 머리를 본 눈먼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항아리 같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코끼리의 귀를 본 눈먼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곡식을 까부르는 키 같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코끼리의 상아를 본 눈먼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쟁기 날 같습니다.’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sīsaṁ diṭṭhaṁ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kumbho’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kaṇṇo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suppo’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danto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khīlo’ti.

우다나 Ud 6.4 빠타마나나띳티야 숫따 (여러 다른 교단 사람들, 첫째)

배경

아홉 무리가 저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코끼리의 머리를 본 눈먼 이들은 코끼리가 항아리 같다고, 귀를 본 이들은 곡식을 까부르는 키 같다고, 상아를 본 이들은 쟁기 날 같다고 왕에게 말합니다. 저마다 자기가 본 한 부위의 생김새로 코끼리 전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묵상

내가 겪은 작은 경험을 두고 ‘이것이 전부다’라고 이름 붙였던 순간이 있나요? 그 이름이 실제로 가리키는 것과 얼마나 가까웠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다른 이름을 붙인 사람의 말도 함께 들어 보면 무엇이 더해질까요?

수행자들이여, 코끼리의 코를 본 눈먼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쟁기 채 같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코끼리의 몸통을 본 눈먼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곳간 같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코끼리의 다리를 본 눈먼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기둥 같습니다.’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soṇḍo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naṅgalīsā’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kāyo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koṭṭho’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pādo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thūṇo’ti.

우다나 Ud 6.4 빠타마나나띳티야 숫따 (여러 다른 교단 사람들, 첫째)

배경

코끼리의 코를 본 눈먼 이들은 코끼리가 쟁기 채 같다고, 몸통을 본 이들은 곳간 같다고, 다리를 본 이들은 기둥 같다고 왕에게 말합니다. 앞에서 나온 세 대답처럼 이들도 자기가 본 부위의 크기와 모양으로 코끼리 전체를 말합니다. 대답이 여섯 가지로 쌓이면서 코끼리 하나를 두고 서로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이어지는 세 대답으로 아홉 가지가 채워집니다.

묵상

같은 사건을 두고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기억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 차이를 틀렸다고만 여기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 그 일을 보았을지 헤아려 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코끼리의 넓적다리를 본 눈먼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절구 같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코끼리의 꼬리를 본 눈먼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절굿공이 같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코끼리의 꼬리털 끝을 본 눈먼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빗자루 같습니다.’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satthi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udukkhalo’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naṅguṭṭhaṁ diṭṭhaṁ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musalo’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vāladhi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sammajjanī’ti.

우다나 Ud 6.4 빠타마나나띳티야 숫따 (여러 다른 교단 사람들, 첫째)

배경

넓적다리를 본 눈먼 이들은 코끼리가 절구 같다고, 꼬리를 본 이들은 절굿공이 같다고, 꼬리털 끝을 본 이들은 빗자루 같다고 말하며 아홉 가지 대답이 모두 나옵니다. 항아리에서 빗자루까지, 아홉 대답에 나온 것은 모두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것들입니다. 눈먼 이들은 자기가 아는 물건에 빗대어 설명했고, 아홉 대답은 서로 들어맞지 않은 채 다음 장면에서 부딪힙니다.

묵상

내가 아는 만큼, 겪은 만큼으로 성실하게 설명했지만 다른 사람과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경험이 있나요? 그럴 때 무엇이 더 필요했을까요? 서로 다른 설명을 한자리에 놓고 맞춰 볼 여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코끼리는 이렇다, 이렇지 않다. 이렇지 않다, 이렇다’ 하며 그들은 서로 주먹으로 치고받았다. 수행자들이여, 그 일로 왕은 기뻐했다.

Te ‘ediso hatthī, nediso hatthī; nediso hatthī, ediso hatthī’ti aññamaññaṁ muṭṭhīhi saṁsumbhiṁsu. Tena ca pana, bhikkhave, so rājā attamano ahosi.

우다나 Ud 6.4 빠타마나나띳티야 숫따 (여러 다른 교단 사람들, 첫째)

배경

아홉 무리의 말다툼이 주먹질로 번지는 장면입니다. 앞에서 여러 견해를 두고 다투던 떠돌이 수행자들은 ‘이것이 진리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하고 말했는데, 여기서는 눈먼 이들이 같은 틀로 ‘코끼리는 이렇다, 이렇지 않다’ 하고 말합니다. 왕은 이 싸움을 보고 기뻐했고, 이어지는 대목에서 부처님께서 이 비유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직접 말씀하십니다.

묵상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다투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과 함께 묘한 흥미를 느낀 적이 있나요? 그 다툼을 지켜보는 나의 자리는 어디쯤이었을까요? 구경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양쪽 말을 다시 들어 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4 한 조각만 보는 사람들 2구절

부처님께서 비유를 외도들의 다툼에 그대로 겹쳐 밝히시고, 짧은 노래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십니다.

수행자들이여, 이처럼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떠돌이 수행자들도 눈이 멀어 볼 수 없다. 그들은 이로운 것을 알지 못하고 이롭지 않은 것을 알지 못하며, 진리를 알지 못하고 진리가 아닌 것을 알지 못한다. 이로운 것과 이롭지 않은 것,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을 알지 못하기에 다투고 싸우고 언쟁하며 ‘이것이 진리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것이 진리다’ 하고 입의 창으로 서로를 찌르며 지낸다.

Evamevaṁ kho,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andhā acakkhukā. Te atthaṁ na jānanti anatthaṁ na jānanti, dhammaṁ na jānanti adhammaṁ na jānanti. Te atthaṁ ajānantā anatthaṁ ajānantā, dhammaṁ ajānantā adhammaṁ ajānantā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ṁ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ediso dhammo, nediso dhammo; nediso dhammo, ediso dhammo’”ti.

우다나 Ud 6.4 빠타마나나띳티야 숫따 (여러 다른 교단 사람들, 첫째)

배경

눈먼 이들과 코끼리 이야기를 마치신 뒤, 부처님께서 이 비유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밝히십니다. ‘이처럼’이라는 말로 코끼리를 두고 다투던 눈먼 이들과 진리를 두고 다투던 떠돌이 수행자들을 겹쳐 놓으십니다. 비유를 들기 전에 하신 말씀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하시지만, 코끼리 이야기를 거친 뒤라 그림이 더 또렷합니다. 그들은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기 때문에 입의 창으로 서로를 찌르며 다툽니다.

묵상

코끼리 이야기를 들은 지금,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부분만 보고 전체를 안다고 여긴 자리가 있는지 떠올려 볼 수 있나요? 그 자리를 찾았다면, 오늘은 그것을 조금 내려놓아 볼 수 있을까요?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 뜻을 아시고 그 자리에서 이 감흥의 노래를 읊으셨다.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사마나)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브라흐마나)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런 것들에 집착한다고 하니, 그것을 붙들고 서로 다투는 이들은 한 부분만 보는 사람들이다.’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ṁ viditvā tāyaṁ velāyaṁ imaṁ udānaṁ udānesi: “Imesu kira sajjanti, eke samaṇabrāhmaṇā; Viggayha naṁ vivadanti, janā ekaṅgadassino”ti.

우다나 Ud 6.4 빠타마나나띳티야 숫따 (여러 다른 교단 사람들, 첫째)

배경

부처님께서 이야기 전체를 짧은 감흥의 노래(우다나)로 마무리하십니다. ‘이런 것들에 집착한다’는 말은 세상이 영원한가, 끝이 있는가처럼 앞에서 나온 여러 견해에 들러붙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한 부분만 보는 사람들’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견해를 두고 벌어진 다툼도, 눈먼 이들과 코끼리 이야기도 하나의 그림으로 묶습니다.

묵상

이 노래의 마지막 구절, ‘한 부분만 보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지금 내게 어떻게 다가오나요? 오늘 하루 중 어느 순간에 이 말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손을 조금 더 뻗어 다른 부분도 만져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