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 삿짜위방가경

맛지마 니까야 MN 141

사리뿟따가 괴로움·발생·소멸·길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와 여덟 갈래 길을 항목마다 자세히 분석한다.

인용된 가르침 36구절

이 경을 8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네 가지 진리를 맡겨 설명하다 8구절

세존께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밝히고 사리뿟따에게 상세한 분석을 맡기는 장면입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수행자들이여” 하고 부르시자 수행자들이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bārāṇasiyaṁ viharati isipatane migadāy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이 대목은 진리 분석경의 도입부로, 세존께서 이시빠따나에서 굴린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밝히고 사리뿟따가 그것을 자세히 분석하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장면입니다. 원문은 세존의 선언, 두 수제자의 서로 다른 역할, 사리뿟따의 설법 시작을 차례로 배치합니다. 이 구조를 보면 뒤의 긴 정의들이 별개의 교리 목록이 아니라 최초의 네 진리를 다시 풀어 밝히는 설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화의 도입과 이어지는 발화를 카드 경계에서 나누기 위해 편집자 생략 ‘…’ 1곳을 양쪽 인용의 같은 위치에 표시했습니다. 첫 장면은 장소와 화자·청자의 응답을 빠짐없이 밝힙니다. 뒤의 설법이 최초 설법의 장소에서 다시 이루어진다는 점이 경 전체의 분석과 연결됩니다.

묵상

중요한 설명을 듣기 전에 장소와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의 관계를 확인하면 이해가 달라지나요? 특별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 짧은 도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 “수행자들이여, 여래·아라한·완전히 깨달은 이는 바라나시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에서 수행자·바라문·신·마라·브라흐마를 비롯한 세상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렸느니라. 그것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가르치고·설명하고·세우고·열어 보이고·분석하고·드러내는 일이니라. 어떤 네 가지인가?”

… “Tathāgatena, bhikkhave, arahatā sammāsambuddhena bārāṇasiyaṁ isipatane migadāye anuttaraṁ dhammacakkaṁ pavattitaṁ appaṭivattiyaṁ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ṁ, yadidaṁ— catunnaṁ ariyasaccānaṁ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ṁ. Katamesaṁ catun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이 대목은 진리 분석경의 도입부로, 세존께서 이시빠따나에서 굴린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밝히고 사리뿟따가 그것을 자세히 분석하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장면입니다. 원문은 세존의 선언, 두 수제자의 서로 다른 역할, 사리뿟따의 설법 시작을 차례로 배치합니다. 이 구조를 보면 뒤의 긴 정의들이 별개의 교리 목록이 아니라 최초의 네 진리를 다시 풀어 밝히는 설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화의 도입과 이어지는 발화를 카드 경계에서 나누기 위해 편집자 생략 ‘…’ 1곳을 양쪽 인용의 같은 위치에 표시했습니다. 세존의 선언은 되돌릴 수 없는 범위를 다섯 부류로 밝히고, 수레바퀴를 네 진리를 가리킴·가르침·설명·세움·열어 보임·분석·드러냄의 일곱 활동으로 정의한 뒤 “어떤 네 가지인가”라고 묻습니다.

묵상

되돌릴 수 없는 가르침을 일곱 가지 설명 활동으로 풀어낸 대목에서 어느 동사가 가장 또렷하게 들리나요? 모두 구별해 기억할 필요는 없어요. 가리킴에서 드러냄까지 이어지는 흐름 가운데 지금 더 살펴보고 싶은 한 표현이 있나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가르치고·설명하고·세우고·열어 보이고·분석하고·드러내는 일,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가르치고·설명하고·세우고·열어 보이고·분석하고·드러내는 일,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가르치고·설명하고·세우고·열어 보이고·분석하고·드러내는 일,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가르치고·설명하고·세우고·열어 보이고·분석하고·드러내는 일이다.”

Dukkhassa ariyasaccassa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ṁ, dukkhasamudayassa ariyasaccassa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ṁ, dukkhanirodhassa ariyasaccassa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ṁ,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ariyasaccassa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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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 대목은 진리 분석경의 도입부로, 세존께서 이시빠따나에서 굴린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밝히고 사리뿟따가 그것을 자세히 분석하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장면입니다. 원문은 세존의 선언, 두 수제자의 서로 다른 역할, 사리뿟따의 설법 시작을 차례로 배치합니다. 이 구조를 보면 뒤의 긴 정의들이 별개의 교리 목록이 아니라 최초의 네 진리를 다시 풀어 밝히는 설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앞 질문의 답으로 괴로움·발생·소멸·길을 차례로 들며, 네 진리마다 같은 일곱 동사를 되풀이합니다. 반복은 네 진리를 같은 무게로 밝히는 구조입니다.

묵상

괴로움·발생·소멸·길을 같은 방식으로 가리키고 설명하는 반복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네 항목 중 하나만 중요하다고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내게 가장 먼저 분명히 알고 싶은 항목은 어느 것인가요?

“수행자들이여, 여래·아라한·완전히 깨달은 이는 바라나시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에서 수행자·바라문·신·마라·브라흐마를 비롯한 세상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렸느니라. 그것은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 가르치고, 설명하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분석하고, 드러내는 일이니라.”

Tathāgatena, bhikkhave, arahatā sammāsambuddhena bārāṇasiyaṁ isipatane migadāye anuttaraṁ dhammacakkaṁ pavattitaṁ appaṭivattiyaṁ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ṁ, yadidaṁ— imesaṁ catunnaṁ ariyasaccānaṁ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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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 대목은 진리 분석경의 도입부로, 세존께서 이시빠따나에서 굴린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밝히고 사리뿟따가 그것을 자세히 분석하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장면입니다. 원문은 세존의 선언, 두 수제자의 서로 다른 역할, 사리뿟따의 설법 시작을 차례로 배치합니다. 이 구조를 보면 뒤의 긴 정의들이 별개의 교리 목록이 아니라 최초의 네 진리를 다시 풀어 밝히는 설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앞 선언을 다시 적되 이번에는 “이 네 가지”라고 받아 요약합니다. 반복은 다음에 두 수제자를 소개하기 전, 설법의 주제가 네 진리임을 한 번 더 고정합니다.

묵상

같은 핵심을 되풀이해 들을 때 지루함보다 처음 놓친 세부가 보인 적이 있나요? 반복을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번 문장에서 “되돌릴 수 없음”과 “분석함” 가운데 어느 말이 더 남나요?

“수행자들이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가까이하라. 수행자들이여, 그들과 사귀어라. 그 지혜로운 수행자들은 함께 수행하는 이들을 돕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사리뿟따는 낳는 이와 같고 목갈라나는 기르는 이와 같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사리뿟따는 수다원으로, 목갈라나는 가장 높은 목표로 이끄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사리뿟따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자세히 가리키고, 가르치고, 설명하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분석하고, 드러낼 수 있느니라.”

Sevatha, bhikkhave, sāriputtamoggallāne; bhajatha, bhikkhave, sāriputtamoggallāne. Paṇḍitā bhikkhū anuggāhakā sabrahmacārīnaṁ. Seyyathāpi, bhikkhave, janetā, evaṁ sāriputto; seyyathāpi jātassa āpādetā, evaṁ moggallāno. Sāriputto, bhikkhave, sotāpattiphale vineti, moggallāno uttamatthe. Sāriputto, bhikkhave, pahoti cattāri ariyasaccāni vitthārena ācikkhituṁ desetuṁ paññāpetuṁ paṭṭhapetuṁ vivarituṁ vibhajituṁ uttānīkāt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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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 대목은 진리 분석경의 도입부로, 세존께서 이시빠따나에서 굴린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밝히고 사리뿟따가 그것을 자세히 분석하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장면입니다. 원문은 세존의 선언, 두 수제자의 서로 다른 역할, 사리뿟따의 설법 시작을 차례로 배치합니다. 이 구조를 보면 뒤의 긴 정의들이 별개의 교리 목록이 아니라 최초의 네 진리를 다시 풀어 밝히는 설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제자의 역할을 낳음과 기름의 비유로 구별한 뒤, 사리뿟따가 맡을 상세 분석의 자격을 밝힙니다. 한 사람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역할을 지우지 않는 병렬 구조입니다.

묵상

배움을 시작하도록 이끈 사람과 그 배움을 더 깊게 키워 준 사람이 서로 달랐던 경험이 있나요? 꼭 두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지금 내게 필요한 도움은 시작을 돕는 쪽인지 깊어지게 하는 쪽인지 살펴볼까요?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처소로 들어가셨다. 세존께서 떠나신 지 오래되지 않아 사리뿟따 존자가 수행자들에게 “벗 수행자들이여” 하고 부르자 그들이 “벗이여” 하고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

Idamavoca bhagavā. Idaṁ vatvāna sugato uṭṭhāyāsanā vihāraṁ pāvisi. Tatra kho āyasmā sāriputto acirapakkantassa bhagavato bhikkhū āmantesi: “āvuso bhikkhave”ti. “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paccassosuṁ. Āyasmā sāriputto etadavo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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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 대목은 진리 분석경의 도입부로, 세존께서 이시빠따나에서 굴린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밝히고 사리뿟따가 그것을 자세히 분석하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장면입니다. 원문은 세존의 선언, 두 수제자의 서로 다른 역할, 사리뿟따의 설법 시작을 차례로 배치합니다. 이 구조를 보면 뒤의 긴 정의들이 별개의 교리 목록이 아니라 최초의 네 진리를 다시 풀어 밝히는 설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화의 도입과 이어지는 발화를 카드 경계에서 나누기 위해 편집자 생략 ‘…’ 1곳을 양쪽 인용의 같은 위치에 표시했습니다. 화자가 세존에서 사리뿟따로 바뀌는 전환을 온전히 담았습니다. “오래되지 않아”라는 시간과 서로를 “벗”이라 부르는 호칭이 뒤 설법의 직접 문맥을 이룹니다.

묵상

가르침이 한 사람의 선언에서 다른 사람의 자세한 설명으로 이어질 때 무엇을 확인하면 좋을까요? 권위를 비교하라는 뜻은 아니에요. 말의 출처와 설명자의 역할을 구별하는 일이 이해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 “벗들이여, 여래·아라한·완전히 깨달은 이는 바라나시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에서 수행자·바라문·신·마라·브라흐마를 비롯한 세상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렸다. 그것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가르치고·설명하고·세우고·열어 보이고·분석하고·드러내는 일이다. 어떤 네 가지인가?”

… “Tathāgatena, āvuso, arahatā sammāsambuddhena bārāṇasiyaṁ isipatane migadāye anuttaraṁ dhammacakkaṁ pavattitaṁ appaṭivattiyaṁ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ṁ, yadidaṁ— catunnaṁ ariyasaccānaṁ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ṁ. Katamesaṁ catunn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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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 대목은 진리 분석경의 도입부로, 세존께서 이시빠따나에서 굴린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밝히고 사리뿟따가 그것을 자세히 분석하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장면입니다. 원문은 세존의 선언, 두 수제자의 서로 다른 역할, 사리뿟따의 설법 시작을 차례로 배치합니다. 이 구조를 보면 뒤의 긴 정의들이 별개의 교리 목록이 아니라 최초의 네 진리를 다시 풀어 밝히는 설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화의 도입과 이어지는 발화를 카드 경계에서 나누기 위해 편집자 생략 ‘…’ 1곳을 양쪽 인용의 같은 위치에 표시했습니다. 사리뿟따는 세존의 선언을 되받아 되돌릴 수 없는 다섯 부류와 네 진리를 밝히는 일곱 활동을 다시 온전히 말한 뒤 “어떤 네 가지인가”라고 묻습니다.

묵상

사리뿟따가 세존의 선언을 같은 구조로 되받는 장면에서 무엇이 눈에 들어오나요? 단순 반복으로 느껴져도 괜찮아요. 듣고 맡은 가르침을 자기 설명의 출발점으로 삼는 방식이 이해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가르치고·설명하고·세우고·열어 보이고·분석하고·드러내는 일,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가르치고·설명하고·세우고·열어 보이고·분석하고·드러내는 일,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가르치고·설명하고·세우고·열어 보이고·분석하고·드러내는 일,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가르치고·설명하고·세우고·열어 보이고·분석하고·드러내는 일이다.”

Dukkhassa ariyasaccassa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ṁ, dukkhasamudayassa ariyasaccassa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ṁ, dukkhanirodhassa ariyasaccassa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ṁ,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ariyasaccassa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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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 대목은 진리 분석경의 도입부로, 세존께서 이시빠따나에서 굴린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밝히고 사리뿟따가 그것을 자세히 분석하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장면입니다. 원문은 세존의 선언, 두 수제자의 서로 다른 역할, 사리뿟따의 설법 시작을 차례로 배치합니다. 이 구조를 보면 뒤의 긴 정의들이 별개의 교리 목록이 아니라 최초의 네 진리를 다시 풀어 밝히는 설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리뿟따도 괴로움·발생·소멸·길마다 같은 일곱 동사를 되풀이합니다. 뒤의 긴 분석이 네 진리를 서로 다른 무게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이 반복이 고정합니다.

묵상

같은 일곱 활동이 네 진리에 거듭 붙는 이유를 어떻게 읽게 되나요? 모든 반복을 외울 필요는 없어요. 네 진리를 어느 하나의 표어로 줄이지 않고 각각 자세히 밝히는 태도에서 무엇이 남나요?

2 괴로움의 진리와 삶의 조건 9구절

태어남부터 절망까지 괴로움의 항목을 열거하고 각각을 구체적으로 정의합니다.

“벗들이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 태어남·늙음·죽음이 괴로움이고, 슬픔·비탄·몸의 아픔·마음의 근심·절망도 괴로우며,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함도 괴로움이다. 간추리면 다섯 집착의 무더기가 괴로움이다.”

Katamañcāvuso, dukkhaṁ ariyasaccaṁ?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maraṇampi dukkha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pi dukkhā,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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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사리뿟따는 첫째 성스러운 진리를 한 문장으로만 선언하지 않고 태어남·늙음·죽음, 슬픔·비탄·몸의 아픔·마음의 근심·절망을 차례로 정의합니다. 각 항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구체적인 특징, “이것이라 한다”는 결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반복은 서로 가까워 보이는 경험을 하나로 뭉개지 않고 몸과 마음, 사건과 반응의 층위를 구별하게 하며,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첫째 진리의 전체 목차입니다. 병듦은 이 문장에 따로 열거되지 않지만 뒤의 바람 대목에는 나오므로, 현재 카드에는 공급된 원문 범위만 옮겼습니다.

묵상

이 목록을 읽을 때 사건인 태어남·늙음·죽음과 마음의 반응인 슬픔·비탄·근심·절망이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힘든 기억을 꺼낼 필요는 없어요. 구별이 보이지 않으면 목록의 순서만 살펴도 괜찮을까요?

“벗들이여, 태어남이란 무엇인가? 여러 존재 무리에서 갖가지 존재가 태어나고 생겨나고 들어서고 다시 생겨나며, 무더기들이 나타나고 감각 영역들을 얻는 것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태어남이라 한다.”

Katamā cāvuso, jāti? Yā tesaṁ tesaṁ sattānaṁ tamhi tamhi sattanikāye jāti sañjāti okkanti abhinibbatti khandhānaṁ pātubhāvo āyatanānaṁ paṭilābho, ayaṁ vuccatāvuso: ‘j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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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사리뿟따는 첫째 성스러운 진리를 한 문장으로만 선언하지 않고 태어남·늙음·죽음, 슬픔·비탄·몸의 아픔·마음의 근심·절망을 차례로 정의합니다. 각 항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구체적인 특징, “이것이라 한다”는 결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반복은 서로 가까워 보이는 경험을 하나로 뭉개지 않고 몸과 마음, 사건과 반응의 층위를 구별하게 하며,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태어남을 한순간의 출산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존재의 출현, 무더기들의 나타남, 감각 영역의 획득이라는 여러 표현으로 풉니다.

묵상

“태어남”을 무더기와 감각 영역이 나타나는 일로 설명한 문장이 평소의 이해와 어떻게 다른가요? 바로 납득하거나 개인 경험과 연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러 표현 가운데 가장 구체적으로 들리는 것은 무엇인가요?

“벗들이여, 늙음이란 무엇인가? 여러 존재 무리에서 갖가지 존재가 늙고 쇠하며, 이가 부서지고 머리가 희어지고 살갗에 주름이 생기며, 수명이 줄고 감각 기능이 쇠퇴하는 것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늙음이라 한다.”

Katamā cāvuso, jarā? Yā tesaṁ tesaṁ sattānaṁ tamhi tamhi sattanikāye jarā jīraṇatā khaṇḍiccaṁ pāliccaṁ valittacatā āyuno saṁhāni indriyānaṁ paripāko, ayaṁ vuccatāvuso: ‘jar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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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뿟따는 첫째 성스러운 진리를 한 문장으로만 선언하지 않고 태어남·늙음·죽음, 슬픔·비탄·몸의 아픔·마음의 근심·절망을 차례로 정의합니다. 각 항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구체적인 특징, “이것이라 한다”는 결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반복은 서로 가까워 보이는 경험을 하나로 뭉개지 않고 몸과 마음, 사건과 반응의 층위를 구별하게 하며,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늙음을 추상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몸과 수명, 감각 기능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변화로 열거합니다. 목록의 항목을 줄이지 않고 같은 순서로 옮겼습니다.

묵상

늙음을 생각할 때 외모의 변화, 수명의 감소, 감각 기능의 쇠퇴 가운데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리나요? 불안을 억지로 마주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안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한 표현만 골라도 괜찮을까요?

“벗들이여, 죽음이란 무엇인가? 여러 존재 무리에서 갖가지 존재가 떠나고 옮겨 가고 무너지며 사라지고, 죽어 목숨을 마치며, 무더기들이 흩어지고 몸이 놓이며 생명 기능이 끊어지는 것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죽음이라 한다.”

Katamañcāvuso, maraṇaṁ? Yā tesaṁ tesaṁ sattānaṁ tamhā tamhā sattanikāyā cuti cavanatā bhedo antaradhānaṁ maccu maraṇaṁ kālaṅkiriyā khandhānaṁ bhedo kaḷevarassa nikkhepo jīvitindriyassupacchedo, idaṁ vuccatāvuso: ‘maraṇ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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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뿟따는 첫째 성스러운 진리를 한 문장으로만 선언하지 않고 태어남·늙음·죽음, 슬픔·비탄·몸의 아픔·마음의 근심·절망을 차례로 정의합니다. 각 항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구체적인 특징, “이것이라 한다”는 결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반복은 서로 가까워 보이는 경험을 하나로 뭉개지 않고 몸과 마음, 사건과 반응의 층위를 구별하게 하며,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죽음을 사라짐이라는 한 말로 줄이지 않고 존재 무리에서 떠남, 무더기의 해체, 몸의 놓임, 생명 기능의 끊김으로 나누어 정의합니다.

묵상

이 대목은 죽음을 직접 다루므로 지금 벅차다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을 수 있다면 여러 표현 가운데 사실을 가장 담담하게 가리키는 말은 무엇으로 느껴지나요? 답하지 않고 잠시 멈추어도 될까요?

“벗들이여, 슬픔이란 무엇인가? 벗들이여, 어떤 불행을 겪고 괴로운 일에 닿은 사람에게 생기는 슬픔과 슬퍼함, 슬퍼하는 상태, 마음속 슬픔과 깊은 속슬픔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슬픔이라 한다.”

Katamo cāvuso, soko? Yo kho, āvuso, aññataraññatarena byasanena samannāgatassa aññataraññatarena dukkhadhammena phuṭṭhassa soko socanā socitattaṁ antosoko antoparisoko, ayaṁ vuccatāvuso: ‘so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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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뿟따는 첫째 성스러운 진리를 한 문장으로만 선언하지 않고 태어남·늙음·죽음, 슬픔·비탄·몸의 아픔·마음의 근심·절망을 차례로 정의합니다. 각 항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구체적인 특징, “이것이라 한다”는 결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반복은 서로 가까워 보이는 경험을 하나로 뭉개지 않고 몸과 마음, 사건과 반응의 층위를 구별하게 하며,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슬픔은 불행과 괴로운 일을 조건으로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상태로 정의됩니다. 같은 어근을 되풀이해 감정의 여러 깊이를 드러냅니다.

묵상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는 때와 마음속 깊이 머무는 때가 서로 다르게 느껴지나요? 감정을 분석하거나 줄일 필요는 없어요. 지금 살피는 일이 버겁다면 이 질문을 건너뛰고 필요한 돌봄을 먼저 선택해도 괜찮을까요?

“벗들이여, 비탄이란 무엇인가? 벗들이여, 어떤 불행을 겪고 괴로운 일에 닿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울부짖음과 탄식, 울부짖고 탄식함, 울부짖은 상태와 탄식한 상태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비탄이라 한다.”

Katamo cāvuso, paridevo? Yo kho, āvuso, aññataraññatarena byasanena samannāgatassa aññataraññatarena dukkhadhammena phuṭṭhassa ādevo paridevo ādevanā paridevanā ādevitattaṁ paridevitattaṁ, ayaṁ vuccatāvuso: ‘paridevo’.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사리뿟따는 첫째 성스러운 진리를 한 문장으로만 선언하지 않고 태어남·늙음·죽음, 슬픔·비탄·몸의 아픔·마음의 근심·절망을 차례로 정의합니다. 각 항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구체적인 특징, “이것이라 한다”는 결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반복은 서로 가까워 보이는 경험을 하나로 뭉개지 않고 몸과 마음, 사건과 반응의 층위를 구별하게 하며,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비탄은 앞의 마음속 슬픔과 달리 소리와 표현으로 드러나는 울부짖음과 탄식에 초점을 둡니다. 두 항목을 구별하면서도 같은 불행과 괴로움을 조건으로 둡니다.

묵상

슬픔이 말이나 울음으로 나올 때와 속에 머물 때 필요한 돌봄이 달랐던 적이 있나요? 어느 표현 방식이 더 낫다고 정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나나 곁의 사람에게 필요한 안전한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벗들이여, 몸의 아픔이란 무엇인가? 벗들이여, 몸에서 생기는 아픔과 불편함, 몸의 접촉에서 생겨나는 아프고 불편한 느낌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몸의 아픔이라 한다.”

Katamañcāvuso, dukkhaṁ? Yaṁ kho, āvuso, kāyikaṁ dukkhaṁ kāyikaṁ asātaṁ kāyasamphassajaṁ dukkhaṁ asātaṁ vedayitaṁ, idaṁ vuccatāvuso: ‘dukkh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사리뿟따는 첫째 성스러운 진리를 한 문장으로만 선언하지 않고 태어남·늙음·죽음, 슬픔·비탄·몸의 아픔·마음의 근심·절망을 차례로 정의합니다. 각 항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구체적인 특징, “이것이라 한다”는 결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반복은 서로 가까워 보이는 경험을 하나로 뭉개지 않고 몸과 마음, 사건과 반응의 층위를 구별하게 하며,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원문의 dukkha를 여기서는 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으로 한정합니다. 뒤의 마음의 근심과 대조되므로 두 경험을 같은 말로 뭉개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묵상

몸의 아픔을 느낄 때 감각 자체와 그에 관한 생각을 잠시 구별할 수 있나요? 통증을 참거나 마음으로 해결하라는 뜻은 아니에요. 치료나 도움을 먼저 구하면서도 몸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범위를 살펴볼 수 있을까요?

“벗들이여, 마음의 근심이란 무엇인가? 벗들이여, 마음에서 생기는 아픔과 불편함, 마음의 접촉에서 생겨나는 아프고 불편한 느낌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마음의 근심이라 한다.”

Katamañcāvuso, domanassaṁ? Yaṁ kho, āvuso, cetasikaṁ dukkhaṁ cetasikaṁ asātaṁ manosamphassajaṁ dukkhaṁ asātaṁ vedayitaṁ, idaṁ vuccatāvuso: ‘domanass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사리뿟따는 첫째 성스러운 진리를 한 문장으로만 선언하지 않고 태어남·늙음·죽음, 슬픔·비탄·몸의 아픔·마음의 근심·절망을 차례로 정의합니다. 각 항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구체적인 특징, “이것이라 한다”는 결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반복은 서로 가까워 보이는 경험을 하나로 뭉개지 않고 몸과 마음, 사건과 반응의 층위를 구별하게 하며,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몸의 접촉 대신 마음의 접촉에서 생기는 불편한 느낌을 정의합니다. 바로 앞 카드와 문장 구조가 같아 몸의 아픔과 마음의 근심의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묵상

마음이 아플 때 그것을 몸의 통증과 구별해서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있나요? 진단하거나 혼자 감당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구별이 어렵거나 버겁다면 믿을 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가능한 선택일까요?

“벗들이여, 절망이란 무엇인가? 벗들이여, 어떤 불행을 겪고 괴로운 일에 닿은 사람에게 생기는 괴로워함과 절망, 괴로워하고 절망하는 상태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절망이라 한다.”

Katamo cāvuso, upāyāso? Yo kho, āvuso, aññataraññatarena byasanena samannāgatassa aññataraññatarena dukkhadhammena phuṭṭhassa āyāso upāyāso āyāsitattaṁ upāyāsitattaṁ, ayaṁ vuccatāvuso: ‘upāyāso’.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사리뿟따는 첫째 성스러운 진리를 한 문장으로만 선언하지 않고 태어남·늙음·죽음, 슬픔·비탄·몸의 아픔·마음의 근심·절망을 차례로 정의합니다. 각 항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구체적인 특징, “이것이라 한다”는 결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반복은 서로 가까워 보이는 경험을 하나로 뭉개지 않고 몸과 마음, 사건과 반응의 층위를 구별하게 하며,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목록의 마지막 감정 상태는 불행과 괴로운 일에 압도된 절망입니다. 이를 개인의 잘못이나 수행 부족으로 돌리지 않고 조건에 닿아 생기는 경험으로 정의합니다.

묵상

이 문장이 현재 마음에 너무 가깝다면 혼자 답하려 하지 말고 건너뛰거나 도움을 구해도 괜찮아요. 읽을 여유가 있다면 절망을 사람 자체가 아니라 조건에 닿아 생긴 상태로 보는 것이 어떤 차이를 만들까요?

3 바람만으로 피할 수 없는 것 3구절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여러 괴로움을 바라지 않아도 바람만으로 피할 수 없음을 설명합니다.

“벗들이여,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함도 괴로움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벗들이여, 태어날 조건에 놓인 존재에게 ‘우리가 태어날 조건에 놓이지 않고 태어남이 오지 않기를’ 하는 바람이 생긴다. 그러나 바람만으로 이룰 수 없다. 이것이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함도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Katamañcāvuso,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Jātidhammānaṁ, āvuso, sattānaṁ evaṁ icchā uppajjati: ‘aho vata mayaṁ na jāti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jāti āgaccheyyā’ti. Na kho panetaṁ icchāya pattabbaṁ. Idampi: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괴로움의 개별 정의 뒤에는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함”과 다섯 취착의 무더기라는 요약이 이어집니다. 원문은 태어남에서 절망까지의 조건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 바람만으로는 그 조건을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맞춥니다. 이어 물질·느낌·지각·의지 형성·의식에 대한 취착을 한데 모아 첫째 진리를 닫습니다. 핵심은 바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조건을 정확히 아는 데 있습니다. 첫 사례는 태어남을 피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원문은 바람의 내용과 바람만으로 얻을 수 없다는 한계를 나란히 놓고 그 불일치를 괴로움이라고 부릅니다.

묵상

간절히 바라지만 바람만으로 바꿀 수 없는 조건 앞에서 어떤 마음이 생기나요? 포기하거나 더 노력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바꿀 수 없는 부분과 지금 돌볼 수 있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벗들이여, 늙을 조건에 놓인 존재는 … 벗들이여, 병들 조건에 놓인 존재는 … 벗들이여, 죽을 조건에 놓인 존재는 … 벗들이여, 슬픔·비탄·몸의 아픔·마음의 근심·절망을 겪을 조건에 놓인 존재에게 ‘우리가 그것들을 겪을 조건에 놓이지 않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 하는 바람이 생긴다. 그러나 바람만으로 이룰 수 없다. 이것도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함의 괴로움이다.”

Jarādhammānaṁ, āvuso, sattānaṁ …pe… byādhidhammānaṁ, āvuso, sattānaṁ … maraṇadhammānaṁ, āvuso, sattānaṁ …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adhammānaṁ, āvuso, sattānaṁ evaṁ icchā uppajjati: ‘aho vata mayaṁ na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a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āgaccheyyun’ti. Na kho panetaṁ icchāya pattabbaṁ. Idampi: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괴로움의 개별 정의 뒤에는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함”과 다섯 취착의 무더기라는 요약이 이어집니다. 원문은 태어남에서 절망까지의 조건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 바람만으로는 그 조건을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맞춥니다. 이어 물질·느낌·지각·의지 형성·의식에 대한 취착을 한데 모아 첫째 진리를 닫습니다. 핵심은 바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조건을 정확히 아는 데 있습니다. 빠알리 원문에는 반복 생략 ‘…pe…’ 1곳과 일반 생략 ‘…’ 2곳이 표시되어 있으며, 한국어에는 같은 자리에 ‘…’로 표시했습니다. 늙음·병듦·죽음은 원문에서 생략표로 앞 구조를 되풀이하고, 다섯 괴로움은 바람 전체를 다시 적습니다. 한국어도 생략을 표시해 공급된 원문의 반복 방식과 맞췄습니다.

묵상

피하고 싶은 조건을 떠올리는 일이 지금 힘들다면 이 대목을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살펴볼 수 있다면 “오지 않기를 바람”과 실제로 가능한 돌봄은 어떻게 다르며, 오늘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벗들이여, 간추려 다섯 집착의 무더기가 괴로움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물질·느낌·인식·의지적 형성·의식에 대한 집착의 무더기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간추려 다섯 집착의 무더기가 괴로움이라 한다. 벗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Katame cāvuso,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Seyyathidaṁ—rūpupādānakkhandho, vedanupādānakkhandho, saññupādānakkhandho, saṅkhārupādānakkhandho,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Ime vuccantāvuso: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Idaṁ vuccatāvuso: ‘dukkhaṁ ariyasacc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괴로움의 개별 정의 뒤에는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함”과 다섯 취착의 무더기라는 요약이 이어집니다. 원문은 태어남에서 절망까지의 조건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 바람만으로는 그 조건을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맞춥니다. 이어 물질·느낌·지각·의지 형성·의식에 대한 취착을 한데 모아 첫째 진리를 닫습니다. 핵심은 바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조건을 정확히 아는 데 있습니다. 첫째 진리의 긴 목록을 다섯 취착 무더기로 요약합니다. 단순히 다섯 무더기라고 하지 않고 각각에 대한 취착이 붙어 있다는 원문 표현을 보존했습니다.

묵상

물질·느낌·지각·의지 형성·의식 가운데 “내 것”이라고 가장 단단히 붙드는 것은 무엇으로 느껴지나요? 집착을 당장 버렸는지 묻는 질문은 아니에요.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작은 신호가 있나요?

4 갈애의 발생과 남김없는 소멸 2구절

괴로움의 원인인 세 갈래 갈애와 그 갈애를 놓아 소멸하는 셋째 진리를 설명합니다.

“벗들이여,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무엇인가? 다시 태어남을 낳고 기쁨과 탐욕이 뒤섞여 여기저기에서 즐거워하는 갈애이다. 곧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벗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성스러운 진리이다.”

Katamañcāvuso, dukkhasamudayaṁ ariyasaccaṁ? Yāyaṁ taṇhā ponobbhavikā nandī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ṁ—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idaṁ vuccatāvuso: ‘dukkhasamudayaṁ ariyasacc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첫째 진리를 마친 뒤 사리뿟따는 둘째와 셋째 진리를 서로 대응하도록 설명합니다. 원인은 다시 태어남을 낳고 기쁨과 탐욕을 동반하며 여기저기 즐거워하는 갈애이고, 감각적 즐거움·존재·비존재라는 세 갈래로 나뉩니다. 소멸은 바로 그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고 멎는 것, 내주고 놓아 버리며 풀려나 더 기대지 않는 것입니다. 같은 대상을 발생과 소멸 양쪽에서 보아 실천의 방향을 분명히 합니다. 둘째 진리는 갈애의 세 가지 성질과 세 갈래 대상을 모두 제시합니다. 모든 바람을 갈애라고 넓히지 않고 다시 태어남을 낳는 문맥과 연결해 읽어야 합니다.

묵상

원하는 마음이 여기저기 대상으로 옮겨 가며 즐거움을 찾는 모습을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모든 소망을 잘못이라고 판단할 필요는 없어요. 붙들수록 괴로움이 커지는 한 움직임이 있는지 살펴볼까요?

“벗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무엇인가? 바로 그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고 멎는 것, 내주고 놓아 버리며 풀려나 더 기대지 않는 것이다. 벗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이다.”

Katamañcāvuso, dukkhanirodhaṁ ariyasaccaṁ? 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 idaṁ vuccatāvuso: ‘dukkhanirodhaṁ ariyasacc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첫째 진리를 마친 뒤 사리뿟따는 둘째와 셋째 진리를 서로 대응하도록 설명합니다. 원인은 다시 태어남을 낳고 기쁨과 탐욕을 동반하며 여기저기 즐거워하는 갈애이고, 감각적 즐거움·존재·비존재라는 세 갈래로 나뉩니다. 소멸은 바로 그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고 멎는 것, 내주고 놓아 버리며 풀려나 더 기대지 않는 것입니다. 같은 대상을 발생과 소멸 양쪽에서 보아 실천의 방향을 분명히 합니다. 셋째 진리는 둘째 진리의 “바로 그 갈애”를 대상으로 삼습니다. 소멸·내줌·놓음·풀림·기대지 않음의 여러 동사를 나란히 두어 소멸의 뜻을 한 방향으로 분명히 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붙들던 힘이 잠시 약해져 마음이 가벼워진 경험이 있나요? 완전한 소멸이나 특별한 성취를 찾을 필요는 없어요. 내줌·놓음·풀림 가운데 그 경험에 가장 가까운 표현은 무엇인가요?

5 여덟 갈래 길의 생활 기준 6구절

바른 견해부터 바른 생계까지 길의 앞 다섯 요소를 구체적인 앎과 삼감으로 풉니다.

“벗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무엇인가? 바로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이다. 곧 바른 견해·바른 의도·바른 말·바른 행위·바른 생계·바른 노력·바른 알아차림·바른 집중이다.”

Katamañcāvuso,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ṁ?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ṁ—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넷째 진리는 여덟 갈래 길의 이름을 열거한 뒤 각 요소를 다시 정의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바른 견해는 네 진리에 대한 앎이고, 바른 의도는 놓아 버림·악의 없음·해치지 않음이며, 바른 말과 행위는 구체적인 네 가지 말과 세 가지 행위를 삼가는 것입니다. 바른 생계는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 가는 일입니다. 목록을 실제 앎과 선택으로 풀어 길이 추상적인 표어에 머물지 않게 합니다. 넷째 진리의 목차로 여덟 요소를 순서대로 열거합니다. 뒤의 설명도 이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므로 길의 각 요소를 분리하면서 전체의 연결을 놓치지 않게 합니다.

묵상

여덟 요소 가운데 이미 생활에서 조금 익숙한 것과 가장 낯선 것은 무엇인가요? 모두 한꺼번에 갖추었는지 평가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늘 한 요소를 더 주의 깊게 살핀다면 무엇을 고르고 싶나요?

“벗들이여,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벗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앎,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앎,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앎,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한 앎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바른 견해라 한다.”

Katamā cāvuso, sammādiṭṭhi? Yaṁ kho, āvuso, dukkhe ñāṇaṁ, dukkhasamudaye ñāṇaṁ, dukkhanirodhe ñāṇaṁ,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ñāṇaṁ, ayaṁ vuccatāvuso: ‘sammādiṭṭhi’.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넷째 진리는 여덟 갈래 길의 이름을 열거한 뒤 각 요소를 다시 정의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바른 견해는 네 진리에 대한 앎이고, 바른 의도는 놓아 버림·악의 없음·해치지 않음이며, 바른 말과 행위는 구체적인 네 가지 말과 세 가지 행위를 삼가는 것입니다. 바른 생계는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 가는 일입니다. 목록을 실제 앎과 선택으로 풀어 길이 추상적인 표어에 머물지 않게 합니다. 바른 견해를 의견의 목록이 아니라 앞에서 분석한 네 진리에 대한 앎으로 정의합니다. 길의 첫 요소가 경 전체의 네 부분을 다시 한데 묶습니다.

묵상

어려움을 볼 때 현상만 보는지, 원인과 멎을 가능성, 그곳으로 가는 길까지 함께 보는지 살펴본 적이 있나요? 모든 답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네 관점 중 빠뜨리기 쉬운 하나는 무엇인가요?

“벗들이여, 바른 의도란 무엇인가? 놓아 버리려는 의도, 악의 없는 의도, 해치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바른 의도라 한다.”

Katamo cāvuso, sammāsaṅkappo? Nekkhammasaṅkappo, abyāpādasaṅkappo, avihiṁsāsaṅkappo, ayaṁ vuccatāvuso: ‘sammāsaṅkappo’.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넷째 진리는 여덟 갈래 길의 이름을 열거한 뒤 각 요소를 다시 정의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바른 견해는 네 진리에 대한 앎이고, 바른 의도는 놓아 버림·악의 없음·해치지 않음이며, 바른 말과 행위는 구체적인 네 가지 말과 세 가지 행위를 삼가는 것입니다. 바른 생계는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 가는 일입니다. 목록을 실제 앎과 선택으로 풀어 길이 추상적인 표어에 머물지 않게 합니다. 의도를 놓아 버림·악의 없음·비해침의 세 갈래로 정의합니다. 무엇을 얻을지보다 무엇을 덜 붙들고 어떤 해로움을 만들지 않을지가 방향을 정합니다.

묵상

어떤 행동을 앞두고 얻고 싶은 결과보다 놓을 것, 악의를 줄일 것, 해치지 않을 것을 먼저 살펴본 적이 있나요? 완벽한 선의를 요구하지 않아요. 세 방향 중 지금 확인할 수 있는 하나는 무엇인가요?

“벗들이여, 바른 말이란 무엇인가?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며, 쓸모없이 늘어놓는 말을 삼가는 것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한다.”

Katamā cāvuso, sammāvācā? Musāvādā veramaṇī, pisuṇāya vācāya veramaṇī, pharusāya vācāya veramaṇī, samphappalāpā veramaṇī, ayaṁ vuccatāvuso: ‘sammāvācā’.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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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진리는 여덟 갈래 길의 이름을 열거한 뒤 각 요소를 다시 정의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바른 견해는 네 진리에 대한 앎이고, 바른 의도는 놓아 버림·악의 없음·해치지 않음이며, 바른 말과 행위는 구체적인 네 가지 말과 세 가지 행위를 삼가는 것입니다. 바른 생계는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 가는 일입니다. 목록을 실제 앎과 선택으로 풀어 길이 추상적인 표어에 머물지 않게 합니다. 바른 말을 추상적인 친절함이 아니라 삼가야 할 네 종류의 말로 구체화합니다. 사실성, 관계, 말투, 말의 목적이라는 서로 다른 측면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묵상

말하기 전에 사실인지, 사람 사이를 가르는지, 거친지, 꼭 필요한지 가운데 한 가지라도 확인한 적이 있나요? 언제나 침묵하라는 뜻은 아니에요. 지금 가장 자주 놓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벗들이여, 바른 행위란 무엇인가? 살아 있는 존재를 죽이는 일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삼가며, 그릇된 성행위를 삼가는 것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바른 행위라 한다.”

Katamo cāvuso, sammākammanto?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adinnādānā veramaṇī, kāmesumicchācārā veramaṇī, ayaṁ vuccatāvuso: ‘sammākammanto’.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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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진리는 여덟 갈래 길의 이름을 열거한 뒤 각 요소를 다시 정의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바른 견해는 네 진리에 대한 앎이고, 바른 의도는 놓아 버림·악의 없음·해치지 않음이며, 바른 말과 행위는 구체적인 네 가지 말과 세 가지 행위를 삼가는 것입니다. 바른 생계는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 가는 일입니다. 목록을 실제 앎과 선택으로 풀어 길이 추상적인 표어에 머물지 않게 합니다. 몸으로 하는 행위의 기준을 세 가지 삼감으로 정의합니다. 생명, 소유, 성적 관계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타인에게 생길 해로움을 구체적으로 살피게 합니다.

묵상

내 행동이 생명, 다른 사람의 몫, 관계의 신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자신을 재판하듯 과거를 꺼낼 필요는 없어요. 오늘의 작은 선택 하나에서 해로움을 줄일 여지가 있을까요?

“벗들이여, 바른 생계란 무엇인가?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계로 생활을 꾸리는 것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바른 생계라 한다.”

Katamo cāvuso, sammāājīvo? Idhāvuso, ariyasāvako micchāājīvaṁ pahāya sammāājīvena jīvikaṁ kappeti, ayaṁ vuccatāvuso: ‘sammāājīvo’.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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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진리는 여덟 갈래 길의 이름을 열거한 뒤 각 요소를 다시 정의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바른 견해는 네 진리에 대한 앎이고, 바른 의도는 놓아 버림·악의 없음·해치지 않음이며, 바른 말과 행위는 구체적인 네 가지 말과 세 가지 행위를 삼가는 것입니다. 바른 생계는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 가는 일입니다. 목록을 실제 앎과 선택으로 풀어 길이 추상적인 표어에 머물지 않게 합니다. 바른 생계는 직업 이름의 목록보다 그릇된 방식을 버리고 바른 방식으로 삶을 유지하는 전환으로 정의됩니다. 수행을 일과 분리하지 않는 길의 요소입니다.

묵상

생계를 이어 가는 방식에서 나와 다른 사람에게 생기는 영향을 살펴볼 여유가 있나요? 당장 일을 바꾸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현재 자리에서 조금 더 바르게 할 수 있는 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6 바른 노력과 네 가지 알아차림 3구절

해로운 상태와 이로운 상태를 다루는 네 노력, 몸·느낌·마음·현상을 살피는 알아차림을 설명합니다.

“벗들이여, 바른 노력이란 무엇인가? 벗들이여, 수행자는 아직 생기지 않은 해롭고 능숙하지 못한 상태가 생기지 않도록 의욕을 내고 애쓰며 힘을 일으키고 마음을 북돋아 정진한다. 이미 생긴 해롭고 능숙하지 못한 상태를 버리기 위해 의욕을 내고 애쓰며 힘을 일으키고 마음을 북돋아 정진한다.” …

Katamo cāvuso, sammāvāyāmo? Idhāvuso, bhikkhu anuppannānaṁ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anuppādāya chandaṁ janeti vāyamati vīriyaṁ ārabhati cittaṁ paggaṇhāti padahati, uppannānaṁ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pahānāya chandaṁ janeti vāyamati vīriyaṁ ārabhati cittaṁ paggaṇhāti padahati, …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길의 여섯째와 일곱째 요소는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돌보고 관찰하는지를 네 갈래씩 보여 줍니다. 바른 노력은 아직 생기지 않은 해로움을 막고 생긴 해로움을 버리며, 아직 생기지 않은 이로움을 일으키고 생긴 이로움을 유지·성장·완성하는 일입니다. 바른 알아차림은 몸·느낌·마음·현상을 열심히 분명히 알아차리며 관찰하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무엇을 억누르는지보다 생김과 지속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핵심입니다. 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긴 열거를 카드 경계에서 나누기 위해 편집자 생략 ‘…’ 1곳을 양쪽 인용의 같은 위치에 표시했습니다. 네 노력 가운데 앞의 둘은 해로운 상태를 다룹니다.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은 예방하고 이미 생긴 것은 버린다는 시간의 차이를 분명히 합니다.

묵상

해로운 습관이 시작되기 전에 환경을 바꾸는 노력과 이미 시작된 뒤 멈추는 노력 중 어느 쪽이 더 가능한가요? 둘 다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 시도할 수 있는 작은 예방이나 중단 하나가 있을까요?

… “아직 생기지 않은 능숙한 상태가 일어나도록 의욕을 내고 애쓰며 힘을 일으키고 마음을 북돋아 정진한다. 이미 생긴 능숙한 상태가 머물고 잊히지 않으며 더욱 자라고 넓어져 닦임이 완성되도록 의욕을 내고 애쓰며 힘을 일으키고 마음을 북돋아 정진한다. 벗들이여, 이것을 바른 노력이라 한다.”

… anuppannānaṁ kusalānaṁ dhammānaṁ uppādāya chandaṁ janeti vāyamati vīriyaṁ ārabhati cittaṁ paggaṇhāti padahati, uppannānaṁ kusalānaṁ dhammānaṁ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chandaṁ janeti vāyamati vīriyaṁ ārabhati cittaṁ paggaṇhāti padahati, ayaṁ vuccatāvuso: ‘sammāvāyāmo’.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길의 여섯째와 일곱째 요소는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돌보고 관찰하는지를 네 갈래씩 보여 줍니다. 바른 노력은 아직 생기지 않은 해로움을 막고 생긴 해로움을 버리며, 아직 생기지 않은 이로움을 일으키고 생긴 이로움을 유지·성장·완성하는 일입니다. 바른 알아차림은 몸·느낌·마음·현상을 열심히 분명히 알아차리며 관찰하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무엇을 억누르는지보다 생김과 지속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핵심입니다. 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긴 열거를 카드 경계에서 나누기 위해 편집자 생략 ‘…’ 1곳을 양쪽 인용의 같은 위치에 표시했습니다. 뒤의 두 노력은 이로운 상태를 일으키고 유지·성장·완성하는 데 향합니다. 버림만이 아니라 좋은 조건을 만들고 돌보는 일까지 바른 노력에 포함됩니다.

묵상

좋은 마음이나 습관이 잠깐 생겼을 때 그것이 머물고 자라도록 어떤 조건을 마련했나요? 큰 결심을 요구하지 않아요. 이미 있는 작은 이로움을 잊지 않게 해 줄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벗들이여, 바른 알아차림이란 무엇인가? 벗들이여, 수행자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고, 열심히 노력하며 분명히 알고 마음챙기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내려놓는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며 머물고, 열심히 노력하며 분명히 알고 마음챙기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내려놓는다. 벗들이여, 이것을 바른 알아차림이라 한다.”

Katamā cāvuso, sammāsati? Idhāvuso,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pe…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ayaṁ vuccatāvuso: ‘sammāsati’.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길의 여섯째와 일곱째 요소는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돌보고 관찰하는지를 네 갈래씩 보여 줍니다. 바른 노력은 아직 생기지 않은 해로움을 막고 생긴 해로움을 버리며, 아직 생기지 않은 이로움을 일으키고 생긴 이로움을 유지·성장·완성하는 일입니다. 바른 알아차림은 몸·느낌·마음·현상을 열심히 분명히 알아차리며 관찰하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무엇을 억누르는지보다 생김과 지속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핵심입니다. 빠알리 원문에는 반복 생략 ‘…pe…’ 1곳과 일반 생략 ‘…’ 1곳이 표시되어 있으며, 한국어에는 같은 자리에 ‘…’로 표시했습니다. 몸·느낌·마음·현상의 네 영역을 같은 방식으로 관찰합니다. 가운데 두 항목은 원문 자체가 생략표로 줄였으므로 한국어도 두 생략을 유지했습니다.

묵상

지금 몸·느낌·마음·현상 가운데 가장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하나는 무엇인가요? 탐욕이나 근심을 당장 없애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있는 모습을 다른 것으로 바꾸지 않고 잠시 볼 수 있을까요?

7 바르게 마음을 모으는 네 단계 4구절

감각적 즐거움과 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 네 선정으로 깊어지는 바른 삼매를 설명합니다.

“벗들이여, 바른 집중란 무엇인가? 벗들이여, 수행자는 감각적 즐거움에서 떨어지고 해로운 상태에서 떨어져, 사유하고 숙고하며 떨어져 있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

Katamo cāvuso, sammāsamādhi? Idhāvuso,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길의 마지막 요소인 바른 삼매를 네 선정 순서로 푸는 대목입니다. 공급된 원문은 첫째와 둘째를 온전히 적고, 셋째는 희열이 빛바래고 평온히 머문다는 구절 뒤를 생략하며, 넷째도 결구만 남깁니다. 이 생략 구조를 지키면 원문에 직접 남은 변화만 확인하고 빠진 정형구를 직접 인용으로 오해하지 않게 됩니다. 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긴 열거를 카드 경계에서 나누기 위해 편집자 생략 ‘…’ 1곳을 양쪽 인용의 같은 위치에 표시했습니다. 첫째 선정은 무엇에서 떨어지는지와 무엇이 남는지를 함께 말합니다. 감각적 즐거움·해로운 상태와의 분리, 사유·숙고, 그 분리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구성 요소입니다.

묵상

마음이 한곳에 모이기 전에 자극이나 해로운 흐름에서 잠시 거리를 둔 경험이 있나요? 선정을 이루었는지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집중을 돕기 위해 먼저 덜어낼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을까요?

… “사유와 숙고가 고요해지면 내적 확신과 마음의 하나 됨이 있고, 사유와 숙고 없이 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둘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

…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길의 마지막 요소인 바른 삼매를 네 선정 순서로 푸는 대목입니다. 공급된 원문은 첫째와 둘째를 온전히 적고, 셋째는 희열이 빛바래고 평온히 머문다는 구절 뒤를 생략하며, 넷째도 결구만 남깁니다. 이 생략 구조를 지키면 원문에 직접 남은 변화만 확인하고 빠진 정형구를 직접 인용으로 오해하지 않게 됩니다. 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긴 열거를 카드 경계에서 나누기 위해 편집자 생략 ‘…’ 2곳을 양쪽 인용의 같은 위치에 표시했습니다. 둘째 선정에서는 첫째에 있던 사유와 숙고가 고요해지고 내적 확신과 마음의 하나 됨이 앞에 나옵니다. 희열과 행복의 근거도 떨어져 있음에서 삼매로 달라집니다.

묵상

집중하는 동안 계속 말을 붙이던 마음이 잠시 조용해져 일이 더 선명해진 적이 있나요? 특별한 선정 경험을 찾는 질문은 아니에요. 생각을 억누르지 않고도 자연히 잦아든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 “희열이 빛바래면 그는 평정하게 머문다. … 셋째 선정 …”

…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pe… tatiyaṁ jhānaṁ …pe…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길의 마지막 요소인 바른 삼매를 네 선정 순서로 푸는 대목입니다. 공급된 원문은 첫째와 둘째를 온전히 적고, 셋째는 희열이 빛바래고 평온히 머문다는 구절 뒤를 생략하며, 넷째도 결구만 남깁니다. 이 생략 구조를 지키면 원문에 직접 남은 변화만 확인하고 빠진 정형구를 직접 인용으로 오해하지 않게 됩니다. 빠알리 원문에는 반복 생략 ‘…pe…’ 2곳이 표시되어 있으며, 한국어에는 같은 자리에 ‘…’로 표시했습니다. 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긴 열거를 카드 경계에서 나누기 위해 편집자 생략 ‘…’ 1곳을 양쪽 인용의 같은 위치에 표시했습니다. 셋째 선정 대목은 “희열이 빛바래고 평온하게 머문다”까지 직접 적은 뒤 “…pe…”, “셋째 선정”, 다시 “…pe…”로 줄입니다. “들어 머문다”는 서술어는 생략 안에 있으므로 한국어에서 복원하지 않습니다. 이 카드는 앞뒤 선정의 정의를 새로 보충하는 자리가 아니라 원문이 반복을 줄인 방식을 그대로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묵상

희열이 빛바래고 평온하게 머문다는, 생략 앞에 직접 남은 두 표현은 어떻게 이어져 들리나요? 특별한 선정 경험을 떠올리거나 생략된 내용을 채울 필요는 없어요. 지금은 강한 기쁨이 잦아드는 것과 평온 가운데 어느 말이 더 또렷한지만 살펴볼까요?

“넷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벗들이여, 이것을 바른 집중이라 하며, 벗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이다.”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vuccatāvuso: ‘sammāsamādhi’. Idaṁ vuccatāvuso: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길의 마지막 요소인 바른 삼매를 네 선정 순서로 푸는 대목입니다. 공급된 원문은 첫째와 둘째를 온전히 적고, 셋째는 희열이 빛바래고 평온히 머문다는 구절 뒤를 생략하며, 넷째도 결구만 남깁니다. 이 생략 구조를 지키면 원문에 직접 남은 변화만 확인하고 빠진 정형구를 직접 인용으로 오해하지 않게 됩니다. 앞 카드의 마지막 생략표 뒤 이 카드는 “넷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는 결구에서 시작합니다. 이어 이를 바른 삼매라 부르고, 다시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진리라고 맺습니다. 즐거움·괴로움의 버림과 평온·알아차림의 청정함은 이 카드가 소유한 빠알리 키에 없으므로 직접 인용이나 해설의 원문 정보로 보태지 않습니다.

묵상

이 카드에는 “넷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는 결구와 그것을 바른 삼매·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고 부르는 문장만 남아 있어요. 생략된 선정의 성질을 추측하지 않고 읽을 때, 이 결구가 여덟 갈래 길 전체를 닫는 방식에서 무엇이 눈에 들어오나요?

8 분석을 마치고 네 진리로 돌아오다 1구절

사리뿟따가 네 가지 진리의 분석을 처음 선언과 연결하고 비구들이 기뻐하며 받아들입니다.

“벗들이여, 여래·아라한·완전히 깨달은 이는 바라나시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에서 수행자·바라문·신·마라·브라흐마를 비롯한 세상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렸다. 그것은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가리키고, 가르치고, 설명하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분석하고, 드러내는 일이다.” 사리뿟따 존자가 이와 같이 말하자 수행자들은 기뻐하며 그 말을 받아들였다.

Tathāgatenāvuso, arahatā sammāsambuddhena bārāṇasiyaṁ isipatane migadāye anuttaraṁ dhammacakkaṁ pavattitaṁ appaṭivattiyaṁ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ṁ, yadidaṁ— imesaṁ catunnaṁ ariyasaccānaṁ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n”ti. Idamavoca āyasmā sāriputto. Attamanā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bhāsitaṁ abhinandunti.

맛지마 니까야 MN 141 진리 분석경 (Saccavibhaṅgasutta)

배경

경의 마지막은 여덟 갈래 길의 분석을 마친 뒤 첫 선언으로 돌아갑니다. 사리뿟따는 이시빠따나에서 굴러간 되돌릴 수 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가 바로 네 가지 진리를 가르치고 세우고 밝히고 분석하는 일이라고 다시 말합니다. 이어 설법자가 사리뿟따였음을 밝히고 수행자들이 기뻐하며 그 말을 받아들였다고 맺습니다. 반복은 긴 분석이 처음의 네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테두리입니다. 첫 선언을 사리뿟따의 결론으로 되돌리고 청중의 반응까지 담았습니다. 경 제목과 종료 표시는 편집 요소이므로 본문 카드에서 제외합니다.

묵상

긴 분석을 모두 읽은 뒤 처음의 “네 가지 진리를 밝히고 분석한다”는 말이 어떻게 새롭게 들리나요? 전부 기억할 필요는 없어요. 괴로움·발생·소멸·길 가운데 지금 한 문장으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