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시꼬빠마 숫따(낚시꾼의 비유)

Bāḷisikopam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35.230

감각의 즐거움은 낚싯바늘에 꿰인 미끼와 같다며 여섯 감각을 낱낱이 든다.

인용된 가르침 5구절

이 경을 5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미끼를 삼킨 물고기와 여섯 낚싯바늘 1구절

미끼가 꿰인 바늘을 삼킨 물고기의 처지를 세상의 여섯 낚싯바늘에 연결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낚시꾼이 미끼를 꿴 낚싯바늘을 깊은 물웅덩이에 던진다고 하자. 미끼를 본 어떤 물고기가 그것을 삼킬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렇게 바늘을 삼킨 물고기는 불운에 빠지고 재난에도 빠져 낚시꾼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가 된다. 이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세상에는 살아 있는 것들에게 불운이 되고 생명 있는 것들에게 죽음이 되는 여섯 가지 낚싯바늘이 있다.”

“Seyyathāpi, bhikkhave, bāḷisiko āmisagatabaḷisaṁ gambhīre udakarahade pakkhipeyya. Tamenaṁ aññataro āmisacakkhu maccho gileyya. Evañhi so, bhikkhave, maccho gilitabaḷiso bāḷisikassa anayaṁ āpanno byasanaṁ āpanno yathākāmakaraṇīyo bāḷisikassa. Evameva kho, bhikkhave, chayime baḷisā lokasmiṁ anayāya sattānaṁ vadhāya pāṇinaṁ.

상윳따 니까야 SN 35.230 발리시꼬빠마 숫따 (낚시꾼의 비유)

배경

경은 수행자들에게 깊은 물웅덩이의 낚시 장면을 제시한 뒤, 물고기의 처지를 세상에 있는 여섯 낚싯바늘에 연결합니다. 첫 세 대목에서 낚시꾼은 미끼가 꿰인 바늘을 던지고, 미끼를 본 물고기는 그것을 삼키며, 그 결과 불운과 재난에 빠져 낚시꾼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가 됩니다. 이어 “이와 같이”가 비유의 적용을 열고, 여섯이라는 수량과 뭇 생명의 불운·생명 있는 것의 죽음을 함께 밝힙니다. 이 대목은 눈앞의 미끼와 그것을 삼킨 뒤의 결과를 한 장면에 놓아, 다음 질문과 감각별 설명을 준비합니다.

묵상

“미끼를 꿴 낚싯바늘”이라는 한 장면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끼인가요, 그 안의 바늘인가요? 그 대상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 전에, 끌림과 뒤따를 결과를 함께 볼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2 눈의 형상을 붙들어 마라의 바늘을 삼키다 1구절

여섯 낚싯바늘이 무엇인지 묻고 눈으로 알아지는 형상을 붙드는 경우를 첫 답으로 듭니다.

“어느 여섯인가? 수행자들이여, 눈으로 알아지는 형상들 가운데 바람직하고 사랑스러우며 마음에 들고 정겨우며 감각적 욕망과 얽혀 탐낼 만한 것들이 있다. 수행자가 그것들을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들어 머문다면, 수행자들이여, 그는 마라의 낚싯바늘을 삼킨 수행자라 한다. 그는 불운에 빠지고 재난에도 빠져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가 된다. …”

Katame cha? Santi, bhikkhave,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ṁhitā rajanīyā. Tañce bhikkhu 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gilitabaḷiso, mārassa anayaṁ āpanno byasanaṁ āpanno yathākāmakaraṇīyo pāpimato …pe…

상윳따 니까야 SN 35.230 발리시꼬빠마 숫따 (낚시꾼의 비유)

배경

앞에서 여섯 낚싯바늘을 선언한 뒤, 이 대목은 “어느 여섯인가?”라고 묻고 눈으로 알아지는 형상에서 첫 답을 엽니다. 형상은 바람직함·사랑스러움·마음에 듦·정겨움·감각적 욕망과 얽힘·탐낼 만함이라는 여섯 가지 수식으로 한정됩니다. 갈림길이 되는 것은 수행자가 그것을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들어 머무는 세 동작입니다. 그 조건 아래 마라의 바늘을 삼켰다는 이름과 불운·재난·악한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이 결과로 이어집니다.

묵상

“기뻐하고, 환영하고, 붙들어 머문다”는 세 동작은 같은 것처럼 들리나요, 서로 다른 흐름처럼 들리나요? 최근 눈에 들어온 형상 하나에서 세 동작 가운데 어느 지점까지 알아차릴 수 있었는지 가볍게 돌아볼까요?

3 혀의 맛과 마음의 대상을 붙들다 1구절

혀로 알아지는 맛의 생략된 반복 뒤 마음으로 알아지는 것에서 바늘을 삼키는 사슬을 닫습니다.

“수행자들이여, 혀로 알아지는 맛들이 있다. … 수행자들이여, 마음으로 알아지는 것들 가운데 바람직하고 사랑스러우며 마음에 들고 정겨우며 감각적 욕망과 얽혀 탐낼 만한 것들이 있다. 수행자가 그것들을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들어 머문다면, 수행자들이여, 그는 마라의 낚싯바늘을 삼킨 수행자라 한다. 그는 불운에 빠지고 재난에도 빠져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가 된다.”

santi, bhikkhave, jivhāviññeyyā rasā …pe…. Santi, bhikkhave, manoviññeyyā dhamm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ṁhitā rajanīyā. Tañce bhikkhu 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gilitabaḷiso mārassa anayaṁ āpanno byasanaṁ āpanno yathākāmakaraṇīyo pāpimato.

상윳따 니까야 SN 35.230 발리시꼬빠마 숫따 (낚시꾼의 비유)

배경

앞서 눈의 갈래에서 되풀이되는 부분을 생략표로 줄인 뒤, 이 대목은 혀로 알아지는 맛을 짧게 들고 마음으로 알아지는 것에서 같은 틀을 다시 보입니다. 마음의 대상에도 같은 여섯 수식과 기뻐함·환영함·붙들어 머묾의 세 조건이 적용됩니다. 그때 “마라의 낚싯바늘을 삼켰다”는 이름과 불운·재난·악한 자의 뜻대로 됨이 다시 결론으로 옵니다. 이는 그것을 붙드는 반응과 거기 매이는 결과를 보여 줍니다.

묵상

혀로 알아지는 맛에서 마음으로 알아지는 것까지 같은 비유가 이어질 때, 붙드는 반응의 범위가 어떻게 보이나요? 지금 떠오른 맛이나 생각 하나를 없애려 하지 않고, 기뻐함·환영함·붙듦 가운데 알아차릴 수 있는 움직임이 있는지 살펴볼까요?

4 눈의 형상을 붙들지 않아 바늘을 부수다 1구절

눈으로 알아지는 형상을 붙들지 않는 조건과 마라의 바늘을 부순 결과를 온전히 제시합니다.

“그리고 수행자들이여, 눈으로 알아지는 형상들 가운데 바람직하고 사랑스러우며 마음에 들고 정겨우며 감각적 욕망과 얽혀 탐낼 만한 것들이 있다. 만일 수행자가 그것들을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않고 붙들어 머물지도 않는다면, 수행자들이여, 그는 마라의 낚싯바늘을 삼키지 않은 수행자라 한다. 그는 낚싯바늘을 부수고 완전히 깨뜨렸으며, 불운에 빠지지 않고 재난에도 빠지지 않으며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

Santi ca, bhikkhave,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ṁhitā rajanīyā. Tañce, bhikkhu, nābhinandati nābhivadati nājjhosāya tiṭṭhati.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na gilitabaḷiso mārassa abhedi baḷisaṁ paribhedi baḷisaṁ na anayaṁ āpanno na byasanaṁ āpanno na yathākāmakaraṇīyo pāpimato …pe….

상윳따 니까야 SN 35.230 발리시꼬빠마 숫따 (낚시꾼의 비유)

배경

수행자가 보기 좋고 즐거운 형상에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붙들지도 않으면, 그는 마라의 낚싯바늘을 삼키지 않은 수행자라 불립니다. 그는 낚싯바늘을 부수고 완전히 깨뜨린 것과 같아서, 불운과 재난에 빠지지 않고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닙니다. 형상에 기뻐하고 붙잡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묵상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붙들어 머물지도 않는다”는 말을 읽을 때 억누름과 붙들지 않음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오늘 눈에 들어온 대상 하나를 없애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머물러 붙드는 움직임만 잠시 놓아볼 여지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5 마음의 대상을 붙들지 않아 예속을 벗어나다 1구절

마음으로 알아지는 것을 붙들지 않는 조건과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결구를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혀로 알아지는 맛들이 있다. … 수행자들이여, 마음으로 알아지는 것들 가운데 바람직하고 사랑스러우며 마음에 들고 정겨우며 감각적 욕망과 얽혀 탐낼 만한 것들이 있다. 수행자가 그것들을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않고 붙들어 머물지도 않는다면, 수행자들이여, 그는 마라의 낚싯바늘을 삼키지 않은 수행자라 한다. 바늘을 부수고 완전히 깨뜨렸으며, 불운에 빠지지 않고 재난에도 빠지지 않으며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할 처지가 아니다.”

Santi, bhikkhave, jivhāviññeyyā rasā …pe…. Santi, bhikkhave, manoviññeyyā dhamm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ṁhitā rajanīyā. Tañce bhikkhu nābhinandati nābhivadati nājjhosāya tiṭṭhati,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na gilitabaḷiso mārassa abhedi baḷisaṁ paribhedi baḷisaṁ na anayaṁ āpanno na byasanaṁ āpanno na yathākāmakaraṇīyo pāpimato”ti.

상윳따 니까야 SN 35.230 발리시꼬빠마 숫따 (낚시꾼의 비유)

배경

앞에서 눈의 갈래에 대한 부정 사슬을 온전히 보인 뒤, 경문은 혀로 알아지는 맛을 든 다음 되풀이되는 부분을 생략표로 줄이고 마음으로 알아지는 것에서 같은 사슬을 다시 온전히 제시하며 경을 닫습니다. 마음의 대상은 앞과 같은 여섯 성질을 지니지만, 수행자가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않고 붙들어 머물지도 않는 것이 조건입니다. 그 결과 마라의 바늘을 삼키지 않았고, 바늘을 부수고 완전히 깨뜨렸으며, 불운과 재난에 빠지지 않고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부정이 반복됩니다. 이 끝맺음은 그것을 붙드는 반응과 마라에게 매이는 결과가 없음을 말합니다.

묵상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라는 말은 무엇이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해졌나요? 떠오른 생각의 내용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것을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드는 움직임 가운데 지금 알아차릴 수 있는 하나가 있는지 살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