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냐따라브라흐마나 숫따(어느 브라흐마나)

Aññatarabrāhmaṇ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3.53

가르침이 지금 여기서 확인됨을,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지배와 버림에서 직접 보여 준다.

인용된 가르침 6구절

이 경을 6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가르침을 묻다 1구절

한 브라흐마나가 부처님께 가르침이 지금 여기에서 보이고 현자가 직접 알 수 있다는 말의 뜻을 묻습니다.

그때 어떤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부처님께 다가갔다. 그는 부처님과 안부를 나누고 … 한쪽에 앉아 말했다. “고따마 님,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가르침,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가르침’이라고들 합니다. 고따마 님, 어떻게 해야 가르침이 지금 여기에서 보이고,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하고, 안으로 이끌며, 현자들이 저마다 직접 알아야 하는 것이 됩니까?”

Atha kho aññataro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 …pe… ekamantaṁ nisinno kho so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sandiṭṭhiko dhammo sandiṭṭhiko dhammo’ti, bho gotama, vuccati. Kittāvatā nu kho, bho gotama, sandiṭṭhiko dhammo hoti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ṁ veditabbo viññūh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3 안냐따라브라흐마나 숫따 (어느 브라흐마나)

배경

경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부처님과 안부를 나눈 뒤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인사를 나눈 뒤 이어지는 질문에서는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가르침’이 두 번 되풀이됩니다. 브라흐마나는 지금 여기에서 보임, 때를 기다리지 않음, 와서 보라고 할 만함, 안으로 이끎, 그리고 ‘현자들이 저마다 직접 알아야 함’이라는 다섯 특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묻습니다. 이 질문은 이어지는 탐냄·성냄·어리석음 문답의 기준이 됩니다. 마음을 지배하는 뿌리가 있을 때와 없을 때, 그 차이를 지금 이 순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묵상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가르침’이라는 말을 들을 때, 믿음과 직접 확인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오늘 마음에서 바로 살필 수 있는 변화가 하나 있나요?

2 탐냄과 그 버림이 해침과 행위에 미치는 결과 1구절

탐냄에 압도된 때와 탐냄을 버린 때를 자신·남·둘의 해침, 정신적 괴로움, 몸·말·마음의 행위로 대조합니다.

“브라흐마나여, 탐내는 이는 탐냄에 압도되고 마음을 빼앗겨 자신을 해칠 생각도, 남을 해칠 생각도, 둘 다 해칠 생각도 하며, 정신적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탐냄을 버리면 자신도, 남도, 둘 다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정신적 괴로움과 근심을 겪지 않는다. 탐내는 이는 … 몸과 말과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다. 탐냄을 버리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는다.

“Ratto kho, brāhmaṇa, rāg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attabyābādhāyapi ceteti, parabyābādhāyapi ceteti, ubhayabyābādhāyapi ceteti, cetasikampi dukkhaṁ domanassaṁ paṭisaṁvedeti. Rāge pahīne nevattabyābādhāyapi ceteti, na parabyābādhāyapi ceteti, na ubhayabyābādhāyapi ceteti, na cetasikaṁ dukkhaṁ domanassaṁ paṭisaṁvedeti. Ratto kho …pe… kāyena duccaritaṁ carati, vācāya duccaritaṁ carati, manasā duccaritaṁ carati. Rāge pahīne neva kāyena duccaritaṁ carati, na vācāya duccaritaṁ carati, na manasā duccaritaṁ car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3 안냐따라브라흐마나 숫따 (어느 브라흐마나)

배경

부처님의 첫 답은 탐냄이 있을 때와 탐냄을 버렸을 때를 대조합니다. 탐냄에 마음을 빼앗기면 자신과 남과 둘 다를 해칠 생각을 하고 정신적 괴로움과 근심을 겪지만, 탐냄을 버리면 그런 생각과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이어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과 남 모두에 걸쳐 대조합니다. 탐냄을 정체성으로 단정하지 않고, 탐냄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생각과 느낌과 행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묵상

탐냄이 마음을 채울 때 자신·남·둘 모두 가운데 누구를 해칠 생각이 먼저 나타나는지 알아차릴 수 있나요?

3 탐냄을 버리면 자신과 남의 이익을 알다 1구절

탐냄의 지배와 버림을 자신·남·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아는지와 연결하고 첫 답을 맺습니다.

탐내는 이는 … 자신의 이익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남의 이익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며, 둘 모두의 이익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탐냄을 버리면 자신의 이익도, 남의 이익도, 둘 모두의 이익도 있는 그대로 안다. 브라흐마나여, 이와 같이 가르침은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것이다 ….

Ratto kho …pe… attatthampi yathābhūtaṁ nappajānāti, paratthampi yathābhūtaṁ nappajānāti, ubhayatthampi yathābhūtaṁ nappajānāti. Rāge pahīne attatthampi yathābhūtaṁ pajānāti, paratthampi yathābhūtaṁ pajānāti, ubhayatthampi yathābhūtaṁ pajānāti. Evampi kho, brāhmaṇa, sandiṭṭhiko dhammo hoti …pe….

앙굿따라 니까야 AN 3.53 안냐따라브라흐마나 숫따 (어느 브라흐마나)

배경

탐냄에 관한 부처님의 답이 마무리되는 대목입니다. 탐내는 이는 자신의 이익도, 남의 이익도, 둘 모두의 이익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지만, 탐냄을 버리면 이 셋을 모두 있는 그대로 압니다. 탐냄이 있고 없을 때 이익을 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묵상

탐냄이 강할 때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흐려지는 것 같나요? 둘의 이익을 함께 보려 할 때 새롭게 드러나는 선택이 있나요? 지금은 떠오르는 답이 없어도, 그 흐려짐을 알아차린 것만으로 충분해요.

4 성냄과 그 버림을 지금 확인하다 1구절

성냄에 압도된 때와 성냄을 버린 때의 세 해침과 정신적 괴로움을 대조하고 같은 확인의 결론을 잇습니다.

브라흐마나여, 성난 이는 성냄에 압도되고 마음을 빼앗겨 자신을 해칠 생각도, 남을 해칠 생각도, 둘 다 해칠 생각도 하며, 정신적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성냄을 버리면 자신도, 남도, 둘 다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정신적 괴로움과 근심을 겪지 않는다. 브라흐마나여, 이와 같이 가르침은 지금 여기에서 드러난다 ….

Duṭṭho kho, brāhmaṇa, dos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attabyābādhāyapi ceteti, parabyābādhāyapi ceteti, ubhayabyābādhāyapi ceteti, cetasikampi dukkhaṁ domanassaṁ paṭisaṁvedeti. Dose pahīne nevattabyābādhāyapi ceteti, na parabyābādhāyapi ceteti, na ubhayabyābādhāyapi ceteti, na cetasikampi dukkhaṁ domanassaṁ paṭisaṁvedeti. Evampi kho, brāhmaṇa, sandiṭṭhiko dhammo hoti …pe….

앙굿따라 니까야 AN 3.53 안냐따라브라흐마나 숫따 (어느 브라흐마나)

배경

이번에는 같은 틀을 탐냄 대신 성냄에 적용합니다. 성냄에 마음을 빼앗긴 이는 자신과 남과 둘 다를 해칠 생각을 하고 정신적 괴로움과 근심을 겪지만, 성냄을 버리면 그런 생각과 괴로움을 겪지 않습니다. 성냄이 있고 없을 때 의도와 괴로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묵상

성냄에 마음을 빼앗겼을 때 자신·남·둘 모두를 해칠 생각 가운데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정신적 괴로움이나 근심 하나만 조심스럽게 살펴볼 수 있나요?

5 어리석음과 그 버림을 지금 확인하다 1구절

어리석음에 압도된 때와 어리석음을 버린 때의 세 해침과 정신적 괴로움을 대조하고 질문의 다섯 특성을 온전히 답합니다.

브라흐마나여, 어리석은 이는 어리석음에 압도되고 마음을 빼앗겨 자신을 해칠 생각도, 남을 해칠 생각도, 둘 다 해칠 생각도 하며, 정신적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어리석음을 버리면 자신도, 남도, 둘 다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정신적 괴로움과 근심을 겪지 않는다. 브라흐마나여, 이와 같이 가르침은 지금 여기에서 보이고,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하고, 안으로 이끌며, 현자들이 저마다 직접 알아야 하는 것이다.”

Mūḷho kho, brāhmaṇa, moh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attabyābādhāyapi ceteti, parabyābādhāyapi ceteti, ubhayabyābādhāyapi ceteti, cetasikampi dukkhaṁ domanassaṁ paṭisaṁvedeti. Mohe pahīne nevattabyābādhāyapi ceteti, na parabyābādhāyapi ceteti, na ubhayabyābādhāyapi ceteti, na cetasikaṁ dukkhaṁ domanassaṁ paṭisaṁvedeti. Evaṁ kho, brāhmaṇa, sandiṭṭhiko dhammo hoti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ṁ veditabbo viññūh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3 안냐따라브라흐마나 숫따 (어느 브라흐마나)

배경

셋째 예시는 어리석음과 그 버림을 앞의 두 뿌리와 같은 틀로 대조합니다. 어리석음에 압도되고 마음을 빼앗긴 때에는 자신·남·둘 모두를 해칠 생각과 정신적 괴로움·근심이 생기고, 버린 때에는 그 세 생각과 두 고통이 모두 사라집니다. 이 예시도 성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몸·말·마음의 행위와 이익에 대한 설명은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대신 마지막 결론에서는 질문의 다섯 특성을 생략 없이 다시 적어 부처님의 전체 답을 닫습니다. 어리석음을 막연한 결함으로만 여기지 않고, 그것이 의도와 마음의 괴로움에 미치는 차이를 스스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묵상

어리석음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바로 알기 어렵다면, 자신·남·둘 모두를 해칠 생각이나 정신적 괴로움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나요?

6 가르침을 찬탄하고 삼귀의하다 1구절

브라흐마나가 네 비유로 가르침을 찬탄하고 고따마 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에 귀의해 평생 재가 신자가 되기를 청합니다.

“훌륭합니다, 고따마 님! 훌륭합니다, 고따마 님! 고따마 님, 마치 뒤집힌 것을 바로 세우고, 가려진 것을 드러내고,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키고, 어둠에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들이 형상을 보게 하듯이’, 고따마 님께서는 여러 방편으로 가르침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고따마 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상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님께서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집에 사는 신도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Abhikkantaṁ, bho gotama, abhikkantaṁ, bho gotama.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ṁ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Esāhaṁ bhavantaṁ gotam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aṁ maṁ bhavaṁ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3 안냐따라브라흐마나 숫따 (어느 브라흐마나)

배경

부처님의 세 예시를 들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훌륭합니다’를 두 번 되풀이하고, 가르침의 작용을 네 비유로 칭찬합니다. 뒤집힌 것을 세움·가려진 것을 드러냄·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킴·어둠에 등불을 듦이 같은 순서로 이어집니다. 그런 뒤 고따마 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상가)라는 세 대상에 귀의하고,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집에 사는 신도로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 질문으로 시작한 경이 직접 확인한 가르침에 대한 선택으로 끝나는 장면입니다. 그는 감탄에 머물지 않고,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신도로 살겠다고 약속합니다.

묵상

뒤집힌 것을 세우거나 가려진 것을 드러내듯, 어떤 가르침이 내 관점을 바꾼 적이 있나요? 그 감탄을 오래 지킬 선택으로 잇는다면 지금 가능한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