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어떤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부처님께 다가갔다. 그는 부처님과 안부를 나누고 … 한쪽에 앉아 말했다. “고따마 님,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가르침,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가르침’이라고들 합니다. 고따마 님, 어떻게 해야 가르침이 지금 여기에서 보이고,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하고, 안으로 이끌며, 현자들이 저마다 직접 알아야 하는 것이 됩니까?”
Atha kho aññataro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 …pe… ekamantaṁ nisinno kho so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sandiṭṭhiko dhammo sandiṭṭhiko dhammo’ti, bho gotama, vuccati. Kittāvatā nu kho, bho gotama, sandiṭṭhiko dhammo hoti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ṁ veditabbo viññūhī”ti?
배경
경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부처님과 안부를 나눈 뒤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인사를 나눈 뒤 이어지는 질문에서는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가르침’이 두 번 되풀이됩니다. 브라흐마나는 지금 여기에서 보임, 때를 기다리지 않음, 와서 보라고 할 만함, 안으로 이끎, 그리고 ‘현자들이 저마다 직접 알아야 함’이라는 다섯 특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묻습니다. 이 질문은 이어지는 탐냄·성냄·어리석음 문답의 기준이 됩니다. 마음을 지배하는 뿌리가 있을 때와 없을 때, 그 차이를 지금 이 순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묵상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가르침’이라는 말을 들을 때, 믿음과 직접 확인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오늘 마음에서 바로 살필 수 있는 변화가 하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