께사뭇띠 숫따(깔라마경)

Kesamutti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전통이나 소문이 아니라 스스로 살펴보고 받아들이라는, 비판적 검증의 가르침.

인용된 가르침 31구절

이 경을 8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엇갈린 주장 앞에서 생긴 의심 3구절

께사뭇따 사람들이 서로를 깎아내리는 여러 스승의 말을 듣고 무엇이 참인지 묻습니다.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많은 수행자들과 함께 꼬살라 지방을 두루 다니시다가, 깔라마 사람들의 마을 께사뭇따에 이르셨다. 께사뭇따의 깔라마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었다. “여러분, 사까족의 아들로 사까족 집안에서 집을 떠난 수행자 고따마가 께사뭇따에 도착했습니다. 그 존경받는 고따마에게는 이런 좋은 명성이 퍼져 있습니다. ‘그 부처님께서는 … 그러한 분이십니다. 그와 같이 존경받아 마땅한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들을 뵙는 일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kosalesu cārikaṁ caramāno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kesamuttaṁ nāma kālāmānaṁ nigamo tadavasari. Assosuṁ kho kesamuttiyā kālāmā: “samaṇo khalu, bho, gotamo sakyaputto sakyakulā pabbajito kesamuttaṁ anuppatto. Taṁ kho pana bhavantaṁ gotamaṁ evaṁ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itipi so bhagavā …pe… sādhu kho pana tathārūpānaṁ arahataṁ dassanaṁ ho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경은 ‘이렇게 나는 들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부처님이 수행자들과 함께 꼬살라 지방을 다니다가 깔라마 사람들의 마을 께사뭇따에 닿았고, 마을 사람들은 사까족 집안을 떠난 고따마 수행자가 왔다는 소식과 그에 대한 좋은 평판을 듣습니다. 평판은 부처님을 가리키는 여러 이름으로 길게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그런 분을 뵙는 일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이어서 부처님을 찾아갑니다.

묵상

누군가의 좋은 평판을 먼저 듣고 나중에 직접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와 실제로 본 모습은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달랐나요? 만나기 전과 만난 뒤에 내가 내린 판단을 나란히 적어 본다면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요?

깔라마 사람들은 부처님께 다가갔다. 어떤 이들은 절을 하고 한쪽에 앉았다. 어떤 이들은 부처님과 안부를 나누고 정중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어떤 이들은 부처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인사하고 한쪽에 앉았다. 어떤 이들은 이름과 가문을 밝히고 한쪽에 앉았다. 어떤 이들은 말없이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깔라마 사람들이 부처님께 이렇게 말했다. …

Atha kho kesamuttiyā kālām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appekacce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bhagavatā saddhiṁ sammodiṁsu,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yena bhagavā tenañjaliṁ paṇām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nāmagottaṁ sāv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tuṇhībhūtā ekamantaṁ nisīdiṁsu. Ekamantaṁ nisinnā kho te kesamuttiyā kālāmā bhagavantaṁ etadavocuṁ: …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찾아온 깔라마 사람들은 부처님 앞에 앉기까지 저마다 다르게 행동합니다. 절하는 이, 안부와 정중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 부처님을 향해 두 손을 모으는 이, 이름과 가문을 밝히는 이가 있고, 아무 말 없이 앉는 이도 있습니다. 다섯 무리 모두 한쪽에 앉는 것으로 끝나고, 그 뒤에 사람들이 부처님께 말을 꺼냅니다.

묵상

처음 만나는 스승이나 모임 앞에서 나는 먼저 인사하는 편인가요, 이름을 밝히는 편인가요, 말없이 지켜보는 편인가요? 그렇게 하는 까닭을 떠올려 보고, 그 방식이 상대의 말을 듣는 내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세요.

… “스승님, 어떤 수행자들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브라흐마나)이 께사뭇따에 찾아옵니다. 그들은 자기 주장만 밝히고 드높이며, 남의 주장은 공격하고 헐뜯고 깎아내리고 흠집을 냅니다. 또 다른 수행자들과 브라흐마나들도 께사뭇따에 찾아옵니다. 그들 역시 자기 주장만 밝히고 드높이며, 남의 주장은 공격하고 헐뜯고 깎아내리고 흠집을 냅니다. 스승님, 그래서 저희에게는 의심과 망설임이 생깁니다. ‘이 수행자들과 브라흐마나들 가운데 누가 참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 것일까?’”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의심하고 망설일 만도 하다. 의심스러운 일에서 그대들에게 망설임이 생긴 것이다.”

… “Santi, bhante, eke samaṇabrāhmaṇā kesamuttaṁ āgacchanti. Te sakaṁyeva vādaṁ dīpenti jotenti, parappavādaṁ pana khuṁsenti vambhenti paribhavanti omakkhiṁ karonti. Aparepi, bhante, eke samaṇabrāhmaṇā kesamuttaṁ āgacchanti. Tepi sakaṁyeva vādaṁ dīpenti jotenti, parappavādaṁ pana khuṁsenti vambhenti paribhavanti omakkhiṁ karonti. Tesaṁ no, bhante, amhākaṁ hoteva kaṅkhā hoti vicikicchā: ‘ko su nāma imesaṁ bhavataṁ samaṇabrāhmaṇānaṁ saccaṁ āha, ko musā’”ti? “Alañhi vo, kālāmā, kaṅkhituṁ alaṁ vicikicchituṁ. Kaṅkhanīyeva pana vo ṭhāne vicikicchā uppannā.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깔라마 사람들이 질문의 이유를 밝히는 대목입니다. 께사뭇따에는 수행자와 브라흐마나들이 번갈아 찾아와 저마다 자기 주장만 높이고 남의 주장을 깎아내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의 말이 참인지 알 수 없어 망설입니다. 부처님은 의심스러운 일이니 의심이 드는 것도 그럴 만하다고 인정하며 답을 시작합니다.

묵상

서로 자기 말만 옳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랐던 적이 있나요? 그때 의심이 든 까닭을 하나씩 적어 보면, 무엇을 더 확인해야 했는지 보이나요? 그 의심을 서둘러 덮지 않고 두었을 때 무엇이 달라졌을지도 떠올려 보세요.

2 권위보다 결과를 살피는 기준 2구절

전승과 추론만으로 결정하지 말고 해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지는지를 직접 살피라고 가르칩니다.

“자, 깔라마들이여, 전해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이어져 왔다고 해서, 소문이라고 해서, 경전에 들어 있다고 해서, 논리가 뒷받침한다고 해서, 추론했다고 해서, 이리저리 헤아려 그럴듯하다고 해서, 곰곰 따져 보고 어떤 견해에 수긍이 간다고 해서, 말하는 이가 유능해 보인다고 해서, ‘이 수행자는 우리 스승이다’라고 해서 받아들이지 마라.”

Etha tumhe, kālāmā,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부처님이 의심을 인정한 뒤 처음 내놓는 가르침입니다. 열 가지 이유가 나란히 나옵니다. 전해 들은 말, 이어져 온 전통, 소문, 경전이라는 출처가 있고, 논리와 추론, 이리저리 헤아린 생각, 곰곰 따져 보고 수긍한 견해라는 생각의 방법이 있으며, 말하는 이의 유능해 보이는 인상과 ‘이 수행자는 우리 스승이다’라는 존경이 끝을 맺습니다. 부처님은 이런 것들을 근거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판단하는지는 다음 대목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어떤 주장을 받아들일 때 열 가지 이유 가운데 나는 무엇에 가장 자주 기대나요? 최근에 그렇게 받아들인 주장 하나를 떠올려 보고, 그 이유 말고 그것이 실제로 해로움이나 이로움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 적어 보세요.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것들은 바람직하지 않고, 허물이 있고, 지혜로운 이들에게 비난받는다.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해로움과 괴로움으로 이어진다’고 알게 되면, 깔라마들이여, 그때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Yadā tumhe, kālāmā, attanāva jāneyyātha: ‘ime dhammā akusalā, ime dhammā sāvajjā, ime dhammā viññugarahit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ahitāya dukkhāya saṁvattantī’ti, atha tumhe, kālāmā, pajaheyyātha.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판단의 기준이 처음 나오는 대목입니다. 남의 말과 전통 대신 ‘스스로 안다’가 기준이 되고, 그 앎은 네 가지를 살피는 일입니다. 바람직한가, 허물이 있는가, 지혜로운 이들이 어떻게 평가하는가, 온전히 받아들여 행했을 때 해로움과 괴로움으로 이어지는가입니다. 마지막 물음은 실제로 행한 뒤의 결과를 묻습니다. 네 가지가 모두 확인되면 버리라는 결론이 이어지며, 이 물음들은 곧 욕심·성냄·어리석음에 대한 문답에서 쓰입니다.

묵상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습관이나 말버릇 하나를 골라 네 가지를 물어 보면 어떻게 답할까요? 바람직한지, 허물이 있는지,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계속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를 하나씩 따져 보세요.

3 탐냄·성냄·어리석음을 결과로 검증하기 4구절

세 가지 해로운 뿌리가 행위를 어떻게 바꾸고 오래가는 괴로움으로 이어지는지 문답으로 확인합니다.

“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욕심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 그것은 그 사람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해롭습니다, 스승님.” “깔라마들이여, 욕심 많은 사람이 욕심에 눌려 마음을 빼앗기면 생명을 죽이고, 남이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남의 아내와 관계를 맺고, 거짓말을 하고,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긴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에게 해로움과 괴로움이 되는가?” “그렇습니다, 스승님.”

Taṁ kiṁ maññatha, kālāmā, lobho purisassa ajjhattaṁ uppajjamāno uppajjati hitāya vā ahitāya vā”ti? “Ahitāya, bhante”. “Luddho panāyaṁ, kālāmā, purisapuggalo lobh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pāṇampi hanati, adinnampi ādiyati, paradārampi gacchati, musāpi bhaṇati, parampi tathattāya samādapeti, yaṁ sa hoti dīgharattaṁ ahitāya dukkhāyā”ti. “Evaṁ, bhante”.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욕심·성냄·어리석음 가운데 먼저 욕심에 판단 기준을 적용하는 문답입니다. 부처님은 욕심이 사람 안에서 일어날 때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묻고, 깔라마 사람들은 해롭다고 답합니다. 이어 욕심에 눌린 사람이 하는 일을 다섯 가지로 듭니다. 생명을 죽이는 일, 남의 것을 가져가는 일, 남의 아내와 관계를 맺는 일, 거짓말, 남에게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는 일입니다. 마음속의 욕심에서 행위로, 행위에서 오래가는 괴로움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사람들이 스스로 인정하는 순서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강하게 갖고 싶었던 때, 그 마음이 생긴 순간과 그 뒤에 한 말이나 행동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그 사이에 잠깐 멈추었다면 무엇을 살펴볼 수 있었을까요? 그 행동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오래 남긴 것도 함께 떠올려 보세요.

“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냄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 그것은 그 사람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해롭습니다, 스승님.” “깔라마들이여, 성난 사람이 성냄에 눌려 마음을 빼앗기면 생명을 죽이고, 남이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남의 아내와 관계를 맺고, 거짓말을 하고,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긴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에게 해로움과 괴로움이 되는가?” “그렇습니다, 스승님.”

“Taṁ kiṁ maññatha, kālāmā, doso purisassa ajjhattaṁ uppajjamāno uppajjati hitāya vā ahitāya vā”ti? “Ahitāya, bhante”. “Duṭṭho panāyaṁ, kālāmā, purisapuggalo dos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pāṇampi hanati, adinnampi ādiyati, paradārampi gacchati, musāpi bhaṇati, parampi tathattāya samādapeti, yaṁ sa hoti dīgharattaṁ ahitāya dukkhāyā”ti. “Evaṁ, bhante”.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같은 문답이 성냄으로 되풀이됩니다. 부처님은 성냄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묻고, 깔라마 사람들은 이번에도 해롭다고 답합니다. 이어 성냄에 눌려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 하는 일을 듭니다. 생명을 죽이는 일부터 남에게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는 일까지, 다섯 가지 행위의 목록은 욕심 때와 같습니다. 그것이 오랫동안 그에게 해로움과 괴로움이 되느냐는 물음에도 사람들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묵상

화가 났을 때 마음속의 성냄과 그다음에 한 말이나 행동 사이를 되짚어 보면 무엇이 보이나요? 성냄이 가라앉은 뒤 나와 상대에게 각각 무엇이 남았는지 떠올려 보세요.

“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리석음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 그것은 그 사람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해롭습니다, 스승님.” “깔라마들이여,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음에 눌려 마음을 빼앗기면 생명을 죽이고, 남이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남의 아내와 관계를 맺고, 거짓말을 하고,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긴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에게 해로움과 괴로움이 되는가?” “그렇습니다, 스승님.”

“Taṁ kiṁ maññatha, kālāmā, moho purisassa ajjhattaṁ uppajjamāno uppajjati hitāya vā ahitāya vā”ti? “Ahitāya, bhante”. “Mūḷho panāyaṁ, kālāmā, purisapuggalo moh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pāṇampi hanati, adinnampi ādiyati, paradārampi gacchati, musāpi bhaṇati, parampi tathattāya samādapeti, yaṁ sa hoti dīgharattaṁ ahitāya dukkhāyā”ti. “Evaṁ, bhante”.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같은 물음이 세 번째로 어리석음에 던져집니다. 부처님은 어리석음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묻고, 깔라마 사람들은 이번에도 해롭다고 답합니다. 어리석음에 눌려 마음을 빼앗긴 사람도 같은 다섯 가지 행위를 하고, 그것이 오랫동안 그에게 해로움과 괴로움이 된다는 데 사람들은 다시 동의합니다. 이 문답으로 욕심·성냄·어리석음을 하나씩 살피는 일이 끝나고, 다음 대목에서는 앞에서 말한 네 가지 물음이 이 셋에 던져집니다.

묵상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판단해서 행동했다가 나중에 다르게 보인 일이 있었나요? 지금 같은 일을 다시 맞는다면, 판단하기 전에 무엇 하나를 더 확인해 보고 싶은가요?

“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것들은 바람직한가, 바람직하지 않은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스승님.”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 “허물이 있습니다, 스승님.” “지혜로운 이들에게 비난받는가, 칭찬받는가?” “비난받습니다, 스승님.”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해로움과 괴로움으로 이어지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 일을 그대들은 어떻게 보는가?”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해로움과 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스승님. 저희는 그렇게 봅니다.”

“Taṁ kiṁ maññatha, kālāmā, ime dhammā kusalā vā akusalā vā”ti? “Akusalā, bhante”. “Sāvajjā vā anavajjā vā”ti? “Sāvajjā, bhante”. “Viññugarahitā vā viññuppasatthā vā”ti? “Viññugarahitā, bhante”. “Samattā samādinnā ahitāya dukkhāya saṁvattanti, no vā? Kathaṁ vā ettha hotī”ti? “Samattā, bhante, samādinnā ahitāya dukkhāya saṁvattantīti. Evaṁ no ettha ho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욕심·성냄·어리석음을 하나씩 살핀 뒤, 부처님은 앞에서 말한 네 가지 물음으로 결론을 모읍니다. 이것들이 바람직한지, 허물이 있는지, 지혜로운 이들이 비난하는지,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해로움과 괴로움으로 이어지는지를 차례로 묻고, 깔라마 사람들이 매번 스스로 답합니다. 네 답이 모두 같은 쪽으로 모이므로 결론은 사람들 자신의 대답으로 나옵니다.

묵상

지금 마음에 걸리는 내 선택 하나에 네 가지 물음을 차례로 던진다면 어느 물음에서 답이 가장 오래 망설여질까요? 바람직한지, 허물이 있는지, 지혜로운 이들이 어떻게 볼지, 온전히 따랐을 때 어디로 이어질지 하나씩 답해 보면, 그 망설임이 무엇을 더 살펴보라고 말하는지 보이나요?

4 검증 기준을 해로움과 이로움에 다시 적용하기 4구절

세 가지 해로운 뿌리를 확인한 뒤 같은 판단 기준을 되짚고, 이어 이로운 상태를 살필 기준을 세웁니다.

그러므로 깔라마들이여, 내가 앞서 이렇게 말했다. “자, 깔라마들이여, 전해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이어져 왔다고 해서, 소문이라고 해서, 경전에 들어 있다고 해서, 논리가 뒷받침한다고 해서, 추론했다고 해서, 이리저리 헤아려 그럴듯하다고 해서, 곰곰 따져 보고 어떤 견해에 수긍이 간다고 해서, 말하는 이가 유능해 보인다고 해서, ‘이 수행자는 우리 스승이다’라고 해서 받아들이지 마라.”

“Iti kho, kālāmā, yaṁ taṁ avocumhā: ‘etha tumhe, kālāmā.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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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욕심·성냄·어리석음에 대한 문답을 마치고 처음에 한 말로 돌아갑니다. 열 가지 이유를 처음과 같은 순서로 한 번 더 들려주며, 그 말이 방금 함께 살핀 문답을 두고 한 말이었음을 이어 줍니다. 전해 들은 말에서 시작해 말하는 이의 인상과 ‘우리 스승’이라는 존경까지 목록은 처음과 같습니다. 조건과 결론은 이어지는 대목에 나옵니다.

묵상

처음에는 설득력 있게 들렸지만 결과를 직접 살펴본 뒤 판단이 바뀐 주장이 있었나요? 무엇을 확인했을 때 생각이 달라졌는지 한 가지만 떠올려 보세요. 처음에 그 주장을 믿게 한 것은 열 가지 이유 가운데 무엇이었나요?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것들은 바람직하지 않고, 허물이 있고, 지혜로운 이들에게 비난받는다.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해로움과 괴로움으로 이어진다’고 알게 되면, 깔라마들이여, 그때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Yadā tumhe kālāmā attanāva jāneyyātha: “ime dhammā akusalā, ime dhammā sāvajjā, ime dhammā viññugarahit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ahitāya dukkhāya saṁvattantīti, atha tumhe, kālāmā, pajaheyyāthā”’ti, iti yaṁ taṁ vuttaṁ, idametaṁ paṭicca vutt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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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되풀이한 열 가지 이유에 이어지는 조건과 결론입니다. 그대들이 스스로 알게 되는 내용은 앞에서 본 네 가지로, 바람직하지 않고 허물이 있으며 지혜로운 이들에게 비난받고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해로움과 괴로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게 되면 그것들을 버리라는 것이 처음에 한 말의 결론입니다. 부처님은 끝으로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라고 덧붙여, 방금 깔라마 사람들과 함께 살핀 문답을 처음에 한 말의 까닭으로 듭니다.

묵상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놓지 못하는 습관이 있나요? 그 습관이 시작되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지금 알아차릴 수 있는 첫 신호는 무엇인가요? 그 신호를 알아차렸을 때 해 볼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를 적어 보세요.

“자, 깔라마들이여, 전해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이어져 왔다고 해서, 소문이라고 해서, 경전에 들어 있다고 해서, 논리가 뒷받침한다고 해서, 추론했다고 해서, 이리저리 헤아려 그럴듯하다고 해서, 곰곰 따져 보고 어떤 견해에 수긍이 간다고 해서, 말하는 이가 유능해 보인다고 해서, ‘이 수행자는 우리 스승이다’라고 해서 받아들이지 마라.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알게 될 때에는 …”

Etha tumhe, kālāmā,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Yadā tumhe, kālāmā, attanāva jāneyyātha: …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부처님은 해로운 것들을 버리라는 결론을 맺은 뒤, 열 가지 이유를 한 번 더 들려줍니다. 전해 들은 말부터 ‘이 수행자는 우리 스승이다’라는 존경까지, 목록과 순서는 앞과 같습니다. 앞에서는 이 목록 뒤에 버려야 할 것을 가리는 기준이 나왔고, 이번에는 받아들여 지닐 것을 가리는 기준이 이어집니다. 목록 다음에 ‘그대들이 스스로 알게 될 때에는’이라는 조건이 시작되고, 무엇을 알게 되는지는 이어지는 말에 나옵니다.

묵상

마음에 드는 주장이나 수행법에도 결과를 확인하는 같은 물음을 던지고 있나요? 좋게 보이는 것 하나를 골라, 실제로 이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지는지 살필 방법을 한 가지 적어 보세요.

“… ‘이것들은 바람직하고, 허물이 없고, 지혜로운 이들에게 칭찬받는다.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이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진다’라고 알게 되면, 깔라마들이여, 그때 그것들을 받아들여 지니고 살아야 한다.”

… ‘ime dhammā kusalā, ime dhammā anavajjā, ime dhammā viññuppasatth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hitāya sukhāya saṁvattantī’ti, atha tumhe, kālāmā, upasampajja vihareyyātha.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앞에서 시작한 조건이 이어지고 결론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네 가지 물음의 답이 이번에는 뒤집혀서, 바람직하고 허물이 없으며 지혜로운 이들에게 칭찬받고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이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결론도 버림에서 받아들여 지니고 삶으로 바뀝니다. 같은 기준으로 버릴 것과 지닐 것을 함께 가릅니다.

묵상

오래 지켜보니 이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진 습관이 내게 있나요? 그 습관을 주변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내가 그것을 계속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한 가지씩 떠올려 보세요.

5 세 가지 해로운 뿌리가 없을 때 5구절

탐냄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이 해치지 않는 행위와 행복으로 이어짐을 같은 기준으로 확인합니다.

“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욕심 없음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 그것은 그 사람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이롭습니다, 스승님.” “깔라마들이여, 욕심 없는 사람이 욕심에 눌리지 않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생명을 죽이지 않고, 남이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지 않고, 남의 아내와 관계를 맺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에게 이로움과 행복이 되는가?” “그렇습니다, 스승님.”

Taṁ kiṁ maññatha, kālāmā, alobho purisassa ajjhattaṁ uppajjamāno uppajjati hitāya vā ahitāya vā”ti? “Hitāya, bhante”. “Aluddho panāyaṁ, kālāmā, purisapuggalo lobhena anabhibhūto apariyādinnacitto neva pāṇaṁ hanati, na adinnaṁ ādiyati, na paradāraṁ gacchati, na musā bhaṇati, na parampi tathattāya samādapeti, yaṁ sa hoti dīgharattaṁ hitāya sukhāyā”ti. “Evaṁ, bhante”.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이제 같은 물음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옵니다. 첫 사례는 욕심 없음입니다. 깔라마 사람들은 욕심 없음이 일어나면 이롭다고 답하고, 욕심에 눌리지 않은 사람은 앞에서 본 다섯 가지 행위를 하지 않으며 그 결과 오랫동안 이로움과 행복을 얻는다는 데 동의합니다. 같은 행위의 목록이 이번에는 ‘하지 않음’으로 나오므로 앞의 욕심 문답과 짝을 이룹니다.

묵상

무언가를 붙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 마음에 끌려가지 않아서 나도 남도 다치지 않고 지나간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 무엇이 나를 붙잡아 주었는지 떠올려 보세요.

“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냄 없음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 … 어리석음 없음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 … 그것은 이로움과 행복이 되는가?” “그렇습니다, 스승님.”

“Taṁ kiṁ maññatha, kālāmā, adoso purisassa ajjhattaṁ uppajjamāno uppajjati …pe… amoho purisassa ajjhattaṁ uppajjamāno uppajjati …pe… hitāya sukhāyā”ti. “Evaṁ, bhante”.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성냄 없음과 어리석음 없음의 문답은 경에서 욕심 없음의 문답과 같은 내용이 이어진다는 표시(‘…’)로 줄여 적혀 있습니다. 인용의 ‘…’ 두 곳이 그 자리입니다. 줄어든 자리에는 앞과 같은 물음과 대답이 들어갑니다. 성냄이나 어리석음에 눌리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죽이지 않고, 남이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지 않고, 남의 아내와 관계를 맺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끝의 물음은 어리석음 없음 문답을 맺는 물음이고, 깔라마 사람들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묵상

화가 나지 않았거나 상황을 조금 더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내 선택이 달라진 일이 있었나요? 반응이 누그러진 순간이나 사실 하나를 더 알게 된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것들은 바람직한가, 바람직하지 않은가?” “바람직합니다, 스승님.”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 “허물이 없습니다, 스승님.” “지혜로운 이들에게 비난받는가, 칭찬받는가?” “칭찬받습니다, 스승님.”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이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지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 일을 그대들은 어떻게 보는가?”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이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스승님. 저희는 그렇게 봅니다.”

“Taṁ kiṁ maññatha, kālāmā, ime dhammā kusalā vā akusalā vā”ti? “Kusalā, bhante”. “Sāvajjā vā anavajjā vā”ti? “Anavajjā, bhante”. “Viññugarahitā vā viññuppasatthā vā”ti? “Viññuppasatthā, bhante”. “Samattā samādinnā hitāya sukhāya saṁvattanti no vā? Kathaṁ vā ettha hotī”ti? “Samattā, bhante, samādinnā hitāya sukhāya saṁvattanti. Evaṁ no ettha ho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욕심·성냄·어리석음이 없는 상태에도 같은 네 가지 물음이 던져집니다. 여기서 ‘이것들’은 바로 앞에서 살핀 욕심 없음, 성냄 없음, 어리석음 없음을 가리킵니다. 물음의 순서는 앞과 같고 대답만 모두 반대가 됩니다. 깔라마 사람들은 이것들이 바람직하고, 허물이 없고, 지혜로운 이들에게 칭찬받으며,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이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차례로 답합니다.

묵상

좋은 뜻으로 시작한 행동이 실제로 나와 남에게 이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졌는지 되돌아본 적이 있나요? 바람직한지, 허물이 없는지, 지혜로운 이들이 칭찬할지, 해 보면 이로움으로 이어지는지 가운데 내가 가장 자주 건너뛰는 물음은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깔라마들이여, 내가 앞서 이렇게 말했다. “자, 깔라마들이여, 전해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이어져 왔다고 해서, 소문이라고 해서, 경전에 들어 있다고 해서, 논리가 뒷받침한다고 해서, 추론했다고 해서, 이리저리 헤아려 그럴듯하다고 해서, 곰곰 따져 보고 어떤 견해에 수긍이 간다고 해서, 말하는 이가 유능해 보인다고 해서, ‘이 수행자는 우리 스승이다’라고 해서 받아들이지 마라.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알게 될 때에는 …”

“Iti kho, kālāmā, yaṁ taṁ avocumhā: ‘etha tumhe, kālāmā.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Yadā tumhe, kālāmā, attanāva jāneyyātha— …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욕심·성냄·어리석음이 없는 상태가 이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데 깔라마 사람들이 동의하자, 부처님은 ‘그러므로’라고 받으며 처음에 한 말을 다시 인용합니다. 해로운 쪽의 문답을 마친 뒤에도 같은 방식으로 인용했으니, 이번이 두 번째 인용입니다. 열 가지 이유의 목록은 처음과 같은 순서로 나옵니다. 끝에 ‘스스로 알게 될 때에는’이라는 조건이 시작되고, 무엇을 알게 되는지는 이어지는 말에 나옵니다.

묵상

내가 좋아하는 주장에는 검증을 느슨하게 하고 싫어하는 주장에는 엄격하게 한 적이 있나요? 같은 물음을 양쪽에 똑같이 던진다면 어떤 점을 새로 확인하게 될까요?

“… ‘이것들은 바람직하고, 허물이 없고, 지혜로운 이들에게 칭찬받는다. 온전히 받아들여 행하면 이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진다’라고 알면, 깔라마들이여, 그때 그것들을 받아들여 지니고 살아야 한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ime dhammā kusalā, ime dhammā anavajjā, ime dhammā viññuppasatth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hitāya sukhāya saṁvattantīti, atha tumhe, kālāmā, upasampajja vihareyyāthā’ti, iti yaṁ taṁ vuttaṁ idametaṁ paṭicca vutt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부처님이 다시 인용한 처음의 말이 끝나는 대목입니다. 앞에서 시작한 조건이 이로운 네 가지로 채워지고, 할 일은 받아들여 지니고 사는 것으로 정해집니다. 이어서 부처님은 열 가지 이유에 기대지 말라던 처음의 말을 한 까닭이 방금 함께 확인한 욕심 없음, 성냄 없음, 어리석음 없음의 문답에 있다고 밝힙니다. 해로운 쪽을 인용할 때는 결론이 버림이었으므로, 여기까지 오면 버릴 것과 지닐 것이 같은 기준으로 가려집니다.

묵상

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이어 가기 어려운 작은 실천이 있나요? 그 실천이 자리 잡도록 시간이나 환경에서 하나만 바꾼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요?

6 온 세계로 넓히는 네 가지 마음 2구절

탐냄과 악의를 벗어난 제자가 자애·연민·함께 기뻐함·평온한 마음을 모든 방향으로 펼칩니다.

“깔라마들이여, 그 거룩한 제자(아리야사와까)는 이렇게 탐내는 마음이 사라지고 악의가 사라지며, 혼란스럽지 않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림을 지켜서, 자애(멧따)를 담은 마음으로 한 방향을 채우며 지낸다. 둘째, 셋째, 넷째 방향도 그렇게 채운다. 위와 아래와 옆으로, 어디에서나 빠짐없이 온 세계를 자애를 담은 마음으로 채우며 지낸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헤아릴 수 없으며, 원한이 없고 악의가 없다.”

Sa kho so, kālāmā, ariyasāvako evaṁ vigatābhijjho vigatabyāpādo asammūḷho sampajāno patissato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ṁ disaṁ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ṁ, tathā tatiyaṁ, tathā catutthaṁ, iti uddhamadho tiriyaṁ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ṁ lokaṁ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hena pharitvā vihar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검증 문답 뒤에는 그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이 나옵니다. 거룩한 제자는 탐내는 마음과 악의가 사라지고 분명히 알아차리는 상태에서 자애를 한 방향에서 네 방향으로, 다시 위와 아래와 옆으로 온 세계에 넓힙니다. 채우는 마음은 넓고 크고 헤아릴 수 없으며 원한과 악의가 없다고 적혀 있습니다. 네 가지 마음 가운데 자애가 가장 먼저 나오고, 한 방향에서 온 세계로 넓혀 가는 모습이 여기서 온전히 그려집니다.

묵상

자애를 담은 마음을 한 방향에서 시작해 네 방향으로, 다시 위와 아래로 넓혀 간다고 떠올려 보면, 마음이 쉽게 닿는 사람과 잘 닿지 않는 사람이 보이나요? 지금 무리 없이 품을 수 있는 범위와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세요.

“연민(까루나)을 담은 마음으로 … 함께 기뻐함(무디따)을 담은 마음으로 …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우뻭카)으로 한 방향을 채우며 지낸다. 둘째, 셋째, 넷째 방향도 그렇게 채운다. 위와 아래와 옆으로, 어디에서나 빠짐없이 온 세계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으로 채우며 지낸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헤아릴 수 없으며, 원한이 없고 악의가 없다.”

Karuṇāsahagatena cetasā …pe… muditāsahagatena cetasā …pe… upekkhāsahagatena cetasā ekaṁ disaṁ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ṁ, tathā tatiyaṁ, tathā catutthaṁ, iti uddhamadho tiriyaṁ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ṁ lokaṁ upekkh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hena pharitvā vihar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연민과 함께 기뻐함과 평정도 자애와 같은 방식으로 온 세계에 펼쳐집니다. 여기서 평정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뜻합니다. 연민과 함께 기뻐함 부분은 앞의 자애와 같은 문장이 되풀이된다는 뜻으로 ‘…’로 줄여 적혀 있고, 평정 부분에서는 방향과 마음의 성질을 다시 온전히 적습니다. 인용의 ‘…’ 두 곳이 그 줄임 자리입니다. 네 마음이 같은 틀로 적혀 있어 나란히 읽힙니다.

묵상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는 연민이, 기쁨 앞에서는 함께 기뻐함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앞에서는 평정이 얼마나 일어났나요? 네 가지 마음 가운데 지금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과 가장 낯선 것을 하나씩 꼽아 보세요.

7 지금 여기서 얻는 네 가지 안도 5구절

사후 세계와 행위의 결과에 관한 견해가 어느 쪽이더라도 거룩한 삶에서 얻는 네 가지 안도를 밝힙니다.

“깔라마들이여, 그 거룩한 제자는 이처럼 원한 없는 마음, 악의 없는 마음, 물들지 않은 마음, 맑은 마음을 지녔다. 그는 지금 여기에서 네 가지 위안을 얻는다. ‘다음 세상이 있고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에 결과가 있다면, 나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이것이 그가 얻는 첫째 위안이다.”

Sa kho so, kālāmā, ariyasāvako evaṁ averacitto evaṁ abyāpajjhacitto evaṁ asaṅkiliṭṭhacitto evaṁ visuddhacitto. Tassa diṭṭheva dhamme cattāro assāsā adhigatā honti. ‘Sace kho pana atthi paro loko, atthi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athāhaṁ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issāmī’ti, ayamassa paṭhamo assāso adhigato h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네 가지 위안을 소개하는 첫머리입니다. 이 대목의 거룩한 제자는 앞에서 자애와 연민, 함께 기뻐함과 평정을 온 세계로 넓힌 사람입니다. 원한 없는 마음, 악의 없는 마음, 물들지 않은 마음, 맑은 마음이 위안의 바탕으로 먼저 놓입니다. 이어서 ‘다음 세상이 있고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에 결과가 있다면’이라는 조건 아래 첫째 위안이 나옵니다. 그 가정이 참일 경우, 마음이 이렇게 맑은 사람은 죽은 뒤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라고 스스로 내다봅니다.

묵상

확실히 알 수 없는 문제 앞에서도 오늘 내가 하는 행동을 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다음 세상에 대한 답과 상관없이 지금 지키고 싶은 태도 하나를 적어 본다면 무엇인가요?

“‘다음 세상이 없고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에 결과가 없다 하더라도, 나는 지금 여기에서 원한 없이, 악의 없이, 근심 없이 행복하게 나를 지켜 간다.’ 이것이 그가 얻는 둘째 위안이다.”

‘Sace kho pana natthi paro loko, natthi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athāhaṁ diṭṭheva dhamme averaṁ abyāpajjhaṁ anīghaṁ sukhiṁ attānaṁ pariharāmī’ti, ayamassa dutiyo assāso adhigato h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둘째 위안은 첫째와 반대되는 조건에서 나옵니다. 거룩한 제자는 다음 세상도 행위의 결과도 없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래도 원한 없이, 악의 없이, 근심 없이 사는 삶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으로 남습니다. 인용의 ‘나를 지켜 간다’는 그렇게 자신을 돌보며 지낸다는 말입니다. 첫째 위안이 죽은 뒤의 일을 내다본다면, 둘째 위안은 지금 이 삶에서 확인되는 행복에 기댑니다.

묵상

죽은 뒤에 무엇이 있는지, 내 행동에 결과가 돌아오는지를 따지지 않고도 원한과 근심을 조금 덜 붙든 채 보낸 하루가 있었나요? 그날 내 마음이 다른 날과 어떻게 달랐는지 한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닥친다면, 나는 누구에게도 악한 뜻을 품지 않는다. 악한 행위를 하지 않는 나에게 괴로움이 어떻게 닿겠는가?’ 이것이 그가 얻는 셋째 위안이다.”

‘Sace kho pana karoto karīyati pāpaṁ, na kho panāhaṁ kassaci pāpaṁ cetemi. Akarontaṁ kho pana maṁ pāpakammaṁ kuto dukkhaṁ phusissatī’ti, ayamassa tatiyo assāso adhigato h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셋째 위안은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닥친다는 조건에서 나옵니다. 이 위안을 얻는 사람은 앞에서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녔다고 한 거룩한 제자입니다. 그는 두 가지를 근거로 듭니다. 자신은 누구에게도 악한 뜻을 품지 않고, 악한 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행위를 하지 않는 나에게 괴로움이 어떻게 닿겠는가?’ 하고 스스로 되묻습니다. 경은 이 되물음까지를 그가 얻는 셋째 위안으로 셉니다.

묵상

결과를 걱정하기 전에 내 뜻과 내 행동을 나란히 놓고 살펴본 적이 있나요? 지금 앞둔 선택 하나를 골라, 그 안에 누군가를 해치려는 뜻이 섞여 있는지, 해가 되는 행동이 들어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면 무엇이 보이나요?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닥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두 가지 면에서 나 자신이 맑다고 본다.’ 이것이 그가 얻는 넷째 위안이다.”

‘Sace kho pana karoto na karīyati pāpaṁ, athāhaṁ ubhayeneva visuddhaṁ attānaṁ samanupassāmī’ti, ayamassa catuttho assāso adhigato h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넷째 위안은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닥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에도 거룩한 제자는 두 가지 면에서 자신이 맑다고 봅니다. 경은 그 두 면이 무엇인지 따로 풀지 않습니다. 다음 세상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닥치는 경우와 닥치지 않는 경우까지 네 가지 위안이 여기서 모두 나옵니다. 네 경우 모두 위안은 ‘지금 여기에서’ 얻는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묵상

누가 알아주지 않고 아무 보상이 없어도 스스로 해치지 않았다고 확인할 수 있었던 선택이 있나요? 그 선택을 돌아볼 때 내가 확인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깔라마들이여, 그 거룩한 제자는 이처럼 원한 없는 마음, 악의 없는 마음, 물들지 않은 마음, 맑은 마음을 지녔다. 그는 지금 여기에서 이 네 가지 위안을 얻는다.”

Sa kho so, kālāmā, ariyasāvako evaṁ averacitto evaṁ abyāpajjhacitto evaṁ asaṅkiliṭṭhacitto evaṁ visuddhacitto. Tassa diṭṭheva dhamme ime cattāro assāsā adhigatā hon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네 가지 위안을 하나씩 말한 뒤 부처님이 맺는 말입니다. 네 조건문은 다시 늘어놓지 않고, 처음과 같은 마음의 네 상태와 ‘지금 여기에서’ 얻는 네 위안만 요약합니다. 조건이 어떻게 갈리든 위안이 남는 바탕은 원한과 악의가 없고 물들지 않은 맑은 마음으로 제시됩니다.

묵상

답을 알 수 없는 문제가 남아 있어도 원한과 악의를 조금 줄인 하루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안정이 있나요? 오늘 나를 조금 덜 흔들리게 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하나 적어 보세요.

8 가르침을 확인하고 귀의한 사람들 6구절

깔라마 사람들이 네 가지 안도를 되풀이해 확인하고 평생의 재가 신자로 귀의합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 그렇습니다, 잘 가신 분(수가따)이시여. 스승님, 그 거룩한 제자는 이처럼 원한 없는 마음, 악의 없는 마음, 물들지 않은 마음, 맑은 마음을 지녔습니다. 그는 지금 여기에서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다음 세상이 있고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에 결과가 있다면, 나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이것이 그가 얻는 첫째 위안입니다.”

“Evametaṁ, bhagavā, evametaṁ, sugata. Sa kho so, bhante, ariyasāvako evaṁ averacitto evaṁ abyāpajjhacitto evaṁ asaṅkiliṭṭhacitto evaṁ visuddhacitto. Tassa diṭṭheva dhamme cattāro assāsā adhigatā honti. ‘Sace kho pana atthi paro loko, atthi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athāhaṁ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issāmī’ti, ayamassa paṭhamo assāso adhigato h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찾아온 깔라마 사람들이 부처님의 말을 자기 입으로 다시 말하는 대목입니다. ‘그렇습니다’라는 동의로 시작해 거룩한 제자의 마음과 지금 여기에서 얻는 네 가지 위안을 되풀이하고, 여기서는 첫째 위안까지 나옵니다. 인용의 ‘그’는 거룩한 제자를 가리킵니다. 부처님을 부르는 말도 세 가지가 나옵니다. ‘부처님’, ‘잘 가신 분(수가따)’, ‘스승님’입니다.

묵상

설명을 들은 뒤 내 말로 다시 말해 보았을 때 비로소 이해되거나 의문이 드러난 적이 있나요? 첫째 위안을 조건과 결과로 나누어 내 말로 한 문장 적어 보면 어떻게 될까요?

“‘다음 세상이 없고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에 결과가 없다 하더라도, 나는 지금 여기에서 원한 없이, 악의 없이, 근심 없이 행복하게 나를 지켜 간다.’ 이것이 그가 얻는 둘째 위안입니다.”

‘Sace kho pana natthi paro loko, natthi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athāhaṁ diṭṭheva dhamme averaṁ abyāpajjhaṁ anīghaṁ sukhiṁ attānaṁ pariharāmī’ti, ayamassa dutiyo assāso adhigato h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깔라마 사람들이 둘째 위안을 되풀이합니다. 다음 세상도 없고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에 결과도 없다고 가정하는 부분을 사람들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말합니다. 그런 경우에도 지금 여기에서 원한 없이, 악의 없이, 근심 없이 행복하게 자신을 지켜 간다는 마지막 부분까지 빠짐없이 옮깁니다. 첫째 위안부터 넷째 위안까지 사람들은 부처님이 한 말을 이렇게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묵상

아직 증명할 수 없는 주장과 내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를 나누어 본 적이 있나요? 오늘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이 만든 편안함이나 불편함 가운데 확인되는 것을 하나 꼽아 보세요.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닥친다면, 나는 누구에게도 악한 뜻을 품지 않는다. 악한 행위를 하지 않는 나에게 괴로움이 어떻게 닿겠는가?’ 이것이 그가 얻는 셋째 위안입니다.”

‘Sace kho pana karoto karīyati pāpaṁ, na kho panāhaṁ kassaci pāpaṁ cetemi, akarontaṁ kho pana maṁ pāpakammaṁ kuto dukkhaṁ phusissatī’ti, ayamassa tatiyo assāso adhigato h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깔라마 사람들이 셋째 위안을 부처님이 말한 순서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닥친다면, 자신은 누구에게도 악한 뜻을 품지 않고 악한 행위도 하지 않으니 괴로움이 어떻게 닿겠느냐고 되묻는 말입니다. 악한 뜻을 품지 않는 것과 악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 두 근거 가운데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습니다. 이 셋째 위안을 얻는 사람은 앞에서 말한 거룩한 제자입니다.

묵상

내 뜻은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과 실제 행동이 해롭지 않았는지를 따로 살펴본 적이 있나요? 다음 선택에서 뜻과 행동을 각각 어떻게 확인하고 싶은가요?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닥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두 가지 면에서 나 자신이 맑다고 본다.’ 이것이 그가 얻는 넷째 위안입니다.”

‘Sace kho pana karoto na karīyati pāpaṁ, athāhaṁ ubhayeneva visuddhaṁ attānaṁ samanupassāmī’ti, ayamassa catuttho assāso adhigato h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넷째 위안이 되풀이되며 네 가지 경우의 확인이 끝납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닥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거룩한 제자는 두 가지 면에서 자신이 맑다고 봅니다. 깔라마 사람들은 이 말을 부처님이 한 그대로 옮깁니다. 이 말이 어떤 두 면을 가리키는지는 경에 풀이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음 세상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닥치는 경우와 닥치지 않는 경우까지 네 위안을 사람들이 모두 다시 말했습니다.

묵상

결과가 기대와 다르게 나와도 내 뜻과 행동을 돌아보며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던 적이 있나요? 내가 정할 수 없는 결과와 지금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을 나누어 적어 보세요.

“스승님, 그 거룩한 제자는 이처럼 원한 없는 마음, 악의 없는 마음, 물들지 않은 마음, 맑은 마음을 지녔습니다. 그는 지금 여기에서 이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Sa kho so, bhante, ariyasāvako evaṁ averacitto evaṁ abyāpajjhacitto evaṁ asaṅkiliṭṭhacitto evaṁ visuddhacitto. Tassa diṭṭheva dhamme ime cattāro assāsā adhigatā ho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깔라마 사람들이 네 위안을 모두 되풀이한 뒤 공통 조건과 결과를 요약합니다. 원한 없는 마음, 악의 없는 마음, 물들지 않은 마음, 맑은 마음이라는 조건과 ‘지금 여기에서’ 얻는 네 위안이 다시 묶입니다. 부처님이 맺은 말과 같은 문장이고, 부처님이 ‘깔라마들이여’라고 부른 자리에 사람들은 ‘스승님’이라는 부름말을 넣었습니다. 이 요약으로 깔라마 사람들이 부처님의 말을 되풀이하는 대목이 끝나고, 이어서 감탄과 청이 나옵니다.

묵상

긴 설명을 들은 뒤 내게 남은 것을 한 문장으로 적는다면 무엇인가요? ‘원한과 악의가 없는 마음’과 ‘지금 여기의 위안’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또렷하게 남았나요?

“훌륭합니다, 스승님! … 스승님, 저희는 부처님과 가르침(담마)과 수행자들의 모임(상가)을 의지처로 삼습니다. 스승님, 부처님께서는 저희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의지처로 삼은, 집에서 지내며 따르는 신자(우빠사까)로 기억해 주십시오.”

Abhikkantaṁ, bhante …pe… ete mayaṁ, bhante, bhagavantaṁ saraṇaṁ gacchāma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e no, bhante,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e saraṇaṁ gate”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5 께사뭇띠 숫따 (깔라마경)

배경

경의 마지막입니다. 깔라마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에 ‘훌륭합니다’라고 감탄합니다. 감탄에 이어지는 비유들은 경에서 줄여 적혀 있습니다. 이어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들의 모임을 의지처로 삼겠다고 말하고,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집에서 지내며 따르는 신자로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 말은 의심을 털어놓고 기준을 살핀 문답이 끝난 뒤에 나옵니다.

묵상

충분히 묻고 살펴본 끝에 어떤 가르침이나 삶의 방향을 믿게 된 경험이 있나요? 신뢰를 두기 전에 내가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을 한 가지만 적어 본다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