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다나 숫따(근원)

Nidān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6.39

탐욕·성냄·어리석음과 그 없음이 각각 같은 상태와 업의 나쁜 곳·좋은 곳이라는 반대 방향을 낳는다고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6구절

이 경을 6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행위가 생겨나는 첫 세 근원 1구절

행위가 생겨나는 근원이 셋임을 선언하고 질문한 뒤, 욕심·성냄·어리석음이라는 세 항목으로 답합니다.

“수행자들이여, 행위가 생겨나는 근원은 셋이다. 어떤 셋인가? 욕심·성냄·어리석음은 행위가 생겨나는 근원이다.”

“Tīṇimāni, bhikkhave, nidānāni kammānaṁ samudayāya. Katamāni tīṇi? Lobho nidānaṁ kammānaṁ samudayāya, doso nidānaṁ kammānaṁ samudayāya, moho nidānaṁ kammānaṁ samuday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6.39 니다나 숫따 (근원)

배경

경의 첫 절은 행위가 생겨나는 근원이 셋이라고 수량을 먼저 밝힙니다. 이어 “어떤 셋인가?”라는 질문에 욕심·성냄·어리석음을 같은 순서로 답합니다. 이 셋이 행위가 생겨나는 데 작용하는 근원이 됩니다. 수행은 행동이 시작되기 전에 마음을 움직이는 욕심·성냄·어리석음을 세 갈래로 알아보는 데 있습니다. 다음 말씀은 각 근원이 무엇을 다시 낳는지 풉니다.

묵상

최근의 말이나 행동 하나를 떠올릴 때 그 시작에 갖고 싶은 마음, 밀어내는 마음, 분명히 알지 못하는 마음 가운데 어느 것이 있었나요?

2 세 해로운 근원에서 같은 상태가 생기다 1구절

욕심·성냄·어리석음에서는 그 반대가 아니라 각각 같은 상태가 생겨난다는 세 부정과 전환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욕심에서 욕심 없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욕심에서 욕심만 생겨난다. 수행자들이여, 성냄에서 성냄 없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성냄에서 성냄만 생겨난다. 수행자들이여, 어리석음에서 어리석음 없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어리석음에서 어리석음만 생겨난다.”

Na, bhikkhave, lobhā alobh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lobhā lobhova samudeti. Na, bhikkhave, dosā ados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dosā dosova samudeti. Na, bhikkhave, mohā amoh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mohā mohova samude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39 니다나 숫따 (근원)

배경

첫 세 근원의 이름을 밝힌 직후, 각 근원을 두 문장씩 풉니다. 첫 문장은 욕심에서 욕심 없음이, 성냄에서 성냄 없음이, 어리석음에서 어리석음 없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부정합니다. 둘째 문장은 ‘오히려’로 전환하여 욕심에서는 욕심만, 성냄에서는 성냄만, 어리석음에서는 어리석음만 생긴다고 밝힙니다. 수행의 뜻은 반대 결과를 바라기만 하는 것과 실제 근원이 이어 낳는 방향을 구별하고, 같은 반응이 스스로 강화되는 조건을 알아차리는 데 있습니다.

묵상

욕심 많거나 성난 반응 하나가 뒤이어 비슷한 생각이나 말을 불러온 적이 있나요? 처음과 다음 반응이 어떻게 닮았는지 한 가지만 살펴보세요.

3 세 해로운 근원에서 생긴 행위와 나쁜 곳 1구절

세 근원에서 생긴 행위로는 좋은 곳이 나타나지 않고 지옥·축생의 모태·아귀의 영역과 나쁜 곳이 나타난다고 결론 냅니다.

“수행자들이여, 욕심에서 생긴 행위·성냄에서 생긴 행위·어리석음에서 생긴 행위로는 신들·인간들 또는 그 밖의 어떤 좋은 곳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욕심에서 생긴 행위·성냄에서 생긴 행위·어리석음에서 생긴 행위로는 지옥·축생의 모태·아귀의 영역 또는 그 밖의 어떤 나쁜 곳이 나타난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행위가 생겨나는 세 근원이다.”

Na, bhikkhave, lobhajena kammena dosajena kammena mohajena kammena devā paññāyanti, manussā paññāyanti, yā vā panaññāpi kāci sugatiyo. Atha kho, bhikkhave, lobhajena kammena dosajena kammena mohajena kammena nirayo paññāyati tiracchānayoni paññāyati pettivisayo paññāyati, yā vā panaññāpi kāci duggatiyo. Imāni kho, bhikkhave, tīṇi nidānāni kammānaṁ samuday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6.39 니다나 숫따 (근원)

배경

첫 세 근원의 자기 발생을 밝힌 뒤, 그 근원에서 생긴 행위가 드러내는 방향을 대조합니다. 욕심에서 생긴 행위·성냄에서 생긴 행위·어리석음에서 생긴 행위라는 세 표현이 나쁜 결과를 말하는 문장과 좋은 결과를 말하는 문장에 각각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첫 문장은 신들·인간들·그 밖의 좋은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고, ‘오히려’ 뒤에는 지옥·축생의 모태·아귀의 영역·그 밖의 나쁜 곳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수행자들이여’라는 부름과 세 근원의 수를 다시 말합니다. 한 행동으로 사람의 본질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수행은 어떤 근원에서 생긴 행위가 어느 방향과 연결되는지 살피는 데 있습니다.

묵상

좋은 결과를 바라면서도 욕심이나 성냄에서 시작한 선택이 있었는지 떠오르나요? 결과를 예언하거나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못박는 질문은 아니에요. 그 선택의 출발과 뒤에 남은 방향을 조심스럽게 구별해 보세요.

4 욕심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의 세 근원 1구절

첫 절과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되, 행위가 생겨나는 근원을 욕심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으로 바꾸어 답합니다.

“수행자들이여, 행위가 생겨나는 근원은 셋이다. 어떤 셋인가? 욕심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은 행위가 생겨나는 근원이다.”

Tīṇimāni, bhikkhave, nidānāni kammānaṁ samudayāya. Katamāni tīṇi? Alobho nidānaṁ kammānaṁ samudayāya, adoso nidānaṁ kammānaṁ samudayāya, amoho nidānaṁ kammānaṁ samuday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6.39 니다나 숫따 (근원)

배경

둘째 절은 첫 절과 똑같이 행위가 생겨나는 근원이 셋이라고 선언하고 “어떤 셋인가?”라고 묻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답으로 나오는 세 가지입니다. 이 셋은 각각 욕심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이며, 앞서 나온 욕심·성냄·어리석음에 ‘없음’을 붙인 것입니다. 경은 이 셋도 행위가 생겨나는 근원이라고 부릅니다. 수행은 욕심·성냄·어리석음이 없는 상태에서도 행위가 생겨난다는 다른 출발점을 알아보는 데 있습니다. 다음 말씀은 이 세 근원이 무엇을 다시 낳는지 같은 형식으로 풉니다.

묵상

어떤 행동이 더 얻으려는 마음이나 밀어내는 마음 없이 자연스럽게 나온 적이 있나요? 그때 마음에 여유나 분명함이 있었는지 한 가지 감각만 떠올려 보세요.

5 세 이로운 근원에서 같은 상태가 생기다 1구절

욕심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에서는 그 반대가 아니라 각각 같은 상태가 생겨난다는 세 쌍을 반복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욕심 없음에서 욕심이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욕심 없음에서 욕심 없음만 생겨난다. 수행자들이여, 성냄 없음에서 성냄이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성냄 없음에서 성냄 없음만 생겨난다. 수행자들이여, 어리석음 없음에서 어리석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어리석음 없음에서 어리석음 없음만 생겨난다.”

Na, bhikkhave, alobhā lobh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alobhā alobhova samudeti. Na, bhikkhave, adosā dos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adosā adosova samudeti. Na, bhikkhave, amohā moh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amohā amohova samude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39 니다나 숫따 (근원)

배경

둘째 절의 세 근원을 첫 절과 같은 여섯 문장으로 풉니다. 욕심 없음에서 욕심이, 성냄 없음에서 성냄이, 어리석음 없음에서 어리석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세 부정이 먼저 옵니다. 각각의 뒤에는 ‘오히려’가 붙어 욕심 없음에서는 욕심 없음이, 성냄 없음에서는 성냄 없음이, 어리석음 없음에서는 어리석음 없음이 생긴다고 밝힙니다. 수행은 행위가 시작되는 근원이 같은 방향의 상태를 이어 낳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있습니다.

묵상

욕심 없음이나 성냄 없음에서 시작한 작은 선택이 뒤이어 비슷한 여유를 낳은 경험이 있나요? 반대로 한 번의 경험으로 마음이 늘 그렇다고 결론 낼 필요도 없어요. 이어진 반응 하나만 살펴보고, 무엇이 같은 방향을 지탱했는지 헤아려 보세요.

6 세 이로운 근원에서 생긴 행위와 좋은 곳 1구절

세 이로운 근원에서 생긴 행위로는 나쁜 곳이 나타나지 않고 신들·인간들과 좋은 곳이 나타난다고 전체 대칭을 맺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욕심 없음에서 생긴 행위·성냄 없음에서 생긴 행위·어리석음 없음에서 생긴 행위로는 지옥·축생의 모태·아귀의 영역 또는 그 밖의 어떤 나쁜 곳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욕심 없음에서 생긴 행위·성냄 없음에서 생긴 행위·어리석음 없음에서 생긴 행위로는 신들·인간들 또는 그 밖의 어떤 좋은 곳이 나타난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행위가 생겨나는 세 근원이다.”

Na, bhikkhave, alobhajena kammena adosajena kammena amohajena kammena nirayo paññāyati tiracchānayoni paññāyati pettivisayo paññāyati, yā vā panaññāpi kāci duggatiyo. Atha kho, bhikkhave, alobhajena kammena adosajena kammena amohajena kammena devā paññāyanti, manussā paññāyanti, yā vā panaññāpi kāci sugatiyo. Imāni kho, bhikkhave, tīṇi nidānāni kammānaṁ samudayāy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39 니다나 숫따 (근원)

배경

마지막 세 문장은 첫 절에서 말한 방향을 정확히 뒤집습니다. 욕심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에서 생긴 행위라는 세 표현이 두 문장에 모두 반복됩니다. 첫 문장은 지옥·축생의 모태·아귀의 영역·그 밖의 나쁜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부정합니다. ‘오히려’ 뒤에는 신들·인간들·그 밖의 좋은 곳이 나타난다고 밝힙니다. 마지막 ‘수행자들이여’라는 부름과 세 근원을 정리하는 말은 둘째 부분뿐 아니라 경 전체를 마무리합니다. 수행은 욕심·성냄·어리석음이 없는 근원에서 생긴 행위가 해로운 세 근원의 행위와 반대 방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아는 데 있습니다.

묵상

욕심이나 성냄이 덜한 상태에서 한 선택이 나와 다른 이에게 더 안전한 방향을 열었던 적이 있나요? 그 선택 직후 관계나 마음에 나타난 작은 변화를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