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타마미가잘라 숫따(미가잘라, 첫째)

Paṭhamamigajāl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35.63

감각의 즐거움에 묶여 있으면 혼자 있어도 짝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용된 가르침 7구절

이 경을 7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홀로 머묾과 짝 있는 머묾을 묻다 1구절

미가잘라 님이 부처님께 홀로 머무는 이와 짝과 함께 머무는 이의 기준을 묻습니다.

사왓티에서였다. 그때 미가잘라 님이 부처님께 다가갔다. … 한쪽에 앉은 미가잘라 님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홀로 머무는 이, 홀로 머무는 이’라고 합니다. 부처님, 어느 정도로 홀로 머무는 이가 되며, 어느 정도로 짝과 함께 머무는 이가 됩니까?”

Sāvatthinidānaṁ. Atha kho āyasmā migajālo yena bhagavā …pe…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migajālo bhagavantaṁ etadavoca: “‘ekavihārī, ekavihārī’ti, bhante, vuccati. Kittāvatā nu kho, bhante, ekavihārī hoti, kittāvatā ca pana sadutiyavihārī hotī”ti?

상윳따 니까야 SN 35.63 빠타마미가잘라 숫따 (미가잘라, 첫째)

배경

경은 장소를 사왓티로 밝히고, 미가잘라 님이 부처님께 다가가 한쪽에 앉아 여쭙는 장면을 엽니다. 질문자는 미가잘라이고 답할 이는 부처님이며, 미가잘라가 부르는 말은 모두 “부처님”으로 썼습니다. 질문의 두 표제는 홀로 머무는 이와 짝과 함께 머무는 이입니다. 미가잘라는 두 상태가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는지를 함께 묻습니다. 여기서는 아직 사람 수나 장소를 기준으로 답하지 않고, 뒤의 조건 설명을 기다립니다.

묵상

“홀로 머무는 이”와 “짝과 함께 머무는 이”라는 두 표현을 처음 나란히 들으면 무엇이 기준일 것 같나요?

2 형상을 붙들면 즐김의 결박이 생기다 1구절

눈으로 아는 매력적인 형상을 기뻐하고 붙들 때 즐김·탐냄·얽힘이 차례로 생긴다고 밝힙니다.

“미가잘라여, 눈으로 알아지는 형상들 가운데 바람직하고 사랑스러우며 마음에 들고 정겨우며 감각적 욕망과 얽혀 탐낼 만한 것들이 있다. 만일 수행자가 그것들을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들고 머문다면, 그가 그것들을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들고 머물 때 즐김이 생긴다. 즐김이 있으면 탐냄이 있고, 탐냄이 있으면 얽힘이 있다. 미가잘라여, 즐김이라는 결박에 묶인 수행자를 짝과 함께 머무는 이라 한다. …”

“Santi kho, migajāla,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ṁhitā rajanīyā. Tañce bhikkhu 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Tassa taṁ abhinandato abhivadato ajjhosāya tiṭṭhato uppajjati nandī. Nandiyā sati sārāgo hoti; sārāge sati saṁyogo hoti. Nandisaṁyojanasaṁyutto kho, migajāla, bhikkhu sadutiyavihārīti vuccati. …pe…

상윳따 니까야 SN 35.63 빠타마미가잘라 숫따 (미가잘라, 첫째)

배경

부처님은 미가잘라를 직접 부르며 눈으로 알아지는 형상부터 답을 시작합니다. 형상에는 바람직함·사랑스러움·마음에 듦·정겨움·감각적 욕망과의 연관·탐낼 만함이라는 여섯 성질이 붙습니다. 조건은 수행자가 그 대상을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들고 머무는 세 동작을 하는 것입니다. 같은 세 동작을 반복해 즐김이 생긴다고 한 뒤, 즐김이 있으면 탐냄이 있고 탐냄이 있으면 얽힘이 있다는 두 조건을 잇습니다. 결론은 즐김의 결박에 묶인 수행자가 “짝과 함께 머무는 이”라는 정의입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다른 감각 갈래는 줄였습니다. 매력적인 형상 자체가 잘못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묵상

마음에 드는 형상을 만났을 때 기뻐함·환영함·붙들고 머묾은 서로 어떻게 이어져 보이나요?

3 혀와 맛에도 같은 결박이 이어지다 1구절

반복 생략 뒤 혀로 알아지는 맛에 같은 조건 사슬과 짝 있는 머묾의 정의가 이어집니다.

“미가잘라여, 혀로 알아지는 맛들 가운데 바람직하고 사랑스러우며 마음에 들고 정겨우며 감각적 욕망과 얽혀 탐낼 만한 것들이 있다. 만일 수행자가 그것들을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들고 머문다면, 그가 그것들을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들고 머물 때 즐김이 생긴다. 즐김이 있으면 탐냄이 있고, 탐냄이 있으면 얽힘이 있다. 미가잘라여, 즐김이라는 결박에 묶인 수행자를 짝과 함께 머무는 이라 한다.”

Santi kho, migajāla, jivhāviññeyyā ras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ṁhitā rajanīyā. Tañce bhikkhu 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Tassa taṁ abhinandato abhivadato ajjhosāya tiṭṭhato uppajjati nandī. Nandiyā sati sārāgo hoti; sārāge sati saṁyogo hoti. Nandisaṁyojanasaṁyutto kho, migajāla, bhikkhu sadutiyavihārīti vuccati.

상윳따 니까야 SN 35.63 빠타마미가잘라 숫따 (미가잘라, 첫째)

배경

앞에서는 다른 감각 갈래를 줄여서 말했지만, 여기서는 혀로 알아지는 맛을 들어 같은 설명을 다시 자세히 펼칩니다. 맛에도 바람직함부터 탐낼 만함까지 여섯 성질이 붙고, 수행자가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들고 머무는 세 동작을 하면 같은 세 동작을 하는 그에게 즐김이 생깁니다. 즐김이 있으면 탐냄이 있고 탐냄이 있으면 얽힘이 있다는 두 조건도 같은 순서입니다. 마지막에는 미가잘라를 다시 부르며 즐김의 결박에 묶인 수행자를 “짝과 함께 머무는 이”라 정의합니다. 감각 갈래가 달라도 붙듦에서 결박까지의 원인과 결과를 바꾸지 않습니다.

묵상

혀와 맛의 문장이 눈과 형상의 문장과 같은 순서로 이어질 때 무엇이 반복되어 보이나요?

4 외딴 숲에서도 갈망이 짝으로 남다 1구절

외딴 숲의 조용한 처소에 있어도 갈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짝과 함께 머문다고 밝힙니다.

“미가잘라여, 이렇게 머무는 수행자는 비록 소리도 소음도 적고 인적이 드물며,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홀로 물러나기에 알맞은 숲과 밀림의 외딴 처소를 이용하더라도 짝과 함께 머무는 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그의 짝인데 그것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짝과 함께 머무는 이’라 한다.”

Evaṁvihārī ca, migajāla, bhikkhu kiñcāpi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ti appasaddāni appanigghosāni vijanavātāni manussarāhasseyyakāni paṭisallānasāruppāni; atha kho sadutiyavihārīti vuccati. Taṁ kissa hetu? Taṇhā hissa dutiyā, sāssa appahīnā. Tasmā ‘sadutiyavihārī’ti vuccati.

상윳따 니까야 SN 35.63 빠타마미가잘라 숫따 (미가잘라, 첫째)

배경

부처님은 앞의 감각 조건을 장소의 문제와 분리해 설명합니다. 수행자가 숲과 밀림의 외딴 머무는 곳을 이용하고, 그곳이 소리와 소음이 적고 인적이 드물며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홀로 물러나기에 알맞더라도, 앞처럼 머문다면 “짝과 함께 머무는 이”입니다. “무슨 까닭이냐?”라는 질문 뒤에 갈망이 그의 짝이고 아직 버려지지 않았다는 답이 곧바로 놓이며, 같은 명칭으로 다시 닫힙니다.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외형을 무시하는 말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내적 홀로 머묾이 완성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또한 외딴 수행처를 실패나 회피의 장소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묵상

사람과 소음이 적은 장소에 있어도 마음속에서 계속 짝이 되어 따라오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5 형상을 붙들지 않으면 즐김이 소멸하다 1구절

형상을 기뻐하거나 붙들지 않을 때 즐김·탐냄·얽힘이 차례로 없어진다고 밝힙니다.

“미가잘라여, 눈으로 알아지는 형상들 가운데 바람직하고 사랑스러우며 마음에 들고 정겨우며 감각적 욕망과 얽혀 탐낼 만한 것들이 있다. 만일 수행자가 그것들을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않고 붙들어 머물지도 않는다면, 그가 그렇게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않고 붙들어 머물지도 않을 때 즐김이 사라진다. 즐김이 없으면 탐냄도 없고, 탐냄이 없으면 얽힘도 없다. 미가잘라여, 즐김의 결박에서 풀린 수행자를 홀로 머무는 이라 한다. …”

Santi ca kho, migajāla,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ṁhitā rajanīyā. Tañce bhikkhu nābhinandati nābhivadati nājjhosāya tiṭṭhati. Tassa taṁ anabhinandato anabhivadato anajjhosāya tiṭṭhato nandī nirujjhati. Nandiyā asati sārāgo na hoti; sārāge asati saṁyogo na hoti. Nandisaṁyojanavisaṁyutto kho, migajāla, bhikkhu ekavihārīti vuccati …pe…

상윳따 니까야 SN 35.63 빠타마미가잘라 숫따 (미가잘라, 첫째)

배경

부처님은 같은 형상들을 두고 이번에는 반대되는 조건을 말합니다. 수행자가 기뻐하지 않고 환영하지 않으며 붙들고 머물지 않는다는 세 부정이 먼저 나오고, 같은 세 부정을 반복해 그때 즐김이 사라진다고 밝힙니다. 즐김이 없으면 탐냄이 없고 탐냄이 없으면 얽힘도 없다는 두 부정 조건이 이어집니다. 이는 즐김이라는 결박에서 풀려난 상태를 가리키며, 그런 수행자를 “홀로 머무는 이”라 합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다른 감각 갈래는 줄였습니다.

묵상

기뻐하지 않음·환영하지 않음·붙들지 않음이라는 세 부정 뒤에 즐김이 사라질 때, 즐김이 생기던 앞의 순서와 무엇이 반대로 보이나요?

6 혀의 생략에서 마음의 풀림까지 이어지다 1구절

혀와 맛의 반복 생략 뒤 마음으로 아는 것에서 즐김이 소멸하고 결박과 떨어지는 과정을 밝힙니다.

“미가잘라여, 혀로 아는 맛들이 있다. … 미가잘라여, 마음으로 아는 것 중 바람직하고 사랑스러우며 마음에 들고 정겨우며 감각적 욕망과 얽혀 탐낼 만한 것들이 있다. 수행자가 그것들을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붙들어 머물지도 않는다면, 그가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붙들어 머물지도 않을 때 즐김이 사라진다. 즐김이 없으면 탐냄도 없고, 탐냄이 없으면 얽힘도 없다. 미가잘라여, 즐김의 결박과 떨어진 수행자를 홀로 머무는 이라 한다.”

santi ca kho, migajāla, jivhāviññeyyā rasā …pe… santi ca kho, migajāla, manoviññeyyā dhamm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ṁhitā rajanīyā. Tañce bhikkhu nābhinandati nābhivadati nājjhosāya tiṭṭhati. Tassa taṁ anabhinandato anabhivadato anajjhosāya tiṭṭhato nandī nirujjhati. Nandiyā asati sārāgo na hoti; sārāge asati saṁyogo na hoti. Nandisaṁyojanavippayutto kho, migajāla, bhikkhu ekavihārīti vuccati.

상윳따 니까야 SN 35.63 빠타마미가잘라 숫따 (미가잘라, 첫째)

배경

혀로 맛보는 것도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므로 줄였습니다. 마음으로 아는 것에서 다시 자세히 나옵니다. 부처님은 미가잘라에게 마음에 나타나는 대상이 좋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어도, 그것을 기뻐하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붙들지 않으면 즐김이 사라지고, 즐김이 사라지면 탐냄도 얽힘도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즐김의 매임에서 벗어난 수행자를 홀로 머무는 이라 부릅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묵상

혀로 맛보는 것에서 마음으로 아는 것까지, 좋아하는 대상에 기뻐하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붙들지 않는 연습이 이어진다는 느낌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기뻐하고 환영하고 붙드는 그 세 가지를 하지 않는 것에만 머물러도 괜찮아요.

7 사람들 속에서도 갈망을 버리면 홀로 머물다 1구절

여덟 부류의 사람에게 둘러싸여도 갈망이라는 짝을 버렸다면 홀로 머무는 이라고 밝힙니다.

“미가잘라여, 이렇게 머무는 남성 수행자는 비록 마을 가까이에서 남성 수행자·여성 수행자·집에 사는 남녀 신도, 왕·왕의 대신·다른 교단의 수행자·그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더라도 홀로 머무는 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그의 짝인데 그것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홀로 머무는 이’라 한다.”

Evaṁvihārī ca, migajāla, bhikkhu kiñcāpi gāmante viharati ākiṇṇo bhikkhūhi bhikkhunīhi upāsakehi upāsikāhi rājūhi rājamahāmattehi titthiyehi titthiyasāvakehi. Atha kho ekavihārīti vuccati. Taṁ kissa hetu? Taṇhā hissa dutiyā, sāssa pahīnā. Tasmā ‘ekavihārī’ti vuccatī”ti.

상윳따 니까야 SN 35.63 빠타마미가잘라 숫따 (미가잘라, 첫째)

배경

부처님은 마지막에 장소와 사람 수의 대조를 완성합니다. 남성 수행자가 마을 안에서 남성 수행자·여성 수행자·집에 사는 남녀 신도·왕·왕의 대신·다른 교단의 수행자·그 제자라는 여덟 부류에게 둘러싸여 지내더라도 “홀로 머무는 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까닭을 묻는 질문 뒤에는 갈망이 그의 짝이지만 그것을 버렸다는 답이 놓입니다. 앞의 외딴 숲에서는 갈망을 버리지 않아 짝이 있었고, 여기서는 군중 속이어도 갈망을 버렸기에 홀로 머무는 것이니, 두 장면은 서로 반대입니다. 이는 경이 정의한 갈망의 동반 여부에 한정됩니다.

묵상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도 갈망이라는 짝을 버렸다면 홀로 머문다는 결론은 외딴 숲의 장면과 어떻게 반대되나요? 관계를 줄이거나 외로움을 없애야 한다는 요구는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