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까쩰라 숫따

Ukkacel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47.14

두 상수 제자를 잃고도 슬퍼하지 않으며, 큰 나무의 가지가 부러진 것에 견준다.

인용된 가르침 7구절

이 경을 7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두 제자가 떠난 뒤 빈 듯한 모임 1구절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히 꺼진 지 오래되지 않은 때, 야외의 잠잠한 수행자 공동체를 둘러보신 부처님이 모임이 빈 듯 보인다고 말씀합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왓지족의 땅 욱까쩰라에서 갠지스강 기슭에 머무셨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히 꺼져 고요해진 지 오래되지 않았고, 큰 수행자 공동체(상가)가 부처님과 함께 있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수행자 공동체에 둘러싸여 야외에 앉아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잠잠한 수행자 공동체를 둘러보시고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히 꺼져 고요해지고 나니 이 모임이 내게 마치 빈 듯이 보이는구나.”

Ekaṁ samayaṁ bhagavā vajjīsu viharati ukkacelāyaṁ gaṅgāya nadiyā tīre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aciraparinibbutesu sāriputtamoggallānesu. Tena kho pana samayena bhagavā bhikkhusaṅghaparivuto ajjhokāse nisinno hoti. Atha kho bhagavā tuṇhībhūtaṁ bhikkhusaṅghaṁ anuviloketvā bhikkhū āmantesi: “api myāyaṁ, bhikkhave, parisā suññā viya khāyati parinibbutesu sāriputtamoggallānesu.

상윳따 니까야 SN 47.14 욱까쩰라 숫따

배경

경의 첫 장면은 장소와 시점을 먼저 밝힌 뒤, 수행자 공동체(상가)가 잠잠한 상태에서 부처님의 말씀으로 넘어갑니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완전히 꺼져 고요해진 지 오래지 않았다는 시간, 큰 수행자 공동체, 야외, 잠잠함을 차례로 놓습니다. “빈 듯이 보인다”는 말은 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모임 전체의 모습에 드러난다는 부처님의 첫 진술입니다. 아직 이 대목은 그 느낌을 슬픔이라고 판단하지 않고, 뒤의 대조와 설명을 열어 둡니다.

묵상

사람들이 함께 있어도 특정한 두 사람이 떠난 뒤 자리가 빈 듯 느껴진 적이 있나요? 지금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빈자리와 여전히 함께 있는 사람들을 함께 바라볼 수 있나요?

2 과거와 미래의 최상 제자 한 쌍 1구절

두 제자가 머물던 방향에서는 모임을 염려할 필요가 없었음을 회상하고, 과거와 미래의 바르게 깨달은 부처님들에게도 그들과 같은 최상의 제자 한 쌍이 있음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머무는 방향에서는 내 모임이 비지 않았고, 그 방향을 염려할 일이 없었다. 수행자들이여, 과거의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이며 온전히 깨달은 분인 부처님들에게도 최상의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나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와 같았다. 수행자들이여, 미래의 완전히 깨달을 이이며 온전히 깨달을 분인 부처님들에게도 최상의 제자 한 쌍이 있을 것이니, 나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와 같을 것이다.”

Asuññā me, bhikkhave, parisā hoti, anapekkhā tassaṁ disāyaṁ hoti, yassaṁ disāyaṁ sāriputtamoggallānā viharanti. Ye hi te, bhikkhave, ahesuṁ atī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tesampi bhagavantānaṁ etapparamaṁyeva sāvakayugaṁ ahosi—seyyathāpi mayhaṁ sāriputtamoggallānā. Yepi te, bhikkhav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tesampi bhagavantānaṁ etapparamaṁyeva sāvakayugaṁ bhavissati—seyyathāpi mayhaṁ sāriputtamoggallānā.

상윳따 니까야 SN 47.14 욱까쩰라 숫따

배경

앞의 “빈 듯이 보인다”는 말 뒤에 두 가지 부정이 이어집니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머물 때에는 모임이 비지 않았고, 그 방향을 염려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 뒤 시간을 과거와 미래로 나누어, 각 시대의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이며 온전히 깨달은 분인 부처님들에게도 제자 한 쌍이 최상이라고 밝힙니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과거의 비교 대상이자 미래의 비교 기준으로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이 대조는 두 제자가 없다는 사실이 크게 느껴지는 이유를 그들의 역할로 구체화합니다.

묵상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일이나 모임의 한 방향을 염려하지 않아도 됐던 적이 있나요? 지금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가 맡아 준 역할 한 가지와 그것이 남긴 영향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나요?

3 제자는 경이롭고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비탄은 없다 1구절

두 제자가 스승의 지시와 훈계를 따르고 네 모임에 사랑과 존중을 받는다고 찬탄한 뒤, 그들이 완전히 꺼졌어도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는 슬픔도 비탄도 없다고 명시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제자들은 놀랍고, 수행자들이여, 제자들은 경이롭다. 그들은 스승의 지시를 행하고 훈계를 따르며, 네 모임에게 사랑받고 마음에 들며 존중받고 존경받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놀랍고, 수행자들이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경이롭다. 이와 같은 한 쌍의 제자들이 완전히 꺼져 고요해졌어도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다.”

Acchariyaṁ, bhikkhave, sāvakānaṁ, abbhutaṁ, bhikkhave, sāvakānaṁ. Satthu ca nāma sāsanakarā bhavissanti ovādappaṭikarā, catunnañca parisānaṁ piyā bhavissanti manāpā garubhāvanīyā ca. Acchariyaṁ, bhikkhave, tathāgatassa, abbhutaṁ, bhikkhave, tathāgatassa. Evarūpepi nāma sāvakayuge parinibbute natthi tathāgatassa soko vā paridevo vā.

상윳따 니까야 SN 47.14 욱까쩰라 숫따

배경

과거와 미래의 최상 제자 비교 뒤에, 경은 먼저 제자들의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각각 말합니다. 그 근거는 스승의 지시를 행함과 훈계를 따름이라는 두 행동, 그리고 네 모임에게 사랑받고 마음에 들며 존중받고 존경받는다는 네 평가입니다. 다음에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말하는 대상이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로 바뀌고, 그 이유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의 “빈 듯함”을 깨달음에 이른 이가 슬퍼했다는 뜻으로 뒤집어 읽지 않습니다.

묵상

소중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빈 듯하다”고 알아차리는 것과 슬픔과 울부짖음에 휩쓸리는 것은 내 경험에서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지금은 빈자리를 느끼는 마음과 그에 따라오는 반응을 서로 다른 것으로 살펴볼 수 있나요?

4 큰 나무의 가장 큰 가지들이 부러지다 1구절

조건 지어져 무너지기 마련인 것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랄 수 없다고 밝힌 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완전히 꺼짐을 심재를 갖춘 큰 나무의 가장 큰 가지들이 부러진 일에 견주어 말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여기서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어져 무너지기 마련인 것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수행자들이여, 마치 심재를 갖추고 서 있는 큰 나무에서 가장 큰 가지들이 부러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심재를 갖추고 서 있는 큰 수행자 공동체(상가)에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히 꺼져 고요해졌다.”

Taṁ kutettha, bhikkhave, labbhā. Yaṁ taṁ jātaṁ bhūtaṁ saṅkhataṁ palokadhammaṁ, taṁ vata mā palujjīti—netaṁ ṭhānaṁ vijjati. Seyyathāpi, bhikkhave,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ye mahantatarā khandhā te palujjeyyuṁ; evameva kho, bhikkhave, mahato bhikkhusaṅghassa tiṭṭhato sāravato sāriputtamoggallānā parinibbutā.

상윳따 니까야 SN 47.14 욱까쩰라 숫따

배경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에게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다는 말 뒤에, 경은 그 근거를 조건 지어진 것의 성질과 나무 비유로 이어 갑니다. 태어남이나 생겨남에서 시작해 조건 지어짐과 무너지기 마련으로 이어지는 네 성질이 “무너지지 않기”와 대조됩니다. 비유에서는 나무와 수행자 공동체(상가)가 모두 크고, 서 있고, 심재를 갖춘 것으로 맞물립니다. 가지는 복수이며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두 사람에 대응합니다. 큰 수행자 공동체가 여전히 서 있음과 큰 가지들의 상실은 함께 이루어집니다.

묵상

큰 나무가 서 있지만 가장 큰 가지들은 부러졌다는 두 사실을 함께 바라볼 수 있나요? 남은 공동체가 있다고 상실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은 부러진 자리와 여전히 서 있는 것을 어느 쪽도 재촉하지 않고 볼 수 있나요?

5 그러므로 자신과 가르침을 의지처로 삼다 1구절

조건 지어진 것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을 다시 밝힌 뒤, 그러므로 자신과 가르침을 등불과 의지처로 삼고 다른 의지처를 두지 말라고 이어 말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여기서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어져 무너지기 마련인 것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자신을 등불과 의지처로 삼고 다른 의지처를 두지 마라. 가르침을 등불과 의지처로 삼고 다른 의지처를 두지 마라.”

Taṁ kutettha, bhikkhave, labbhā. Yaṁ taṁ jātaṁ bhūtaṁ saṅkhataṁ palokadhammaṁ, taṁ vata mā palujjīti—netaṁ ṭhānaṁ vijjati. Tasmātiha, bhikkhave,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상윳따 니까야 SN 47.14 욱까쩰라 숫따

배경

나무 비유 뒤에 앞서 나온 불가능의 논리가 한 번 더 온전히 반복됩니다.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어져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성질과 그 결론은 이어지는 실천 지침의 근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뒤에는 자신을 등불로 삼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기, 다른 의지처를 두지 않기가 놓입니다. 가르침에도 같은 세 가지가 그대로 이어지며, 바로 뒤의 문답이 네 가지 알아차림으로 그 뜻을 한정합니다.

묵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내 몸과 마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스스로 확인한 순간이 있나요? 지금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직접 알 수 있는 경험 하나가 무엇인지 가볍게 물어볼 수 있나요?

6 네 가지 알아차림으로 의지처를 세우다 1구절

자신과 가르침을 의지처로 삼는 방법을 묻고, 몸·느낌·마음·마음에 나타나는 것의 네 영역에서 부지런히 분명히 알며 알아차리고, 세상에 대한 탐냄과 근심을 버리며 머무는 방법으로 답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자신을 등불과 의지처로 삼고 다른 데 의지하지 않으며, 가르침을 등불과 의지처로 삼고 다른 데 의지하지 않는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부지런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려 세상의 탐냄과 근심을 버린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마음에 나타나는 것에서 그것을 관찰하며 머문다. 부지런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려 세상의 탐냄과 근심을 버린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vedanāsu …pe… citte …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상윳따 니까야 SN 47.14 욱까쩰라 숫따

배경

앞의 지침을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되받고 실제 방법을 밝히는 문답입니다. 질문은 자신과 가르침 각각에 등불·의지처·다른 데 의지하지 않음이라는 세 관계를 다시 놓습니다. 답은 몸·느낌·마음·마음에 나타나는 것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몸과 마지막 영역에는 부지런함·분명히 앎·알아차림·세상에 대한 탐냄과 근심을 버림이 같이 붙습니다. 느낌과 마음 부분에서는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것을 줄여 적었습니다. 의지처는 이 네 경험 영역을 살피는 수행으로 구체화됩니다.

묵상

지금 몸·느낌·마음·마음에 나타나는 것 가운데 비교적 안전하게 살펴볼 수 있는 한 영역이 있나요? 가장 분명한 것 하나만 알아차릴 수 있나요?

7 지금과 부처님이 떠난 뒤에도 배우기를 바라다 1구절

네 가지 알아차림이 자신과 가르침을 의지처로 삼는 방법임을 확정하고, 지금이나 부처님이 떠난 뒤에도 그렇게 머물며 배우기를 바라는 수행자들이 부처님께 으뜸이 될 것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자신을 등불과 의지처로 삼고 다른 데 의지하지 않으며, 가르침을 등불과 의지처로 삼고 다른 데 의지하지 않고 머무는 것은 이와 같다. 수행자들이여, 지금이나 내가 떠난 뒤에라도 자신을 등불과 의지처로 삼아 다른 데 의지하지 않고, 가르침을 등불과 의지처로 삼아 다른 데 의지하지 않고 머무는 이들이 있다면,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들은 배우기를 바라는 이들 가운데 나에게 으뜸이 될 것이다.”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Ye hi keci, bhikkhave, etarahi vā mamaccaye vā attadīpā viharissanti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tamatagge mete, bhikkhave, bhikkhū bhavissanti ye keci sikkhākāmā”ti.

상윳따 니까야 SN 47.14 욱까쩰라 숫따

배경

첫 문장은 앞의 질문과 네 가지 알아차림의 답을 “이와 같다”고 닫으며, 자신과 가르침의 여섯 관계를 다시 확인합니다. 마지막 문장은 시간을 지금과 부처님이 떠난 뒤라는 두 때로 넓힙니다. 그 두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머무는 수행자들이 평가의 대상입니다. “으뜸”은 “배우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붙는 말입니다. 모든 배움을 이미 끝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붙는 말은 아닙니다. 경은 두 큰 제자를 잃은 자리를 다른 인물로 채우지 않습니다. 알아차림과 가르침을 의지해 계속 배우는 태도가 그 자리를 잇습니다.

묵상

이미 잘 안다고 여기는 마음과 계속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은 오늘의 한 선택에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나요? 소중한 스승이나 동료가 떠난 뒤에도 이어 가고 싶은 작은 배움 하나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