쩨따나까라니야 숫따(바람을 일으킬 일)

Cetanākaraṇīy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10.2

좋은 계행에서 후회 없음·기쁨·희열·고요·행복·삼매를 거쳐 해탈의 앎과 봄까지 이어지는 이치를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8구절

이 경을 8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계행에서 후회 없음과 기쁨이 이어지다 1구절

계를 지키고 갖춘 이에게는 후회 없음이, 후회 없는 이에게는 기쁨이 일어나길 바랄 필요가 없다고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계를 지키고 계를 갖춘 이는 ‘내게 후회 없음이 일어나기를’ 하고 바랄 필요가 없다. 수행자들이여, 계를 지키고 계를 갖춘 이에게 후회 없음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수행자들이여, 후회 없는 이는 ‘내게 기쁨이 일어나기를’ 하고 바랄 필요가 없다. 수행자들이여, 후회 없는 이에게 기쁨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Sīlavato, bhikkhave, sīlasampannassa na cetanāya karaṇīyaṁ: ‘avippaṭisāro me uppajjatū’ti. Dhammatā esā, bhikkhave, yaṁ sīlavato sīlasampannassa avippaṭisāro uppajjati. Avippaṭisārissa, bhikkhave, na cetanāya karaṇīyaṁ: ‘pāmojjaṁ me uppajjatū’ti. Dhammatā esā, bhikkhave, yaṁ avippaṭisārissa pāmojjaṁ jāy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2 쩨따나까라니야 숫따 (바람을 일으킬 일)

배경

경은 앞 조건이 갖추어지면 뒤 결과가 이어지는 연쇄로 시작합니다. 계를 지키고 그 계행을 갖춘 이라는 말은 계를 지키면서 그것을 온전히 갖춘 이를 가리킵니다. 다음 상태를 따로 바랄 필요가 없다는 말은 그 연결이 자연스러운 이치임을 밝힙니다. 첫 두 고리는 좋은 계행에서 후회 없음이, 후회 없음에서 기쁨이 생긴다는 순서를 고정합니다.

묵상

무언가 잘못했다고 느끼는 후회와, 계행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후회 없음은 오늘 어떤 차이로 알아지나요? 기쁨을 억지로 만들려 하지 않고 먼저 해치지 않은 선택 하나를 떠올린다면, 마음에 작은 가벼움이라도 있나요? 없다면 없다고 두어도 괜찮을까요?

2 기쁨에서 희열과 몸의 고요가 이어지다 1구절

기쁨에서 희열이 일어나고, 희열로 가득 찬 이의 몸이 고요해지는 두 고리를 이어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기뻐하는 이는 ‘내게 희열이 일어나기를’ 하고 바랄 필요가 없다. 수행자들이여, 기뻐하는 이에게 희열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수행자들이여, 희열로 가득 찬 이는 ‘나의 몸이 고요해지기를’ 하고 바랄 필요가 없다. 수행자들이여, 희열로 가득 찬 이의 몸이 고요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Pamuditassa, bhikkhave, na cetanāya karaṇīyaṁ: ‘pīti me uppajjatū’ti. Dhammatā esā, bhikkhave, yaṁ pamuditassa pīti uppajjati. Pītimanassa, bhikkhave, na cetanāya karaṇīyaṁ: ‘kāyo me passambhatū’ti. Dhammatā esā, bhikkhave, yaṁ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2 쩨따나까라니야 숫따 (바람을 일으킬 일)

배경

후회 없음에서 기쁨이 생긴 다음, 기뻐하는 이에게 희열이 일어나고, 희열이 마음에 가득한 이는 몸이 고요해집니다. 기쁨에서 희열로, 희열에서 몸의 고요로 이어지는 순서입니다.

묵상

기쁨과 몸에서 느껴지는 희열은 지금 어떤 차이로 알아지나요? 마음이 기뻐하는 데도 몸은 아직 긴장해 있을 수 있나요?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다면, 이 두 고리가 다른 말로 놓인 까닭만 천천히 물어볼 수 있을까요?

3 몸이 고요해지면 행복이 생기고 마음이 모인다 1구절

몸이 고요한 이가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이의 마음이 한곳에 모이는 두 연결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몸이 고요해진 이는 ‘내가 행복을 느끼기를’ 하고 바랄 필요가 없다. 수행자들이여, 몸이 고요해진 이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수행자들이여, 행복한 이는 ‘나의 마음이 한곳에 모이기를’ 하고 바랄 필요가 없다. 수행자들이여, 행복한 이의 마음이 한곳에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Passaddhakāyassa, bhikkhave, na cetanāya karaṇīyaṁ: ‘sukhaṁ vediyāmī’ti. Dhammatā esā, bhikkhave, yaṁ passaddhakāyo sukhaṁ vediyati. Sukhino, bhikkhave, na cetanāya karaṇīyaṁ: ‘cittaṁ me samādhiyatū’ti. Dhammatā esā, bhikkhave, yaṁ sukhino cittaṁ samādhiy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2 쩨따나까라니야 숫따 (바람을 일으킬 일)

배경

희열이 몸을 고요하게 한 다음의 두 고리입니다. 몸이 고요해진 이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이의 마음은 한곳에 모입니다. 몸에서 느낌으로, 느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순서입니다. 마음을 억지로 모으려 하지 않아도, 몸의 고요와 행복에 의지해 저절로 모이는 흐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마음을 곧바로 모으려 할 때와, 몸이 먼저 고요해지고 행복이 느껴진 뒤의 모임은 어떻게 다른가요? 지금 몸의 어느 한 곳에도 작은 이완이나 편안함이 있나요? 없다면 한곳에 모였는지를 억지로 확인하지 않고 지금 상태를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까요?

4 마음이 모이면 있는 그대로 알고 본다 1구절

마음이 한곳에 모인 이는 있는 그대로 알고 보게 되며, 그 앎과 봄에서 싫증과 욕심의 빛바램이 이어집니다.

수행자들이여, 마음이 한곳에 모인 이는 ‘내가 있는 그대로 알고 보기를’ 하고 바랄 필요가 없다. 수행자들이여, 마음이 한곳에 모인 이가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수행자들이여,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이는 ‘내게 싫증이 나고 탐냄이 빛바래기를’ 하고 바랄 필요가 없다. 수행자들이여,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이에게 싫증이 나고 탐냄이 빛바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Samāhitassa, bhikkhave, na cetanāya karaṇīyaṁ: ‘yathābhūtaṁ jānāmi passāmī’ti. Dhammatā esā, bhikkhave, yaṁ samāhito yathābhūtaṁ jānāti passati. Yathābhūtaṁ, bhikkhave, jānato passato na cetanāya karaṇīyaṁ: ‘nibbindāmi virajjāmī’ti. Dhammatā esā, bhikkhave, yaṁ yathābhūtaṁ jānaṁ passaṁ nibbindati virajj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2 쩨따나까라니야 숫따 (바람을 일으킬 일)

배경

한곳에 모임(사마디)은 다음 두 변화의 조건이 됩니다. 한곳에 모인 이에게는 있는 그대로 아는 것과 보는 것이 이어지고, 그 앎과 봄은 다시 싫증과 탐냄의 빛바램으로 이어집니다. 앞의 말은 매혹에서 멀어지는 싫증을, 뒤의 말은 탐냄의 빛이 바래는 방향을 가리킵니다. 수행의 뜻은 고요에서 경험을 그대로 알고 보는 데 있습니다.

묵상

고요함을 마지막 목표로 붙드는 때와,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때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지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판단을 잠시 보류한다면 어떤 것이 더 분명해지나요? 아무것도 알아지지 않는다면 그 답도 그대로 둘 수 있을까요?

5 더는 끌리지 않고 욕심이 가시면 풀려났음을 알고 본다 1구절

싫증이 나고 욕심이 빛바랜 이가 풀려났음을 알고 보는 것을 실현하는 마지막 연결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싫증이 나고 탐냄이 빛바랜 이는 ‘내가 풀려났음을 알고 보는 것을 실현하기를’ 하고 바랄 필요가 없다. 수행자들이여, 싫증이 나고 탐냄이 빛바랜 이가 풀려났음을 알고 보는 것을 실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Nibbinnassa, bhikkhave, virattassa na cetanāya karaṇīyaṁ: ‘vimuttiñāṇadassanaṁ sacchikaromī’ti. Dhammatā esā, bhikkhave, yaṁ nibbinno viratto vimuttiñāṇadassanaṁ sacchikar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2 쩨따나까라니야 숫따 (바람을 일으킬 일)

배경

앞의 여덟 고리를 이어 연쇄의 마지막 변화를 밝힙니다. 싫증이 나고 탐냄이 빛바랜 이가 따로 바라지 않아도 실현되는 것은 풀려났음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풀려남이라는 말에 풀려남을 알고 보는 확인까지 함께 담습니다. 이는 직접 실현한다는 뜻으로, 앞의 전체 연쇄가 향하는 결과를 닫습니다.

묵상

‘풀려났음을 알고 보는 것’이 단지 어떤 상태를 원하는 말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지금은 ‘바란다’와 ‘직접 알고 본다’ 사이의 차이만 천천히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6 마지막에서 거꾸로 세 목적과 이익을 짚다 1구절

풀려났음을 알고 보는 것에서 마음이 한곳에 모임까지 거꾸로 내려가며 앞 단계가 다음 단계를 목적과 이익으로 삼는다고 정리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싫증과 탐냄의 빛바램은 풀려났음을 알고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한다. 있는 그대로의 앎과 봄은 싫증과 탐냄의 빛바램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한다. 마음이 한곳에 모임은 있는 그대로의 앎과 봄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한다.

Iti kho, bhikkhave, nibbidāvirāgo vimuttiñāṇadassanattho vimuttiñāṇadassanānisaṁso; yathābhūtañāṇadassanaṁ nibbidāvirāgatthaṁ nibbidāvirāgānisaṁsaṁ; samādhi yathābhūtañāṇadassanattho yathābhūtañāṇadassanānisaṁso;

앙굿따라 니까야 AN 10.2 쩨따나까라니야 숫따 (바람을 일으킬 일)

배경

앞에서는 계행에서 시작해 끝까지 순서대로 설명했고, 결론은 그 반대 순서로 연결을 짚습니다. 첫 세 쌍은 싫증과 탐냄의 빛바램에서 풀려났음을 알고 보는 것으로, 있는 그대로의 앎과 봄에서 싫증과 탐냄의 빛바램으로, 한곳에 모임에서 있는 그대로의 앎과 봄으로 이어집니다. 각 쌍에서 목적과 이익이라는 말이 되풀이됩니다. 결과를 앞 조건의 목적이자 이익으로 두어, 연쇄의 각 고리가 어디를 향하는지 밝힙니다.

묵상

연쇄를 끝에서 거꾸로 읽으니 앞의 어느 조건도 혼자 떨어진 성취가 아니라는 점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목적’과 ‘이익’이 같은 결과를 두 번 가리킬 때, 나중 결과만 서두르기보다 지금 조건을 살피는 뜻으로 읽힐 수 있을까요?

7 행복에서 기쁨까지 네 목적과 이익을 짚다 1구절

행복·고요·희열·기쁨을 거꾸로 내려가며 각각이 다음 단계를 목적과 이익으로 삼는 네 쌍을 밝힙니다.

행복은 마음이 한곳에 모임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한다. 고요는 행복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한다. 희열은 고요를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한다. 기쁨은 희열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한다.

sukhaṁ samādhatthaṁ samādhānisaṁsaṁ; passaddhi sukhatthā sukhānisaṁsā; pīti passaddhatthā passaddhānisaṁsā; pāmojjaṁ pītatthaṁ pītānisaṁs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10.2 쩨따나까라니야 숫따 (바람을 일으킬 일)

배경

역순 결론의 가운데 네 쌍입니다. 행복은 한곳에 모임을 향하고, 고요는 행복을 향합니다. 이어 희열은 고요를, 기쁨은 희열을 목적과 이익으로 삼습니다. 앞의 순방향 설명에서는 기쁨에서 희열, 고요, 행복, 한곳에 모임으로 이어졌지만, 여기서는 한곳에 모임에서 거꾸로 연결을 확인합니다. 이렇게 보면 각 상태가 앞 조건에 기대어 다음 상태를 채워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묵상

행복·고요·희열·기쁨 가운데 지금 가장 분명한 하나는 무엇인가요? 그 상태를 혼자 완성된 결과로 보지 않고 앞의 조건과 다음의 이익 사이에 놓는다면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어느 하나도 분명하지 않다면 그 상태도 답이 될 수 있을까요?

8 좋은 계행에서 저쪽 언덕까지 흐르다 1구절

후회 없음과 좋은 계행의 목적·이익 쌍을 마저 밝히고, 각 상태가 다음을 채워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간다고 맺습니다.

후회 없음은 기쁨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한다. 좋은 계행은 후회 없음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이러한 상태들은 다음 상태로 흘러들고, 이러한 상태들은 다음 상태를 가득 채워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한다.

avippaṭisāro pāmojjattho pāmojjānisaṁso; kusalāni sīlāni avippaṭisāratthāni avippaṭisārānisaṁsāni. Iti kho, bhikkhave, dhammā dhamme abhisandenti, dhammā dhamme paripūrenti apārā pāraṁ gamanāy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2 쩨따나까라니야 숫따 (바람을 일으킬 일)

배경

역순 목록의 마지막 두 쌍은 후회 없음에서 기쁨으로, 좋은 계행에서 후회 없음으로 이어집니다. 이로써 앞의 아홉 연결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끝에서 시작점까지 다시 짚어집니다. 마지막 대목은 하나가 다음으로 흘러들고 다음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는 그림으로 그립니다. 수행의 뜻은 좋은 계행부터 각 조건이 다음을 흐르게 하고 채우는 데 있습니다.

묵상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그림에서,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한 고리는 무엇인가요? 다음 상태를 억지로 만들기보다 앞의 조건이 좀 더 채워지는지 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아직 어느 고리인지 모르겠다는 답도 둘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