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디바와나 숫따(마음 모으기를 닦음)

Samādhibhāvanā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4.41

네 선정·빛의 지각·느낌·인식·생각의 변화·다섯 다발의 관찰을 네 가지 삼매의 닦음과 각 결과로 연결한다.

인용된 가르침 7구절

이 경을 7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네 가지 길과 그 결과 1구절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닦음 네 가지를 묻고, 지금 여기의 행복·앎과 봄·알아차림과 분명한 앎·흘러드는 것의 소멸을 차례로 열거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집중의 닦음에는 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네 가지입니까? 수행자들이여, 닦고 거듭 익히면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데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이 있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닦고 거듭 익히면 앎과 봄을 얻는 데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이 있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닦고 거듭 익히면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이 있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닦고 거듭 익히면 흘러드는 것이 다함으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이 있습니다.

“Catasso imā, bhikkhave, samādhibhāvanā. Katamā catasso? Atthi,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ya saṁvattati; atthi,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ñāṇadassanappaṭilābhāya saṁvattati; atthi,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satisampajaññāya saṁvattati; atthi,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āsavānaṁ khayāya saṁvatt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41 사마디바와나 숫따 (마음 모으기를 닦음)

배경

경의 첫 문답이자 뒤 네 답의 목차입니다. “네 가지”를 제시하고 “어떤 네 가지인가”라고 물은 뒤, 같은 틀 문장으로 네 결과를 차례대로 놓습니다. “수행자들이여”라는 말이 다섯 번 되풀이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묾, 앎과 봄,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 흘러드는 것이 다함은 뒤에서 서로 다른 닦음으로 하나씩 답할 네 갈래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은 첫째 갈래와 네 깊은 집중(자나)을 연결합니다.

묵상

네 결과 가운데 지금 말뜻을 부담 없이 살펴볼 수 있는 하나가 있나요?

2 네 깊은 집중으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다 1구절

첫째 문답은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 네 번째 깊은 집중까지 들어 머무는 것을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닦음이라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닦고 거듭 익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데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은 무엇입니까? 수행자들이여, 여기 한 수행자가 감각적 욕망에서 완전히 떠나 … 네 번째 깊은 집중(자나)에 들어 머뭅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닦고 거듭 익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데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입니다.

Katamā ca,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ya saṁvattati? Idha,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pe…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ya saṁvatt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41 사마디바와나 숫따 (마음 모으기를 닦음)

배경

목차의 첫째 결과를 질문·실천·결론의 세 문장으로 답합니다. 질문과 결론은 “닦고 거듭 익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데로 이끈다”는 말을 그대로 되받습니다. 가운데 문장은 감각적 욕망에서 떠난다는 첫 구절 뒤로 되풀이되는 첫째·둘째·셋째 깊은 집중의 설명을 줄이고, 곧바로 네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문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답은 빛의 인식을 앎과 봄에 연결합니다.

묵상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문다”는 결과와 네 선정의 연결을 읽을 때, 지금 경험을 깊은 집중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는 마음이 생기나요?

3 빛의 인식으로 앎과 봄을 얻다 1구절

둘째 문답은 빛과 낮의 인식을 세워 낮과 밤을 양방향으로 같게 보고, 열리고 덮이지 않은 밝은 마음을 닦는다고 답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닦고 거듭 익혀 앎과 봄을 얻는 데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은 무엇입니까? 수행자들이여, 여기 한 수행자가 빛의 인식에 마음을 기울이고 낮이라는 인식을 굳게 세웁니다. 낮과 같이 밤을, 밤과 같이 낮을 인식합니다. 이처럼 열려 있고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밝게 빛나는 마음을 닦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닦고 거듭 익혀 앎과 봄을 얻는 데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입니다.

Katamā ca,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ñāṇadassanappaṭilābhāya saṁvattati? Idha, bhikkhave, bhikkhu ālokasaññaṁ manasi karoti, divāsaññaṁ adhiṭṭhāti—yathā divā tathā rattiṁ, yathā rattiṁ tathā divā. Iti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ṁ cittaṁ bhāveti. Ayaṁ,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ñāṇadassanappaṭilābhāya saṁvatt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41 사마디바와나 숫따 (마음 모으기를 닦음)

배경

둘째 결과도 질문·방법·결론으로 닫힙니다. 먼저 빛의 인식과 낮이라는 인식이 나오며, “낮과 같이 밤을, 밤과 같이 낮을”이라는 두 방향을 모두 담습니다. 이어 마음은 열려 있고 덮이지 않은 상태에서 밝게 빛나는 마음을 닦습니다. 이 답은 밝은 대상을 보는 데서 나아가 낮과 밤의 짝, 막히지 않은 마음, 밝음을 닦는 일을 앎과 봄의 결과로 묶습니다. 이어지는 답은 느낌·인식·생각을 아는 세 시점으로 옮아갑니다.

묵상

빛의 인식이나 낮과 밤의 짝을 읽으며 지금 마음이 열려 있다고 느끼는지 조용히 살펴볼 수 있나요? 밝은 상태를 만들어 내거나 특별한 앎을 얻어야 하는 질문은 아니에요.

4 느낌·인식·생각의 세 시점을 알다 1구절

셋째 문답은 느낌과 인식과 생각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질 때 그것을 아는 일을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의 닦음이라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닦고 거듭 익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은 무엇입니까? 수행자들이여, 여기 한 수행자는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머무는 것을 알며, 사라지는 것을 압니다. 인식을 알고 …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머무는 것을 알며, 사라지는 것을 압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닦고 거듭 익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입니다.

Katamā ca,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satisampajaññāya saṁvattati? Idha, bhikkhave, bhikkhuno viditā vedan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ṁ gacchanti; viditā saññā …pe… viditā vitakk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ṁ gacchanti. Ayaṁ,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satisampajaññāya saṁvatt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41 사마디바와나 숫따 (마음 모으기를 닦음)

배경

셋째 결과의 답은 느낌, 인식, 생각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순간을 아는 것입니다. 느낌은 일어남·머묾·사라짐의 세 시점에서 알려지고, “인식을 알고” 뒤로는 되풀이되는 말을 줄였으며, 생각은 다시 같은 세 시점을 온전히 밝힙니다. 이 되풀이는 변화 하나하나가 억눌리거나 붙잡히지 않고 그대로 알려짐을 보여 줍니다.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은 느낌·인식·생각이 바뀌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닦음입니다.

묵상

느낌·인식·생각 가운데 하나가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흐름을 지금 부담 없이 알아볼 수 있나요?

5 다섯 집착의 다발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다 1구절

넷째 문답의 문을 열며, 움켜쥐는 다섯 무더기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는 것이 흘러드는 것을 다하게 하는 닦음이라 답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닦고 거듭 익혀 흘러드는 것이 다함으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은 무엇입니까? 수행자들이여, 여기 한 수행자가 움켜쥐는 다섯 무더기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뭅니다.

Katamā ca,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āsavānaṁ khayāya saṁvattati? Idha, bhikkhave, bhikkhu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udayabbayānupassī vihar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41 사마디바와나 숫따 (마음 모으기를 닦음)

배경

넷째 결과의 질문과 답을 여는 두 문장입니다. 흘러드는 것이 다함으로 이끄는 방법은 움켜쥐는 다섯 무더기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의 이름과 각각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는 법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자세히 나옵니다.

묵상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한다”는 말에서 지금 몸이나 느낌처럼 변화가 비교적 보이는 한 경험이 있나요?

6 다섯 다발의 이러함·생겨남·사라짐을 모두 보다 1구절

물질·느낌·인식·의지 작용·의식마다 이러함과 생겨남과 사라짐을 세 번씩 밝히고, 이를 흘러드는 것을 다하게 이끄는 닦음이라 결론짓습니다.

‘물질은 이러하고, 이렇게 생겨나며, 이렇게 사라집니다. 느낌은 이러하고, 이렇게 생겨나며, 이렇게 사라집니다. 인식은 이러하고, 이렇게 생겨나며, 이렇게 사라집니다. 의지적 지어내는 작용은 이러하고, 이렇게 생겨나며, 이렇게 사라집니다. 의식은 이러하고, 이렇게 생겨나며, 이렇게 사라집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닦고 거듭 익혀 흘러드는 것이 다함으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입니다.

‘iti rūpaṁ,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iti vedanā, iti vedanāya samudayo, iti vedanāya atthaṅgamo; iti saññā, iti saññāya samudayo, iti saññāya atthaṅgamo; iti saṅkhārā, iti saṅkhārānaṁ samudayo, iti saṅkhārānaṁ atthaṅgamo; iti viññāṇaṁ, iti viññāṇassa samudayo, iti viññāṇassa atthaṅgamo’ti. Ayaṁ,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āsavānaṁ khayāya saṁvatt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41 사마디바와나 숫따 (마음 모으기를 닦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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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제시한 움켜쥐는 다섯 무더기 관찰을 빠짐없이 펼칩니다. 물질, 느낌, 인식, 의지 작용, 의식의 순서대로 각각 “이러하다”고 확인한 뒤 생겨남과 사라짐을 밝힙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모두에서 그 모습과 생겨남, 사라짐이 빠짐없이 드러납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모든 관찰을 닦고 거듭 익혀 흘러드는 것이 다함으로 이끄는 넷째 마음이 한곳에 모이는 닦음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은 네 갈래를 요약하고 다른 경의 노래로 전체를 닫습니다.

묵상

물질·느낌·인식·의지 작용·의식 가운데 하나를 “이러하다, 생겨난다, 사라진다”는 세 관점으로 가볍게 볼 수 있나요?

7 네 닦음을 맺고 뿐나까의 게송을 인용하다 1구절

네 가지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닦음을 요약하고, 세상의 높고 낮음을 헤아려 흔들림 없이 태어남과 늙음을 건넌 이를 노래한 게송으로 닫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집중의 닦음입니다. 또 수행자들이여, 나는 바로 이것을 두고 ‘피안으로 가는 길’의 ‘뿐나까의 질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높고 낮은 것들을 헤아려 그에게는 세상 어디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평화롭고 연기 없고 괴로움 없고 기대가 없는 그는 태어남과 늙음을 건넜다고 나는 말합니다.’”

Imā kho, bhikkhave, catasso samādhibhāvanā. Idañca pana metaṁ, bhikkhave, sandhāya bhāsitaṁ pārāyane puṇṇakapañhe: ‘Saṅkhāya lokasmiṁ paroparāni, Yassiñjitaṁ natthi kuhiñci loke; Santo vidhūmo anīgho nirāso, Atāri so jātijaranti brūm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41 사마디바와나 숫따 (마음 모으기를 닦음)

배경

본문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먼저 “이것이 네 가지”라고 전체 문답을 닫고, 부처님은 바로 이 뜻을 두고 ‘피안으로 가는 길’의 ‘뿐나까의 질문’에서 말한 노래라고 출처를 직접 밝힙니다. 노래 네 줄은 세상의 높고 낮은 것들을 헤아림, 세상 어디에도 흔들림이 없음, 평화·연기 없음·괴로움 없음·기대 없음이라는 네 수식, 태어남과 늙음을 건넜다는 결론의 순서입니다. 이 노래로 경 전체에 걸친 부처님의 직접 말씀이 끝맺습니다.

묵상

“세상 어디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말은 지금의 경험과 아주 멀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이 노래에서 평화·괴로움 없음·기대 없음 가운데 잠시 머물 수 있는 한 표현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