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 숫따(짐)

Bhār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22.22

다섯 취착의 무더기는 짐, 사람은 짐꾼, 갈애는 짐을 짊어짐, 그 소멸은 짐을 내려놓음이라고 설한다.

인용된 가르침 7구절

이 경을 7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짐의 네 측면을 설하다 1구절

사왓티의 축약 도입 뒤 짐·짐꾼·짐을 짊어짐·짐을 내려놓음을 예고합니다.

사왓티에서 … 그곳에서 …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짐과 짐꾼, 짐을 짊어짐과 짐을 내려놓음을 말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Sāvatthiyaṁ … tatra kho … “bhārañca vo, bhikkhave, desessāmi bhārahārañca bhārādānañca bhāranikkhepanañca. Taṁ suṇātha.

상윳따 니까야 SN 22.22 바라 숫따 (짐)

배경

경은 사왓티라는 장소를 밝힌 뒤, 곧 부처님의 말씀으로 들어갑니다. 부처님은 짐, 짐꾼, 짐을 짊어짐, 짐을 내려놓음이라는 네 가지를 차례로 설명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짐은 짊어지는 대상이고, 짐꾼은 그것을 지는 사람이며, 짐을 짊어짐과 짐을 내려놓음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그것을 들어라”는 청중인 수행자들에게 이 구별을 따라오게 하는 전환입니다. 이 네 자리를 먼저 기억하면 뒤의 다섯 무더기·사람·목마름 같은 갈망(딴하)·갈망이 멎음을 한데 섞지 않고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짐, 짐꾼, 짐을 짊어짐, 짐을 내려놓음이라는 네 말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인가요?

2 움켜쥐는 다섯 무더기가 짐이다 1구절

물질·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의식의 움켜쥐는 무더기를 모두 열거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짐은 무엇인가? 움켜쥐는 다섯 무더기라고 답해야 한다. 어떤 다섯인가? 물질의 움켜쥠 무더기, 느낌의 움켜쥠 무더기, 인식의 움켜쥠 무더기, 지어내는 작용의 움켜쥠 무더기, 의식의 움켜쥠 무더기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짐이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bhāro? Pañcupādānakkhandhā tissa vacanīyaṁ. Katame pañca? Rūpupādānakkhandho, vedanupādānakkhandho, saññupādānakkhandho, saṅkhārupādānakkhandho,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ayaṁ vuccati, bhikkhave, bhāro.

상윳따 니까야 SN 22.22 바라 숫따 (짐)

배경

부처님은 짐이 무엇인지 물으시고 답하십니다. 답은 움켜쥐는 다섯 무더기입니다. 물질·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의식, 이 다섯 가지를 움켜쥐는 무더기라고 하나씩 짚은 뒤 “이것을 짐이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섯 무더기를 움켜쥐는 데 있습니다. 수행의 초점은 그것들이 붙잡힌 무더기로 어떻게 짐이 되는지를 분명히 구별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물질·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의식 가운데 “움켜쥐는 무더기”라는 말과 함께 읽을 때 새롭게 들리는 하나가 있나요?

3 이름과 가문을 지닌 사람이 짐꾼이다 1구절

짐을 나르는 이를 사람이라 답하고 이름과 가문으로 지칭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짐꾼은 누구인가? 사람이라고 답해야 한다. 곧 이러이러한 이름과 이러이러한 가문을 지닌 님이다. 수행자들이여, 이를 짐꾼이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bhārahāro? Puggalo tissa vacanīyaṁ. Yvāyaṁ āyasmā evaṁnāmo evaṅgotto; ayaṁ vuccati, bhikkhave, bhārahāro.

상윳따 니까야 SN 22.22 바라 숫따 (짐)

배경

짐의 목록에 이어 둘째인 짐꾼을 묻습니다. 답은 “사람”이라는 말이며, 경은 곧 그 사람을 이러이러한 이름과 이러이러한 가문을 지닌 님이라고 풀어 지칭합니다. 짐인 움켜쥐는 다섯 무더기와 짐꾼인 사람은 서로 다른 자리입니다. 이 짧은 답은 사람을 변하지 않는 무엇으로 높이지도, 사람이라는 표현을 지우지도 않습니다.

묵상

이름과 가문으로 한 사람을 부르는 일과, 그 사람이 지닌 경험을 짐이라고 부르는 일은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지금 자신을 가리키는 이름이나 역할 하나가 경험 전체와 같은지 잠시 물어볼 수 있나요?

4 갈망이 곧 짐을 짊어짐이다 1구절

짐을 짊어짐을 갈망으로 정의하고, 그 갈망의 세 수식과 세 갈래를 빠짐없이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짐을 짊어짐은 무엇인가? 곧 다시 태어남을 낳고 기쁨과 탐냄을 동반하며 여기저기서 즐거워하는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니,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망, 존재에 대한 갈망,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망이다. 수행자들이여, 이를 짐을 짊어짐이라 한다.”

Katamañca, bhikkhave, bhārādānaṁ? Yāyaṁ taṇhā ponobhavikā nandī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ṁ—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Idaṁ vuccati, bhikkhave, bhārādānaṁ.

상윳따 니까야 SN 22.22 바라 숫따 (짐)

배경

짐과 짐꾼을 밝힌 뒤 셋째인 짐을 짊어짐을 묻고, 그 답을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라고 정의합니다. 갈망에는 다시 태어남을 낳음, 기쁨과 탐냄을 동반함, 여기저기서 즐거워함이라는 세 수식이 붙습니다. 이어 감각적 쾌락·존재·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망이라는 세 갈래를 빠짐없이 놓습니다. 이 순서는 짐을 짊어짐이 존재를 다시 잇는 갈망의 움직임임을 보여 줍니다. 현대적 적용에서는 힘든 마음이나 쉬고 싶은 바람을 곧바로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망이라고 진단하지 않고, 이 경의 다시 태어남과 존재의 문맥을 지켜야 합니다.

묵상

다시 태어남을 낳음, 기쁨과 탐냄을 동반함, 여기저기서 즐거워함이라는 세 수식 가운데 갈망의 움직임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말은 무엇인가요?

5 갈망의 사라짐이 곧 짐을 내려놓음이다 1구절

갈망이 남김없이 바래고 사라짐을 여섯 표현으로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짐을 내려놓음은 무엇인가? 바로 그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의 남김없는 빛바램과 사라짐, 버림, 놓아 버림, 풀려남, 달라붙지 않음이다. 수행자들이여, 이를 짐을 내려놓음이라 한다.”

Katamañca, bhikkhave, bhāranikkhepanaṁ? 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 Idaṁ vuccati, bhikkhave, bhāranikkhepanan”ti.

상윳따 니까야 SN 22.22 바라 숫따 (짐)

배경

넷째 답은 앞에서 짐을 짊어짐이라 한 대상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바로 그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라는 말이 사라짐의 대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게 합니다. 이어 남김없는 빛바램, 사라짐, 버림, 놓아 버림, 풀려남, 달라붙지 않음이라는 표현들이 하나도 생략되지 않고 놓입니다. 그러므로 짐을 내려놓는다는 비유는 짐을 다시 짊어지게 하는 갈망이 남김없이 멎는 방향을 가리킵니다. 갈망을 셋째 자리에서 정의한 뒤 바로 그 갈망의 끝을 넷째 자리에 둔 것이 이 산문 문답의 결론입니다.

묵상

빛바램·사라짐·버림·놓아 버림·풀려남·달라붙지 않음 가운데 지금 가장 부드럽게 들리는 말은 무엇인가요?

6 산문의 네 정의가 게송으로 모이다 1구절

부처님의 산문이 끝난 뒤 잘 가신 스승의 게송이 네 정의를 압축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잘 가신 분이신 스승께서는 이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다섯 무더기는 짐이고, 사람은 짐꾼이다. 세상에서 짐을 짊어짐은 괴로움이고, 짐을 내려놓음은 즐거움이다.”

Idamavoca bhagavā. Idaṁ vatvāna sugato athāparaṁ etadavoca satthā: “Bhārā have pañcakkhandhā, bhārahāro ca puggalo; Bhārādānaṁ dukhaṁ loke, bhāranikkhepanaṁ sukhaṁ.

상윳따 니까야 SN 22.22 바라 숫따 (짐)

배경

부처님의 말씀이 끝나자, 잘 가신 분이신 스승께서 이어서 게송으로 다시 말씀하십니다. 첫 연은 앞의 네 정의를 짐·짐꾼·짐을 짊어짐·짐을 내려놓음의 같은 순서로 압축합니다. 산문에서는 “움켜쥐는 다섯 무더기”라고 풀었지만 게송은 “다섯 무더기”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에 짐을 짊어짐은 괴로움, 내려놓음은 즐거움이라는 대조가 더해집니다. 같은 부처님의 말씀이 산문에서 게송으로 바뀌어, 앞의 가르침을 기억하기 쉽게 모읍니다.

묵상

짐·짐꾼·짊어짐·내려놓음의 네 자리가 게송에서는 괴로움과 즐거움의 대조로 모입니다. 두 평가 가운데 어느 말이 앞의 정의를 다시 보게 하나요?

7 다른 짐을 다시 짊어지지 않다 1구절

무거운 짐을 놓고 새 짐을 들지 않으며 갈망을 뿌리째 뽑는 게송의 결말입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다른 짐을 짊어지지 않으며,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을 뿌리째 뽑은 이는 굶주림이 없어, 불이 완전히 꺼졌다.”

Nikkhipitvā garuṁ bhāraṁ, aññaṁ bhāraṁ anādiya; Samūlaṁ taṇhamabbuyha, nicchāto parinibbuto”ti.

상윳따 니까야 SN 22.22 바라 숫따 (짐)

배경

둘째 연은 첫 연의 정의를 실제로 끝내는 방향을 노래합니다. 먼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다른 짐을 다시 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어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을 뿌리째 뽑는다고 하고, ‘닛차따’는 “굶주림이 없음”, ‘빠리닙부따’는 “불이 완전히 꺼짐”의 이미지로 맺습니다. 여기의 굶주림은 앞줄의 갈망이 뿌리째 뽑힌 결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놓음·새 짐을 받지 않음·갈망의 뿌리 뽑힘·불이 완전히 꺼짐이 차례로 이어져 경 전체를 닫습니다.

묵상

한 부담을 내려놓은 뒤 곧 다른 부담을 새로 짊어졌던 작은 순간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