뿝파 숫따(꽃)

Pupph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22.94

부처님은 세상과 다투지 않으며, 물에서 나고 자란 꽃이 물에 젖지 않듯 세상에 물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용된 가르침 7구절

이 경을 7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1구절

부처님이 세상과 다투지 않으며 현자들이 인정하는 있음과 없음에 동의한다고 밝힙니다.

사왓티에서였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다툴 뿐이다. 수행자들이여, 가르침에 따라 말하는 이는 세상의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세상의 현자들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을 나도 ‘없다’고 말한다. 수행자들이여, 세상의 현자들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나도 ‘있다’고 말한다.”

Sāvatthinidānaṁ. “Nāhaṁ, bhikkhave, lokena vivadāmi, lokova mayā vivadati. Na, bhikkhave, dhammavādī kenaci lokasmiṁ vivadati. Yaṁ, bhikkhave, n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ahampi taṁ ‘natthī’ti vadāmi. Yaṁ, bhikkhave, 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ahampi taṁ ‘atthī’ti vadāmi.

상윳따 니까야 SN 22.94 뿝파 숫따 (꽃)

배경

서술자는 장소를 사왓티로 밝힌 뒤, 부처님이 수행자들에게 직접 말씀하는 장면을 엽니다. 먼저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와 “세상이 나와 다툰다”를 대조하고, 가르침에 따라 말하는 이는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이어 세상의 현자들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과 있다고 인정하는 것에 자신도 각각 같은 말을 한다는 두 문장을 놓습니다. 무엇이 없고 있는지는 이어지는 대목에서 다섯 무더기를 들어 구체화됩니다.

묵상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와 “세상이 나와 다툰다”를 나란히 읽을 때 두 문장의 방향은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2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다섯 무더기는 없다 1구절

현자들과 부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물질·느낌·인식·의지적 지어내는 작용·의식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세상 현자들이 없다고 인정하고 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냐? 수행자들이여, 영원하고 굳건하며 늘 같고 변하지 않는 성질인 물질을 현자들은 없다고 인정하고, 나도 ‘없다’고 말한다. 느낌은 … 인식은 … 지어내는 작용은 … 영원하고 굳건하며 늘 같고 변하지 않는 성질인 의식을 현자들은 없다고 인정하고, 나도 ‘없다’고 말한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현자들이 없다고 인정하고 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Kiñca, bhikkhave, n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yamahaṁ ‘natthī’ti vadāmi? Rūpaṁ, bhikkhave, niccaṁ dhuvaṁ sassataṁ avipariṇāmadhammaṁ n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ahampi taṁ ‘natthī’ti vadāmi. Vedanā … saññā … saṅkhārā … viññāṇaṁ niccaṁ dhuvaṁ sassataṁ avipariṇāmadhammaṁ n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ahampi taṁ ‘natthī’ti vadāmi. Idaṁ kho, bhikkhave, n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ahampi taṁ ‘natthī’ti vadāmi.

상윳따 니까야 SN 22.94 뿝파 숫따 (꽃)

배경

부처님이 “없다”고 말하는 대상을 묻고 스스로 답하는 완결 문답입니다. 물질과 의식에는 영원함·굳건함·늘 한결같음·변하지 않는 성질이라는 네 가지가 모두 분명히 나옵니다. 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의 이름 뒤에는 같은 말이 되풀이되므로 줄여 적었습니다. 네 한정과 현자들의 판단, 부처님의 응답이 각 무더기에 똑같이 이어집니다. 그것들이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현자들과 부처님이 함께 없다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다섯 무더기 자체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다섯 무더기”를 구별하면 없음이라는 말이 어떻게 달라지나요?

3 변하고 괴로운 다섯 무더기는 있다 1구절

현자들과 부처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대로 있지 않고 괴로우며 변하는 성질의 다섯 무더기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세상의 현자들이 있다고 인정하고 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냐? 수행자들이여, 그대로 있지 않고 괴로우며 변하는 성질인 물질을 현자들은 있다고 인정하고, 나도 그것을 ‘있다’고 말한다. 느낌은 그대로 있지 않고 … 그대로 있지 않고 괴로우며 변하는 성질인 의식을 현자들은 있다고 인정하고, 나도 그것을 ‘있다’고 말한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현자들이 있다고 인정하고 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Kiñca, bhikkhave, 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yamahaṁ ‘atthī’ti vadāmi? Rūpaṁ, bhikkhave, aniccaṁ dukkhaṁ vipariṇāmadhammaṁ 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ahampi taṁ ‘atthī’ti vadāmi. Vedanā aniccā …pe… viññāṇaṁ aniccaṁ dukkhaṁ vipariṇāmadhammaṁ 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ahampi taṁ ‘atthī’ti vadāmi. Idaṁ kho, bhikkhave, 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ahampi taṁ ‘atthī’ti vadā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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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는 앞서 나온 없음에 대한 문답과 짝을 이루는 두 번째 완결 문답입니다. 이번에는 물질과 의식에 그대로 있지 않음·괴로움·변하는 성질이라는 세 한정이 붙고, 현자들과 부처님이 그것을 “있다”고 말합니다. 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에도 같은 세 한정과 현자들의 판단, 부처님의 응답이 똑같이 이어지므로 줄여 적었습니다. 이는 조건 지어져 변하는 다섯 무더기의 현실을 인정하는 문장입니다.

묵상

“그대로 있지 않고 변하는 것이 있다”는 문장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4 세상에 속한 현상을 깨닫고 드러내다 1구절

깨달음에 이른 이가 세상에 속한 현상을 깨닫고 이해한 뒤 일곱 방식으로 분명히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세상에는 세상에 속한 현상이 있다.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그것을 깨닫고 이해한다. 깨닫고 이해한 뒤에는 그것을 알리고 가르치고 드러내 보인다.”

Atthi, bhikkhave, loke lokadhammo, taṁ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abhisambujjhitvā abhisametvā taṁ ācikkhati deseti pañña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상윳따 니까야 SN 22.94 뿝파 숫따 (꽃)

배경

부처님은 “세상에는 세상에 속한 현상이 있다”고 말하고, 깨달음에 이른 이가 그것을 깨닫고 이해한다고 밝힙니다. 이어 알림·가르침·밝힘·세움·열어 보임·나눔·드러냄이라는 일곱 가지 말로 이를 설명합니다. 이 말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물질과 나머지 네 무더기에 하나씩 적용되어, 깨달음에 이른 이의 깨달음과 설명이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지 구체화됩니다.

묵상

깨닫고 이해한다는 두 가지 말 뒤에 일곱 가지 드러냄의 말이 이어질 때, 앎과 설명은 어떤 관계로 보이나요?

5 물질을 깨닫고 설명해도 보지 못하는 이 1구절

세상에 속한 현상인 물질을 깨달음에 이른 이가 깨닫고 설명하지만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이를 어찌하겠느냐고 말합니다.

“수행자들이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깨달아 이해하고 알리고 가르치고 드러내 보이는 세상의 현상은 무엇이냐? 수행자들이여, 물질은 세상에 속한 현상이니, 깨달음에 이른 이는 이를 깨닫고 이해한다. 깨달아 이해하고 알리고 가르치고 드러내 보인다. 수행자들이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이렇게 알리고 가르치고 드러내 보이는데도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그 어리석은 여느 사람은 눈멀고 눈이 없으며 알지도 보지도 못하니, 수행자들이여, 내가 어찌하겠는가?”

Kiñca, bhikkhave, loke lokadhammo, taṁ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abhisambujjhitvā abhisametvā ācikkhati deseti pañña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Rūpaṁ, bhikkhave, loke lokadhammo taṁ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Abhisambujjhitvā abhisametvā ācikkhati deseti pañña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Yo, bhikkhave, tathāgatena evaṁ ācikkhiyamāne desiyamāne paññapiyamāne paṭṭhapiyamāne vivariyamāne vibhajiyamāne uttānīkariyamāne na jānāti na passati tamahaṁ, bhikkhave, bālaṁ puthujjanaṁ andhaṁ acakkhukaṁ ajānantaṁ apassantaṁ kinti karomi.

상윳따 니까야 SN 22.94 뿝파 숫따 (꽃)

배경

부처님은 세상에 속한 현상이 무엇인지 묻고, 첫째로 물질을 들어 답합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가 물질을 깨닫고 이해한 뒤 일곱 가지 방식으로 드러낸다는 말이 질문과 답에서 반복됩니다. 그런데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를 어리석은 여느 사람·눈먼 이·눈 없는 이·알지 못하는 이·보지 못하는 이로 거듭 부른 뒤 ‘내가 어찌하겠는가’고 묻습니다. 이 대목은 깨달음에 이른 이가 거듭 설명해도 듣는 이의 앎과 봄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묵상

같은 말이 질문·설명·마지막 물음에서 반복될 때 무엇이 강조되어 보이나요?

6 느낌에서 의식까지 같은 설명을 반복하다 1구절

느낌·인식·의지적 지어내는 작용·의식에도 물질과 같은 설명과 알지 못하는 이에 관한 물음을 적용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느낌은 세상의 현상이니 … 수행자들이여, 인식은 … 수행자들이여, 지어내는 작용은 … 수행자들이여, 의식은 세상의 현상이니, 깨달음에 이른 이는 이를 깨닫고 이해한다. 깨달아 이해하고 알리고 가르치고 드러내 보인다. 수행자들이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이렇게 알리고 가르치고 드러내 보이는데도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그 어리석은 여느 사람은 눈멀고 눈이 없으며 알지도 보지도 못하니, 수행자들이여, 내가 어찌하겠는가?”

Vedanā, bhikkhave, loke lokadhammo …pe… saññā, bhikkhave … saṅkhārā, bhikkhave … viññāṇaṁ, bhikkhave, loke lokadhammo taṁ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Abhisambujjhitvā abhisametvā ācikkhati deseti pañña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Yo, bhikkhave, tathāgatena evaṁ ācikkhiyamāne desiyamāne paññapiyamāne paṭṭhapiyamāne vivariyamāne vibhajiyamāne uttānīkariyamāne na jānāti na passati tamahaṁ, bhikkhave, bālaṁ puthujjanaṁ andhaṁ acakkhukaṁ ajānantaṁ apassantaṁ kinti karomi.

상윳따 니까야 SN 22.94 뿝파 숫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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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다음에는 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의식이 같은 순서로 이어져 다섯 무더기의 목록을 완성합니다. 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에는 앞서 나온 물질 설명이 그대로 되풀이되므로 줄여 적었습니다. 의식에서는 세상에 속한 현상, 깨달음과 이해, 일곱 가지 설명,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이에 관한 마지막 물음을 다시 온전히 적어, 네 무더기 모두에 같은 설명이 적용됨을 보여 줍니다. ‘지어내는 작용’은 다섯 무더기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묵상

물질에서 온전히 나온 설명이 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을 거쳐 의식에서 다시 온전히 나타날 때 반복의 폭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7 물에서 자라도 물에 젖지 않는 꽃 1구절

물에서 나고 자란 세 종류의 꽃이 물 위로 솟아 젖지 않듯 깨달음에 이른 이도 세상에서 자랐으나 물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수행자들이여, 푸른 수련이나 붉은 연꽃이나 흰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솟아 서서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다. 수행자들이여, 그와 같이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세상에서 나고 세상에서 자랐으나, 세상을 뛰어넘어 세상에 물들지 않은 채 머문다.”

Seyyathāpi, bhikkhave, uppalaṁ vā padumaṁ vā puṇḍarīkaṁ vā udake jātaṁ udake saṁvaḍḍhaṁ udakā accuggamma ṭhāti anupalittaṁ udakena; evameva kho, bhikkhave, tathāgato loke jāto loke saṁvaḍḍho lokaṁ abhibhuyya viharati anupalitto lokenā”ti.

상윳따 니까야 SN 22.94 뿝파 숫따 (꽃)

배경

마지막 비유에는 푸른 수련·붉은 연꽃·흰 연꽃 세 가지 꽃이 모두 나옵니다. 꽃은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지만 물 위로 솟아 서며 물에 젖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깨달음에 이른 이도 세상에서 나고 세상에서 자랐으나 세상을 뛰어넘어 세상에 물들지 않은 채 머문다고 직접 말씀합니다. 이 비유에서 물은 꽃이 나고 자란 바탕이며, 진흙은 별도의 요소로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 대목은 깨달음에 이른 이와 세상의 관계를 밝히는 경의 결말입니다.

묵상

물에서 나고 자란 꽃이 물 위에 서면서도 젖지 않는 장면은 앞의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는 선언과 어떻게 이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