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눗소니 숫따

Jāṇussoṇi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3.59

세습과 세 베다의 앎을 지난 삶의 기억·업에 따른 태어남·번뇌의 소멸이라는 세 밝은 앎과 대조한다.

인용된 가르침 10구절

이 경을 10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보시할 이를 두고 세 가지 앎을 묻다 1구절

자눗소니가 네 종류의 공양을 세 베다에 통달한 브라흐마나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하자 부처님께서 그 기준을 되묻습니다.

그때 자눗소니,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부처님께 다가가 부처님과 함께 … 한쪽에 앉았다. 자눗소니 브라흐마나가 부처님께 말했다. “고따마 님, 제사나 조상께 올리는 음식이나 솥에 지은 우유죽이나 베풀 것이 있는 이는 세 베다에 통달한 브라흐마나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브라흐마나여, 브라흐마나들은 세 가지 앎을 갖춘 브라흐마나를 어떻게 정하는가?”

Atha kho jāṇussoṇi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pe… ekamantaṁ nisinno kho jāṇussoṇi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yassassu, bho gotama, yañño vā saddhaṁ vā thālipāko vā deyyadhammaṁ vā, tevijjesu brāhmaṇesu dānaṁ dadeyyā”ti. “Yathā kathaṁ pana, brāhmaṇa, brāhmaṇā tevijjaṁ paññapen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9 자눗소니 숫따

배경

경은 자눗소니 브라흐마나가 부처님을 찾아온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자눗소니는 제사나 조상께 올리는 음식, 솥에 지은 우유죽, 그밖에 베풀 것이 있다면 세 베다에 통달한 브라흐마나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곧바로 동의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브라흐마나들이 ‘세 가지 앎을 갖춘 이’를 어떻게 정하는지 되묻습니다. 이 물음은 세습과 학문으로 얻은 앎과 성자의 훈련에서 직접 얻는 세 밝은 앎을 비교하게 합니다. 수행의 의미는 익숙한 권위의 이름보다 그 기준이 실제로 무엇인지 먼저 분명히 묻는 데 있습니다.

묵상

누구에게 무엇을 맡기거나 나눌 때 이름·혈통·학력 같은 표지를 먼저 보나요?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함께 묻는다면 판단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2 혈통과 세 베다의 기준을 밝히다 1구절

자눗소니가 일곱 대의 깨끗한 혈통과 세 베다 학식을 열거하자 부처님께서 성자의 기준은 다르다고 밝히십니다.

“고따마 님, 브라흐마나는 모계와 부계로 잘 태어나 일곱 대까지 혈통이 깨끗해 출생으로 흠잡히거나 비난받지 않습니다. 성전을 암송해 간직하고, 어휘·의례·음운·낱말 분류와 다섯째 역사 전승을 갖춘 세 베다에 통달하며, 낱말·문법·세상 이론·위대한 사람의 특징에도 정통합니다. 고따마 님, 브라흐마나들은 이렇게 정합니다.” “브라흐마나여, 브라흐마나들은 한 방식으로 정하지만 거룩한 이의 훈련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춘 이가 된다.”

“Idha kho, bho gotama, brāhmaṇo ubhato sujāto hoti mātito ca pitito ca saṁsuddhagahaṇiko yāva sattamā pitāmahayugā akkhitto anupakkuṭṭho jātivādena, ajjhāyako mantadharo, tiṇṇaṁ vedānaṁ pāragū sanighaṇḍukeṭubhānaṁ sākkharappabhedānaṁ itihāsapañcamānaṁ, padako, veyyākaraṇo, lokāyatamahāpurisalakkhaṇesu anavayoti. Evaṁ kho, bho gotama, brāhmaṇā tevijjaṁ paññapentī”ti. “Aññathā kho, brāhmaṇa, brāhmaṇā brāhmaṇaṁ tevijjaṁ paññapenti, aññathā ca pana ariyassa vinaye tevijjo ho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9 자눗소니 숫따

배경

자눗소니의 정의는 두 묶음입니다. 첫째는 모계와 부계 양쪽에서 일곱 대까지 흠잡히지 않는 출생이고, 둘째는 성전 암송과 세 베다의 여러 보조 학문에 대한 통달입니다. 어휘·의례·음운·어원·역사 전승과 낱말·문법·세상 이론·위대한 사람의 특징이 빠짐없이 이어집니다. 부처님은 그 목록을 논박하기보다, 같은 ‘세 가지 앎’이라는 말이 성자의 훈련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선을 긋습니다. 수행의 뜻은 사회가 인정한 자격과, 마음을 밝히는 직접 앎의 기준을 각각 분명히 보는 데 있습니다.

묵상

내가 신뢰하는 자격은 태어난 조건과 배운 지식에 얼마나 기대고 있나요? 실제 경험에서 무지와 어둠을 줄이는 앎은 그 자격과 어디에서 같고 어디에서 다른가요? 어느 쪽을 낮추지 않고 차이를 살필 수 있을까요?

3 성자의 세 가지 밝은 앎을 청하다 1구절

자눗소니가 성자의 훈련에서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추는 법을 청하고 부처님께서 네 번째 깊은 집중부터 답을 시작하십니다.

“고따마 님, 성자의 훈련에서는 어떻게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춥니까? 고따마 님께서는 그렇게 되는 가르침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브라흐마나여, 잘 듣고 바르게 마음에 새겨라. 내가 말하겠다.” 자눗소니가 “그러겠습니다, 고따마 님”이라고 답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브라흐마나여,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 … 네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문다.”

“Yathā kathaṁ pana, bho gotama, ariyassa vinaye tevijjo hoti? Sādhu me bhavaṁ gotamo tathā dhammaṁ desetu yathā ariyassa vinaye tevijjo hotī”ti. “Tena hi, brāhmaṇa, suṇāhi, sādhukaṁ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Evaṁ, bho”ti kho jāṇussoṇi brāhmaṇo bhagavato paccassosi. Bhagavā etadavoca: “Idha pana, brāhmaṇa, bhikkhu vivicceva kāmehi …pe…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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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자눗소니는 차이를 들은 뒤 성자의 훈련에서 세 밝은 앎을 갖추는 법을 직접 청합니다. 부처님은 잘 듣고 바르게 마음에 새기라고 하며, 자눗소니의 응답 뒤 가르침을 폅니다. 수행자의 출발점은 감각적 쾌락에서 벗어나는 데서 네 번째 깊은 집중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수행의 의미는 잘 듣고 마음을 기울이며 실제로 고요를 닦아, 뒤의 세 앎이 일어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마련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익숙한 답이 흔들릴 때 자눗소니처럼 다른 기준을 진심으로 물을 수 있나요? 잘 듣기·마음에 새기기·고요를 마련하기 가운데 지금 내게 가장 부족하게 느껴지는 조건은 무엇인가요?

4 지난 삶을 기억하는 첫 번째 밝은 앎 1구절

깨끗하고 흔들리지 않는 집중된 마음으로 여러 지난 삶을 기억하고 첫 번째 밝은 앎을 얻습니다.

“그렇게 집중된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을 때,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한 생, 두 생 … 여러 지난 삶을 모습과 세부까지 기억한다. 이는 얻은 첫 번째 밝은 앎이니, 모름은 무너지고 앎이 일어나며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일어난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pe…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Ayamassa paṭhamā vijjā adhigatā hoti;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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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첫 번째 밝은 앎의 바탕은 깊은 집중으로 모인 마음입니다. 원문은 그 마음을 깨끗함·밝음·흠 없음·더러움 없음·부드러움·쓰기 좋음·굳건함·흔들리지 않음의 여덟 성질로 묘사합니다. 수행자는 그 마음을 지난 삶의 기억으로 기울이고, 한 생과 두 생에서 여러 지난 삶까지 모습과 세부를 기억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밝은 앎이며, 모름이 무너지고 앎이 생기는 것과 어둠이 무너지고 빛이 생기는 것, 그리고 게으르지 않음·열심·굳은 뜻이라는 세 조건으로 맺습니다. 수행의 뜻은 고요하고 쓸 수 있는 마음으로 모르던 삶의 흐름을 밝히는 데 있습니다.

묵상

과거를 떠올릴 때 내가 원하는 이야기만 남기나요, 아니면 모습과 세부까지 함께 보려 하나요? 기억이 실제로 모름과 어둠을 줄이고 현재의 선택을 밝히는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5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두 번째 밝은 앎 1구절

같은 집중된 마음으로 존재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알고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 집중된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을 때,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데 마음을 기울인다. 깨끗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신성한 눈으로 …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 이는 얻은 두 번째 밝은 앎이니, 모름은 무너지고 앎이 일어나며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일어난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p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Ayamassa dutiyā vijjā adhigatā hoti;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앙굿따라 니까야 AN 3.59 자눗소니 숫따

배경

두 번째 밝은 앎도 앞서와 같은 여덟 성질의 집중된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이번에는 마음을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데 기울입니다. 깨끗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눈으로 보는 가운데, 존재들이 자기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밝게 압니다. 이것이 두 번째 밝은 앎이며, 모름과 어둠이 사라지고 앎과 빛이 생기는 것, 그리고 게으르지 않음·열심·굳은 뜻이라는 세 조건이 첫 번째 밝은 앎과 같은 순서로 반복됩니다. 수행의 의미는 행위와 결과의 연결을, 자신의 선택이 방향을 만든다는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묵상

내 행동이 그 순간에 끝난다고 여기나요, 아니면 마음과 관계에 이어질 방향을 남긴다고 느끼나요? 오늘의 작은 선택이 어떤 습관과 결과를 키울지 살피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6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을 끝내는 길을 바로 알다 1구절

집중된 마음을 흘러드는 것의 소멸을 아는 데 기울여 괴로움과 흘러드는 것의 구조를 있는 그대로 압니다.

“그렇게 집중된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을 때, 흘러드는 것이 다함을 아는 데 마음을 기울인다.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 ‘이것은 괴로움이 멎음으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들은 흘러드는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 ‘이것은 흘러드는 것이 멎음으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pe…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pe…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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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세 번째 밝은 앎은 같은 집중된 마음을 흘러드는 것이 다함을 아는 데 기울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먼저 괴로움과 그것이 멎음으로 이끄는 실천을, 이어 흘러드는 것과 그것이 멎음으로 이끄는 실천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괴로움이든 흘러드는 것이든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서 비롯되는지, 어떻게 멎는지, 무엇이 그것을 멎게 하는지를 모두 아는 것입니다. 수행의 의미는 흘러드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것이 끝나는 길로 마음을 기울여, 다음 대목의 실제 풀려남이 일어날 조건을 갖추는 데 있습니다.

묵상

괴로움이나 흘러드는 것이 나타나면 결과만 빨리 없애려 하나요? 그것이 무엇이며 어디서 일어나고 어떻게 멎고 어떤 실천이 그것을 멎게 하는지 함께 보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7 마음이 풀려났음을 아는 세 번째 밝은 앎 1구절

풀려난 마음은 풀려났음을 알고 네 가지 완료를 확인한 뒤 세 번째 밝은 앎의 빛을 밝힙니다.

“이렇게 알고 보자 감각적 욕망으로 흘러드는 것에서 마음이 풀려나고, 존재로 흘러드는 것에서 마음이 풀려나며, 모름으로 흘러드는 것에서 마음이 풀려난다. 풀려나면 ‘풀려났다’는 앎이 생기고, 이렇게 안다. ‘태어남은 다했고, 거룩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얻은 세 번째 밝은 앎이니, 모름은 무너지고 앎이 일어나며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일어난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물 때 그러하듯이.”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Ayamassa tatiyā vijjā adhigatā hoti;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9 자눗소니 숫따

배경

마음이 세 흘러드는 것에서 풀려난 뒤에는 ‘풀려났다’는 앎이 생깁니다. 이어 태어남은 다함·거룩한 삶은 완성됨·해야 할 일은 마침·다시 이런 존재로 돌아오지 않음이라는 네 완료를 같은 순서로 확인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밝은 앎입니다. 경은 모름이 무너지고 앎이 생기는 것과 어둠이 무너지고 빛이 생기는 것, 게으르지 않음·열심·굳은 뜻의 세 조건을 다시 반복해 세 밝은 앎의 공통 결론을 완성합니다. 수행의 뜻은 흘러드는 것에서 실제로 풀려난 결과와 남은 일이 없다는 앎이 함께 이루어지는지를 분명히 보는 데 있습니다.

묵상

잠깐 홀가분한 느낌과 마음을 묶던 원인이 끝나 풀려났다는 앎은 어떻게 다를까요? 해야 할 일이 남았는지 정직하게 살피면서도 지금 줄어든 속박을 알아볼 수 있나요?

8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춘 성자를 노래하다 1구절

계행과 집중을 갖추고 지난 삶·하늘 세계와 비참한 곳·태어남의 끝을 아는 성자를 게송으로 요약합니다.

계행과 의례를 갖추고, 굳은 뜻으로 집중하며, 마음을 제어하고, 하나로 잘 집중한 이, 지난 삶을 알고, 하늘 세계와 나쁜 곳을 보며, 태어남이 다함에 이른 이, 직접 앎을 완성한 성자이다.

Yo sīlabbatasampanno, pahitatto samāhito; Cittaṁ yassa vasībhūtaṁ, ekaggaṁ susamāhitaṁ. Pubbenivāsaṁ yo vedī, saggāpāyañca passati; Atho jātikkhayaṁ patto, abhiññāvosito mun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9 자눗소니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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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산문 설명 뒤에 여덟 구절의 첫 노래가 세 밝은 앎을 한 사람의 삶으로 모읍니다. 앞의 네 구절은 계행과 의례를 갖춤·굳은 뜻·집중·마음의 제어와 하나됨을 말하고, 뒤의 네 구절은 지난 삶을 앎·하늘 세계와 나쁜 곳을 봄·태어남이 다함에 이름·직접 앎을 완성한 성자를 차례로 노래합니다. 산문의 첫째·둘째·셋째 밝은 앎이 노래에서도 같은 순서로 유지됩니다. 수행의 의미는 계행과 집중을 바탕으로 태어남의 끝까지 이른 한 방향의 훈련으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앎을 많이 모으는 일과 계행·집중·마음의 제어가 함께 성숙하는 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지금 내가 기르는 지식은 삶의 방향과 행동을 실제로 바꾸고 있나요?

9 되풀이하는 말이 아닌 직접 앎 1구절

세 밝은 앎으로 진정한 세 가지 앎의 브라흐마나가 되며 남의 말을 되풀이하는 이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맺습니다.

“이 세 가지 밝은 앎으로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세 가지 앎을 갖춘 이가 된다. 나는 그런 이를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춘 이라 부르며, 남이 한 말을 되풀이하는 이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브라흐마나여, 성자의 훈련에서는 이와 같이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춘다.”

Etāhi tīhi vijjāhi, tevijjo hoti brāhmaṇo; Tamahaṁ vadāmi tevijjaṁ, nāññaṁ lapitalāpananti. Evaṁ kho, brāhmaṇa, ariyassa vinaye tevijjo ho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9 자눗소니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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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노래는 ‘이 세 가지 밝은 앎으로’라는 말로 수량을 먼저 못 박습니다. 그 세 앎을 실제로 갖춘 브라흐마나를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춘 이’라고 부르며, 남이 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이는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부처님은 성자의 훈련에서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추는 길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씀을 맺습니다. 수행의 뜻은 암송한 말과 자신이 직접 알고 본 변화 사이의 차이를 잊지 않는 데 있습니다.

묵상

내가 자주 설명하는 가르침 가운데 직접 확인한 것과 아직 들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각각 무엇인가요? 모르는 범위를 숨기지 않고 구분하면 배움이 어떻게 더 정직해질까요?

10 열여섯째 몫에도 미치지 못함을 인정하다 1구절

자눗소니가 두 기준의 차이와 열여섯째 몫의 비유를 인정하고 찬탄한 뒤 평생 귀의한 재가 신자가 되기를 청합니다.

“고따마 님, 브라흐마나들의 세 가지 앎은 한 방식이고 성자의 훈련에서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추는 것은 다른 방식입니다. 고따마 님, 브라흐마나들의 세 가지 앎은 성자의 훈련에서 세 밝은 앎을 갖춘 이의 열여섯째 몫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훌륭합니다, 고따마 님 … 고따마 님께서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집에 사는 신도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Aññathā, bho gotama, brāhmaṇānaṁ tevijjo, aññathā ca pana ariyassa vinaye tevijjo hoti. Imassa ca, bho gotama, ariyassa vinaye tevijjassa brāhmaṇānaṁ tevijjo kalaṁ nāgghati soḷasiṁ. Abhikkantaṁ, bho gotama …pe… upāsakaṁ maṁ bhavaṁ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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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눗소니는 처음 자신이 제시한 브라흐마나의 세 가지 앎과 성자의 훈련에서 얻는 세 밝은 앎이 다르다고 인정합니다. 이어 전자는 후자의 열여섯째 몫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수량으로 평가합니다. 마지막에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집에 사는 신도로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 수행의 의미는 자신의 첫 기준이 바뀌었음을 숨기지 않고 인정하며, 새롭게 확인한 방향을 오래 지킬 관계와 삶의 선택으로 잇는 데 있습니다.

묵상

내가 중요하다고 믿던 기준보다 더 깊은 기준을 만났을 때 그 차이를 솔직히 인정할 수 있나요? 이해의 변화가 순간의 감탄을 넘어 오래 지킬 선택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