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세상에는 이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넷인가?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지만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은 얻지 못한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을 얻지만 내면의 마음 고요는 얻지 못한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내면의 마음 고요도 얻지 못하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지 못한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는다.”
“Cattārome, bhikkhave, puggalā santo saṁvijjamānā lokasmiṁ. Katame cattāro?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lābhī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na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lābhī hoti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na lābhī ajjhattaṁ cetosamathassa.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na ceva lābhī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na ca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lābhī ceva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lābhī ca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배경
부처님은 수행자들에게 세상에 있는 네 부류를 선언하고 “어떤 넷인가?”라고 직접 물은 뒤 분류를 완성합니다. 내면의 마음 고요와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 이 둘을 기준으로 하나만 얻은 두 경우, 둘 다 얻지 못한 경우, 둘 다 얻은 경우가 빠짐없이 나뉩니다. 이 분류는 이어지는 대목에서 무엇을 누구에게 물을지를 정하는 출발점입니다. 사람을 고정된 틀에 가두는 말은 아닙니다.
묵상
고요와 통찰 가운데 지금 비교적 익숙한 쪽과 아직 낯선 쪽은 무엇인가요? 네 부류는 현재 갖춘 조건을 살피는 틀로 읽을 수 있어요. 고정된 신분을 매기는 말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