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띠야사마디 숫따(마음 모음, 셋째)

Tatiyasamādhi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고요와 통찰의 네 부류가 부족한 덕을 지닌 이를 찾아 묻고, 둘을 갖춘 뒤 번뇌 소멸에 힘쓴다.

인용된 가르침 8구절

이 경을 8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고요와 통찰에 따른 네 부류 1구절

내면의 마음 고요와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을 얻었는지에 따라 사람을 네 부류로 나눕니다.

“수행자들이여, 세상에는 이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넷인가?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지만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은 얻지 못한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을 얻지만 내면의 마음 고요는 얻지 못한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내면의 마음 고요도 얻지 못하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지 못한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는다.”

“Cattārome, bhikkhave, puggalā santo saṁvijjamānā lokasmiṁ. Katame cattāro?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lābhī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na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lābhī hoti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na lābhī ajjhattaṁ cetosamathassa.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na ceva lābhī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na ca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lābhī ceva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lābhī ca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따띠야사마디 숫따 (마음 모음, 셋째)

배경

부처님은 수행자들에게 세상에 있는 네 부류를 선언하고 “어떤 넷인가?”라고 직접 물은 뒤 분류를 완성합니다. 내면의 마음 고요와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 이 둘을 기준으로 하나만 얻은 두 경우, 둘 다 얻지 못한 경우, 둘 다 얻은 경우가 빠짐없이 나뉩니다. 이 분류는 이어지는 대목에서 무엇을 누구에게 물을지를 정하는 출발점입니다. 사람을 고정된 틀에 가두는 말은 아닙니다.

묵상

고요와 통찰 가운데 지금 비교적 익숙한 쪽과 아직 낯선 쪽은 무엇인가요? 네 부류는 현재 갖춘 조건을 살피는 틀로 읽을 수 있어요. 고정된 신분을 매기는 말은 아니에요.

2 고요만 얻은 이의 세 가지 질문 1구절

이치 통찰을 얻은 이에게 다가가 지어진 것들을 보는 세 방식을 하나씩 묻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내면의 마음 고요는 얻었으나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은 얻지 못한 사람은, 수행자들이여, 이치 통찰을 얻은 사람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어야 한다. ‘벗이여, 지어진 것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지어진 것들을 어떻게 살펴야 합니까? 지어진 것들을 어떻게 통찰해야 합니까?’”

Tatra, bhikkhave, yvāyaṁ puggalo lābhī ajjhattaṁ cetosamathassa na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tena, bhikkhave, puggalena yvāyaṁ puggalo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so upasaṅkamitvā evamassa vacanīyo: ‘kathaṁ nu kho, āvuso, saṅkhārā daṭṭhabbā? Kathaṁ saṅkhārā sammasitabbā? Kathaṁ saṅkhārā vipassitabb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따띠야사마디 숫따 (마음 모음, 셋째)

배경

첫째 부류는 혼자 부족한 덕을 만들어 내라는 말을 듣지 않고, 높은 지혜로 이치를 통찰한 사람에게 직접 다가갑니다. “벗이여”는 함께 수행하는 동료를 부르는 말입니다. 지어진 것들을 보는 법, 살피는 법, 꿰뚫어 보는 법을 하나씩 따로 묻습니다.

묵상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통찰을 이미 익힌 벗에게 묻는다면, 막연한 조언보다 어떤 구체적인 질문이 도움이 될까요?

3 세 답변을 듣고 고요와 통찰을 함께 얻다 1구절

도반이 보고 아는 대로 세 질문에 모두 답하고, 질문한 이는 나중에 두 덕을 함께 얻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아는 대로 답한다. ‘벗이여, 지어진 것들은 이렇게 보아야 하고, 지어진 것들은 이렇게 살펴야 하며, 지어진 것들은 이렇게 통찰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는다.”

Tassa so yathādiṭṭhaṁ yathāviditaṁ byākaroti: ‘evaṁ kho, āvuso, saṅkhārā daṭṭhabbā, evaṁ saṅkhārā sammasitabbā, evaṁ saṅkhārā vipassitabbā’ti. So aparena samayena lābhī ceva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lābhī ca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따띠야사마디 숫따 (마음 모음, 셋째)

배경

통찰을 얻은 벗은 자신이 직접 보고 아는 대로 답합니다. 지어진 것들을 이렇게 보고, 이렇게 살피고, 이렇게 통찰해야 한다고 세 번 되풀이해 말합니다. 그렇게 답한 사람은 나중에 내면의 마음 고요와 높은 지혜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힘을 함께 얻습니다.

묵상

벗의 답을 들을 때 그 사람이 직접 보고 아는 범위와 단순한 추측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4 통찰만 얻은 이의 네 가지 질문 1구절

마음 고요를 얻은 이에게 다가가 마음을 자리 잡히고 가라앉혀 마음이 한곳에 모이는 네 단계를 묻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은 얻었으나 내면의 마음 고요는 얻지 못한 사람은, 수행자들이여, 마음 고요를 얻은 사람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어야 한다. ‘벗이여, 마음을 어떻게 자리 잡게 해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가라앉혀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하나로 모아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한곳에 모이게 해야 합니까?’”

Tatra, bhikkhave, yvāyaṁ puggalo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na lābhī ajjhattaṁ cetosamathassa, tena, bhikkhave, puggalena yvāyaṁ puggalo lābhī ajjhattaṁ cetosamathassa so upasaṅkamitvā evamassa vacanīyo: ‘kathaṁ nu kho, āvuso, cittaṁ saṇṭhapetabbaṁ? Kathaṁ cittaṁ sannisādetabbaṁ? Kathaṁ cittaṁ ekodi kātabbaṁ? Kathaṁ cittaṁ samādahātabb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따띠야사마디 숫따 (마음 모음, 셋째)

배경

둘째 부류는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은 사람에게 다가가 부족한 조건을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마음을 자리 잡게 함, 가라앉힘, 하나로 모음, 한곳에 모이게 함을 묻는 네 질문이 되풀이됩니다. 네 말은 서로 가까운 뜻이지만 마음을 다루는 네 가지 다른 움직임을 가리킵니다.

묵상

마음의 고요를 묻는다면 자리 잡음·가라앉음·하나로 모음·마음이 한곳에 모임 가운데 어느 표현이 가장 낯선가요?

5 네 답변을 듣고 통찰과 고요를 함께 얻다 1구절

도반이 마음에 관한 네 질문에 모두 답하고, 질문한 이는 나중에 두 덕을 함께 얻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아는 대로 답한다. ‘벗이여, 마음은 이렇게 자리 잡게 해야 하고, 마음은 이렇게 가라앉혀야 하며, 마음은 이렇게 하나로 모아야 하고, 마음은 이렇게 한곳에 모이게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을 얻고 내면의 마음 고요도 얻는다.”

Tassa so yathādiṭṭhaṁ yathāviditaṁ byākaroti: ‘evaṁ kho, āvuso, cittaṁ saṇṭhapetabbaṁ, evaṁ cittaṁ sannisādetabbaṁ, evaṁ cittaṁ ekodi kātabbaṁ, evaṁ cittaṁ samādahātabban’ti. So aparena samaye lābhī ceva hoti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lābhī ca ajjhattaṁ cetosamathassa.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따띠야사마디 숫따 (마음 모음, 셋째)

배경

마음 고요를 얻은 벗은 자신이 보고 아는 대로 네 질문에 답합니다. 자리 잡게 함, 가라앉힘, 하나로 모음, 한곳에 모이게 함을 질문과 같은 순서로 “마음은 이렇게”라며 네 번 모두 답합니다. 그 결과 질문한 사람은 나중에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과 내면의 마음 고요를 모두 얻습니다. 앞 부류와 달리 이번에는 통찰이 먼저 나옵니다.

묵상

네 답변을 하나의 모호한 “집중법”으로 듣지 않고 각각의 차이를 살핀다면 무엇이 새롭게 보이나요?

6 둘 다 얻지 못한 이의 일곱 질문 1구절

고요와 통찰을 모두 얻은 이에게 다가가 마음의 네 질문과 지어진 것들의 세 질문을 전부 묻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내면의 마음 고요도 얻지 못하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지 못한 사람은, 수행자들이여, 둘 다 얻은 사람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어야 한다. ‘벗이여, 마음을 어떻게 자리 잡게 해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가라앉혀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하나로 모아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한곳에 모이게 해야 합니까? 지어진 것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지어진 것들을 어떻게 살펴야 합니까? 지어진 것들을 어떻게 통찰해야 합니까?’”

Tatra, bhikkhave, yvāyaṁ puggalo na ceva lābhī ajjhattaṁ cetosamathassa na ca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tena, bhikkhave, puggalena yvāyaṁ puggalo lābhī ceva ajjhattaṁ cetosamathassa lābhī ca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so upasaṅkamitvā evamassa vacanīyo: ‘kathaṁ nu kho, āvuso, cittaṁ saṇṭhapetabbaṁ? Kathaṁ cittaṁ sannisādetabbaṁ? Kathaṁ cittaṁ ekodi kātabbaṁ? Kathaṁ cittaṁ samādahātabbaṁ? Kathaṁ saṅkhārā daṭṭhabbā? Kathaṁ saṅkhārā sammasitabbā? Kathaṁ saṅkhārā vipassitabb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따띠야사마디 숫따 (마음 모음,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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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부류는 두 덕을 모두 얻은 사람에게 다가가 질문합니다. 이 사람은 마음 고요도 이치 통찰도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묻는 것은 마음에 관한 것 네 가지와 지어진 것들에 관한 것 세 가지, 모두 일곱 가지입니다. 마음의 자리 잡음, 가라앉음, 하나로 모음, 한곳에 모임과 지어진 것들을 보는 법, 살피는 법, 꿰뚫어 보는 법을 하나씩 모두 묻습니다.

묵상

두 영역이 모두 낯설 때 한 사람에게 일곱 질문을 차례로 묻는 구조는 무엇을 보여 주나요?

7 일곱 답변을 듣고 두 덕을 함께 얻다 1구절

도반이 일곱 질문에 같은 순서로 모두 답하고, 질문한 이는 나중에 고요와 통찰을 함께 얻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아는 대로 답한다. ‘벗이여, 마음은 이렇게 자리 잡게 해야 하고, 마음은 이렇게 가라앉혀야 하며, 마음은 이렇게 하나로 모아야 하고, 마음은 이렇게 한곳에 모이게 해야 하며, 지어진 것들은 이렇게 보아야 하고, 지어진 것들은 이렇게 살펴야 하며, 지어진 것들은 이렇게 통찰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는다.”

Tassa so yathādiṭṭhaṁ yathāviditaṁ byākaroti: ‘evaṁ kho, āvuso, cittaṁ saṇṭhapetabbaṁ, evaṁ cittaṁ sannisādetabbaṁ, evaṁ cittaṁ ekodi kātabbaṁ, evaṁ cittaṁ samādahātabbaṁ, evaṁ saṅkhārā daṭṭhabbā, evaṁ saṅkhārā sammasitabbā, evaṁ saṅkhārā vipassitabbā’ti. So aparena samayena lābhī ceva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lābhī ca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따띠야사마디 숫따 (마음 모음, 셋째)

배경

두 덕을 얻은 벗은 자신이 보고 아는 대로 일곱 질문에 답합니다. 앞에서와 같은 순서로 마음에 관한 네 가지와 지어진 것들에 관한 세 가지를 모두 되풀이해 답합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내면의 마음 고요와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을 모두 얻습니다.

묵상

일곱 답변을 읽을 때 마음의 네 동작과 지어진 것들의 세 동작이 어떻게 다른 흐름을 이루나요?

8 고요와 깊이 보는 힘으로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을 끝내려 더 힘쓰다 1구절

고요와 통찰을 모두 얻은 이는 그 이로운 것들에 서서 마음을 흐리는 것을 없애는 데 더 힘써야 한다고 결론짓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은 사람은, 수행자들이여, 그 이로운 것들에 굳게 서서 흘러드는 것이 다하도록 더 힘써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세상에는 이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Tatra, bhikkhave, yvāyaṁ puggalo lābhī ceva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lābhī ca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tena, bhikkhave, puggalena tesu ceva kusalesu dhammesu patiṭṭhāya uttari āsavānaṁ khayāya yogo karaṇīyo. Ime kho, bhikkhave, cattāro puggalā santo saṁvijjamānā lokasm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따띠야사마디 숫따 (마음 모음, 셋째)

배경

넷째 부류는 이미 두 덕을 얻었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묻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그 이로운 것들에 굳게 서서 더 나아가 흘러드는 것이 다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 힘씀은 둘을 모두 얻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결론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세상에 이 네 부류가 있음을 다시 확인합니다.

묵상

고요와 통찰을 어느 정도 함께 경험했다고 느낄 때 그것을 완성으로 단정하지 않고, 더 남은 마음을 흐리는 것을 살피는 태도는 어떤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