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숫따

Doṇ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의 네 존재 질문에, 물에 젖지 않는 연꽃과 다시 생기지 않는 번뇌로 답한다.

인용된 가르침 9구절

이 경을 9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천 개의 바퀴살 무늬가 남은 발자국 1구절

같은 길을 가던 도나 브라흐마나가 부처님의 발자국에서 완전한 수레바퀴 무늬들을 보고 인간의 발자국이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욱깟타와 세따뱌 사이의 길을 가고 계셨고, 도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도 욱깟타와 세따뱌 사이의 길을 가고 있었다. 도나는 부처님의 발자국에서 수레바퀴 무늬들을 보았는데, 바퀴살이 천 개이고 테두리와 바퀴통을 갖추어 모든 모양이 완전하였다.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참으로 놀랍구나, 참으로 경이롭구나. 이 발자국들은 사람이 된 이의 것이 아닐 것이다.’”

Ekaṁ samayaṁ bhagavā antarā ca ukkaṭṭhaṁ antarā ca setabyaṁ addhānamaggappaṭipanno hoti. Doṇopi sudaṁ brāhmaṇo antarā ca ukkaṭṭhaṁ antarā ca setabyaṁ addhānamaggappaṭipanno hoti. Addasā kho doṇo brāhmaṇo bhagavato pādesu cakkāni sahassārāni sanemikāni sanābhikāni sabbākāraparipūrāni; disvānassa etadahosi: “acchariyaṁ vata bho, abbhutaṁ vata bho. Na vatimāni manussabhūtassa padāni bhavissan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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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 첫 장면은 부처님과 도나 브라흐마나가 각자 욱깟타와 세따뱌 사이의 길을 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도나는 부처님의 발자국에서 수레바퀴 무늬들을 보았는데, 바퀴살이 천 개이고 테두리와 바퀴통을 갖추어 모든 모양이 완전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도나는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경이롭다. 이 발자국들은 사람이 된 이의 것이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놀라움이 뒤에 이어지는, 그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천 개의 바퀴살·테두리·바퀴통 가운데 도나의 시선을 붙든 세부 하나를 골라 볼 수 있나요? 그 놀라움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떠올려 볼 수 있나요?

2 나무 아래 앉은 고요한 이를 찾아가다 1구절

부처님께서 나무 아래 바른 자세와 알아차림으로 앉고, 발자국을 따라온 도나가 고요하고 잘 길든 모습을 보고 다가갑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길에서 벗어나 어느 나무 아래 가부좌를 맺고 몸을 곧게 세우며 앞에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앉으셨다. 도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부처님의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그분이 어느 나무 아래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은 단정하고 믿음을 일으켰으며, 감각 기능과 마음이 고요하고 가장 높은 길들임과 고요에 이르렀으며, 길들고 보호되며 감각 기능이 절제된 큰 코끼리 같았다. 도나는 부처님께 다가가 말씀드렸다.”

Atha kho bhagavā maggā okkamma aññatarasmiṁ rukkhamūle nisīdi pallaṅkaṁ ābhujitvā ujuṁ kāyaṁ paṇidhāya parimukhaṁ satiṁ upaṭṭhapetvā. Atha kho doṇo brāhmaṇo bhagavato padāni anugacchanto addasa bhagavantaṁ aññatarasmiṁ rukkhamūle nisinnaṁ pāsādikaṁ pasādanīyaṁ santindriyaṁ santamānasaṁ uttamadamathasamathamanuppattaṁ dantaṁ guttaṁ saṁyatindriyaṁ nāgaṁ. Disvān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etadavoca: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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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과 문답 사이를 잇는 대목입니다. 부처님은 길에서 벗어나 나무 아래 가부좌를 하고 몸을 곧게 세우고 앞에 알아차림을 확립한 채 앉습니다. 도나는 발자국을 따라와 같은 나무 아래의 부처님을 보는데, 그 모습은 단정하고 믿음을 일으키며, 감각 기능과 마음이 고요하고, 가장 높은 길들임과 고요에 이르렀으며, 길들고 보호되고 감각 기능이 절제된 큰 코끼리 같습니다. 이름을 묻기 전에 먼저 몸과 감각 기능, 마음의 고요가 눈에 들어옵니다.

묵상

곧은 몸·알아차림·고요한 감각 기능 가운데 지금 장면을 가장 선명하게 만드는 표현이 있나요? 같은 자세나 고요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요구는 아니에요. 지금 그대의 몸과 마음 가운데 가장 고요한 곳은 어디인가요?

3 신·간답바·약카·사람인가를 묻다 1구절

도나가 신·간답바·약카·사람이 될 것인지 차례로 묻고, 부처님께서 각 물음에 모두 같은 부정으로 답합니다.

“‘당신께서는 신이 되실 것입니까?’ ‘브라흐마나여, 나는 신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께서는 간답바가 되실 것입니까?’ ‘브라흐마나여, 나는 간답바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께서는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가 되실 것입니까?’ ‘브라흐마나여, 나는 약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께서는 사람이 되실 것입니까?’ ‘브라흐마나여, 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Devo no bhavaṁ bhavissatī”ti? “Na kho ahaṁ, brāhmaṇa, devo bhavissāmī”ti. “Gandhabbo no bhavaṁ bhavissatī”ti? “Na kho ahaṁ, brāhmaṇa, gandhabbo bhavissāmī”ti. “Yakkho no bhavaṁ bhavissatī”ti? “Na kho ahaṁ, brāhmaṇa, yakkho bhavissāmī”ti. “Manusso no bhavaṁ bhavissatī”ti? “Na kho ahaṁ, brāhmaṇa, manusso bhavissām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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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와 부처님의 첫 문답입니다. 도나는 신, 간답바,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 사람의 순서로 한 번씩 묻고, 부처님은 같은 순서로 네 번 다 아니라고 답합니다. 이 부정은 다시 생겨날 원인이 없다는 뜻입니다. 도나가 곧 네 답을 다시 묻고, 이어지는 부처님의 설명은 그런 존재가 되게 할 흘러드는 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밝힙니다.

묵상

신·간답바·약카·사람이라는 네 이름이 같은 질문과 부정 안에 놓인 배열은 어떻게 들리나요? 그대라면 지금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에 뭐라고 답하겠어요?

4 신과 간답바가 아니라는 답을 되묻다 1구절

도나가 신과 간답바에 관한 앞의 두 질문과 부처님의 두 부정을 직접 인용하며 확인합니다.

“‘그분께서는 신이 되실 것입니까?’라고 여쭈었을 때, ‘브라흐마나여, 나는 신이 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간답바가 되실 것입니까?’라고 여쭈었을 때, ‘브라흐마나여, 나는 간답바가 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씀하셨다.”

“‘Devo no bhavaṁ bhavissatī’ti, iti puṭṭho samāno: ‘na kho ahaṁ, brāhmaṇa, devo bhavissāmī’ti vadesi. ‘Gandhabbo no bhavaṁ bhavissatī’ti, iti puṭṭho samāno: ‘na kho ahaṁ, brāhmaṇa, gandhabbo bhavissāmī’ti vadesi.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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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는 앞의 문답을 요약하지 않고, 신과 간답바에 관한 두 문답을 그대로 다시 묻고 확인합니다. 이것은 앞서 들은 말을 하나씩 정확히 확인하는 도나의 말입니다. 익숙한 이름을 서둘러 붙이지 않고, 받은 답을 하나씩 다시 확인하는 끈기를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질문과 답을 도나가 다시 인용하는 대목에서 처음과 달리 들리는 말이 있나요? 그대는 확실히 하려고 같은 질문을 다시 묻던 때를 떠올릴 수 있나요?

5 약카와 사람도 아니라면 무엇인가 1구절

도나가 약카와 사람에 대한 나머지 문답을 되풀이한 뒤, 그렇다면 부처님은 무엇이 될 것인지 묻습니다.

“‘그분께서는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가 되실 것입니까?’라고 여쭈었을 때, ‘브라흐마나여, 나는 약카가 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사람이 되실 것입니까?’라고 여쭈었을 때, ‘브라흐마나여, 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무엇이 되실 것인가?”

‘Yakkho no bhavaṁ bhavissatī’ti, iti puṭṭho samāno: ‘na kho ahaṁ, brāhmaṇa, yakkho bhavissāmī’ti vadesi. ‘Manusso no bhavaṁ bhavissatī’ti, iti puṭṭho samāno: ‘na kho ahaṁ, brāhmaṇa, manusso bhavissāmī’ti vadesi. Atha ko carahi bhavaṁ bhavissa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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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의 신과 간답바에 이어, 도나는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와 사람에 관한 두 문답도 같은 방식으로 다시 묻습니다. 네 가능성이 모두 부정된 뒤, 도나는 “그러면 무엇이 되실 것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 모든 말은 도나의 물음이고, 부처님의 설명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시작됩니다. 이 마지막 물음은 정해진 범주 가운데 하나를 억지로 고르지 않고, 그 부정이 가리키는 까닭을 새로 묻습니다.

묵상

네 가능성을 모두 되물은 뒤 “그러면 무엇입니까?”라고 이어지는 전환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그대에게는 지금 “그러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어떤 모습으로 떠오르나요?

6 마음에 흘러들어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들을 뿌리째 끊다 1구절

신·간답바·약카·사람이 되게 할 흘러드는 것이 모두 버려지고 뿌리째 잘려 미래에 다시 생기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브라흐마나여, 내가 어떤 흘러드는 것을 버리지 않아 신이 될 수 있다면, 그 흘러드는 것은 버려지고 뿌리가 잘려, 밑동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어 없어졌고,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브라흐마나여, 내가 어떤 흘러드는 것을 버리지 않아 간답바가 될 수 있다면 …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가 될 수 있다면 …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흘러드는 것은 버려지고 뿌리가 잘려, 밑동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어 없어졌고,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Yesaṁ kho ahaṁ, brāhmaṇa, āsavānaṁ appahīnattā devo bhaveyyaṁ, te me āsavā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ṅkatā āyatiṁ anuppādadhammā. Yesaṁ kho ahaṁ, brāhmaṇa, āsavānaṁ appahīnattā gandhabbo bhaveyyaṁ … yakkho bhaveyyaṁ … manusso bhaveyyaṁ, te me āsavā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ṅkatā āyatiṁ anuppādadhamm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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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의 “무엇이 되실 것입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부처님의 첫 설명입니다. 신이나 간답바,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흘러드는 것을 버리지 못했을 때뿐인데, 부처님에게는 그 흘러드는 것이 이미 버려지고 뿌리가 잘려, 밑동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어 사라졌고, 앞으로 다시 생기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지금도 사람의 모습으로 계시지만, 그런 존재가 되게 할 원인은 다시 생기지 않습니다.

묵상

“버려짐·뿌리 잘림·다시 일어나지 않음”이라는 결과의 흐름 가운데 지금 유독 눈에 들어오는 표현이 있나요? 그대 안에서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7 물에서 자란 연꽃처럼 세상에 물들지 않다 1구절

세 종류의 연꽃이 물에서 나고 자라도 물에 젖지 않듯, 세상에서 나고 자랐으나 세상에 물들지 않는 깨달은 이라고 밝힙니다.

“브라흐마나여, 마치 푸른 수련이나 붉은 연꽃이나 흰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랐으나 물 위로 솟아 서서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소. 브라흐마나여, 나도 세상에서 나고 세상에서 자랐으나 세상을 뛰어넘어 세상에 물들지 않은 채 머무오. 브라흐마나여, 나를 깨달은 이로 기억해라.”

Seyyathāpi, brāhmaṇa, uppalaṁ vā padumaṁ vā puṇḍarīkaṁ vā udake jātaṁ udake saṁvaḍḍhaṁ udakā accuggamma tiṭṭhati anupalittaṁ udakena; evamevaṁ kho ahaṁ, brāhmaṇa, loke jāto loke saṁvaḍḍho lokaṁ abhibhuyya viharāmi anupalitto lokena. Buddhoti maṁ, brāhmaṇa, dhāreh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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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드는 것이 다하는 설명 뒤에 비유·적용·명명이라는 세 단계가 이어집니다. 비유는 푸른 수련·붉은 연꽃·흰 연꽃 세 종류를 모두 들어, 물에서 남·물에서 자람·물 위로 솟아 섬·물에 젖지 않음의 순서를 지킵니다. 적용은 같은 틀을 세상에서 남·세상에서 자람·세상을 뛰어넘음·세상에 물들지 않고 머묾으로 옮깁니다. 마지막 문장은 “나를 깨달은 이로 기억하시오”라는 명령형 결론입니다. 세 구절마다 브라흐마나를 부르는 말이 있으므로 ‘브라흐마나여’도 세 번입니다. 이 비유는 세상 안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거기 들러붙지 않는 삶을 보여 줍니다.

묵상

물에서 나고 자랐지만 물에 젖지 않는다는 연꽃의 어느 단계가 지금 가장 또렷한가요? 세상과 거리를 두거나 감정을 차단해야 한다는 질문은 아니에요.

8 네 모습으로 태어나게 할 뿌리가 뽑혔다는 노래 1구절

게송이 신·간답바·약카·인간의 네 상태를 다시 열거하고, 그곳으로 이끌 흘러드는 것이 다하고 흩어져 뿌리째 뽑혔다고 노래합니다.

“나를 신으로 태어나게 하거나 하늘을 나는 간답바가 되게 할 것, 나를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의 상태에 이르게 하거나 인간의 상태로 가게 할 것, 그런 나의 흘러드는 것들은 다하였고, 흩어져 뿌리째 뽑혔네.”

Yena devūpapatyassa, gandhabbo vā vihaṅgamo; Yakkhattaṁ yena gaccheyyaṁ, manussattañca abbaje; Te mayhaṁ āsavā khīṇā, viddhastā vinaḷīkatā.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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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답변을 마친 뒤 시작되는 게송의 첫 여섯 줄입니다. ‘~하게 하거나 ~할 것’이라는 같은 틀이 신과 간답바,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와 인간을 두 짝으로 묶어, 앞 문답의 네 존재를 같은 순서로 되받습니다. 마지막 두 줄은 바로 그 네 상태로 이끌 나의 흘러드는 것들을 가리키며, 다함·흩어짐·뿌리째 뽑힘이라는 세 결과로 끝맺습니다. 이 연은 새로운 다섯째 존재를 보태지 않고, 앞 산문에서 말한 원인과 결과를 압축해 다시 노래합니다. 이 반복은 ‘깨달은 이’라는 이름이 흘러드는 것이 다함이라는 근거에서 벗어나지 않게 합니다.

묵상

네 존재의 목록보다 “흘러드는 것들은 다하였고, 흩어져 뿌리째 뽑혔다”는 세 결과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그 상태를 이루었는지 자신에게 묻는 질문은 아니에요.

9 그러므로 나는 깨달은 이다 1구절

아름다운 흰 연꽃에 물이 젖지 않듯 세상에 물들지 않기에 자신이 깨달은 이라고 결론짓는 마지막 게송입니다.

“아름다운 흰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 나도 세상에 물들지 않네. 그러므로 브라흐마나여, 나는 깨달은 이라네.”

Puṇḍarīkaṁ yathā vaggu, Toyena nupalippati; Nupalippāmi lokena, Tasmā buddhosmi brāhmaṇ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 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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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네 줄은 앞의 세 연꽃 가운데 아름다운 흰 연꽃 하나를 골라 비유를 압축합니다. 앞 구절은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다고 말하고, 뒤 구절은 세상이 나에게 들러붙지 않는다고 같은 말로 잇습니다. 연꽃이 물에 젖지 않듯 세상도 나에게 들러붙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브라흐마나여, 나는 깨달은 이”라는 답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도나의 “무엇이 되실 것입니까?”라는 물음에, 세상에 물들지 않는 삶과 흘러드는 것이 다함으로 깨달은 이를 밝히는 결론입니다.

묵상

“물에 젖지 않음”과 “세상에 물들지 않음”이 나란히 놓인 것은 어떻게 들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