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부처님께서는 웨살리 큰 숲의 중각강당에 머무셨습니다. 시하 장군이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앉아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현세에서 직접 드러나는 베풂의 결실을 밝힐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시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하여,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호감을 받습니다. 시하여, 이것도 현세에서 직접 드러나는 베풂의 결실입니다.”
Ekaṁ samayaṁ bhagavā vesāliyaṁ viharati mahāvane kūṭāgārasālāyaṁ. Atha kho sīho senāpati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sīho senāpati bhagavantaṁ etadavoca: “sakkā nu kho, bhante, bhagavā sandiṭṭhikaṁ dānaphalaṁ paññāpetun”ti? “Sakkā, sīhā”ti bhagavā avoca: “dāyako, sīha, dānapati bahuno janassa piyo hoti manāpo. Yampi, sīha, dāyako dānapati bahuno janassa piyo hoti manāpo, idampi sandiṭṭhikaṁ dānaphalaṁ.
배경
경의 장면과 첫 문답입니다. 웨살리 큰 숲의 중각강당에서 시하 장군이 예를 갖추고 한쪽에 앉아, 베풂의 결실 가운데 현세에서 직접 드러나는 것을 밝힐 수 있는지 묻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능하다고 답한 뒤 첫 결실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호감을 받는 일을 제시하고 같은 현세 결론을 반복하십니다. ‘베푸는 이’와 ‘베풂의 주인’은 경전에서 짝을 이루어 쓰이는 두 표현입니다. 수행의 뜻은 베풂을 먼 미래의 보상만으로 미루지 않고 지금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결실부터 살피는 데 있습니다.
묵상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호감을 받는다’는 첫 결실을 읽을 때 떠오르는 나눔의 경험이 있나요? 사랑받기 위해 베풀어야 한다는 요구는 아니에요. 무언가를 나눈 뒤 관계의 분위기가 달라진 적이 있는지 살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