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세나빠띠 숫따(시하 장군)

Sīhasenāpati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보시의 네 현세 결실과 한 사후 결실을 시하 장군의 직접 앎과 믿음의 구분 및 게송으로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9구절

이 경을 9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현세에서 드러나는 첫 베풂의 결실 1구절

시하 장군의 질문에 부처님께서 많은 사람의 사랑과 호감을 첫 결실로 답하십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웨살리 큰 숲의 중각강당에 머무셨습니다. 시하 장군이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앉아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현세에서 직접 드러나는 베풂의 결실을 밝힐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시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하여,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호감을 받습니다. 시하여, 이것도 현세에서 직접 드러나는 베풂의 결실입니다.”

Ekaṁ samayaṁ bhagavā vesāliyaṁ viharati mahāvane kūṭāgārasālāyaṁ. Atha kho sīho senāpati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sīho senāpati bhagavantaṁ etadavoca: “sakkā nu kho, bhante, bhagavā sandiṭṭhikaṁ dānaphalaṁ paññāpetun”ti? “Sakkā, sīhā”ti bhagavā avoca: “dāyako, sīha, dānapati bahuno janassa piyo hoti manāpo. Yampi, sīha, dāyako dānapati bahuno janassa piyo hoti manāpo, idampi sandiṭṭhikaṁ dānaphal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세나빠띠 숫따 (시하 장군)

배경

경의 장면과 첫 문답입니다. 웨살리 큰 숲의 중각강당에서 시하 장군이 예를 갖추고 한쪽에 앉아, 베풂의 결실 가운데 현세에서 직접 드러나는 것을 밝힐 수 있는지 묻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능하다고 답한 뒤 첫 결실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호감을 받는 일을 제시하고 같은 현세 결론을 반복하십니다. ‘베푸는 이’와 ‘베풂의 주인’은 경전에서 짝을 이루어 쓰이는 두 표현입니다. 수행의 뜻은 베풂을 먼 미래의 보상만으로 미루지 않고 지금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결실부터 살피는 데 있습니다.

묵상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호감을 받는다’는 첫 결실을 읽을 때 떠오르는 나눔의 경험이 있나요? 사랑받기 위해 베풀어야 한다는 요구는 아니에요. 무언가를 나눈 뒤 관계의 분위기가 달라진 적이 있는지 살필 수 있나요?

2 참사람의 교류와 좋은 평판 1구절

베풂의 둘째·셋째 현세 결실인 참사람의 교류와 좋은 평판을 반복해 확정합니다.

또한 시하여, 참사람들은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과 어울립니다. 시하여, 참사람들이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과 어울린다는 것, 이것도 현세에서 직접 드러나는 베풂의 결실입니다. 또한 시하여,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에게 좋은 평판이 널리 퍼집니다. 시하여, 그에게 좋은 평판이 널리 퍼진다는 것, 이것도 현세에서 직접 드러나는 베풂의 결실입니다.

Puna caparaṁ, sīha, dāyakaṁ dānapatiṁ santo sappurisā bhajanti. Yampi, sīha, dāyakaṁ dānapatiṁ santo sappurisā bhajanti, idampi sandiṭṭhikaṁ dānaphalaṁ. Puna caparaṁ, sīha, dāyakassa dānapatino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cchati. Yampi, sīha, dāyakassa dānapatino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cchati, idampi sandiṭṭhikaṁ dānaphal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세나빠띠 숫따 (시하 장군)

배경

첫 결실에 이어 둘째와 셋째를 함께 보여 줍니다. 둘째는 선하고 참된 사람들이 베푸는 이와 가까이 지낸다는 것이고, 셋째는 그에게 좋은 평판이 널리 퍼진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그 사실을 먼저 말하고, 다시 한 번 현세에서 바로 드러나는 베풂의 결실이라고 되풀이해 말합니다. 그때마다 ‘시하여’라는 부름과 ‘베푸는 이’·‘베풂의 주인’이라는 말이 두 번씩 쓰입니다. 베풂으로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고 어떤 평판이 쌓이는지, 지금 삶에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묵상

나눔 뒤에 가까워진 사람이 있거나, 누군가의 꾸준한 베풂을 보고 신뢰하게 된 경험이 있나요? 관계와 평판 가운데 지금 더 직접 살필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3 네 모임에 자신 있게 들어감 1구절

왕족·브라흐마나·재가자·수행자의 모임에 자신 있고 주눅 들지 않게 들어가는 넷째 결실입니다.

또한 시하여,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은 왕족·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집에 사는 사람·수행자 가운데 어떤 모임에 가든 자신 있고 주눅 들지 않은 채 들어갑니다. 시하여,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은 왕족·브라흐마나·집에 사는 사람·수행자 가운데 어떤 모임에 가든 자신 있고 주눅 들지 않은 채 들어갑니다. 이것도 현세에서 직접 드러나는 베풂의 결실입니다.

Puna caparaṁ, sīha, dāyako dānapati yaṁ yadeva parisaṁ upasaṅkamati—yadi khattiyaparisaṁ yadi brāhmaṇaparisaṁ yadi gahapatiparisaṁ yadi samaṇaparisaṁ—visārado upasaṅkamati amaṅkubhūto. Yampi, sīha, dāyako dānapati yaṁ yadeva parisaṁ upasaṅkamati—yadi khattiyaparisaṁ yadi brāhmaṇaparisaṁ yadi gahapatiparisaṁ yadi samaṇaparisaṁ—visārado upasaṅkamati amaṅkubhūto, idampi sandiṭṭhikaṁ dānaphal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세나빠띠 숫따 (시하 장군)

배경

넷째 현세 결실을 하나의 긴 반복으로 제시합니다. 베푸는 이는 왕족·브라흐마나·집에 사는 사람·수행자 가운데 어떤 모임에 가든 들어갑니다. 들어가는 방식에도 자신 있음과 주눅 들지 않음이라는 두 특성이 함께 나타납니다. 경문은 네 모임과 두 특성을 결론 문장에서 다시 한 번 그대로 말합니다. 수행의 뜻은 베풂이 신분이나 집단에 따라 태도를 숨겨야 하는 움츠림을 덜고, 여러 관계 속에 떳떳하게 참여하는 현세의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살피는 데 있습니다.

묵상

‘어떤 모임에 가든 자신 있고 주눅 들지 않는다’는 말에서 지금 가까운 모임 하나가 떠오르나요? 나눔이나 돌봄의 경험이 그 자리에서 아주 조금 편안함을 준 적이 있는지 살필 수 있나요?

4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 1구절

앞의 네 현세 결실과 달리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에 태어나는 내세의 결실입니다.

또한 시하여,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납니다. 시하여,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나는 것, 이것은 내세에 이르는 베풂의 결실입니다.”

Puna caparaṁ, sīha, dāyako dānap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Yampi, sīha, dāyako dānap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idaṁ samparāyikaṁ dānaphal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세나빠띠 숫따 (시하 장군)

배경

네 현세 결실 뒤에 다섯째 결실을 별도로 둡니다. 몸이 무너짐·죽은 뒤·좋은 곳·하늘 세계라는 네 표현이 사실 진술과 결론에서 모두 반복됩니다. 앞의 네 가지는 현세에서 바로 드러나는 결실(산딧티까)이고, 다섯째는 내세에 이르는 결실(삼빠라이까)입니다. 수행의 뜻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현재의 변화와 아직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후의 주장을 같은 방식으로 안다고 여기지 않고 구별해서 듣는 데 있습니다.

묵상

현세에서 드러나는 네 결실과 내세에 이르는 한 결실을 경이 구분하는 방식은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직접 아는 것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구별해 말할 수 있나요?

5 직접 아는 네 결실의 첫 확인 1구절

시하 장군이 네 현세 결실은 믿음에 기대지 않고 안다며 사랑과 참사람의 교류를 확인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시하 장군이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 밝히신 현세의 네 베풂 결실에 관해서 저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에 기대지 않습니다. 저도 이것들을 압니다. 부처님, 저는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호감을 받습니다. 부처님, 저는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입니다. 참사람들이 저와 어울립니다.

Evaṁ vutte, sīho senāpati bhagavantaṁ etadavoca: “yānimāni, bhante, bhagavatā cattāri sandiṭṭhikāni dānaphalāni akkhātāni, nāhaṁ ettha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 ahaṁ petāni jānāmi. Ahaṁ, bhante, dāyako dānapati bahuno janassa piyo manāpo. Ahaṁ, bhante, dāyako dānapati; maṁ santo sappurisā bhaj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세나빠띠 숫따 (시하 장군)

배경

다섯 결실을 들은 시하 장군이 자신의 앎을 밝히는 답변의 전반입니다. 그는 먼저 현세에서 드러나는 것이 정확히 넷이라고 수량을 되짚고, 그 네 가지에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에 기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신도 직접 안다며 사랑과 호감을 받는 일, 참사람들이 자신과 어울리는 일을 스스로 확인합니다. ‘부처님’과 ‘저는’이라는 말이 세 번 번갈아 나오며, 부처님이 밝히신 사실과 장군 자신의 경험을 구분해 줍니다. 수행의 뜻은 현재 경험으로 확인한 것과 아직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정직하게 나누는 데 있습니다.

묵상

‘믿음에 기대지 않고 저도 압니다’라는 말과 함께 떠오르는 직접 경험이 있나요? 지금 분명히 아는 한 가지와 아직 확인하지 못한 한 가지를 구별해 볼 수 있나요?

6 평판과 네 모임을 직접 확인함 1구절

시하 장군이 자신의 좋은 평판과 네 모임에서의 자신감을 들어 네 현세 결실의 직접 앎을 닫습니다.

부처님, 저는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입니다. 저에 관해 ‘시하 장군은 베풀고 실천하며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돌본다’는 좋은 평판이 퍼졌습니다. 부처님, 저는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입니다. 왕족·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집에 사는 사람·수행자 가운데 어떤 모임에 가든 자신 있고 주눅 들지 않은 채 들어갑니다. 부처님, 현세의 네 베풂 결실에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에 기대지 않습니다. 저도 이것들을 압니다.

Ahaṁ, bhante, dāyako dānapati; mayhaṁ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sīho senāpati dāyako kārako saṅghupaṭṭhāko’ti. Ahaṁ, bhante, dāyako dānapati yaṁ yadeva parisaṁ upasaṅkamāmi—yadi khattiyaparisaṁ yadi brāhmaṇaparisaṁ yadi gahapatiparisaṁ yadi samaṇaparisaṁ—visārado upasaṅkamāmi amaṅkubhūto. Yānimāni, bhante, bhagavatā cattāri sandiṭṭhikāni dānaphalāni akkhātāni, nāhaṁ ettha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 ahaṁ petāni jānāmi.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세나빠띠 숫따 (시하 장군)

배경

시하 장군의 경험 보고 후반입니다. 셋째 결실은 자신이 베풀고 실천하며 수행자 공동체를 돌본다는 세 내용의 좋은 평판이고, 넷째는 왕족·브라흐마나·집에 사는 사람·수행자의 네 모임에 자신 있고 주눅 들지 않게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는 이 두 경험을 말한 뒤 현세의 네 결실 전체에는 믿음에 기대지 않고 자신도 안다는 처음의 문장을 다시 반복합니다. 베풂의 결실은 오랫동안 쌓인 행위·관계·처신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묵상

시하 장군이 평판과 여러 모임에서의 태도를 자신의 경험으로 확인하는 장면에서 어떤 부분이 눈에 들어오나요? 꾸준히 한 나눔이 내 행동이나 사람들 사이의 편안함에 남긴 흔적이 있나요?

7 알지 못하는 결실과 믿음 1구절

시하 장군은 사후의 결실은 알지 못해 믿음에 의지한다고 말하고 부처님께서는 이를 거듭 확인하십니다.

부처님, 그러나 부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다릅니다. ‘시하여,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저는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 점에서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에 의지합니다.” “그렇습니다, 시하여. 그렇습니다, 시하여. 베푸는 이, 베풂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납니다.”

Yañca kho maṁ, bhante, bhagavā evamāha: ‘dāyako, sīha, dānap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ī’ti, etāhaṁ na jānāmi; ettha ca panāhaṁ bhagavato saddhāya gacchāmī”ti. “Evametaṁ, sīha, evametaṁ, sīha. Dāyako dānap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세나빠띠 숫따 (시하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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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 장군의 답변이 현세의 직접 앎에서 사후 결실로 전환됩니다. 그는 부처님의 다섯째 진술을 그대로 인용한 뒤, 이것은 알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이 점에서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에 의지한다고 밝힙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렇습니다, 시하여’를 두 번 반복하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는 문장을 다시 온전히 확인하십니다. 수행의 뜻은 경험과 믿음의 경계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아직 직접 알지 못하는 가르침을 어떤 신뢰로 받아들이는지 살피는 데 있습니다.

묵상

‘저는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믿음의 범위를 밝히는 시하 장군의 태도는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알지 못한다고 정직하게 둘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나요?

8 게송으로 모은 네 현세 결실 1구절

사랑과 교류·좋은 평판·커지는 명성·모임에서의 자신감을 첫 게송에 모읍니다.

베푸는 이는 사랑받고 많은 이가 그와 어울리며, 좋은 평판을 얻고 명성이 자랍니다. 인색하지 않은 사람은 모임에 들어가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습니다.

Dadaṁ piyo hoti bhajanti naṁ bahū, Kittiñca pappoti yaso ca vaḍḍhati; Amaṅkubhūto parisaṁ vigāhati, Visārado hoti naro amaccharī.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세나빠띠 숫따 (시하 장군)

배경

산문의 다섯 결실 뒤 첫 게송이 앞서 말한 네 현세 결실을 시적으로 모읍니다. 베푸는 이는 사랑받고 많은 이가 그와 어울리며, 좋은 평판을 얻고 명성이 자랍니다. 이어 모임에 들어갈 때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는 사람을 인색하지 않은 사람(아맛차리)이라고 부릅니다. 산문에서 따로 반복한 사랑·참사람의 교류·좋은 평판·네 모임의 자신감이 게송에서는 네 행의 흐름으로 압축됩니다. 수행의 뜻은 인색하지 않은 태도가 관계·평판·처신에 함께 드러나는 모습임을 살피는 데 있습니다.

묵상

‘인색하지 않은 사람은 모임에서 주눅 들지 않는다’는 두 표현의 연결이 어떻게 들리나요? 무언가를 기꺼이 나눈 기억이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편안함으로 남아 있는지 살필 수 있나요?

9 인색함을 씻고 난다나 동산으로 1구절

지혜로운 이의 보시부터 잘 가신 분의 제자들이 하늘 세계에서 즐기는 결실까지 두 게송으로 맺습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바라는 지혜로운 이들은 인색함의 때를 몰아내고 베풉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삼십삼천에 자리 잡아 신들과 함께 즐깁니다. 선행의 기회를 마련하고 선을 행한 뒤 이곳을 떠난 이들은 스스로 빛나며 난다나 동산을 거닙니다. 그곳에서 기뻐하고 즐기며 환희하고, 다섯 감각적 즐거움을 갖추어 누립니다. 집착을 벗어나 한결같은 분의 말씀을 실천한 잘 가신 분의 제자들은 하늘 세계에서 즐깁니다.”

Tasmā hi dānāni dadanti paṇḍitā, Vineyya maccheramalaṁ sukhesino; Te dīgharattaṁ tidive patiṭṭhitā, Devānaṁ sahabyagatā ramanti te. Katāvakāsā katakusalā ito cutā, Sayaṁpabhā anuvicaranti nandanaṁ; Te tattha nandanti ramanti modare, Samappitā kāmaguṇehi pañcahi; Katvāna vākyaṁ asitassa tādino, Ramanti sagge sugatassa sāvak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세나빠띠 숫따 (시하 장군)

배경

마지막 두 게송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베풂의 선택을 하늘 세계의 결실에 잇습니다. 행복을 바라는 지혜로운 이들은 인색함의 때를 몰아내고 베풀며, 오랫동안 삼십삼천에서 신들과 함께 즐깁니다. 이어 선을 행할 기회를 마련하고 실제로 선을 행한 뒤 이곳을 떠나, 스스로 빛나며 난다나 동산을 거니는 모습을 순서대로 말합니다. 그곳의 세 동작은 기뻐함·즐김·환희함이고 갖춘 것은 다섯 감각적 즐거움입니다. 마지막은 집착을 벗어나 한결같은 분의 말씀을 실천한 잘 가신 분의 제자들이 하늘 세계에서 즐긴다고 말합니다. 수행의 뜻은 인색함을 덜고 선을 행하는 현재의 선택과, 경이 말하는 사후 결실을 원인과 결과의 흐름으로 듣는 데 있습니다.

묵상

‘인색함의 때를 몰아내고 베푼다’와 ‘선행의 기회를 마련하고 선을 행한다’ 가운데 지금 더 가까운 말은 무엇인가요? 나눌 준비를 하는 중인지, 이미 가능한 작은 선행이 있는지 살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