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Paṭhamamaraṇassati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죽음이 숨 한 번, 밥 한 입 먹는 사이에도 닥칠 수 있다고 여겨야 부지런한 것이라 말한다.

인용된 가르침 13구절

이 경을 13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나띠까의 벽돌집에서 수행자들을 부르다 1구절

나띠까의 벽돌집에서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을 부르고 수행자들이 응답하여 설법이 시작됩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나띠까의 벽돌집에 머무셨습니다. 그곳에서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부처님.” 하고 그 수행자들은 부처님께 응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Ekaṁ samayaṁ bhagavā nātike viharati giñjakāvasath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경의 도입 장면입니다. 장소를 나띠까의 벽돌집으로 밝힌 뒤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을 부르고, 수행자들이 응답하자 가르침을 펴기 시작합니다. ‘수행자들이여’라는 부름과 ‘부처님’이라는 응답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마지막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는 이어질 질문이 부처님의 말임을 여는 문장입니다. 이 짧은 문답은 죽음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갑자기 독자에게 던지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듣고 답하는 가르침의 자리 안에 놓습니다.

묵상

부처님의 부름에 수행자들이 함께 응답하는 장면을 읽을 때 어떤 분위기가 느껴지나요?

2 불사로 향하는 죽음의 상념을 묻다 1구절

죽음의 상념을 거듭 닦을 때의 큰 결실과 불사의 지향을 밝히고 실제로 닦는지 묻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고 거듭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으며, 불사에 잠기고 불사로 끝난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고 있는가?”

“maraṇassati, bhikkhave,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amatogadhā amatapariyosānā. Bhāvetha no tumhe, bhikkhave,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부처님의 첫 선언과 질문입니다.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고 거듭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에 잠기고 불사로 끝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다음 바로 이어서 실제로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고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수행의 초점은 유한함을 잊지 않는 관찰을 거듭 길러 불사를 향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죽음의 알아차림”과 “불사”가 한 문단에 함께 놓인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삶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지나요?

3 하루 밤낮을 기준으로 닦다 1구절

첫 수행자가 하루 밤낮을 더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겠다는 방식으로 죽음의 상념을 설명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한 수행자가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부처님, 저는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고 있습니다.” “수행자여, 그대는 죽음의 알아차림을 어떻게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내가 하루 밤낮을 살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부처님, 이렇게 저는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습니다.”

Evaṁ vutte, aññatar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ṁ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rattindiv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부처님의 질문에 첫 수행자가 답하는 온전한 문답입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는다고 말하고, 부처님께서 방법을 묻자 하루 밤낮이라는 기간을 제시합니다. 바라는 것은 그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여 많은 것을 이루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평가는 이 답 하나로 끝나지 않고, 뒤따르는 다른 수행자들의 답과 함께 이어집니다.

묵상

“하루 밤낮”이라는 시간은 지금 길게 느껴지나요, 짧게 느껴지나요? 남은 시간을 계산하거나 오늘 안에 무언가를 완수해야 한다는 질문은 아니에요. 그 기간이 주는 감각만 살펴보세요.

4 하루를 기준으로 닦다 1구절

두 번째 수행자가 하루를 더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겠다는 방식으로 답합니다.

또 다른 수행자도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고 있습니다.” “수행자여, 그대는 죽음의 알아차림을 어떻게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내가 하루를 살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부처님, 이렇게 저는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divas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두 번째 수행자의 문답도 첫 수행자와 같은 말로 이어지지만, 기간만 하루 밤낮에서 하루로 줄어듭니다. ‘저도’라는 말이 앞 수행자의 답을 이어받고, 부처님은 다시 어떤 방식으로 닦는지 묻습니다. 이 수행자 역시 살아 있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여 많이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여섯 수행자는 모두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죽음을 얼마나 가까운 시간으로 느끼는지가 다를 뿐입니다. 하루라는 기준에 대한 평가도 뒤에 이어질 다른 수행자들의 답과 함께 살펴볼 사례로 남습니다.

묵상

하루 밤낮에서 “하루”로 기간이 줄어드는 차이가 마음에 선명하게 느껴지나요? 지금 떠오르는 느낌 하나만 알아차려 볼 수 있나요?

5 얻어 온 음식 한 끼를 기준으로 닦다 1구절

세 번째 수행자가 얻어 온 음식 한 끼를 먹는 동안을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겠다고 답합니다.

또 다른 수행자도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고 있습니다.” “수행자여, 그대는 죽음의 상념을 어떻게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내가 얻어 온 음식 한 끼를 먹는 동안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부처님, 이렇게 저는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ekapiṇḍapātaṁ bhuñj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세 번째 수행자의 답은 달력의 하루에서 일상의 한 끼로 기준을 옮깁니다. 얻어 온 음식 한 끼를 먹는 바로 그 동안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앞의 두 수행자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여 많이 이루겠다는 목적은 바뀌지 않습니다. 같은 문답이 되풀이되면서 기간이 점점 줄어드는 순서가 드러납니다. 이 대목은 매일 되풀이되는 식사의 시간과 죽음의 상념을 연결해 보는 세 번째 기준을 제시합니다.

묵상

“얻어 온 음식 한 끼를 먹는 동안”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이 앞의 하루보다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나요? 식사 습관을 바꾸거나 죽음을 떠올리며 먹어야 한다는 요구는 아니에요. 오늘 식사 중 한 번이라도 그 가까움을 느껴 볼 수 있나요?

6 네댓 입을 기준으로 닦다 1구절

네 번째 수행자가 네댓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을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겠다고 답합니다.

또 다른 수행자도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고 있습니다.” “수행자여, 그대는 죽음의 상념을 어떻게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내가 네댓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부처님, 이렇게 저는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cattāro pañca ālope saṅkhāditvā ajjhohar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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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네 번째 수행자는 한 끼보다 더 짧은 네댓 입을 기준으로 답합니다. 네다섯이라는 수량과 음식의 한 입, 씹고 삼키는 두 동작을 차례로 나타냅니다. 앞선 문답과 같은 목적과 부름말이 반복되므로 비교되는 것은 오직 헤아리는 간격입니다. 수행의 의미는 몸이 음식을 씹고 삼키는 짧고 실제적인 과정까지 죽음을 가까이 가져오는 넷째 기준에 있습니다.

묵상

“네댓 입”이라는 수량과 “씹어 삼킨다”는 두 동작 가운데 무엇이 먼저 눈에 들어오나요? 지금 먹는 동작 하나를 천천히 떠올려 볼 수 있나요?

7 한 입을 기준으로 닦다 1구절

다섯 번째 수행자가 한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을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겠다고 답합니다.

또 다른 수행자도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고 있습니다.” “수행자여, 그대는 죽음의 상념을 어떻게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내가 한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부처님, 이렇게 저는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ekaṁ ālopaṁ saṅkhāditvā ajjhohar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다섯 번째 수행자의 답은 네댓 입에서 한 입으로 다시 줄어듭니다. 한 입이라는 단수와 씹은 뒤 삼킨다는 두 동작이 결합해, 한 끼 안에서도 가장 작은 음식 단위를 세웁니다. “저도 닦습니다”라는 시작과 부처님의 질문, 생각의 내용, “이렇게 닦습니다”라는 끝은 앞의 답들과 같습니다. 뒤에서 부처님은 이 답과 한 호흡의 답을 앞의 네 답과 다르게 평가하므로, 이 대목은 두 무리의 경계가 시작되는 다섯째 기준입니다. 수행의 의미는 한 입이라는 가장 짧은 음식 단위로 기억의 간격을 좁히는 데 있습니다.

묵상

한 끼에서 네댓 입, 다시 한 입으로 간격이 줄어드는 흐름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한 입”이라는 가까운 단위만 알아보세요.

8 한 번의 들숨과 날숨을 기준으로 닦다 1구절

여섯 번째 수행자가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동안을 기준으로 죽음의 상념을 설명합니다.

또 다른 수행자도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고 있습니다.” “수행자여, 그대는 죽음의 상념을 어떻게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내가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동안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부처님, 이렇게 저는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assasitvā vā passasāmi passasitvā vā assas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수행자는 음식의 단위에서 한 호흡의 전환으로 옮깁니다. 들이쉰 뒤 내쉬는 경우와 내쉰 뒤 들이쉬는 경우를 모두 말해, 어느 한쪽 호흡만 가리키지 않았습니다. 이 수행자도 살아 있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겠다는 같은 목적을 말합니다. 여섯 답의 기간은 하루 밤낮에서 한 호흡까지 차례로 좁아졌고, 다음 대목에서 부처님은 이 순서를 두 무리로 나누어 평가합니다.

묵상

들이쉰 뒤 내쉬는 것과 내쉰 뒤 들이쉬는 것이 모두 적힌 점을 천천히 읽어 볼 수 있나요? 지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한 번의 전환만 느껴 보세요.

9 하루 밤낮과 하루의 답을 되풀이하다 1구절

부처님께서 여섯 답을 평가하며 먼저 하루 밤낮과 하루를 기준으로 한 두 답을 온전히 되풀이하십니다.

이렇게 말하자 부처님께서 그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는 죽음의 상념을 이렇게 닦는다. ‘아, 내가 하루 밤낮을 살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는 죽음의 상념을 이렇게 닦는다. ‘아, 내가 하루를 살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Evaṁ vutte, bhagavā te bhikkhū etadavoca: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rattindiv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divas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여섯 수행자의 답이 끝난 뒤 부처님께서 직접 평가를 시작하는 첫 부분입니다. 먼저 하루 밤낮과 하루를 기준으로 한 두 답을 각각 “어떤 수행자는 이렇게 닦습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온전히 되풀이합니다. 각 기간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는 목적을 다시 말하는 반복은 뒤의 평가가 무엇을 근거로 삼는지 차례로 세웁니다. 수행의 의미는 자신의 답을 부처님의 재진술 속에서 다시 듣게 하여, 곧 이어질 분류의 근거를 분명히 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부처님께서 하루 밤낮과 하루의 답을 그대로 다시 말씀하시는 반복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두 기간이 나란히 놓인 순서만 확인해 보세요.

10 한 끼와 네댓 입도 느슨하다고 판정하다 1구절

부처님께서 한 끼와 네댓 입의 답을 되풀이한 뒤 앞의 네 수행자를 방일하고 느슨하게 닦는 이들이라 판정하십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는 죽음의 알아차림을 이렇게 닦는다. ‘아, 내가 얻어 온 음식 한 끼를 먹는 동안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는 죽음의 알아차림을 이렇게 닦는다. ‘아, 내가 네댓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수행자들이여, 이 수행자들은 게으르게 머물고 흘러드는 것이 다하기 위해 죽음의 알아차림을 느슨하게 닦는다고 한다.”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ekapiṇḍapātaṁ bhuñj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cattāro pañca ālope saṅkhāditvā ajjhohar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Ime vuccanti, bhikkhave, bhikkhū pamattā viharanti dandhaṁ maraṇassatiṁ bhāventi āsavānaṁ khay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부처님께서 세 번째와 네 번째 답을 되풀이하고 첫 무리를 판단하는 대목입니다. 얻어 온 음식 한 끼와 네댓 입의 기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려는 목적을 각각 다시 말한 뒤, 앞의 네 답을 함께 묶습니다. 게으르게 머문다는 말과 느슨하거나 더디다는 말을 함께 써서, 흘러드는 것이 다하기 위해서라는 목적까지 분명히 밝힙니다. ‘게으르다’는 말은 선한 의도를 탓하지 않습니다. 다만 죽음의 상념이 아직 긴 간격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이 대목은 ‘하루보다 짧다’는 상대 비교만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게으르게 머물고 느슨하게 닦는다”는 말을 읽을 때 자신을 비난하는 마음이 생기나요? 지금 자신의 하루를 느슨하게 보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나요?

11 한 입의 답을 다시 세우다 1구절

앞의 느슨한 네 답과 대조하여 부처님께서 한 입을 기준으로 한 다섯 번째 답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수행자들이여, 또 어떤 수행자는 죽음의 상념을 이렇게 닦는다. ‘아, 내가 한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Yo ca khv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ekaṁ ālopaṁ saṅkhāditvā ajjhohar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게으르고 느슨하다는 첫 무리의 판단 뒤, 부처님께서 둘째 무리의 첫 답을 다시 세웁니다. ‘또 이 수행자’라는 말이 앞의 네 수행자와 대조되는 이 답을 가리키고, 기간은 한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여 많이 이루겠다는 목적은 앞선 모든 답과 같으므로 차이는 죽음을 헤아리는 간격에 있습니다. 이 답에 대한 평가는 다음 한 호흡의 답과 함께 내려집니다. 수행의 의미는 가장 일상적인 한 동작까지 기억의 간격을 좁히는 데 있습니다.

묵상

앞의 네 기간과 대조되어 다시 나온 “한 입”은 처음 들었을 때와 다르게 느껴지나요? 대조를 이루는 시간 단위만 알아보세요.

12 한 호흡의 답을 부지런하고 예리하다고 판정하다 1구절

부처님께서 한 호흡의 답을 되풀이하고 마지막 두 수행자를 방일하지 않으며 예리하게 닦는 이들이라 판정하십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는 죽음의 알아차림을 이렇게 닦는다. ‘아, 내가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동안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수행자들이여, 이 수행자들은 게으르지 않고 머물며 흘러드는 것이 다하기 위해 죽음의 알아차림을 예리하게 닦는다고 한다.”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assasitvā vā passasāmi passasitvā vā assas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Ime vuccanti, bhikkhave, bhikkhū appamattā viharanti tikkhaṁ maraṇassatiṁ bhāventi āsavānaṁ khay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부처님께서 여섯째 답을 온전히 되풀이한 뒤 둘째 무리를 판단합니다.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두 방향을 다시 말하고, 한 입의 답과 함께 ‘이 수행자들’이라고 묶습니다. 게으르지 않다는 말이 앞의 게으르다는 말과, 예리함이 앞의 느슨함과 정확히 대조됩니다. 두 무리 모두 목적은 흘러드는 것이 다함이지만, 죽음의 상념을 어느 간격으로 되살리는가가 둘을 가릅니다. 수행의 초점은 기억을 지금의 가장 짧은 행위에 놓는 데 있습니다.

묵상

“게으르지 않음”과 “예리하게 닦음”이라는 두 표현 가운데 어느 말이 더 강하게 들리나요? 한 입과 한 호흡이 함께 묶인 이유만 살펴보세요.

13 방일하지 않고 예리하게 닦겠다고 배우다 1구절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방일하지 않고 흘러드는 것이 다하도록 죽음의 상념을 예리하게 닦겠다고 배우도록 결론지으십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배워야 한다. ‘우리는 게으르지 않고 머물며, 흘러드는 것이 다하기 위해 죽음의 알아차림을 예리하게 닦겠습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배워야 한다.”

Tasmātiha, bhikkhave, evaṁ sikkhitabbaṁ: ‘appamattā viharissāma, tikkhaṁ maraṇassatiṁ bhāvessāma āsavānaṁ khayāy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두 무리를 가른 판단 뒤에 오는 경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가 앞의 비교를 공동의 배움으로 연결하고, 수행자들은 ‘우리는’이라는 말로 함께 게으르지 않고 머물며 죽음의 상념을 예리하게 닦겠다고 배웁니다. 목적은 흘러드는 것이 다하기 위해서라고 다시 밝히고, 마지막 문장은 같은 부름말과 ‘이렇게 배워야 합니다’를 되풀이해 권고를 닫습니다. 수행의 의미는 모든 청자가 기억의 간격을 좁히는 훈련을 자기 배움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묵상

마지막의 “우리는”이라는 복수 표현은 혼자 다짐하는 말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함께 배우겠다는 문장의 결만 느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