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띠야마라낫사띠 숫따(죽음을 알아차림, 둘째)

Dutiyamaraṇassati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6.20

밤과 낮이 시작될 때 죽음의 여러 원인과 남은 해로운 상태를 점검하고, 버림과 희열의 두 갈래로 닦게 한다.

인용된 가르침 9구절

이 경을 9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죽음의 상념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 묻다 1구절

나띠까의 벽돌집에서 죽음의 상념이 불사로 향하는 큰 결실을 낳는다고 밝히고 그 닦는 방법을 묻습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나띠까의 벽돌집에 머무셨습니다. 그곳에서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고 거듭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으며, 죽음이 없음(아마따)에 잠기고 죽음이 없음으로 끝난다. 수행자들이여, 어떻게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고 거듭 익혀야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으며, 죽음이 없음에 잠기고 죽음이 없음으로 끝나는가?”

Ekaṁ samayaṁ bhagavā nātike viharati giñjakāvasath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maraṇassati, bhikkhave,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amatogadhā amatapariyosānā. Kathaṁ bhāvitā ca, bhikkhave, maraṇassati katha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amatogadhā amatapariyosānā?

앙굿따라 니까야 AN 6.20 두띠야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둘째)

배경

경의 도입과 전체 물음입니다. 장소를 나띠까의 벽돌집으로 밝힌 뒤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곧바로 죽음의 상념을 말씀하십니다. ‘죽음의 상념’은 닦고 거듭 익히는 것을 뜻합니다. 그 결과인 큰 결실·큰 이익과 죽음이 없음에 잠김·죽음이 없음으로 끝남이 선언과 질문에 각각 온전히 반복됩니다. 물음은 그 상념을 어떤 방식으로 길러 죽음이 없음을 향하게 하는지를 묻습니다. 이어지는 밤과 낮의 두 점검이 이 질문에 답합니다.

묵상

“죽음의 상념”이 “죽음이 없음으로 끝난다”는 두 표현이 함께 놓일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지금 그 느낌을 한 단어로 말할 수 있나요?

2 밤이 다가올 때 죽음의 여러 원인을 돌아보다 1구절

낮이 지나고 밤이 다가오면 물림·넘어짐·음식과 몸의 탈처럼 죽음을 부를 수 있는 여러 원인을 돌아봅니다.

“수행자들이여, 낮이 지나고 밤이 다가오면 수행자는 이렇게 돌아본다. ‘나의 죽음에는 많은 원인이 있다. 뱀이 물거나 전갈·지네가 쏠 수 있다. 그 때문에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내게 장애가 된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거나, 먹은 음식이 탈이 나거나, 담즙·가래·칼날 같은 바람 기운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내게 장애가 된다.’”

Idha, bhikkhave, bhikkhu divase nikkhante rattiyā patihitāya iti paṭisañcikkhati: ‘bahukā kho me paccayā maraṇassa— ahi vā maṁ ḍaṁseyya, vicchiko vā maṁ ḍaṁseyya, satapadī vā maṁ ḍaṁseyya; tena me assa kālakiriyā, so mamassa antarāyo. Upakkhalitvā vā papateyyaṁ, bhattaṁ vā me bhuttaṁ byāpajjeyya, pittaṁ vā me kuppeyya, semhaṁ vā me kuppeyya, satthakā vā me vātā kuppeyyuṁ; tena me assa kālakiriyā, so mamassa antarāy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20 두띠야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둘째)

배경

첫 번째 답은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돌아봄입니다. 죽음에는 많은 원인이 있다고 말하며, 뱀이나 전갈·지네에 물리는 것, 넘어지는 것, 먹은 음식이 탈나는 것, 담즙·가래·날카로운 바람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하나하나 짚습니다. 두 원인 묶음 뒤에는 그 때문에 죽을 수 있고 그것이 자신에게 장애가 된다는 문장이 각각 붙습니다. 수행의 뜻은 밤을 앞두고 미뤄 둔 해로운 상태가 있는지 살피도록 유한함을 가까이 두는 데 있습니다.

묵상

물림·넘어짐·몸의 탈처럼 통제하기 어려운 원인들이 나열될 때 마음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지금 느껴지는 긴장이나 아무 느낌 없음 가운데 하나만 알아차려 보세요. 마음이 무거우면 잠시 쉬어 가도 괜찮아요.

3 오늘 밤의 장애를 묻고 버릴 힘을 일으키다 1구절

오늘 밤 죽는다면 장애가 될 아직 버리지 못한 해로운 상태가 있는지 묻고, 있다면 일곱 가지 힘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는 이렇게 돌아봐야 한다. ‘오늘 밤 죽는다면 내게 장애가 될, 아직 버리지 못한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있는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살펴보아 그런 상태들이 있다고 안다면,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는 그 상태들을 버리기 위해 강한 열의·노력·분발·분투·물러서지 않음· 알아차림·분명한 앎을 일으켜야 한다.”

Tena, bhikkhave, bhikkhunā iti paṭisañcikkhitabbaṁ: ‘atthi nu kho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rattiṁ kālaṁ karontassa antarāyāyā’ti. Sace, bhikkhave, bhikkhu paccavekkhamāno evaṁ jānāti: ‘atthi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rattiṁ kālaṁ karontassa antarāyāyā’ti, tena, bhikkhave, bhikkhunā tesaṁyeva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pahānāya adhimatto chando ca vāyāmo ca ussāho ca ussoḷhī ca appaṭivānī ca sati ca sampajaññañca karaṇ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6.20 두띠야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둘째)

배경

죽음의 원인 목록 뒤에 실제 점검 질문과 첫 번째 조건부 답이 이어집니다. 질문은 오늘 밤 죽을 때 장애가 될 나쁘고 해로운 상태가 아직 버려지지 않은 채 있는지를 묻습니다. 있다고 안다면 그 상태들을 버리기 위해 강한 열의·노력·분발·분투·물러서지 않음·알아차림·분명한 앎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렇게 죽음의 상념은 무엇을 버릴지 분명히 본 뒤 힘을 모으는 데로 이어집니다. 수행의 초점은 남아 있는 상태와 그에 필요한 행동을 구별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오늘 밤까지 마음에 남겨 두고 싶지 않은 반응 하나가 떠오르나요? 그것을 반드시 없애거나 일곱 가지를 모두 일으켜야 한다는 질문은 아니에요. 지금 알아차릴 수 있는 한 상태만 보세요.

4 옷이나 머리의 불을 끄듯 버림에 힘쓰다 1구절

옷이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사람의 일곱 가지 힘을 해로운 상태를 버리는 수행자에게 그대로 적용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옷이나 머리에 불이 붙은 사람은 그 옷이나 머리의 불을 끄기 위해 강한 열의·노력·분발·분투·물러서지 않음· 알아차림·분명한 앎을 일으킬 것이다. 바로 그처럼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는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을 버리기 위해 강한 열의·노력·분발·분투·물러서지 않음· 알아차림·분명한 앎을 일으켜야 한다.”

Seyyathāpi, bhikkhave, ādittacelo vā ādittasīso vā tasseva celassa vā sīsassa vā nibbāpanāya adhimattaṁ chandañca vāyāmañca ussāhañca ussoḷhiñca appaṭivāniñca satiñca sampajaññañca kareyya; evamevaṁ kho, bhikkhave, tena bhikkhunā tesaṁyeva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pahānāya adhimatto chando ca vāyāmo ca ussāho ca ussoḷhī ca appaṭivānī ca sati ca sampajaññañca karaṇ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6.20 두띠야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둘째)

배경

해로운 상태가 남아 있다는 첫 조건부 답에 불의 비유가 붙습니다. 옷이나 머리에 불이 붙은 사람이 그 불을 끄려고 강한 열의·노력·분발·분투·물러서지 않음·알아차림·분명한 앎을 일으킨다는 것을 먼저 말합니다. 이어 ‘바로 그처럼’이라는 말로, 나쁘고 해로운 상태를 버리는 수행자에게도 같은 마음가짐을 그대로 적용합니다. 수행의 뜻은 버려야 할 상태를 확인했다면 불을 끄는 사람처럼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여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포함한 힘을 모으는 데 있습니다.

묵상

옷이나 머리의 불을 끄는 장면이 주는 절박함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지금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는지만 살펴보세요.

5 밤의 장애가 없으면 희열로 유익함을 익히다 1구절

오늘 밤의 장애가 될 버리지 못한 상태가 없다면 희열과 기쁨으로 머물며 유익한 상태를 밤낮 익히게 합니다.

“그러나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살펴보아 ‘오늘 밤 죽을 때 내게 장애가 될, 아직 버리지 못한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없다’고 안다면,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는 유익한 상태들을 밤낮으로 익히며 바로 그 희열과 기쁨 속에 머물러야 한다.”

Sace pana, bhikkhave, bhikkhu paccavekkhamāno evaṁ jānāti: ‘natthi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rattiṁ kālaṁ karontassa antarāyāyā’ti, tena, bhikkhave, bhikkhunā teneva pītipāmojjena vihātabbaṁ ahorattānusikkhinā kusalesu dhammesu.

앙굿따라 니까야 AN 6.20 두띠야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둘째)

배경

밤의 점검에서 두 번째 조건부 답입니다. ‘그러나 만일’은 앞의 남아 있는 경우와 반대로, 오늘 밤 죽을 때 장애가 될 아직 버리지 못한 나쁘고 해로운 상태가 없다고 아는 경우를 엽니다. 이때 그 수행자는 바로 그 희열과 기쁨 속에 머물며 유익한 상태들을 밤낮으로 익혀야 합니다. 수행의 뜻은 기쁨을 바탕으로 이미 있는 유익함을 계속 기르는 데 있습니다.

묵상

살펴본 뒤 당장 고칠 것이 보이지 않을 때 안도와 기쁨을 느끼는 일이 익숙한가요? 지금 이미 이어 가고 싶은 유익한 반응 하나가 있는지만 살펴보세요.

6 낮이 다가올 때 죽음의 여러 원인을 돌아보다 1구절

밤이 지나고 낮이 다가오면 앞서와 같은 물림·넘어짐·음식과 몸의 탈을 죽음의 원인으로 다시 돌아봅니다.

“또 수행자들이여, 밤이 지나고 낮이 다가오면 수행자는 이렇게 돌아본다. ‘나의 죽음에는 많은 원인이 있다. 뱀이 물거나 전갈·지네가 쏠 수 있다. 그 때문에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내게 장애가 된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거나, 먹은 음식이 탈이 나거나, 담즙·가래·칼날 같은 바람 기운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내게 장애가 된다.’”

Idha pana, bhikkhave, bhikkhu rattiyā nikkhantāya divase patihite iti paṭisañcikkhati: ‘bahukā kho me paccayā maraṇassa— ahi vā maṁ ḍaṁseyya, vicchiko vā maṁ ḍaṁseyya, satapadī vā maṁ ḍaṁseyya; tena me assa kālakiriyā so mamassa antarāyo. Upakkhalitvā vā papateyyaṁ, bhattaṁ vā me bhuttaṁ byāpajjeyya, pittaṁ vā me kuppeyya, semhaṁ vā me kuppeyya, satthakā vā me vātā kuppeyyuṁ; tena me assa kālakiriyā so mamassa antarāy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20 두띠야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둘째)

배경

경은 밤의 점검을 마친 뒤, 밤에서 낮으로 넘어가는 때에도 같은 돌아봄을 다시 되풀이합니다. 달라지는 것은 밤이 지나고 낮이 다가온다는 시간뿐이고, 죽음의 많은 원인과 그 두 목록, 각 목록 뒤의 죽음과 장애 문장은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이 반복은 하루가 열릴 때도 같은 유한함을 기준으로 마음을 점검하게 합니다. 수행의 의미는 밤과 낮이라는 생활의 두 매듭에 같은 질문을 되돌려 놓는 데 있습니다.

묵상

하루가 시작될 때와 끝날 때 같은 질문을 마주하면 느낌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아침과 저녁 중 어느 때 자신의 상태를 더 차분히 볼 수 있는지만 살펴보세요.

7 오늘 낮의 장애를 묻고 버릴 힘을 일으키다 1구절

오늘 낮 죽는다면 장애가 될 아직 버리지 못한 해로운 상태가 있는지 묻고, 있다면 같은 일곱 가지 힘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는 이렇게 돌아봐야 한다. ‘오늘 낮 죽는다면 내게 장애가 될, 아직 버리지 못한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있는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살펴보아 그런 상태들이 있다고 안다면,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는 그 상태들을 버리기 위해 강한 열의·노력·분발·분투·물러서지 않음· 알아차림·분명한 앎을 일으켜야 한다.”

Tena, bhikkhave, bhikkhunā iti paṭisañcikkhitabbaṁ: ‘atthi nu kho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divā kālaṁ karontassa antarāyāyā’ti. Sace, bhikkhave, bhikkhu paccavekkhamāno evaṁ jānāti: ‘atthi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divā kālaṁ karontassa antarāyāyā’ti, tena, bhikkhave, bhikkhunā tesaṁyeva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pahānāya adhimatto chando ca vāyāmo ca ussāho ca ussoḷhī ca appaṭivānī ca sati ca sampajaññañca karaṇ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6.20 두띠야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둘째)

배경

오늘 낮 죽을 수 있다는 생각 다음에는 점검 질문과 첫 번째 답이 이어집니다. 질문과 답의 흐름은 밤의 경우와 같고, 시간만 오늘 낮으로 바뀝니다. 아직 버리지 못한 나쁘고 해로운 상태가 죽음에 장애가 될지를 묻고, 그런 상태가 있다고 알면 그것을 버리기 위해 강한 열의·노력·분발·분투·물러서지 않음·알아차림·분명한 앎을 일으킵니다. 낮의 점검도 밤과 똑같이 온전한 수행입니다.

묵상

오늘 낮의 말이나 행동을 앞두고 아직 가라앉지 않은 반응 하나가 보이나요? 그 반응을 지금 이 순간 알아차릴 수 있나요?

8 낮에는 불의 비유를 되새기고 희열의 답을 잇다 1구절

밤에 온전히 나온 불의 비유와 일곱 힘을 두 곳의 …로 되새기고, 낮의 장애가 없는 경우는 온전히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옷이나 머리에 불이 붙은 사람은 그 옷이나 머리의 불을 끄기 위해 … 일으킬 것이다. 바로 그처럼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는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을 버리기 위해 …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살펴보아 ‘오늘 낮 죽을 때 내게 장애가 될, 아직 버리지 못한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없다’고 안다면,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는 유익한 상태들을 밤낮으로 익히며 바로 그 희열과 기쁨 속에 머물러야 한다.”

Seyyathāpi, bhikkhave, ādittacelo vā ādittasīso vā tasseva celassa vā sīsassa vā nibbāpanāya … kareyya; evamevaṁ kho, bhikkhave, tena bhikkhunā tesaṁyeva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pahānāya … karaṇīyaṁ. Sace pana, bhikkhave, bhikkhu paccavekkhamāno evaṁ jānāti: ‘natthi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divā kālaṁ karontassa antarāyāyā’ti, tena, bhikkhave, bhikkhunā teneva pītipāmojjena vihātabbaṁ ahorattānusikkhinā kusalesu dhammesu.

앙굿따라 니까야 AN 6.20 두띠야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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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불 비유와 적용은 바로 앞 밤의 대목을 낱말까지 그대로 반복합니다. 옷이나 머리에 불이 붙은 사람이 그 불을 끄기 위해 일으키는 힘과, 해로운 상태를 버리는 수행자가 일으키는 힘은 같은 일곱 가지입니다. 이어서 장애가 될 아직 버리지 못한 상태가 없다면, 그 수행자는 바로 그 희열과 기쁨 속에 머물며 유익한 상태들을 밤낮으로 익힙니다. 수행의 의미는 반복된 긴급함을 기억하면서도, 낮의 점검 결과가 깨끗할 때 기쁨과 지속적인 익힘으로 방향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묵상

반복된 일곱 항목이 두 번 줄여 적힌 것을 다시 만날 때 앞의 불 끄는 장면이 기억나나요? 지금 이 순간 버리고 싶은 상태가 있다면, 무엇을 향한 기쁨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싶나요?

9 밤과 낮의 점검이 불사로 향한다고 맺다 1구절

밤과 낮의 두 점검을 이와 같이 닦고 거듭 익힌 죽음의 상념이라 부르며 처음의 결실을 다시 확인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죽음의 알아차림을 닦고 거듭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으며, 죽음이 없음(아마따)에 잠기고 죽음이 없음으로 끝난다.”

Evaṁ bhāvitā kho, bhikkhave, maraṇassati eva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amatogadhā amatapariyosān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20 두띠야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둘째)

배경

경의 마지막 문장은 첫 질문의 표현을 그대로 되받아 답을 닫습니다. ‘이와 같이’는 낮이 저물 때와 밤이 지나갈 때 죽음의 여러 원인을 기억하고, 아직 버리지 못한 해로운 상태를 점검하며, 결과에 따라 불을 끄듯 힘쓰거나 희열과 기쁨 속에 유익한 상태를 계속 익히는 전체 과정을 가리킵니다. 그처럼 닦고 거듭 익힌 죽음의 상념에 큰 결실·큰 이익과 죽음이 없음에 잠김·죽음이 없음으로 끝남이라는 처음의 네 결과가 다시 놓입니다. 수행의 뜻은 매일의 두 점검을 버림과 익힘으로 이어 죽음이 없음을 향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마지막의 “이와 같이”가 앞의 밤과 낮 전체를 가리킨다는 점을 읽을 때, 죽음의 상념이 처음과 다르게 들리나요? 기억에 남는 한 장면만 골라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