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아난다 님은 꼬삼비의 고시따 승원에 머물렀다. 그때 운나바 브라흐마나가 아난다 님에게 다가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눈 뒤, 한쪽에 앉은 운나바 브라흐마나가 아난다 님에게 여쭈었다. “아난다 님, 수행자 고따마의 곁에서 거룩한 삶을 닦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브라흐마나여, 부처님의 곁에서 거룩한 삶을 닦는 것은 열의를 버리기 위해서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āyasmā ānando kosambiyaṁ viharati ghositārāme. Atha kho uṇṇābho brāhmaṇo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tā ānandena saddhiṁ sammodi.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uṇṇābho brāhmaṇo āyasmantaṁ ānandaṁ etadavoca: “kimatthiyaṁ nu kho, bho ānanda, samaṇe gotame brahmacariyaṁ vussatī”ti? “Chandappahānatthaṁ kho, brāhmaṇa, bhagavati brahmacariyaṁ vussatī”ti.
배경
경의 도입과 첫 문답입니다. 전승자는 아난다 님이 꼬삼비 고시따 승원에 머문 때를 밝히고, 운나바 브라흐마나가 인사를 마친 뒤 물었다고 전합니다. 브라흐마나는 “아난다 님”이라 부르며 묻고, 아난다는 “브라흐마나여”라 부르며 답합니다. ‘열의’라는 말은 이 경 전체에서 같은 낱말로 이어지며, 뒤에서 열의에 바탕을 둔 길이 다시 나옵니다. 이 첫 답은 거룩한 삶의 목적을 열의를 버리는 데 두고, 다음 문답은 그 목적에 이르는 길을 묻습니다.
묵상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첫 질문을 읽을 때, 지금 하고 있는 한 가지 일의 목적이 떠오르나요? 지금 그 일을 어디로 향해 시작했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