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라나 숫따(앓는 이)

Gilān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55.54

병든 재가자에게 무엇을 어떤 순서로 말해 주어야 하는지 단계별로 일러 준다.

인용된 가르침 13구절

이 경을 13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까삘라왓투 니그로다 승원의 배경 1구절

부처님께서 석가족의 나라 까삘라왓투 니그로다 승원에 머무신 장소를 밝힙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석가족의 나라 까삘라왓투에 있는 니그로다 승원에 머무셨다.

Ekaṁ samayaṁ bhagavā sakkesu viharati kapilavatthusmiṁ nigrodhārāme.

상윳따 니까야 SN 55.54 길라나 숫따 (앓는 이)

배경

경의 첫 문장은 사건의 장소만 완결해 밝힙니다. 부처님은 석가족의 영역인 까삘라왓투에서 니그로다 승원에 머무십니다. 장소를 나타내는 “까삘라왓투에서”와 “니그로다 승원에서”는 한 곳을 가리킵니다. 이 장면은 뒤에 이어지는 겉옷 준비와 마하나마의 방문이 모두 같은 체류 중에 일어났음을 보여 줍니다. 아직 병이나 죽음의 가르침은 나오지 않으며, 경의 문답은 이 실제 만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묵상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승원”이라는 한 장소가 또렷하게 제시될 때, 이어질 문답을 읽는 마음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지금은 부처님과 마하나마가 같은 곳에서 만났다는 사실만 남겨 두어도 될까요?

2 가사 준비와 석 달 뒤의 유행 1구절

여러 수행자가 부처님의 겉옷을 만들며 완성과 석 달 뒤 유행 출발을 예상합니다.

그때 여러 수행자가 부처님의 겉옷을 만들며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는 겉옷이 완성되고 석 달이 지나면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bhikkhū bhagavato cīvarakammaṁ karonti: “niṭṭhitacīvaro bhagavā temāsaccayena cārikaṁ pakkamissat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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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장소를 밝힌 다음, 경은 여러 수행자가 부처님의 겉옷을 만드는 장면과 그들이 예상한 출발을 한 문단으로 묶습니다. “겉옷이 완성되고”와 “석 달이 지나면”이라는 두 가지가 차례로 이루어진 뒤에 유행을 떠납니다. 여기서 유행은 가르침을 펴며 길을 떠나는 일을 가리킵니다. 이 준비 소식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마하나마에게 전해지고, 그는 부처님이 떠나시기 전에 직접 여쭙게 됩니다.

묵상

겉옷이 완성되고 석 달이 지난 뒤 떠난다는 두 조건 가운데 어느 말이 더 눈에 들어오나요? 어떤 출발을 앞두고 준비의 완성과 기다려야 할 시간을 함께 셈해 본 경험이 있나요? 두 조건의 순서만 살펴볼 수 있나요?

3 마하나마가 출발 소식을 듣다 1구절

석가족 마하나마가 겉옷 준비와 부처님의 출발에 관한 전언을 듣습니다.

석가족 마하나마는 이 소식을 들었다. “여러 수행자가 부처님의 겉옷을 만들고 있으며, 부처님께서는 겉옷이 완성되고 석 달이 지나면 유행을 떠나신다고 한다.”

Assosi kho mahānāmo sakko: “sambahulā kira bhikkhū bhagavato cīvarakammaṁ karonti: ‘niṭṭhitacīvaro bhagavā temāsaccayena cārikaṁ pakkamissat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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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행자들의 예상에 이어, 이 대목은 석가족 마하나마가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장면입니다. 빠알리 낱말 “끼라”는 “그렇다고 한다”라는 전해 들은 말투를 드러냅니다. 겉옷 만들기, 겉옷 완성, 석 달이 지난 뒤, 유행 출발이라는 네 요소의 순서도 앞서와 같습니다. 반복은 소식이 수행자들에서 마하나마에게 전달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다음 행동은 부처님께 직접 묻는 쪽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같은 소식이 수행자들의 생각에서 마하나마가 “그렇다고 한다”고 들은 말로 옮겨 가는 장면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중요한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바로 사실로 굳히는 편인가요, 직접 물을 자리를 찾는 편인가요? 지금의 반응만 알아차릴 수 있나요?

4 병든 재가자를 어떻게 가르칠지 묻다 1구절

마하나마가 부처님께 나아가 들은 소식을 아뢰고 중병인 재가자를 가르치는 방법을 묻습니다.

석가족 마하나마는 부처님께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부처님, 저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 수행자가 부처님의 겉옷을 만들고 있으며, 부처님께서는 겉옷이 완성되고 석 달이 지나면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저는 부처님 앞에서 ‘지혜로운 집에 사는 신도가 병들고 괴로워하며 중병인 지혜로운 집에 사는 신도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직접 듣고 직접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Atha kho mahānāmo sakk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mahānāmo sakko bhagavantaṁ etadavoca: “sutametaṁ, bhante: ‘sambahulā kira bhikkhū bhagavato cīvarakammaṁ karonti—niṭṭhitacīvaro bhagavā temāsaccayena cārikaṁ pakkamissatī’ti. Na kho netaṁ, bhante, bhagavato sammukhā sutaṁ sammukhā paṭiggahitaṁ sappaññena upāsakena sappañño upāsako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ovaditabb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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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전해 들은 소식 뒤에 마하나마는 부처님께 가서 절하고 한쪽에 앉은 다음, 들은 내용을 먼저 그대로 아룁니다. 이어 “직접”이라는 말을 듣기와 받아들임에 두 번 붙여, 아직 부처님 앞에서 얻지 못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밝힙니다. 질문에는 지혜로운 집에 사는 신도 두 사람이 있으며, 한 사람은 가르치는 이이고 다른 사람은 병들고 괴로워하며 중병인 이입니다. 마하나마는 부처님이 길을 떠나시기 전에, 병든 사람을 돌보는 말을 직접 듣고 싶어 합니다.

묵상

마하나마가 들은 말을 먼저 밝힌 뒤, 부처님 앞에서 직접 듣고 받아들이지 못한 내용을 묻는 순서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지금 누군가에게 확인하고 싶은 중요한 말이 있다면, 들은 사실과 아직 모르는 부분을 구별할 수 있나요? 지금 떠오르지 않는다면, 들은 사실과 아직 모르는 부분의 차이만 떠올려볼 수 있나요?

5 네 가지 안심되는 가르침 1구절

부처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에 대한 믿음과 거룩한 이들이 좋아하는 계로 먼저 안심시킵니다.

“마하나마여, 지혜로운 집에 사는 신도는 병들고 괴로우며 중병인 지혜로운 집에 사는 신도를 네 안심의 가르침으로 안심시켜야 한다. ‘벗이여, 안심하십시오. 그대에게는 부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분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 신들과 인간들의 스승, 깨달은 분, 부처님이십니다. 벗이여, 안심하십시오. 그대에게는 가르침에 대한 … 수행자 공동체(상가)에 대한 … 성자들이 좋아하며 흠이 없고 … 집중으로 이끄는 계가 있습니다.’”

“Sappaññena, mahānāma, upāsakena sappañño upāsako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catūhi assāsanīyehi dhammehi assāsetabbo: ‘assāsatāyasmā—atthāyasmato buddhe aveccappasādo itipi so bhagavā …pe…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ti. Assāsatāyasmā—atthāyasmato dhamme …pe… saṅghe …pe… ariyakantāni sīlāni akhaṇḍāni …pe… samādhisaṁvattanikān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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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마하나마의 요청에 대한 첫 답은 병자의 애착부터 묻지 않고 네 가지 안심되는 가르침으로 안심시키는 일입니다. 네 가지는 부처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이며, “안심하십시오”라는 말도 두 번 되풀이됩니다. 이 순서는 중병인 사람에게 이미 갖춘 믿음과 계를 확인해 마음의 의지처를 먼저 일깨우고, 그 뒤의 더 어려운 문답을 위한 바탕을 놓습니다.

묵상

부처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라는 네 항목 가운데, 지금 이름만이라도 편안하게 알아지는 하나가 있나요? “안심하십시오”가 두 번 반복되는 울림만 들어 볼 수 있나요?

6 부모에 대한 애착과 죽음의 성질 1구절

부모에 대한 애착의 유무와 관계없이 죽는다는 두 조건과 권고를 전합니다.

“마하나마여, 지혜로운 집에 사는 신도는 병들고 괴로워하며 중병인 지혜로운 집에 사는 신도를 이 네 안심의 가르침으로 안심시킨 뒤 말해야 한다. ‘그대는 부모에게 애착이 있습니까?’ 그가 ‘부모에게 애착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말해야 한다. ‘벗이여, 그대는 죽기 마련입니다. 그대가 부모에게 애착을 두어도 반드시 죽고, 그대가 부모에게 애착을 두지 않아도 반드시 죽습니다. 그대는 부모에게 둔 애착을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Sappaññena, mahānāma, upāsakena sappañño upāsako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imehi catūhi assāsanīyehi dhammehi assāsetvā evamassa vacanīyo: ‘atthāyasmato mātāpitūsu apekkhā’ti? So ce evaṁ vadeyya: ‘atthi me mātāpitūsu apekkhā’ti, so evamassa vacanīyo: ‘āyasmā kho māriso maraṇadhammo. Sacepāyasmā mātāpitūsu apekkhaṁ karissati, marissateva; no cepāyasmā mātāpitūsu apekkhaṁ karissati, marissateva. Sādhāyasmā, yā te mātāpitūsu apekkhā taṁ pajah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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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네 가지로 안심시킨 다음에는 부모에 대한 애착이 있는지 묻고, 있다고 답한 경우의 말을 제시합니다. “애착이 있어도”와 “없어도”라는 두 조건 뒤에 “반드시 죽습니다”가 정확히 두 번 놓여 결과가 같음을 강조합니다. 이어지는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는 중병에 걸린 신도에게 건네는 단계적 권고이며, 부모를 사랑하거나 슬퍼하는 감정 자체를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말을 아픈 사람이나 가족에게 그대로 강요하거나, 슬픔을 줄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묵상

“애착이 있어도 반드시 죽고, 없어도 반드시 죽습니다”라는 두 문장은 거칠거나 버겁게 들릴 수 있어요. 부모를 향한 마음을 평가하지 않은 채, 두 조건이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어떻게 들리나요?

7 자녀와 배우자에 대한 애착 1구절

부모 다음으로 자녀와 배우자에 대한 애착을 같은 문답 구조로 다룹니다.

“그가 ‘부모에 대한 애착은 버려졌습니다.’라고 답하면 물어야 한다. ‘그런데 그분에게 자녀와 배우자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까?’ 그가 ‘자녀와 배우자에게 애착이 있습니다.’라고 답하면 말해야 한다. ‘벗이여, 그분은 죽기 마련입니다. 그분이 자녀와 배우자에게 애착을 두어도 반드시 죽고, 그분이 자녀와 배우자에게 애착을 두지 않아도 반드시 죽습니다. 수행자님, 자녀와 배우자에게 둔 애착을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So ce evaṁ vadeyya: ‘yā me mātāpitūsu apekkhā sā pahīnā’ti, so evamassa vacanīyo: ‘atthi panāyasmato puttadāresu apekkhā’ti? So ce evaṁ vadeyya: ‘atthi me puttadāresu apekkhā’ti, so evamassa vacanīyo: ‘āyasmā kho māriso maraṇadhammo. Sacepāyasmā puttadāresu apekkhaṁ karissati, marissateva; no cepāyasmā puttadāresu apekkhaṁ karissati, marissateva. Sādhāyasmā, yā te puttadāresu apekkhā taṁ pajahā’ti.

상윳따 니까야 SN 55.54 길라나 숫따 (앓는 이)

배경

부모에 대한 애착이 버려졌다고 답한 뒤, 같은 물음이 자녀와 배우자에게로 옮겨 갑니다. 자녀와 배우자라는 두 관계가 같은 순서로 나오고, 질문과 긍정 답변에서도 같은 목록이 되풀이됩니다. 애착이 있든 없든 죽는다는 두 조건과 같은 결과, 마지막 권고까지 부모 대목과 나란히 놓입니다. 이 반복은 애착이 있든 없든 죽음은 똑같이 온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현대 독자에게는 가족 애정을 부정하거나 이별의 슬픔을 서둘러 끝내라는 요구로 적용하지 않습니다.

묵상

자녀와 배우자라는 두 관계가 부모 다음에 놓인 대목을 읽을 때 어떤 느낌이 일어나나요? 버거우면 이 질문도 건너뛰고, 읽을 수 있다면 두 관계의 이름이 되풀이되는 것만 확인할 수 있나요?

8 다섯 감각 자극에서 사대왕천으로 1구절

인간의 다섯 감각 자극을 묻고 마음을 사대왕천 신들에게 향하게 합니다.

“그가 ‘자녀와 배우자에 대한 제 애착은 버려졌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물어야 한다. ‘그런데 그대에게 인간의 다섯 감각 자극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까?’ 그가 ‘제게 인간의 다섯 감각 자극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말해야 한다. ‘벗이여, 하늘 세계의 감각적 즐거움은 인간의 것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합니다. 그대는 인간의 감각적 즐거움에서 마음을 돌려 사대왕천 신들에게 마음을 향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So ce evaṁ vadeyya: ‘yā me puttadāresu apekkhā sā pahīnā’ti, so evamassa vacanīyo: ‘atthi panāyasmato mānusakesu pañcasu kāmaguṇesu apekkhā’ti? So ce evaṁ vadeyya: ‘atthi me mānusakesu pañcasu kāmaguṇesu apekkhā’ti, so evamassa vacanīyo: ‘mānusakehi kho, āvuso, kāmehi dibbā kāmā abhikkantatarā ca paṇītatarā ca. Sādhāyasmā, mānusakehi kāmehi cittaṁ vuṭṭhāpetvā cātumahārājikesu devesu cittaṁ adhimoceh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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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자녀와 배우자에 대한 애착이 버려졌다는 답 뒤에는 인간의 다섯 감각 자극에 대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긍정 답변 뒤에는 인간의 감각적 즐거움과 하늘 세계의 감각적 즐거움을 비교합니다. 마음의 방향은 곧바로 최종 결론으로 가지 않고 먼저 사대왕천 신들에게 향합니다. 이 대목은 가족 관계에서 즐거움의 영역으로 대상이 바뀌는 첫 전환이며, 이어지는 하늘 세계 단계의 출발점입니다. 질문이 차례로 나아가는 순서만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묵상

“인간의 다섯 감각 자극”이라는 말에서 모습·소리·냄새·맛·감촉 가운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하나가 있나요? 그것을 나쁘다고 정하거나 하늘 세계의 즐거움을 믿을 필요 없이, 가족 관계에서 감각의 즐거움으로 질문 대상이 바뀌는 전환만 살펴볼 수 있나요?

9 사대왕천에서 삼십삼천으로 1구절

사대왕천 신들보다 삼십삼천 신들이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비교합니다.

“그가 ‘제 마음은 인간의 감각적 즐거움에서 벗어나 사대왕천 신들에게 향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말해야 한다. ‘벗이여, 삼십삼천 신들은 사대왕천 신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합니다. 수행자님, 사대왕천 신들에게서 마음을 돌려 삼십삼천 신들에게 마음을 향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So ce evaṁ vadeyya: ‘mānusakehi me kāmehi cittaṁ vuṭṭhitaṁ, cātumahārājikesu devesu cittaṁ adhimocitan’ti, so evamassa vacanīyo: ‘cātumahārājikehi kho, āvuso, devehi tāvatiṁsā devā abhikkantatarā ca paṇītatarā ca. Sādhāyasmā, cātumahārājikehi devehi cittaṁ vuṭṭhāpetvā tāvatiṁsesu devesu cittaṁ adhimoceh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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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에서 인간의 감각적 즐거움에서 사대왕천 신들에게 마음을 향하게 했다면, 이 대목은 그렇게 했다는 답을 받은 뒤 삼십삼천 신들을 다음 대상으로 제시합니다.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하다는 두 표현이 함께 나오고, 사대왕천에서 마음을 돌리는 동작과 삼십삼천에 마음을 향하는 동작도 둘 다 나옵니다. 이 한 단계는 하늘 세계 목록을 한꺼번에 압축하지 않고, 앞선 답을 확인한 뒤 다음 방향을 말하는 문답의 일정한 리듬을 보여 줍니다.

묵상

사대왕천 신들에서 삼십삼천 신들로 마음을 옮기는 한 단계를 읽을 때,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라는 비교가 어떻게 들리나요? 한 답을 확인하고 다음 방향을 제시하는 문답의 리듬만 따라가 볼 수 있나요?

10 네 하늘 세계 단계를 생략 표지로 잇다 1구절

야마부터 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신들까지 네 단계를 원문의 반복 생략대로 잇습니다.

“그가 ‘제 마음은 사대왕천 신들에게서 벗어나 삼십삼천 신들에게 향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말해야 한다. ‘벗이여, 삼십삼천 신들보다 야마의 신들이 … 기쁨에 머무는 신들이 … 창조를 즐기는 신들이 … 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신들이 …’”

So ce evaṁ vadeyya: ‘cātumahārājikehi me devehi cittaṁ vuṭṭhitaṁ, tāvatiṁsesu devesu cittaṁ adhimocitan’ti, so evamassa vacanīyo: ‘tāvatiṁsehi kho, āvuso, devehi yāmā devā …pe… tusitā devā …pe… nimmānaratī devā …pe… paranimmitavasavattī devā …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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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삼십삼천에 마음을 향했다는 답 뒤, 경은 야마의 신들·기쁨에 머무는 신들·창조를 즐기는 신들·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신들을 이 순서로 잇습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부분은 줄였지만, 네 단계의 고유한 이름과 오르는 순서는 분명합니다. 이 반복 구간은 다음 단계로 마음을 옮기는 과정임을 준비합니다.

묵상

야마의 신들에서 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신들까지 이름이 하나씩 이어질 때, 무엇이 더 눈에 들어오나요? 이름들이 같은 짜임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나 순서 가운데 하나만 떠올려볼 수 있나요?

11 브라흐마 세계로 마음을 향하다 1구절

마지막 하늘 세계의 신들보다 브라흐마 세계가 더 뛰어나다고 말하며 마음을 그곳으로 향하게 합니다.

“벗이여, 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신들보다 브라흐마 세계가 더 뛰어나고 훌륭합니다. 수행자님, 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신들에게서 마음을 돌려 브라흐마 세계에 마음을 향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paranimmitavasavattīhi kho, āvuso, devehi brahmaloko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a. Sādhāyasmā, paranimmitavasavattīhi devehi cittaṁ vuṭṭhāpetvā brahmaloke cittaṁ adhimoceh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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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줄여 적은 네 하늘 세계 단계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언급된 신들과 브라흐마 세계의 비교가 온전히 나타납니다. 앞에서는 신들의 무리를 대상으로 삼았지만 여기서는 브라흐마 세계 자체가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을 그 신들에게서 돌리는 동작과 브라흐마 세계에 향하는 동작도 한 쌍을 이룹니다. 이 대목에서 하늘 세계를 오르는 비교는 끝나지만, 아직 경의 마지막 목적지는 아닙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브라흐마 세계도 그대로 있지 않고 영속하지 않다고 말하며, 가장 높아 보이는 곳도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신들보다 브라흐마 세계가 더 뛰어나다”라는 마지막 비교에서, 대상이 신들의 무리에서 하나의 세계로 바뀌는 점이 보이나요? 마음을 돌리고 다시 향한다는 두 동작만 천천히 구별해 볼 수 있나요?

12 브라흐마 세계의 한계와 실체의 소멸 1구절

브라흐마 세계도 그대로 있지 않고 영속하지 않음을 밝히고 자아라는 실체의 소멸로 마음을 모읍니다.

“그가 ‘제 마음은 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신들에게서 벗어나 브라흐마 세계로 향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말해야 한다. ‘벗이여, 브라흐마 세계도 그대로 있지 않고 영속하지 않으며 자아라는 것에 포함됩니다. 그대는 브라흐마 세계에서 마음을 돌려 자아라는 것이 사라짐으로 마음을 모으는 것이 좋겠습니다.’”

So ce evaṁ vadeyya: ‘paranimmitavasavattīhi me devehi cittaṁ vuṭṭhitaṁ, brahmaloke cittaṁ adhimocitan’ti, so evamassa vacanīyo: ‘brahmalokopi kho, āvuso, anicco addhuvo sakkāyapariyāpanno. Sādhāyasmā, brahmalokā cittaṁ vuṭṭhāpetvā sakkāyanirodhe cittaṁ upasaṁharāh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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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브라흐마 세계에 마음을 향했다는 답을 받은 뒤, 가르침은 앞선 상승 비교를 뒤집습니다. 가장 높게 제시된 이 세계마저 그대로 있지 않고 영속하지 않으며 자아라는 것에 속한다고 밝힙니다. 앞 단계에서는 마음을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게 했지만, 이번에는 자아라는 것이 사라지는 쪽으로 마음을 모으라고 말합니다. 하늘 세계를 누리는 쪽에서 사라짐 쪽으로 방향이 바뀌는 대목입니다. 현대의 병자 돌봄에서는 이 문장을 관계나 치료를 포기하라는 명령으로 바꾸지 않으며, 버거운 독자가 잠시 건너뛸 선택도 존중해야 합니다.

묵상

브라흐마 세계마저 그대로 있지 않다는 말이 앞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나요? 그대로 있지 않음이나 사라짐이라는 말이 지금 버겁다면, 높은 곳으로 향하던 마음이 방향을 바꾸는 지점만 가만히 살펴볼 수 있나요?

13 이렇게 마음이 풀려나면 집에서 살든 떠났든 그 풀려남은 같다 1구절

이와 같이 마음이 풀려난 재가 신자와 수행자를 풀려남이라는 범위에서 비교해 경을 맺습니다.

“그가 ‘제 마음은 브라흐마 세계에서 벗어나 자아라는 것이 사라짐으로 향합니다.’라고 대답하면, 마하나마여, 이와 같이 마음이 풀려난 집에 사는 신도와 흘러드는 것에서 마음이 풀려난 수행자 사이에는 풀려난 이들의 풀려남이라는 점에서 아무 차이도 없다고 나는 말한다.”

So ce evaṁ vadeyya: ‘brahmalokā me cittaṁ vuṭṭhitaṁ, sakkāyanirodhe cittaṁ upasaṁharāmī’ti; evaṁ vimuttacittassa kho, mahānāma, upāsakassa āsavā vimuttacittena bhikkhunā na kiñci nānākaraṇaṁ vadāmi, yadidaṁ—vimuttiyā vimuttan”ti.

상윳따 니까야 SN 55.54 길라나 숫따 (앓는 이)

배경

마지막 문단은 브라흐마 세계에서 마음을 돌려 자아라는 것이 사라짐으로 향한다는 병자의 답을 먼저 확인합니다. 이어 부처님은 “이와 같이 마음이 풀려난” 집에 사는 신도와 흘러드는 것에서 마음이 풀려난 수행자를 나란히 놓고, 풀려난 점에서는 아무 차이도 없다고 결론짓습니다. 비교는 “풀려남” 하나만 놓고 합니다. 이 마지막 말은 앞선 안심과 단계적 마음 전환이 어디를 향했는지 분명히 합니다. 뒷날 덧붙여진 임종 교리를 더하지 않고, 경이 직접 말한 두 사람의 풀려남 비교까지만 살핍니다.

묵상

집에 사는 신도와 수행자 사이에 “풀려난 점에서는 아무 차이도 없다”는 마지막 말이 어떻게 들리나요? 두 사람의 생활 전체를 견주지 않고, 풀려남 하나만 비교한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