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윗자 숫따(모름)

Avijjā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무명과 참된 앎·해탈이 각각 관계·듣기·믿음·주의·행위·수행의 자양분을 따라 가득 차는 두 연쇄를 빗물 비유로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14구절

이 경을 14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알지 못함의 시작은 몰라도 그 바탕은 알 수 있다 1구절

모름의 시간적 첫 시작은 찾을 수 없지만 무엇을 조건으로 모름이 있는지는 알 수 있다고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모름의 첫 시작은 알려지지 않는다. ‘이전에는 모름이 없었고 그 뒤에 생겼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말하지만 ‘이것을 조건으로 모름이 있다’는 것은 알려진다.”

“Purimā, bhikkhave, koṭi na paññāyati avijjāya: ‘ito pubbe avijjā nāhosi, atha pacchā samabhavī’ti. Evañcetaṁ, bhikkhave, vuccati, atha ca pana paññāyati: ‘idappaccayā avijj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경은 모름의 시간적 첫 지점을 찾는 일과 현재 모름을 지탱하는 조건을 아는 일을 구별하며 시작합니다. “그 이전에는 없었고 뒤에 생겼다”고 가리킬 수 있는 경계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모름이 아무 원인 없이 영원히 고정되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곧바로 ‘이것을 조건으로’ 모름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진다고 방향을 바꿉니다. 시작점을 추측하는 질문에서 지금 작용하는 조건을 살피는 질문으로 옮겨 가는 전환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은 그 조건을 한 단계씩 거슬러 올라갑니다.

묵상

어떤 혼란을 만날 때 “나는 언제부터 이랬을까”라는 시작점만 찾고 있지는 않나요? 다만 지금 이 혼란을 계속 먹이고 있는 조건 하나는 무엇인지, 단정하지 않고 함께 살펴볼 수 있을까요?

2 나쁜 행동에서 다섯 걸림돌을 거쳐 모름이 자란다 1구절

모름과 다섯 장애가 각각 자양분 없이 생기지 않으며, 다섯 장애와 세 가지 나쁜 행위를 차례로 답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모름에는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모름의 자양분은 무엇인가? ‘다섯 장애’라고 답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다섯 장애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다섯 장애의 자양분은 무엇인가? ‘세 가지 나쁜 행위’라고 답해야 한다.”

Avijj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avijjāya? ‘Pañca nīvaraṇā’tissa vacanīyaṁ. Pañcapāhaṁ, bhikkhave, nīvaraṇe sāhāre vadāmi, no anāhāre. Ko cāhāro pañcannaṁ nīvaraṇānaṁ? ‘Tīṇi duccaritānī’tissa vacan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첫 두 문답은 모름에서 다섯 장애로, 다시 몸·말·마음의 세 가지 나쁜 행위로 거슬러 갑니다. 각 단계에서 부처님은 ‘자양분이 있다’는 긍정과 ‘자양분이 없지 않다’는 부정을 함께 말합니다. 그런 다음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정해진 답을 제시합니다. 다섯 장애는 감각적 욕망·악의·해태와 혼침·들뜸과 걱정·의심의 묶음이며, 여기서는 그 이름만 나옵니다. 모름과 장애를 고립된 상태로 보지 않고, 앞선 조건에 따라 채워지는 흐름으로 봅니다.

묵상

마음이 흐릴 때 그 상태 하나만 문제라고 여기나요? 다섯 장애와 몸·말·마음의 행동이 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을 놓고, 오늘의 행동 가운데 마음을 더 흐리게 한 것이 있었는지 조용히 돌아보세요.

3 나쁜 행위는 감각 단속 없음을 먹다 1구절

세 가지 나쁜 행위에서 감각 단속 없음과 알아차림·분명한 앎의 없음까지 두 조건을 거슬러 갑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세 가지 나쁜 행위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감각 단속 없음’이라고 답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감각 단속 없음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의 없음’이라고 답해야 한다.”

Tīṇipāhaṁ, bhikkhave, duccaritāni sāhārāni vadāmi, no anāhārāni. Ko cāhāro tiṇṇaṁ duccaritānaṁ? ‘Indriyaasaṁvaro’tissa vacanīyaṁ. Indriyaasaṁvar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indriyaasaṁvarassa? ‘Asatāsampajaññan’tissa vacan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세 가지 나쁜 행위의 바로 앞 조건은 감각 단속 없음입니다. 눈·귀·코·혀·몸·마음으로 대상을 만날 때 그 특징에 붙들리지 않도록 지키지 못하면 행동의 세 영역이 나쁜 방향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연결입니다. 감각 단속 없음도 독립된 원인이 아니며, 그 자양분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이 없는 상태라고 답합니다. 두 문답 모두 자양분이 있다는 긍정과 자양분이 없지 않다는 부정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행동을 마지막 결과로만 보지 않고 감각을 만나는 순간과 그 순간을 아는 힘까지 거슬러 보는 단계입니다.

묵상

몸이나 말로 반응하기 직전에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지 놓친 적이 있었나요? 이미 지난 행동을 탓하기보다, 감각을 만난 순간과 알아차림이 흐려진 순간 사이를 천천히 되짚어 볼 수 있을까요?

4 알아차림의 없음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의를 먹다 1구절

알아차림·분명한 앎의 없음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주의와 믿음 없음까지 두 조건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의 없음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의’라고 답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이치에 맞지 않는 주의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믿음 없음’이라고 답해야 한다.”

Asatāsampajaññ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asatāsampajaññassa? ‘Ayonisomanasikāro’tissa vacanīyaṁ. Ayonisomanasikār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ayonisomanasikārassa? ‘Assaddhiyan’tissa vacan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이 없는 상태를 먹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의입니다. 대상의 어느 면을 어떤 관계 속에서 마음에 두느냐가 알아차림의 선명함과 이어집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주의도 끝점이 아닙니다. 다음 질문은 그 자양분을 믿음 없음이라고 답합니다. 여기서 믿음은 검토 없는 동의보다 가르침과 실천이 의미 있다는 신뢰의 자리입니다. 두 단계 모두 “자양분이 없지 않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아, 마음의 기울임과 믿음 없음도 조건 없이 저절로 굳어진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묵상

한 대상을 볼 때 불리하거나 자극적인 한 면만 되풀이해 마음에 둔 적이 있나요? 그 주의 방식이 알아차림과 신뢰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옳고 그름을 서둘러 판단하지 말고 살펴보세요.

5 믿음 없음은 그릇된 가르침과 참되지 않은 사람을 먹다 1구절

믿음 없음의 자양분을 그릇된 가르침 듣기에서 찾고, 다시 참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림으로 거슬러 갑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믿음 없음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그릇된 가르침 듣기’라고 답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릇된 가르침 듣기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참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림’이라고 답해야 한다.”

Assaddhiy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assaddhiyassa? ‘Asaddhammassavanan’tissa vacanīyaṁ. Asaddhammassavan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asaddhammassavanassa? ‘Asappurisasaṁsevo’tissa vacan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믿음 없음의 앞에는 그릇된 가르침을 듣는 일이 놓입니다. 무엇을 반복해서 듣는지가 신뢰의 방향을 채운다는 연결입니다. 다시 그 듣기의 자양분을 물으면 참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라고 답합니다. 이 대목은 어떤 관계가 어떤 말을 듣게 하고, 그 말이 믿음과 주의를 어떻게 채우는지 그 흐름만 보여 줍니다. 각 단계에도 자양분이 있고 없지 않다는 같은 말이 되풀이되어, 관계와 듣기 역시 더 앞선 조건 속에서 자란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묵상

자주 함께하는 사람과 자주 듣는 말이 무엇을 믿고 의심하게 하는지 느껴 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를 곧바로 참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기보다, 그 관계에서 실제로 무엇을 되풀이해 듣는지부터 살펴보세요.

6 해로운 어울림에서 모름이 자라기까지 1구절

앞서 거슬러 물은 여덟 조건을 순방향으로 연결하여 모름이 어떻게 자양분을 얻고 가득 차는지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참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림이 가득 차면 그릇된 가르침 듣기를 채우고, 그것은 믿음 없음을 채운다. 믿음 없음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의를, 그것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의 없음을, 그것은 감각 단속 없음을, 그것은 세 가지 나쁜 행위를, 그것은 다섯 장애를, 다섯 장애는 모름을 채운다. 이것이 모름의 자양분이며, 이렇게 모름이 가득 찬다.”

Iti kho, bhikkhave, asappurisasaṁsevo paripūro asaddhammassavanaṁ paripūreti, asaddhammassavanaṁ paripūraṁ assaddhiyaṁ paripūreti, assaddhiyaṁ paripūraṁ ayonisomanasikāraṁ paripūreti, ayonisomanasikāro paripūro asatāsampajaññaṁ paripūreti, asatāsampajaññaṁ paripūraṁ indriyaasaṁvaraṁ paripūreti, indriyaasaṁvaro paripūro tīṇi duccaritāni paripūreti, tīṇi duccaritāni paripūrāni pañca nīvaraṇe paripūrenti, pañca nīvaraṇā paripūrā avijjaṁ paripūrenti; evametissā avijjāya āhāro hoti, evañca pāripūr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문답으로 거슬러 올라간 길을 이번에는 순방향으로 한 번에 잇습니다. 참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림, 그릇된 가르침 듣기, 믿음 없음, 이치에 맞지 않는 주의,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의 없음, 감각 단속 없음, 세 가지 나쁜 행위, 다섯 장애, 모름까지 아홉 가지입니다. 앞의 것이 “가득 차면” 바로 다음 것을 “채운다”는 말이 되풀이되므로, 하나의 원인이 여러 단계를 건너뛰어 곧바로 모름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은 이 전체 연쇄가 모름의 자양분이며 모름이 가득 차는 방식이라고 두 겹으로 정리합니다.

묵상

아홉 항목 가운데 지금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연결은 어느 둘 사이인가요? 전체 연쇄를 한꺼번에 바꾸려 애쓰기보다, 앞 조건이 뒤 상태를 채우는 장면 하나를 실제 경험에서 천천히 찾아보세요.

7 빗물이 바다를 채우듯 모름도 조건 따라 자란다 1구절

산꼭대기의 비가 골짜기부터 큰 바다까지 차례로 채우는 비유를 들고, 모름의 조건 연쇄에 그대로 적용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산꼭대기에 굵은 빗방울이 내리고 … 물이 비탈을 따라 흐르면 산의 골짜기·갈라진 틈·물길을 채운다. 그것들이 작은 웅덩이를, 웅덩이가 큰 못을, 큰 못이 시내를, 시내가 큰 강을, 큰 강이 큰 바다와 대양을 채운다. 이것이 큰 바다와 대양의 자양분이며, 이렇게 가득 찬다. 그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참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림이 가득 차면 … 모름을 채운다. 이것이 모름의 자양분이며, 이렇게 모름이 가득 찬다.”

Seyyathāpi, bhikkhave, uparipabbate thullaphusitake deve vassante (…) taṁ udakaṁ yathāninnaṁ pavattamānaṁ pabbatakandarapadarasākhā paripūreti, pabbatakandarapadarasākhā paripūrā kusobbhe paripūrenti. Kusobbhā paripūrā mahāsobbhe paripūrenti, mahāsobbhā paripūrā kunnadiyo paripūrenti, kunnadiyo paripūrā mahānadiyo paripūrenti, mahānadiyo paripūrā mahāsamuddaṁ sāgaraṁ paripūrenti; evametassa mahāsamuddassa sāgarassa āhāro hoti, evañca pāripūri. Evamevaṁ kho, bhikkhave, asappurisasaṁsevo paripūro asaddhammassavanaṁ paripūreti, … pañca nīvaraṇā paripūrā avijjaṁ paripūrenti; evametissā avijjāya āhāro hoti, evañca pāripūr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굵은 비가 산꼭대기에 내리면 물은 비탈을 따라 한 단계씩 아래를 채웁니다. 산의 골짜기·갈라진 틈·물길에서 작은 웅덩이, 큰 못, 시내, 큰 강, 큰 바다와 대양으로 이어지는 순서가 빠짐없이 놓입니다. 앞서 나온 참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림부터 모름까지 아홉 단계가 같은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며,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비유는 작은 흐름들이 바로 다음 자리를 거쳐 거대한 바다를 채우듯 모름도 연속된 조건으로 가득 찬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묵상

큰 바다가 한 번의 비로 채워지지 않듯, 마음의 혼란도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흐름들이 모인 결과일 수 있어요. 지금 가장 위쪽에서 흘러오기 시작한 작은 조건 하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8 알아차림과 깨달음의 일곱 요소가 앎과 풀려남을 키우다 1구절

참된 앎과 풀려남의 자양분을 일곱 깨달음 요소에서 찾고, 다시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으로 거슬러 갑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참된 앎과 풀려남에는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일곱 깨달음 요소’라고 답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일곱 깨달음 요소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이라고 답해야 한다.”

Vijjāvimutti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vijjāvimuttiyā? ‘Satta bojjhaṅgā’tissa vacanīyaṁ. Sattapāhaṁ, bhikkhave, bojjhaṅge sāhāre vadāmi, no anāhāre. Ko cāhāro sattannaṁ bojjhaṅgānaṁ? ‘Cattāro satipaṭṭhānā’tissa vacan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경의 후반부에서는 앞의 부정적 연쇄와 반대되는 방향이 열립니다. 참된 앎과 풀려남도 자양분이 있으며 자양분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먼저 밝힙니다. 그 자양분은 일곱 깨달음 요소이고, 다시 그 일곱 요소의 자양분은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입니다. 여기서는 각 요소의 세부 이름이나 몸·느낌·마음·현상의 네 영역을 다시 풀지 않고, 묶음의 수와 이름만 나옵니다. 모름의 시작을 추측하는 대신 조건을 찾았듯, 참된 앎과 풀려남도 알아차림이 확립되고 깨달음의 요소가 채워지는 연속된 길로 제시됩니다.

묵상

풀려남을 아주 먼 결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 결과를 직접 붙잡으려 하기보다, 지금 몸·느낌·마음·현상 가운데 어느 자리에서 알아차림을 세울 수 있는지 잠시 조용히 살펴보세요.

9 알아차림의 확립은 좋은 행위와 감각 단속을 먹다 1구절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에서 세 가지 좋은 행위와 감각 단속까지 두 조건을 거슬러 갑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세 가지 좋은 행위’라고 답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세 가지 좋은 행위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감각 단속’이라고 답해야 한다.”

Cattāropāhaṁ, bhikkhave, satipaṭṭhāne sāhāre vadāmi, no anāhāre. Ko cāhāro catunnaṁ satipaṭṭhānānaṁ? ‘Tīṇi sucaritānī’tissa vacanīyaṁ. Tīṇipāhaṁ, bhikkhave, sucaritāni sāhārāni vadāmi, no anāhārāni. Ko cāhāro tiṇṇaṁ sucaritānaṁ? ‘Indriyasaṁvaro’tissa vacan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을 채우는 바로 앞 조건은 몸·말·마음의 세 가지 좋은 행위입니다. 알아차림은 일상의 행동 방향과 그대로 이어집니다. 세 가지 좋은 행위의 자양분을 다시 물으면 감각 단속이라고 답합니다. 감각 단속은 보거나 듣지 않는 차단보다 대상을 만났을 때 특징에 붙들려 행동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감각의 문을 지키는 훈련입니다. 앞의 연쇄에서 감각 단속 없음이 나쁜 행위를 채운 것과 정확히 반대이며, 두 문답의 긍정과 부정도 같은 자리에서 서로 맞물립니다.

묵상

알아차림과 몸·말·마음의 좋은 행동을 서로 다른 수행으로 나누어 보았나요? 오늘 감각을 만난 뒤 한 말이나 행동 가운데, 알아차림을 더 선명하게 해 준 선택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10 감각 단속은 알아차림과 이치에 맞는 주의를 먹다 1구절

감각 단속에서 알아차림·분명한 앎과 이치에 맞는 주의까지 두 조건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감각 단속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이라고 답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이치에 맞는 주의’라고 답해야 한다.”

Indriyasaṁvar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indriyasaṁvarassa? ‘Satisampajaññan’tissa vacanīyaṁ. Satisampajaññ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satisampajaññassa? ‘Yonisomanasikāro’tissa vacan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감각의 문을 지키는 힘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자양분으로 삼습니다.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하려는지 잊지 않고 알아야, 감각과 마주친 뒤에도 그 흐름을 놓치지 않습니다.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도 스스로 완결되지 않으며, 이치에 맞는 주의가 그것을 채웁니다. 앞서는 잘못된 주의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메마르게 했다면, 여기서는 그 반대로 이치에 맞는 주의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채웁니다. 대상의 조건과 결과까지 함께 보는 주의가 감각 단속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감각을 억지로 막으려 할 때보다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있는지 분명히 알 때 반응이 달라진 경험이 있나요? 그때 마음이 대상의 어느 면과 결과를 함께 보았는지 한 번 천천히 살펴보세요.

11 이치에 맞는 주의는 믿음과 참된 가르침을 먹다 1구절

이치에 맞는 주의에서 믿음과 참된 가르침 듣기까지 두 자양분을 거슬러 갑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이치에 맞는 주의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믿음’이라고 답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믿음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참된 가르침 듣기’라고 답해야 한다.”

Yonisomanasikār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yonisomanasikārassa? ‘Saddhā’tissa vacanīyaṁ. Saddh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saddhāya? ‘Saddhammassavanan’tissa vacan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이치에 맞는 주의를 채우는 것은 믿음이고, 믿음을 채우는 것은 참된 가르침을 듣는 일입니다. 앞서는 믿음이 없어 그릇된 가르침을 듣게 됨을 말했는데, 여기서는 그 반대로 믿음이 참된 가르침을 듣는 바탕이 됨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믿음이 생기면 더는 아무것도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참된 가르침을 들으며 생긴 신뢰가 원인과 결과에 맞게 마음을 기울이는 힘으로 이어지고, 그 주의가 다시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채웁니다. 들음과 믿음과 주의는 이렇게 차례로 서로를 길러 냅니다.

묵상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이 사물을 살피는 방식까지 바꾼 적이 있나요? 그 가르침이 믿으라는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고 실제로 더 정확히 보게 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천천히 돌아보세요.

12 참된 가르침 듣기는 참된 사람들과 어울림을 먹다 1구절

긍정 연쇄의 마지막 문답으로 참된 가르침 듣기의 자양분을 참된 사람들과 어울림이라고 답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참된 가르침 듣기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참된 사람들과 어울림’이라고 답해야 한다.”

Saddhammassavan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saddhammassavanassa? ‘Sappurisasaṁsevo’tissa vacan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거꾸로 묻던 긍정 연쇄의 맨 앞에는 참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놓입니다. 참된 가르침을 듣는 기회도 누구와 가까이 지내고 어떤 말을 나누는지에 기대어 채워집니다. 앞서 참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그릇된 가르침을 듣게 된다고 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경은 참된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참된 가르침을 듣는 바탕이 된다고만 말합니다.

묵상

가까이 지내는 이들과 나누는 말이 어떤 가르침을 더 자주 듣게 하나요? 사람을 빠르게 참됨과 거짓됨으로 나누기보다, 그 어울림이 실제로 무엇을 듣고 살피게 하는지 먼저 바라보세요.

13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앎과 풀려남으로 나아가다 1구절

긍정의 아홉 항목을 순방향으로 이어 참된 앎과 풀려남이 어떻게 자양분을 얻고 가득 차는지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참된 사람들과 어울림이 가득 차면 참된 가르침 듣기를 채우고, 그것은 믿음을 채운다. 믿음은 이치에 맞는 주의를, 그것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그것은 감각 단속을, 그것은 세 가지 좋은 행위를, 그것은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을, 그것은 일곱 깨달음 요소를, 일곱 요소는 참된 앎과 풀려남을 채운다. 이것이 참된 앎과 풀려남의 자양분이며, 이렇게 그것이 가득 찬다.”

Iti kho, bhikkhave, sappurisasaṁsevo paripūro saddhammassavanaṁ paripūreti, saddhammassavanaṁ paripūraṁ saddhaṁ paripūreti, saddhā paripūrā yonisomanasikāraṁ paripūreti, yonisomanasikāro paripūro satisampajaññaṁ paripūreti, satisampajaññaṁ paripūraṁ indriyasaṁvaraṁ paripūreti, indriyasaṁvaro paripūro tīṇi sucaritāni paripūreti, tīṇi sucaritāni paripūrāni 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nti, cattāro satipaṭṭhānā paripūrā satta bojjhaṅge paripūrenti, satta bojjhaṅgā paripūrā vijjāvimuttiṁ paripūrenti; evametissā vijjāvimuttiyā āhāro hoti, evañca pāripūr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긍정 연쇄도 문답에서 거슬러 찾은 조건을 순방향으로 모두 연결합니다. 참된 사람들과 어울림, 참된 가르침 듣기, 믿음, 이치에 맞는 주의,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 감각 단속, 세 가지 좋은 행위,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 일곱 깨달음 요소, 참된 앎과 풀려남까지 열 가지입니다. 앞의 것이 가득 차야 다음 것이 채워진다는 말이 열 가지 모두에서 되풀이되므로, 좋은 관계 하나가 중간의 실천 없이 곧바로 풀려남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은 이 전체 연쇄를 참된 앎과 풀려남의 자양분이자 그것이 가득 차는 방식이라고 정리합니다.

묵상

열 항목을 읽을 때 너무 긴 길처럼 느껴지나요? 이미 조금이라도 갖추어진 조건이 있다면 그 조건이 바로 다음 항목을 어떻게 돕는지 살펴보세요. 가장 가까운 한 연결부터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14 빗물이 바다를 채우듯 앎과 풀려남도 조건 따라 자란다 1구절

온전한 빗물 비유를 다시 들고, 참된 어울림에서 참된 앎과 풀려남까지의 연쇄에 적용하여 경을 맺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산꼭대기에 굵은 빗방울이 내리고 물이 비탈을 따라 흐르면 산의 골짜기·갈라진 틈·물길을 채운다. 그것들이 작은 웅덩이를, 웅덩이가 큰 못을, 큰 못이 시내를, 시내가 큰 강을, 큰 강이 큰 바다와 대양을 채운다. 이것이 큰 바다와 대양의 자양분이며, 이렇게 가득 찬다. 그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참된 사람들과 어울림이 가득 차면 … 참된 앎과 풀려남을 채운다. 이것이 참된 앎과 풀려남의 자양분이며, 이렇게 그것이 가득 찬다.”

Seyyathāpi, bhikkhave, uparipabbate thullaphusitake deve vassante taṁ udakaṁ yathāninnaṁ pavattamānaṁ pabbatakandarapadarasākhā paripūreti, pabbatakandarapadarasākhā paripūrā kusobbhe paripūrenti, kusobbhā paripūrā mahāsobbhe paripūrenti, mahāsobbhā paripūrā kunnadiyo paripūrenti, kunnadiyo paripūrā mahānadiyo paripūrenti, mahānadiyo paripūrā mahāsamuddaṁ sāgaraṁ paripūrenti; evametassa mahāsamuddassa sāgarassa āhāro hoti, evañca pāripūri. Evamevaṁ kho, bhikkhave, sappurisasaṁsevo paripūro saddhammassavanaṁ paripūreti, … satta bojjhaṅgā paripūrā vijjāvimuttiṁ paripūrenti; evametissā vijjāvimuttiyā āhāro hoti, evañca pāripūr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아윗자 숫따 (모름)

배경

같은 빗물 비유가 이번에는 온전히 되풀이됩니다. 산 위의 굵은 비부터 골짜기·갈라진 틈·물길, 작은 웅덩이, 큰 못, 시내, 큰 강, 큰 바다와 대양까지의 순서는 앞과 같습니다. 참된 사람들과 어울림부터 참된 앎과 풀려남까지 이어지는 열 단계도 모두 같은 순서로 이어지며,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경은 풀려남도 작은 조건들이 바로 다음 조건을 채우며 큰 바다처럼 가득 찬다는 비유로 끝납니다.

묵상

큰 바다를 보며 마지막 결과만 바라보기보다, 지금 흘러가는 작은 물길 하나를 알아볼 수 있나요? 참된 앎과 풀려남을 채우는 조건 가운데 오늘 바로 다음 자리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