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흐마야짜나 숫따(브라흐마의 간청)

Brahmāyācan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6.1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하리라 망설이던 부처님이, 범천의 청을 받아 설법을 결심한다.

인용된 가르침 13구절

이 경을 13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깊고 알기 어려운 가르침 1구절

막 깨달은 부처님께 깊고 미묘한 가르침의 성격에 관한 생각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막 바르게 깨달으신 뒤 우루웰라 네란자라강 기슭, 염소치기의 반얀나무 아래에 머무셨다. 그때 홀로 물러나 계시던 부처님의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일어났다. “내가 깨달은 이 가르침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뛰어나며,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고, 미묘하여 지혜로운 이라야 알 수 있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uruvelāyaṁ viharati najjā nerañjarāya tīre ajapālanigrodhamūle paṭhamābhisambuddho. Atha kho bhagavato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ṁ cetaso parivitakko udapādi: “adhigato kho myā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상윳따 니까야 SN 6.1 브라흐마야짜나 숫따 (브라흐마의 간청)

배경

전승자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고 시작한 뒤, 막 바르게 깨달은 부처님께서 우루웰라 네란자라강 기슭의 반얀나무 아래 머문 장면을 놓습니다. 홀로 물러난 부처님의 생각 속에서 가르침은 깊음·보기 어려움·깨닫기 어려움·고요함·뛰어남·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음·미묘함·지혜로운 이만 알 수 있음으로 늘어섭니다. 이 어려움의 인식은 뒤에 이어질, 가르침을 펴는 일을 망설이는 대목을 여는 근거이지, 아직 최종 결정을 말하는 대목은 아닙니다.

묵상

깊음, 고요함, 미묘함처럼 가르침을 나타내는 말들 가운데 어떤 표현이 가장 오래 머무나요?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 앞에서, 지금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2 집착하는 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리라는 망설임 1구절

집착을 즐기는 사람들이 연기와 고요히 꺼짐을 보기 어려워 설법이 피로와 괴로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기뻐하며 집착에 만족한다. 그들에게는 조건 따라 일어나는 이치를 보기 어려우며,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의 고요, 모든 집착의 놓아 버림,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의 다함, 빛바램, 멎음, 고요히 꺼짐(닙바나)도 보기 어렵다. 내가 가르침을 펴더라도 다른 이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게 피로와 괴로움이 될 것이다.”

Ālayarāmā kho panāyaṁ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 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ṁ idaṁ ṭhānaṁ yadidaṁ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o. Idampi kho ṭhānaṁ duddas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ṁ. Ahañceva kho pana dhammaṁ deseyyaṁ; pare ca me na ājāneyyuṁ; so mamassa kilamatho, sā mamassa vihes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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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부처님의 생각이 듣는 이들의 상태로 옮겨 갑니다.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사랑하며 만족하기 때문에 조건 따라 일어나는 이치를 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어 모든 지어내는 작용이 고요해지는 것부터 고요히 꺼짐까지도 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가르침을 펴더라도 다른 이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피로와 괴로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알아듣지 못할 경우를 헤아린 망설임입니다.

묵상

이 대목의 망설임은 가르침이 어렵다는 점과 사람들이 집착을 즐긴다는 점을 함께 놓습니다. 두 이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또렷하게 들리나요?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알아듣지 못할까 봐 망설인 적이 있나요?

3 애써 깨달은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으리라 1구절

전에 듣지 못한 게송이 떠오르며 욕심과 성냄에 사로잡힌 이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때 초자연적인 영감에서 온 것이 아니며 전에 들어 본 적도 없는 이 게송들이 부처님께 떠올랐다. “애써서 내가 깨달은 것을 이제 드러낼 필요가 없으리라. 탐냄과 성냄에 사로잡힌 이들은 이 가르침을 잘 깨닫지 못하리라.”

Apissu bhagavantaṁ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ṁsu pubbe assutapubbā: “Kicchena me adhigataṁ, halaṁ dāni pakāsituṁ; Rāgadosaparetehi, nāyaṁ dhammo susambud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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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 게송은 신비한 영감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전에 들어 본 적도 없이, 부처님께 스스로 떠올랐습니다. 첫 두 행은 애써 깨달은 것을 이제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다음 두 행은 탐냄과 성냄에 사로잡힌 이들이 이 가르침을 잘 깨닫지 못하리라는 부정으로 그 이유를 압축합니다. 앞서 길게 이어진 생각이 이 짧은 게송으로 다시 압축되어 나타납니다.

묵상

“애써 깨달은 것”과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두 구절을 나란히 둘 때 어떤 긴장이 느껴지나요? 힘들게 얻은 것을 굳이 알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4 마음이 설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다 1구절

흐름을 거스르는 가르침을 욕심에 물든 이들이 보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마음이 비관여로 기웁니다.

“흐름을 거슬러 가고 미묘하며, 깊고 보기 어렵고 섬세한 이 가르침을 탐냄에 물든 이들은 보지 못한다. 그들은 어둠의 덩어리에 뒤덮였다.” 이와 같이 성찰하시자 부처님의 마음은 가르침을 펴는 쪽이 아니라 관여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

Paṭisotagāmiṁ nipuṇaṁ, gambhīraṁ duddasaṁ aṇuṁ; Rāgarattā na dakkhanti, tamokhandhena āvuṭā”ti. Itiha bhagavato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a.

상윳따 니까야 SN 6.1 브라흐마야짜나 숫따 (브라흐마의 간청)

배경

이어지는 게송은 가르침을 흐름을 거슬러 가는 것·미묘한 것·깊은 것·보기 어려운 것·섬세한 것으로 다시 말합니다. 탐냄에 물들고 어둠의 덩어리에 덮인 이들은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성찰 끝에 부처님의 마음은 가르침을 펴는 쪽이 아니라 관여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 기울어짐은 경의 중간 상태이며, 뒤의 청원과 관찰을 거쳐 바뀌는 최종 결정과 구별됩니다.

묵상

“관여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말은 “영원히 펴지 않기로 했다”는 말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마음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채 머뭇거리는 순간, 당신은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나요?

5 세상이 사라지리라 생각한 브라흐마 사함빠띠 1구절

사함빠띠가 부처님의 생각을 알고 세상의 멸함을 우려하여 브라흐마의 세계에서 부처님 앞으로 나타납니다.

그때 브라흐마 사함빠띠는 부처님의 생각을 알고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은 사라질 것이다!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바르게 깨달은 이의 마음이 가르침을 펴는 쪽이 아니라 관여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구나.” 그는 힘센 사람이 팔을 펴거나 굽히듯 브라흐마의 세계에서 사라져 부처님 앞에 나타났다.

Atha kho brahmuno sahampatissa bhagavato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etadahosi: “nassati vata bho loko, vinassati vata bho loko, yatra hi nāma tathāgatassa arahato sammāsambuddhassa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ā”ti. Atha kho brahmā sahampati—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ṁ vā bāhaṁ pasāreyya, pasāritaṁ vā bāhaṁ samiñjeyya; evameva—brahmaloke antarahito bhagavato purato pāturahosi.

상윳따 니까야 SN 6.1 브라흐마야짜나 숫따 (브라흐마의 간청)

배경

경의 서술에서 브라흐마 사함빠띠는 부처님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 “세상은 사라질 것이다,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고 두 번 우려합니다. 그 이유로 깨달음에 이른 이·완전히 깨달은 이·바르게 깨달은 이의 마음이 가르침을 펴지 않는 쪽으로 기운 점을 듭니다. 이어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는 짧은 동작처럼, 사함빠띠는 브라흐마의 세계에서 사라져 부처님 앞에 나타납니다. 사함빠띠는 이렇게 나타난 뒤 예경하고 청원을 올립니다.

묵상

“세상은 사라질 것이다,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라는 반복이 이 장면의 긴급함을 어떻게 바꾸나요? 누군가가 망설이는 걸 보고 다급하게 나서서 말을 건 적이 있나요?

6 예를 갖추고 두 병렬 청원을 올리다 1구절

사함빠띠가 예를 갖춘 뒤 부처님과 잘 가신 분께 각각 설법을 청하며 알아들을 이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브라흐마 사함빠띠는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여 아뢰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가르침을 펴 주소서. 잘 가신 분께서는 가르침을 펴 주소서. 눈에 티끌이 적은 뭇 생명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해 쇠퇴합니다. 가르침을 이해할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Atha kho brahmā sahampati ekaṁsaṁ uttarāsaṅgaṁ karitvā dakkhiṇajāṇumaṇḍalaṁ pathaviyaṁ nihantvā yena bhagavā tenañjaliṁ paṇāmetvā bhagavantaṁ etadavoca: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ṁ, desetu sugato dhammaṁ.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상윳따 니까야 SN 6.1 브라흐마야짜나 숫따 (브라흐마의 간청)

배경

부처님 앞에 나타난 사함빠띠는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한 뒤 청원을 올립니다. “부처님께서는 펴 주소서”와 “잘 가신 분께서는 펴 주소서”라는 두 표현에서 같은 말이 두 번 되풀이됩니다. 이어 티끌이 적은 뭇 생명들이 가르침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쇠퇴한다고 원인을 밝히고, 이해할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앞날을 내다보며 호소합니다. 이는 하나의 예경·청원 장면 안에서 두 번 겹쳐 부르는 말과 그 이유입니다.

묵상

두 번의 “펴 주소서” 뒤에 티끌이 적은 뭇 생명과 이해할 이들이 이어지는 순서에서 무엇이 가장 눈에 들어오나요?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을 두 번 되풀이해 본 적이 있나요?

7 죽음 없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1구절

사함빠띠가 게송으로 이어 청하며 깨끗하지 않은 가르침과 티 없는 이가 깨달은 가르침을 대비합니다.

브라흐마 사함빠띠는 이렇게 말한 뒤 다시 이어서 말했다. “예전에 마가다 사람들 가운데 때 묻은 자들이 생각해 낸 깨끗하지 않은 가르침이 나타났나이다. 죽음 없음의 문을 여소서. 티 없는 분이 깨달은 가르침을 사람들이 듣게 하소서.”

Idamavoca brahmā sahampati, idaṁ vatvā athāparaṁ etadavoca: “Pāturahosi magadhesu pubbe, Dhammo asuddho samalehi cintito; Apāpuretaṁ amatassa dvāraṁ, Suṇantu dhammaṁ vimalenānubuddhaṁ.

상윳따 니까야 SN 6.1 브라흐마야짜나 숫따 (브라흐마의 간청)

배경

브라흐마 사함빠띠는 청원을 마친 뒤 다시 게송으로 말을 잇습니다. 게송은 먼저 예전에 마가다 사람들 사이에서 때 묻은 이들이 생각해 낸 깨끗하지 않은 가르침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와 달리, 죽음 없음의 문을 열고 티 없는 분이 깨달은 가르침을 사람들이 듣게 해 달라고 청원합니다. 깨끗하지 않음과 티 없음, 과거의 출현과 이제 열릴 문이 서로 맞섭니다.

묵상

깨끗하지 않은 가르침과 티 없는 분이 깨달은 가르침 사이에 “문을 여소서”라는 이미지가 놓입니다. 이 문은 어떤 전환처럼 느껴지나요? 지금 당신에게 열려야 할 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8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굽어보소서 1구절

산꼭대기와 가르침의 누각 비유로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린 사람들을 바라봐 달라고 청합니다.

“바위산 꼭대기에 선 사람이 사방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지혜로운 분, 두루 보는 분이시여, 가르침으로 된 누각에 오르소서. 슬픔을 벗어난 분께서는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굽어보소서.”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 Yathāpi passe janataṁ samantato; Tathūpamaṁ dhammamayaṁ sumedha, 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 Sokāvatiṇṇaṁ janatamapetasoko, 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ṁ.

상윳따 니까야 SN 6.1 브라흐마야짜나 숫따 (브라흐마의 간청)

배경

청원 게송의 가운데 부분은 바위산 꼭대기에 선 사람이 사방의 사람들을 보는 비유로 시작합니다. 사함빠띠는 부처님을 지혜로운 분과 두루 보는 분으로 부르고, 가르침으로 된 누각에 올라 바라보라고 청합니다. 이어 슬픔을 벗어난 분과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대조하고, 그 사람들이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렸다고 말합니다.

묵상

산꼭대기에서 사방을 보는 장면과 슬픔에 빠진 사람을 굽어보는 장면은 어떻게 이어지나요?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려 슬픔에 빠진 사람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나요?

9 이해할 이들이 있으니 설해 주소서 1구절

사함빠띠가 영웅과 길잡이라는 호칭을 거듭 부르며 게송의 청원을 맺습니다.

“일어나소서, 영웅이시여, 싸움에서 이긴 분이시여. 상인 행렬의 길잡이, 빚을 다 갚으신 분이시여, 세상을 다니소서. 부처님께서는 가르침을 펴 주소서. 그 가르침을 이해할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Uṭṭhehi vīra vijitasaṅgāma, Satthavāha anaṇa vicara loke; Desassu bhagavā dhammaṁ, Aññātāro bhavissantī”ti.

상윳따 니까야 SN 6.1 브라흐마야짜나 숫따 (브라흐마의 간청)

배경

이어지는 게송의 끝에서 사함빠띠는 부처님을 영웅·싸움에서 이긴 분·상인 행렬의 길잡이·빚 없는 분으로 잇달아 부릅니다. “일어나소서”와 “세상을 다니소서”라는 말 뒤에, 부처님께 가르침을 펴 달라는 청원이 나옵니다. 마지막 행은 그 가르침을 이해할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앞서 올린 청원의 이유를 다시 말합니다. 앞의 “펴 주소서”라는 두 번의 부름과 이 게송의 “일어나소서”, “다니소서”는 각각 다른 자리에서 울립니다.

묵상

여러 호칭과 움직임의 요청 끝에 “펴 주소서”가 놓일 때, 앞서 올린 말과는 어떤 차이가 느껴지나요?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고 싶을 때 당신은 어떤 말을 건네나요?

10 부처의 눈으로 서로 다른 중생을 살피다 1구절

부처님께서 청원과 연민 때문에 세상을 살피며 중생들의 여러 차이를 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브라흐마의 청을 아시고, 뭇 생명들을 향한 연민 때문에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셨다. 부처님께서는 티끌이 적거나 많은 뭇 생명, 감각 기능이 날카롭거나 무딘 뭇 생명, 좋은 특성이 있거나 좋지 않은 특성이 있는 뭇 생명, 가르치기 쉽거나 어려운 뭇 생명을 보셨다. 어떤 이들은 다음 세상에서 잘못이 가져올 위험을 보며 살았고, 어떤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Atha kho bhagavā brahmuno ca ajjhesanaṁ viditvā sattesu ca kāruññataṁ paṭicca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si. Addasā kho bhagavā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nto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상윳따 니까야 SN 6.1 브라흐마야짜나 숫따 (브라흐마의 간청)

배경

부처님의 응답은 먼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브라흐마의 청을 안 것과 뭇 생명을 향한 연민이라는 두 계기 때문에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핍니다. 본 것은 티끌이 적음과 많음, 감각 기능이 날카로움과 무딤, 좋은 특성이 있음과 좋지 않은 특성이 있음, 가르치기 쉬움과 어려움이라는 네 쌍과, 다음 세상에서 잘못이 가져올 위험을 보는 이와 보지 않는 이의 한 쌍입니다. 이 다양성의 관찰이 이어지는 연꽃 비유로 이어집니다.

묵상

서로 반대되는 다섯 쌍 가운데 어떤 대비가 가장 선명하게 들리나요? 지금 내 안에도 날카로운 면과 무딘 면, 받아들이기 쉬운 면과 어려운 면이 함께 있지 않나요?

11 물속과 수면과 물 위의 연꽃 1구절

세 종류의 꽃이 물 아래, 수면, 물 위의 세 상태로 자라는 비유가 펼쳐집니다.

푸른 수련 못이나 붉은 연꽃 못이나 흰 연꽃 못에서, 어떤 푸른 수련·붉은 연꽃·흰 연꽃은 물에서 나고 자라 물 아래 잠긴 채 자라며, 어떤 것은 물에서 나고 자라 수면에 머물고, 어떤 것은 물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솟아 물에 젖지 않고 서 있는 것과 같았다.

Seyyathāpi nāma uppaliniyaṁ vā paduminiyaṁ vā puṇḍarīkiniyaṁ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 nimuggaposī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samodakaṁ ṭhitā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ā accuggamma ṭhitāni anupalittāni udakena;

상윳따 니까야 SN 6.1 브라흐마야짜나 숫따 (브라흐마의 간청)

배경

관찰 뒤에는 긴 연꽃 비유가 이어집니다. 푸른 수련·붉은 연꽃·흰 연꽃이라는 세 종류가 각 단계마다 빠짐없이 반복됩니다. 첫 무리는 물에서 나고 자라 물 아래 잠긴 채 자라고, 둘째 무리는 물에서 나고 자라 수면에 머뭅니다. 셋째 무리는 같은 물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솟아 물에 젖지 않고 섭니다. 세 종류와 세 위치는 그대로 이어집니다.

묵상

물 아래, 수면, 물 위라는 세 상태 가운데 어떤 장면이 가장 생생하게 그려지나요?

12 연꽃 비유 뒤에 다시 반복된 중생의 차이 1구절

연꽃 비유를 적용하며 앞서 본 중생의 다섯 쌍을 같은 순서로 다시 말합니다.

그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며 티끌이 적거나 많은 뭇 생명, 감각 기능이 날카롭거나 무딘 뭇 생명, 좋은 특성이 있거나 좋지 않은 특성이 있는 뭇 생명, 가르치기 쉽거나 어려운 뭇 생명을 보셨다. 어떤 이들은 다음 세상에서 잘못이 가져올 위험을 보며 살았고, 어떤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evameva bhagavā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nto addasa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상윳따 니까야 SN 6.1 브라흐마야짜나 숫따 (브라흐마의 간청)

배경

“그와 같이”라는 말로 연꽃 비유를 적용한 뒤, 경은 비유 앞의 관찰을 축약하지 않고 다시 온전히 반복합니다. 티끌·감각 기능·좋고 좋지 않은 특성·가르치기 쉬움의 네 대립쌍과, 다음 세상에서 잘못의 위험을 보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같은 순서로 나옵니다. 이 반복은 사람마다 다른 받아들일 준비를 연꽃의 세 상태와 이어 줍니다.

묵상

같은 다섯 쌍이 연꽃 비유 앞뒤에 한 번씩 놓일 때, 두 번째 목록은 처음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13 죽음 없음의 문을 열고 설법을 허락하다 1구절

부처님께서 믿음을 일으키라고 답하고, 사함빠띠는 청원이 받아들여졌음을 알아차린 뒤 떠납니다.

이것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브라흐마 사함빠띠에게 게송으로 답하셨다. “죽음 없음의 문들이 그들에게 열렸다. 귀 있는 이들은 믿음을 일으켜라. 브라흐마여, 번거로우리라 여겨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미묘하고 뛰어난 가르침을 말하지 않았다.” 브라흐마 사함빠띠는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펴도록 자신의 청을 받아 주셨음을 알고, 부처님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 바로 그곳에서 사라졌다.

Disvāna brahmānaṁ sahampatiṁ gāthāya paccabhāsi: “Apārutā tesaṁ amatassa dvārā,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ṁ; Vihiṁsasaññī paguṇaṁ na bhāsiṁ, Dhammaṁ paṇītaṁ manujesu brahme”ti. Atha kho brahmā sahampati “katāvakāso khomhi bhagavatā dhammadesanāyā”ti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tatthevantaradhāyīti.

상윳따 니까야 SN 6.1 브라흐마야짜나 숫따 (브라흐마의 간청)

배경

살아 있는 것들을 본 뒤 부처님께서는 브라흐마 사함빠띠에게 게송으로 답합니다. 죽음 없음의 문들이 “그들에게” 열렸다는 말은 다음 행의 귀 있는 이들을 가리키며, 그들에게 믿음을 일으키라고 합니다. 이어 “브라흐마여”라고 부르며, 번거로우리라 여겨 사람들 사이에서 미묘하고 뛰어난 가르침을 말하지 않았던 까닭을 돌아봅니다. 사함빠띠는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펼 기회를 자신에게 주셨다고 알아듣고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 사라집니다.

묵상

열린 문, 귀 있는 이, 믿음을 일으키라는 세 표현은 서로 어떻게 이어져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