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타삔디까에게 세상에 있는 열 부류를 묻고, 부당하고 강압적으로 얻어 아무 데도 쓰지 않는 첫째를 답합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습니다.
아나타삔디까 집주인이 부처님께 다가갔습니다.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앉자, 부처님께서 그 집주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주인이여, 세상에는 열 부류의 재물 향유자가 있다. 어떤 열인가?
집주인이여, 어떤 사람은 부당하고 강압적으로 재물을 찾고, 그렇게 얻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도 만족하게도 하지 않으며,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는다.”
장소와 방문 장면 뒤 부처님께서는 집주인 아나타삔디까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재물을 누리는 사람은 재물을 찾고 쓰는 사람을 뜻하며, “어떤 열인가?”라는 질문에 첫째 사례를 곧바로 이어 답합니다. 첫째는 부당하고 강압적으로 얻은 뒤 네 가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음, 만족하게 하지 않음, 나누지 않음, 공덕을 짓지 않음입니다. 뒤에 나오는 사례들은 재물을 얻는 방식과 쓰는 방식을 여러 가지로 조합해 보여 줍니다.
묵상
부당하게 얻은 재물을 자신과 다른 이를 위해 쓰지 않는 사람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획득과 사용이 서로 다른 기준이라는 점부터 가볍게 살펴볼 수 있을까요?
둘째와 셋째는 앞의 첫째와 마찬가지로 부당하고 강압적인 획득을 공유합니다. 되풀이되는 ‘그렇게 얻은 뒤’라는 말은 줄였습니다. 둘째는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지만 나누거나 공덕을 짓지는 않습니다. 셋째는 자신을 돌보면서 나누고 공덕도 짓습니다. 첫째까지 합치면, 같은 부당한 획득 아래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 자신만 돌보는 경우, 자신을 돌보며 나누는 경우로 세 갈래가 나뉩니다.
묵상
같은 부당한 획득 뒤에도 자신을 돌보는 일과 나누는 일을 따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네 가지 가운데 지금 뜻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나요?
정당함과 부당함, 강압과 비강압이 섞인 방식으로 얻은 재물을 세 가지 사용 방식과 결합합니다.
“또 집주인이여,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어떤 사람은 정당한 방식과 부당한 방식, 강압적인 방식과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을 함께 써 재물을 찾고 얻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도 만족하게도 하지 않으며,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는다.
또 집주인이여, … 자신은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지만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는다.
또 집주인이여, …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며 나누고 공덕도 짓는다.”
Idha pana, gahapati, ekacco kāmabhogī dhammādhammena bhoge pariyesati sāhasenapi asāhasenapi; dhammādhammena bhoge pariyesitvā sāhasenapi asāhasenapi na attānaṁ sukheti na pīṇeti na saṁvibhajati na puññāni karoti. Idha pana, gahapati, … attānaṁ sukheti pīṇeti, na saṁvibhajati na puññāni karoti. Idha pana, gahapati, … attānaṁ sukheti pīṇeti saṁvibhajati puññāni karoti.
앙굿따라 니까야AN 10.91 까마보기 숫따 (감각의 즐거움을 누리는 이)
배경
넷째부터 여섯째까지의 공통 조건은 정당함과 부당함이 함께 있고, 강압적인 방식과 그렇지 않은 방식도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사용의 세 갈래는 앞과 같아서 모두 하지 않음, 자신만 행복하고 만족하게 함, 자신을 돌보며 나누고 공덕도 지음으로 진행됩니다. 혼합된 획득 안의 두 측면은 뒤에 나오는 평가에서 칭찬과 비난을 따로 받습니다.
묵상
한 행동 안에 정당한 면과 부당한 면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분류가 낯설게 느껴지나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한 단어로 판단하기보다, 섞여 있는 두 측면 가운데 지금 분명히 보이는 것이 있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정당하고 강압 없이 재물을 얻은 사람 가운데 자신에게도 쓰지 않는 경우와 자신에게만 쓰는 경우를 구별합니다.
“다음 집주인이여, 어떤 사람은 정당하게 강압 없이 재물을 찾고, 그렇게 얻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도 만족하게도 하지 않으며,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는다.
다음 집주인이여, … 자신은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지만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는다.”
Idha pana, gahapati, ekacco kāmabhogī dhammena bhoge pariyesati asāhasena; dhammena bhoge pariyesitvā asāhasena na attānaṁ sukheti na pīṇeti na saṁvibhajati na puññāni karoti. Idha pana, gahapati, … attānaṁ sukheti pīṇeti, na saṁvibhajati na puññāni kar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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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일곱째와 여덟째는 획득의 방식이 정당하고 강압이 없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그러나 사용은 다릅니다. 일곱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만족하게 하지도 않고, 여덟째는 그 둘을 다 합니다. 두 사람 모두 나누지도 공덕을 짓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정당한 획득만으로 분류가 끝나지 않고, 자신을 돌보는 일과 다른 이를 향한 사용이 뒤 평가에서 별도 근거가 됩니다.
묵상
정당하게 얻었다는 한 조건과, 그것을 자신이나 다른 이에게 쓰는 조건이 따로 놓인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기준이라는 사실만 잠시 살펴볼 수 있을까요?
아홉째는 앞의 세 가지 기준에서 모두 좋은 행위를 갖춘 뒤 네 번째 기준을 새로 엽니다. 정당하고 강압 없이 얻고,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며, 나누고 공덕도 짓습니다. 그러나 재물에 얽매이고 도취되고 집착합니다.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알지 못한다는 것도 함께 말합니다. 경은 재물을 어디서 얻었는지, 어떻게 쓰는지, 그리고 그것을 누리는 마음까지 함께 봅니다.
묵상
잘 얻고 잘 쓰는 일과, 그것을 누릴 때 마음이 붙들리는 일은 함께 일어날 수도 있다는 설명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위험을 본다”는 말에서 떠오르는 한 반응이 있나요?
열째는 아홉째와 획득·자신을 위한 사용·나눔과 공덕까지 같고, 재물을 누리는 다섯 표현에서 정반대가 됩니다. 얽매이지 않음, 도취되지 않음, 집착하지 않음과 함께 위험을 봄, 벗어남을 앎까지 다섯 가지가 모두 반대로 바뀝니다. 누림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누림에 붙들리지 않는 태도를 더합니다. 이 열째 부류가 뒤 평가에서 네 근거 모두 칭찬받고 마지막 비유의 최상으로 돌아옵니다.
묵상
누리면서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이 지금은 가능하게 들리나요, 어렵게 들리나요? 재물을 쓰는 구체적 결정을 요구하지 않고, 누린 뒤 마음이 더 붙드는지 조금 놓이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부당한 획득, 자신을 돌보지 않음, 나누거나 공덕을 짓지 않음이 차례로 세 비난 근거가 됩니다.
“집주인이여, … 이 재물 향유자는 세 가지 점에서 비난받는다.
‘부당하게 강압으로 재물을 찾는다’는 첫째 비난,
‘자신을 행복하게도 만족하게도 하지 않는다’는 둘째 비난,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는다’는 셋째 비난이다.
집주인이여, 이 사람은 이 세 점에서 비난받는다.”
이 평가는 앞서 다룬 첫째 경우, 곧 부당하고 강압적으로 얻고 자신도 돌보지 않으며 나누거나 공덕도 짓지 않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먼저 모두 세 가지로 비난받는다고 밝히고, 획득, 자신을 위한 사용, 나눔과 공덕에 첫째·둘째·셋째를 차례로 붙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세 가지를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이 평가는 사람 전체에 낙인을 찍지 않고, 세 가지 행동을 따로 나누어 봅니다.
묵상
세 비난을 한 덩어리로 말하지 않고 획득·자신을 위한 사용·나눔으로 나눈 점이 어떻게 보이나요?
“집주인이여, … 이 재물 향유자는 두 점에서 비난받고 한 점에서 칭찬받는다.
‘부당하게 강압으로 재물을 찾는다’는 첫째 비난,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한다’는 한 점의 칭찬,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는다’는 둘째 비난이다.
집주인이여, 이 사람은 이 두 점에서 비난받고 이 한 점에서 칭찬받는다.”
둘째 평가는 부당하고 강압적으로 얻되 자신은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며 나누거나 공덕은 짓지 않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총계는 두 비난과 한 칭찬입니다. 획득은 첫째 비난, 자신을 위한 사용은 한 점의 칭찬, 나눔과 공덕이 없음은 둘째 비난입니다. 비난은 둘이라 첫째·둘째로 세지만, 칭찬은 하나뿐이라 순서 없이 “한 점”이라고만 말합니다. 같은 사람의 행위에서도 바람직한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따로 말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한 사람의 행동에서 비난할 점과 칭찬할 점을 동시에 분리해 말하는 방식이 익숙한가요? 누군가를 평가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한 가지 좋은 점이 다른 두 문제를 지우지 않는다는 점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집주인이여, … 이 재물 향유자는 한 점에서 비난받고 두 점에서 칭찬받는다.
‘부당하게 강압으로 재물을 찾는다’는 한 점의 비난,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한다’는 첫째 칭찬,
‘나누고 공덕을 짓는다’는 둘째 칭찬이다.
집주인이여, 이 사람은 이 한 점에서 비난받고 이 두 점에서 칭찬받는다.”
셋째 평가는 부당하고 강압적으로 얻은 뒤 자신도 돌보고 나누며 공덕도 짓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획득에는 한 점의 비난이 붙고,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는 일은 첫째 칭찬, 나누고 공덕을 짓는 일은 둘째 칭찬이 됩니다. 시작과 끝에서 말하는 한 비난과 두 칭찬이라는 수가 가운데 나온 세 가지 근거와 정확히 맞습니다. 좋게 쓴 일이 부당한 획득을 덮지 않고, 부당한 획득도 좋게 쓴 두 가지를 가리지 않습니다.
묵상
좋은 쓰임이 잘못된 획득을 지우지 않고, 잘못된 획득도 좋은 쓰임의 이름을 없애지 않는 구별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세 근거가 독립적이라는 점만 볼 수 있을까요?
혼합 획득의 정당한 부분은 칭찬받고 부당한 부분과 두 가지 사용 부재는 세 근거로 비난받습니다.
“집주인이여, … 이 재물 향유자는 한 점에서 칭찬받고 세 점에서 비난받는다.
‘정당하게 강압 없이 찾는다’는 한 점의 칭찬, ‘부당하게 강압으로 찾는다’는 첫째 비난,
‘자신을 행복하게도 만족하게도 하지 않는다’는 둘째 비난,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는다’는 셋째 비난이다.
집주인이여, 이 사람은 이 한 점에서 칭찬받고 이 세 점에서 비난받는다.”
넷째 평가는 정당·부당, 강압·비강압이 섞인 방식으로 얻고 네 가지 사용을 모두 하지 않은 경우를 가리킵니다.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섞여 있는 획득도 하나로 뭉쳐 평가하지 않습니다. 정당하고 강압 없는 부분은 한 점의 칭찬, 부당하고 강압적인 부분은 첫째 비난입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음과 나누거나 공덕을 짓지 않음이 둘째와 셋째 비난을 더하여 총 한 칭찬·세 비난이 됩니다. 그래서 섞인 행위라도 각 부분과 그 결과를 따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묵상
섞인 획득을 통째로 좋거나 나쁘다고 하지 않고 두 근거로 나눈 점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한 행동에 서로 다른 성격이 함께 있을 가능성만 열어 둘 수 있을까요?
혼합 획득과 자신을 위한 사용, 나눔의 부재가 첫째·둘째 칭찬과 첫째·둘째 비난으로 교차합니다.
“집주인이여, … 이 재물 향유자는 두 점에서 칭찬받고 두 점에서 비난받는다.
정당하고 강압 없이 찾음은 첫째 칭찬, 부당하고 강압으로 찾음은 첫째 비난,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함은 둘째 칭찬,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음은 둘째 비난이다.
집주인이여, 이 사람은 이 두 점에서 칭찬받고 이 두 점에서 비난받는다.”
다섯째 평가는 혼합 방식으로 얻고 자신은 돌보지만 나눔과 공덕은 없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여기서는 칭찬과 비난에 각각 따로 순서를 붙입니다. 정당·비강압은 첫째 칭찬이고 부당·강압은 첫째 비난이며,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함은 둘째 칭찬이고 나누지 않음과 공덕을 짓지 않음은 둘째 비난입니다. 그래서 총계가 두 칭찬·두 비난으로 균형을 이룹니다. 같은 “첫째”와 “둘째”라는 말이 칭찬과 비난 양쪽에 따로 쓰인다는 점을 구별해야 합니다.
묵상
칭찬의 첫째·둘째와 비난의 첫째·둘째가 따로 매겨진 점이 보이나요? 어느 쪽 점수가 더 큰지 따지기보다, 한 행위의 네 측면을 칭찬과 비난으로 나누어 보는 방식만 천천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집주인이여, … 이 재물 향유자는 세 점에서 칭찬받고 한 점에서 비난받는다.
정당하고 강압 없이 찾음은 첫째 칭찬, 부당하고 강압으로 찾음은 한 점의 비난,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함은 둘째 칭찬, 나누고 공덕을 지음은 셋째 칭찬이다.
집주인이여, 이 사람은 이 세 점에서 칭찬받고 이 한 점에서 비난받는다.”
여섯째 평가는 혼합 방식으로 얻은 뒤 자신도 돌보고 나누며 공덕도 짓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정당하고 강압 없는 획득은 첫째 칭찬,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함은 둘째 칭찬, 나누고 공덕을 지음은 셋째 칭찬입니다. 부당하고 강압적인 획득만 한 점의 비난으로 남습니다. 시작과 끝은 세 칭찬·한 비난을 같은 순서로 확인합니다. 좋은 점 세 가지가 있어도 잘못된 한 가지는 그대로 남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묵상
세 칭찬이 있어도 한 비난을 그대로 말하는 방식에서 어떤 신중함이 느껴지나요? 두 종류의 근거가 함께 남을 수 있음을 볼 수 있을까요?
정당하고 강압 없는 획득은 칭찬받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음과 나누지 않음은 각각 비난받습니다.
“집주인이여, … 이 재물 향유자는 한 점에서 칭찬받고 두 점에서 비난받는다.
‘정당하게 강압 없이 재물을 찾는다’는 한 점의 칭찬,
‘자신을 행복하게도 만족하게도 하지 않는다’는 첫째 비난,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는다’는 둘째 비난이다.
집주인이여, 이 사람은 이 한 점에서 칭찬받고 이 두 점에서 비난받는다.”
일곱째 평가는 정당하고 강압 없이 얻었지만 자신도 돌보지 않고 나누거나 공덕도 짓지 않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획득에는 “한 점”의 칭찬이 붙습니다. 자신을 행복하게도 만족하게도 하지 않음이 첫째 비난이고,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음이 둘째 비난입니다. 총계는 한 칭찬·두 비난으로 시작과 끝에서 일치합니다. 정당한 획득은 중요한 한 근거이지만 재물이 실제로 자신과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지는 별도 수행 질문으로 남습니다.
묵상
바르게 얻는 일과 그것을 이롭게 쓰는 일이 별도 근거라는 설명에서 지금 알아볼 수 있는 차이가 있나요? 실제 형편을 탓하거나 소비를 요구하는 질문은 아니에요. 두 기준의 이름만 구별해도 괜찮을까요?
정당한 획득과 자신을 위한 사용은 칭찬받지만 나누거나 공덕을 짓지 않는 일은 비난받습니다.
“집주인이여, … 이 재물 향유자는 두 점에서 칭찬받고 한 점에서 비난받는다.
‘정당하게 강압 없이 재물을 찾는다’는 첫째 칭찬,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한다’는 둘째 칭찬,
‘나누지도 공덕도 짓지 않는다’는 한 점의 비난이다.
집주인이여, 이 사람은 이 두 점에서 칭찬받고 이 한 점에서 비난받는다.”
여덟째 평가는 정당하고 강압 없이 얻고 자신은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지만 나누거나 공덕은 짓지 않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되풀이되는 말은 줄였습니다. 획득이 첫째 칭찬, 자신을 위한 사용이 둘째 칭찬입니다. 나누지 않고 공덕을 짓지 않는 것에는 순서 매긴 말 대신 “한 점”의 비난이 붙습니다. 시작과 끝도 두 칭찬·한 비난으로 같은 수를 확인합니다. 경은 자신을 돌보는 일을 인색함으로 보지 않고, 자신을 위해 누리는 일과 나누는 일을 둘 다 좋게 볼 수 있는 일로 둡니다.
묵상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는 일도 칭찬 근거로 놓인 점이 뜻밖인가요? 둘을 서로 대체하지 않는 별도 기준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정당한 획득과 두 사용은 칭찬받지만 얽매임·도취·집착과 위험·벗어남의 무지는 비난받습니다.
“집주인이여, … 이 재물을 누리는 사람는 세 점에서 칭찬받고 한 점에서 비난받는다.
정당하고 강압 없이 찾음은 첫째 칭찬,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함은 둘째 칭찬, 나누고 공덕을 지음은 셋째 칭찬이다.
재물에 얽매이고 도취되고 집착하며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알지 못한 채 누림은 한 점의 비난이다.
집주인이여, 이 사람은 이 세 점에서 칭찬받고 이 한 점에서 비난받는다.”
아홉 번째로 말하는 사람은 재물을 바르고 강요 없이 얻고, 그것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며, 나누고 베풀기까지 합니다. 이 세 가지는 칭찬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그 재물에 얽매이고 취해 집착하며,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나는 길도 모르는 채 누린다면 그 한 가지는 흠으로 남습니다. 바르게 얻고 나누어도, 누리는 마음이 자유로운지는 따로 살펴야 합니다.
묵상
정당하게 얻고 나누어도 누리는 마음을 따로 들여다본다는 말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누린 뒤에 마음이 더 넓어지는지 좁아지는지만 가볍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정당한 획득, 자신을 위한 사용, 나눔과 공덕, 집착 없이 위험과 벗어남을 아는 누림이 네 칭찬이 됩니다.
“집주인이여, … 이 재물을 누리는 사람는 네 점에서 칭찬받는다.
정당하고 강압 없이 찾음은 첫째 칭찬,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함은 둘째 칭찬, 나누고 공덕을 지음은 셋째 칭찬이다.
재물에 얽매이지 않고 도취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위험을 보고 벗어남을 알아 누림은 넷째 칭찬이다.
집주인이여, 이 사람은 이 네 점에서 칭찬받는다.”
열 번째로 말하는 사람은 앞의 세 가지, 곧 바르게 얻고 자신을 행복하게 하며 나누고 베푸는 일을 그대로 하면서, 재물에 얽매이지 않고 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위험을 보고 벗어나는 길도 아는 채 누립니다. 경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모습은 이렇게 네 가지를 모두 갖춘 누림입니다.
묵상
네 번째 칭찬은 재물에 붙들리지 않고 위험과 벗어남을 아는 누림이라는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한 표현만 천천히 읽어 볼 수 있을까요?
열 부류를 닫고, 소의 젖에서 정제 버터의 진액까지 이어지는 비유로 마지막 부류가 최상임을 거듭 밝힙니다.
“집주인이여, 이들이 세상에 있는 열 재물을 누리는 사람이다.
집주인이여, 열 사람 가운데 그 재물을 누리는 사람는 … 이들 가운데 으뜸·최상·선두·최고·뛰어남이다.
집주인이여, 소에서 젖, 젖에서 엉긴 젖, 엉긴 젖에서 버터, 버터에서 정제 버터, 정제 버터에서 그 진액이 나오는데, 그 진액을 으뜸이라 한다.
그와 같이 집주인이여, 열 사람 가운데 그 재물을 누리는 사람는 … 이들 가운데 으뜸·최상·선두·최고·뛰어남이다.”
Ime kho, gahapati, dasa kāmabhogī santo saṁvijjamānā lokasmiṁ. Imesaṁ kho, gahapati, dasannaṁ kāmabhogīnaṁ yvāyaṁ kāmabhogī … ayaṁ imesaṁ dasannaṁ kāmabhogīnaṁ aggo ca seṭṭho ca pāmokkho ca uttamo ca pavaro ca. Seyyathāpi, gahapati, gavā khīraṁ, khīramhā dadhi, dadhimhā navanītaṁ, navanītamhā sappi, sappimhā sappimaṇḍo. Sappimaṇḍo tattha aggamakkhāyati. Evamevaṁ kho, gahapati, imesaṁ dasannaṁ kāmabhogīnaṁ yvāyaṁ kāmabhogī … ayaṁ imesaṁ dasannaṁ kāmabhogīnaṁ aggo ca seṭṭho ca pāmokkho ca uttamo ca pavaro cā”ti.
앙굿따라 니까야AN 10.91 까마보기 숫따 (감각의 즐거움을 누리는 이)
배경
결론에서는 이 열 가지 사람을 다시 확인하고, 마지막 열 번째 사람을 가장 뛰어나다고 치켜세웁니다. 바르게 얻고,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누고 베풀면서도 재물에 붙들리지 않고 위험과 벗어나는 길을 아는 채 누리는 사람입니다. 소에서 젖이 나오고, 젖에서 엉긴 젖, 엉긴 젖에서 버터, 버터에서 정제 버터, 정제 버터에서 그 진액이 나오듯, 그 진액이 가장 좋은 것이듯 열 번째 사람이 가장 좋다고 말합니다.
묵상
마지막 비유에서 결과인 진액만이 아니라 소에서 시작해 여러 단계를 거치는 순서가 보이나요? 네 가지 칭찬받을 점 가운데 지금 이름만 알아볼 수 있는 하나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