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까 숫따

Arak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옛 스승 아라까의 일곱 비유를 전하고, 백 년을 계절·달·반달·밤·끼니로 세어 방일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인용된 가르침 13구절

이 경을 13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욕망을 떠난 옛 스승 아라까가 삶의 짧음을 설하다 1구절

부처님께서 옛날 감각적 욕망을 떠난 아라까 스승과 수백 제자를 소개하고 그가 반복해 가르친 핵심 문장을 전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옛날 아라까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한 교단의 창시자이며 감각적 욕망을 떠난 이였다. 수행자들이여, 아라까 스승에게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아라까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브라흐마나여, 사람의 목숨은 얼마 되지 않아 짧고 가벼우며 괴로움과 고뇌가 많다. 지혜로 깨달아 선한 일을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

“Bhūtapubbaṁ, bhikkhave, arako nāma satthā ahosi titthakaro kāmesu vītarāgo. Arakassa kho pana, bhikkhave, satthuno anekāni sāvakasatāni ahesuṁ. Arako satthā sāvakānaṁ evaṁ dhammaṁ deseti: ‘appakaṁ, brāhmaṇa, jīvitaṁ manussānaṁ parittaṁ lahukaṁ bahudukkhaṁ bahupāyāsaṁ mantāyaṁ boddhabbaṁ, kattabbaṁ kusalaṁ, caritabbaṁ brahmacariyaṁ, natthi jātassa amaraṇ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부처님은 자신의 시대보다 훨씬 먼 옛날의 스승 아라까를 먼저 세웁니다. 아라까는 하나의 교단을 세운 사람이며 감각적 욕망을 떠났고 수백 제자를 두었습니다. 그가 제자들에게 한 말은 뒤의 일곱 비유마다 반복되는 기준 문장입니다. 사람의 삶은 얼마 되지 않고 짧고 가벼우며, 괴로움과 고뇌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혜로 깨달아 선한 일을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며, 태어난 사람에게 죽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맺습니다. 이 문장이 각 비유의 비교 대상과 실천의 결론을 함께 제공합니다.

묵상

“얼마 되지 않고 짧고 가볍다”는 세 표현은 각각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삶의 짧음을 두려움으로만 읽지 않고 선한 일과 거룩한 삶으로 잇는 문장 가운데 지금 마음에 남는 부분을 살펴보세요.

2 해가 뜨면 사라지는 풀끝의 이슬방울 1구절

사람의 목숨을 해가 떠오를 때 곧 사라져 오래 머물지 못하는 풀끝의 이슬방울에 비유합니다.

“브라흐마나여, 풀끝의 이슬방울이 해가 뜨면 곧 사라져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과 같다. 브라흐마나여, 사람의 목숨도 이슬방울과 같아 얼마 되지 않고 짧고 가벼우며 괴로움과 고뇌가 많다. 지혜로 깨달아 선한 일을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

Seyyathāpi, brāhmaṇa, tiṇagge ussāvabindu sūriye uggacchante khippaṁyeva paṭivigacchati, na ciraṭṭhitikaṁ hoti; evamevaṁ kho, brāhmaṇa, ussāvabindūpamaṁ jīvitaṁ manussānaṁ parittaṁ lahukaṁ bahudukkhaṁ bahupāyāsaṁ mantāyaṁ boddhabbaṁ, kattabbaṁ kusalaṁ, caritabbaṁ brahmacariyaṁ, natthi jātassa amaraṇ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첫 비유는 풀끝에 맺힌 이슬방울입니다. 이슬은 한동안 분명히 보이지만 해가 떠오르면 곧바로 사라지고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아라까는 사람의 삶도 이와 같다고 한 뒤, 앞서 나온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비유의 초점은 사라지는 조건이 오면 붙잡아 둘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지혜로 그 짧음을 깨닫고 선한 일을 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행동으로 향합니다. 죽지 않음이 없다는 마지막 부정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묵상

아침의 이슬이 해와 함께 사라지는 장면을 떠올리면 삶의 짧음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사라짐을 생각하는 일이 오늘의 한 행동을 더 선하고 분명하게 하는 쪽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살펴보세요.

3 굵은 빗방울 속에 생겼다가 꺼지는 물거품 1구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 물 위에 생겨 곧 꺼지는 거품처럼 사람의 목숨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브라흐마나여, 굵은 빗방울이 쏟아질 때 물거품이 곧 사라져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과 같다. 브라흐마나여, 사람의 목숨도 물거품과 같아 얼마 되지 않고 짧고 가벼우며 괴로움과 고뇌가 많다. 지혜로 깨달아 선한 일을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

Seyyathāpi, brāhmaṇa, thullaphusitake deve vassante udakabubbuḷaṁ khippaṁyeva paṭivigacchati, na ciraṭṭhitikaṁ hoti; evamevaṁ kho, brāhmaṇa, udakabubbuḷūpamaṁ jīvitaṁ manussānaṁ parittaṁ lahukaṁ bahudukkhaṁ bahupāyāsaṁ mantāyaṁ boddhabbaṁ, kattabbaṁ kusalaṁ, caritabbaṁ brahmacariyaṁ, natthi jātassa amaraṇ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둘째 비유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물에 닿을 때 생기는 거품을 봅니다. 거품은 충돌과 함께 모습을 갖추지만 곧 꺼져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첫 비유의 이슬이 해가 뜨는 조건에서 사라졌다면, 물거품은 생기는 바로 그 상황 안에 빠르게 사라짐이 함께 있습니다. 아라까는 다시 사람의 목숨이 얼마 되지 않고 짧고 가벼우며 괴로움과 고뇌가 많다는 전체 문장을 반복합니다. 이어 지혜로운 깨달음·선한 일·거룩한 삶이라는 세 방향과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이 없다는 결론도 바꾸지 않습니다. 반복은 비유만 달라지고 과제는 흔들리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물거품처럼 생겨나는 순간부터 사라짐을 품고 있는 경험에는 무엇이 있나요? 오래 붙들 수 없다는 사실이 허무로만 흐르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분명히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4 물 위의 막대 자국과 멈추지 않는 산의 강 1구절

곧 지워지는 물 위의 자국과 한순간도 거슬러 돌아가지 않고 계속 흐르는 산의 강으로 삶의 짧음과 진행을 비유합니다.

“브라흐마나여, 물 위에 막대로 그은 자국이 곧 사라져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과 같다. 브라흐마나여, 사람의 목숨도 물 위의 자국과 같아 짧다. …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 브라흐마나여, 멀리 가고 흐름이 빠르며 만나는 것을 휩쓸어 가는 산의 강은 한순간도 되돌아가지 않고 오직 가고 움직이며 흐를 뿐이다. 브라흐마나여, 사람의 목숨도 산의 강과 같아 짧고 가볍다. …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

Seyyathāpi, brāhmaṇa, udake daṇḍarāji khippaṁyeva paṭivigacchati, na ciraṭṭhitikā hoti; evamevaṁ kho, brāhmaṇa, udake daṇḍarājūpamaṁ jīvitaṁ manussānaṁ parittaṁ …pe… natthi jātassa amaraṇaṁ. Seyyathāpi, brāhmaṇa, nadī pabbateyyā dūraṅgamā sīghasotā hārahārinī, natthi so khaṇo vā layo vā muhutto vā yaṁ sā āvattati, atha kho sā gacchateva vattateva sandateva; evamevaṁ kho, brāhmaṇa, nadīpabbateyyūpamaṁ jīvitaṁ manussānaṁ parittaṁ lahukaṁ …pe… natthi jātassa amaraṇ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셋째 비유의 막대 자국은 물 위에 그어져 생기자마자 지워집니다. 넷째 비유의 산에서 내려오는 강은 멀리 가고 빠르게 흐르며 마주치는 것을 휩쓸고, 한순간도 되돌아서지 않은 채 계속 가고 움직이며 흐릅니다. 하나는 흔적이 남지 않는 성질을, 다른 하나는 시간이 역류하지 않는 진행을 드러냅니다. 물 위 자국 뒤에는 ‘짧다’, 강 뒤에는 ‘짧고 가볍다’까지, 표현의 작은 차이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묵상

금세 사라지는 흔적과 되돌아오지 않는 흐름 가운데 어느 비유가 삶의 시간에 더 가깝게 느껴지나요? 두 장면을 억지로 하나로 만들지 말고, 각각 무엇을 놓지 말라고 일깨우는지 살펴보세요.

5 쉽게 뱉는 침과 뜨거운 솥에서 녹는 고깃덩이 1구절

힘센 사람이 쉽게 뱉는 침덩이와 온종일 달군 쇠솥에 들어가 곧 녹는 고깃덩이로 목숨의 취약함을 비유합니다.

“브라흐마나여, 힘센 사람이 혀끝에 침덩이를 모아 힘들이지 않고 뱉는 것과 같다. 브라흐마나여, 사람의 목숨도 침덩이와 같아 짧다. …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 브라흐마나여, 온종일 달군 쇠솥에 고깃덩이를 넣으면 곧 녹아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과 같다. 브라흐마나여, 사람의 목숨도 고깃덩이와 같아 짧다. …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

Seyyathāpi, brāhmaṇa, balavā puriso jivhagge kheḷapiṇḍaṁ saṁyūhitvā akasireneva vameyya; evamevaṁ kho, brāhmaṇa, kheḷapiṇḍūpamaṁ jīvitaṁ manussānaṁ parittaṁ …pe… natthi jātassa amaraṇaṁ. Seyyathāpi, brāhmaṇa, divasaṁsantatte ayokaṭāhe maṁsapesi pakkhittā khippaṁyeva paṭivigacchati, na ciraṭṭhitikā hoti; evamevaṁ kho, brāhmaṇa, maṁsapesūpamaṁ jīvitaṁ manussānaṁ parittaṁ …pe… natthi jātassa amaraṇ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다섯째 비유는 힘센 사람이 혀끝에 침을 모아 아무 어려움 없이 뱉는 장면입니다. 목숨이 외부의 큰 힘 앞에서 얼마나 쉽게 내던져질 수 있는지를 보입니다. 여섯째 비유에서는 온종일 뜨겁게 달군 쇠솥에 들어간 고깃덩이가 곧 녹아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여기서는 빠르게 사라지게 하는 조건이 강조됩니다. 두 비유 모두 누가 그 일을 하는지와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을 또렷이 보여 주며, 마지막에는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는 말로 끝납니다.

묵상

침을 뱉는 힘과 뜨거운 솥의 열처럼 거스르기 힘든 조건을 떠올리면 몸의 취약함이 어떻게 보이나요? 몸을 미워하기보다 보호할 수 있는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용히 천천히 살펴보세요.

6 도살장으로 갈수록 죽음에 가까워지는 소 1구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발을 한 번씩 들 때마다 죽음에 가까워지듯 사람도 매 순간 죽음에 다가간다고 가르칩니다.

“브라흐마나여,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발을 들어 올릴 때마다 도살에 가까워지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과 같다. 브라흐마나여, 사람의 목숨도 도살될 소와 같아 얼마 되지 않고 짧고 가벼우며 괴로움과 고뇌가 많다. 지혜로 깨달아 선한 일을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

Seyyathāpi, brāhmaṇa, gāvī vajjhā āghātanaṁ nīyamānā yaṁ yadeva pādaṁ uddharati, santikeva hoti vadhassa santikeva maraṇassa; evamevaṁ kho, brāhmaṇa, govajjhūpamaṁ jīvitaṁ manussānaṁ parittaṁ lahukaṁ bahudukkhaṁ bahupāyāsaṁ mantāyaṁ boddhabbaṁ, kattabbaṁ kusalaṁ, caritabbaṁ brahmacariyaṁ, natthi jātassa amaraṇ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일곱째이자 마지막 비유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입니다. 소가 한 발을 들어 옮길 때마다 목적지뿐 아니라 도살과 죽음에 가까워집니다. 앞의 비유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순간이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보였다면, 이 장면은 살아서 내딛는 걸음 자체가 죽음과의 거리를 줄인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 비유에서도 사람의 목숨이 짧고 가벼우며 괴로움과 고뇌가 많다는 말이 다시 나옵니다. 지혜·선행·거룩한 삶의 과제를 거쳐 죽지 않음이 없다는 결론으로 아라까의 인용도 닫힙니다.

묵상

한 걸음마다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비유가 두렵게 느껴지나요, 시간을 또렷하게 하나요? 어느 반응도 밀어내지 말고, 다음 한 걸음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가볍게 살펴보세요. 그 걸음이 향할 곳도 함께 보세요.

7 육만 년의 수명과 여섯 가지 질병을 밝히다 1구절

아라까 시대 사람들은 육만 년을 살고 오백 살 여성이 혼인할 나이였으며 질병도 여섯 가지뿐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때 사람의 수명은 육만 년이었고 오백 살 된 소녀가 혼인할 만했다. 수행자들이여, 그때 사람에게는 여섯 가지 질병만 있었다. 추위·더위·배고픔·목마름·대변·소변이다.”

Tena kho pana, bhikkhave, samayena manussānaṁ saṭṭhivassasahassāni āyuppamāṇaṁ ahosi, pañcavassasatikā kumārikā alaṁpateyyā ahosi. Tena kho pana, bhikkhave, samayena manussānaṁ chaḷeva ābādhā ahesuṁ— sītaṁ, uṇhaṁ, jighacchā, pipāsā, uccāro, passāvo.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일곱 비유를 전한 뒤 부처님은 아라까가 살던 시대의 조건을 수치로 제시합니다. 사람의 수명은 60,000년이었고 500세가 된 여성이 혼인할 만한 나이로 여겨졌습니다. 질병이라고 부른 것도 추위·더위·배고픔·목마름·대변·소변의 여섯 가지뿐이었다고 경은 말합니다. 아라까의 시대가 얼마나 오래 살고 병이 적었는지를 강조해서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오래 살고 병이 적은 시대에도 아라까가 삶은 짧다고 말했다는 대조를 다음 구절에서 보여 줍니다.

묵상

육만 년을 살고 병이 여섯뿐인 시대라는 서술을 읽을 때 낯섦과 비유의 의도 가운데 무엇이 먼저 느껴지나요? 사실 판단을 서두르지 말고, 다음 대조를 위해 이 숫자들이 만드는 거리를 살펴보세요.

8 긴 수명과 적은 질병 속에서도 삶은 짧다고 설하다 1구절

아라까가 오래 살고 오래 머물며 병이 적었던 사람들에게도 삶의 짧음과 선행·거룩한 삶의 필요를 가르쳤다고 되짚습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렇게 오래 살고 오래 머물며 병이 적었던 사람들에게도 아라까 스승은 이렇게 가르쳤다. ‘브라흐마나여, 사람의 목숨은 얼마 되지 않아 짧고 가벼우며 괴로움과 고뇌가 많다. 지혜로 깨달아 선한 일을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

So hi nāma, bhikkhave, arako satthā evaṁ dīghāyukesu manussesu evaṁ ciraṭṭhitikesu evaṁ appābādhesu sāvakānaṁ evaṁ dhammaṁ desessati: ‘appakaṁ, brāhmaṇa, jīvitaṁ manussānaṁ parittaṁ lahukaṁ bahudukkhaṁ bahupāyāsaṁ mantāyaṁ boddhabbaṁ, kattabbaṁ kusalaṁ, caritabbaṁ brahmacariyaṁ, natthi jātassa amaraṇ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부처님은 아라까 시대의 조건을 긴 수명·오랜 지속·적은 질병이라는 세 표현으로 다시 받습니다. 60,000년을 살고 질병이 여섯뿐인 사람들에게조차 아라까는 삶이 얼마 되지 않고 짧고 가벼우며 괴로움과 고뇌가 많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지혜로 깨달아 선한 일을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며,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이 없다는 같은 가르침을 다시 전합니다. 수명이 길다고 해서 삶이 끝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이어지는 대목에서 부처님은 이 말을 자신의 시대에 직접 적용합니다.

묵상

육만 년을 사는 이들에게도 “짧다”고 한 말은 수명의 길고 짧음을 어떤 기준에서 보게 하나요? 시간의 양보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유한함을 가리키는지 마음에 두고 천천히 살펴보세요.

9 오늘날 장수도 백 년 또는 조금 더라고 대조하다 1구절

부처님께서 삶의 짧음에 관한 아라까의 말을 지금도 그대로 옳다고 하시고 오늘날의 장수를 백 년 남짓으로 한정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오늘날에는 바로 이렇게 말해야 옳다. ‘사람의 목숨은 얼마 되지 않아 짧고 가벼우며 괴로움과 고뇌가 많다. 지혜로 깨달아 선한 일을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 수행자들이여, 오늘날 오래 사는 사람도 백 년 또는 조금 더 산다.”

Etarahi taṁ, bhikkhave, sammā vadamāno vadeyya: ‘appakaṁ jīvitaṁ manussānaṁ parittaṁ lahukaṁ bahudukkhaṁ bahupāyāsaṁ mantāyaṁ boddhabbaṁ, kattabbaṁ kusalaṁ, caritabbaṁ brahmacariyaṁ, natthi jātassa amaraṇan’ti. Etarahi, bhikkhave, yo ciraṁ jīvati so vassasataṁ appaṁ vā bhiyyo.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아라까의 옛 가르침을 전한 뒤 부처님은 “오늘날 올바르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라며 같은 기준 문장을 자신의 시대에 적용합니다. 여기서는 아라까가 제자에게 붙인 ‘브라흐마나여’라는 부름말만 빠지고, 삶의 짧음과 괴로움, 지혜·선행·거룩한 삶, 죽지 않음이 없다는 내용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수명 조건은 크게 달라져, 오래 사는 사람조차 100년 또는 조금 더 살 뿐입니다. 이어지는 계산은 이 백 년을 막연한 장수로 두지 않고 계절·달·반달·밤·끼니라는 실제 반복 횟수로 차례로 바꿉니다.

묵상

백 년 또는 조금 더가 장수라는 문장을 읽을 때 “많다”와 “짧다” 가운데 어느 느낌이 먼저 드나요? 남은 날을 계산해 불안해하기보다 오늘 한 단위를 어떻게 보낼지 천천히 살펴보세요.

10 백 년을 삼백 계절과 천이백 달로 세다 1구절

백 년은 겨울·여름·우기 각 백 번인 삼백 계절이며, 다시 각 사백 달인 천이백 달이라고 계산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백 년을 사는 사람은 삼백 계절을 산다. 겨울 백 번, 여름 백 번, 우기 백 번이다. 수행자들이여, 삼백 계절을 사는 사람은 천이백 달을 산다. 겨울 사백 달, 여름 사백 달, 우기 사백 달이다.”

Vassasataṁ kho pana, bhikkhave, jīvanto tīṇiyeva utusatāni jīvati— utusataṁ hemantānaṁ, utusataṁ gimhānaṁ, utusataṁ vassānaṁ. Tīṇi kho pana, bhikkhave, utusatāni jīvanto dvādasayeva māsasatāni jīvati— cattāri māsasatāni hemantānaṁ, cattāri māsasatāni gimhānaṁ, cattāri māsasatāni vassān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백 년의 첫 환산 단위는 세 계절입니다. 인도의 계절 구분에 따라 겨울·여름·우기가 해마다 한 번씩 오므로 백 년은 300계절이고 각 계절은 정확히 100번입니다. 이어 한 계절을 네 달로 잡아 300계절을 1,200개월로 바꾸고, 겨울·여름·우기에 속하는 달을 각각 400으로 나눕니다. 두 계산 모두 전체 수를 먼저 말한 뒤 겨울·여름·우기 세 가지에 똑같이 나눈 몫을 말합니다. 삶의 짧음이라는 감상을 실제로 되돌아오는 계절과 달의 유한한 횟수로 바꾸어, 지나가는 시간을 일상에서 셀 수 있게 만듭니다.

묵상

백 년이라는 큰 수보다 겨울 백 번이나 여름 사백 달이라는 표현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지나요? 앞으로 맞을 계절을 무리하게 계산하지 말고, 지금 지나가는 한 계절의 유한함만 살펴보세요.

11 천이백 달을 이천사백 반달과 삼만육천 밤으로 세다 1구절

천이백 달은 계절별 팔백 번인 이천사백 반달이며, 다시 계절별 만이천 번인 삼만육천 밤이라고 환산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천이백 달을 사는 사람은 이천사백 번의 반달을 산다. 겨울 팔백 번, 여름 팔백 번, 우기 팔백 번의 반달이다. 수행자들이여, 이천사백 번의 반달을 사는 사람은 삼만육천 밤을 산다. 겨울 만이천 밤, 여름 만이천 밤, 우기 만이천 밤이다.”

Dvādasa kho pana, bhikkhave, māsasatāni jīvanto catuvīsatiyeva addhamāsasatāni jīvati— aṭṭhaddhamāsasatāni hemantānaṁ, aṭṭhaddhamāsasatāni gimhānaṁ, aṭṭhaddhamāsasatāni vassānaṁ. Catuvīsati kho pana, bhikkhave, addhamāsasatāni jīvanto chattiṁsaṁyeva rattisahassāni jīvati— dvādasa rattisahassāni hemantānaṁ, dvādasa rattisahassāni gimhānaṁ, dvādasa rattisahassāni vassān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계산은 달보다 더 작은 반달과 밤으로 내려갑니다. 한 달을 두 번의 반달로 세어 1,200달은 2,400반달이 되고, 세 계절에 각각 800번씩 배분됩니다. 이어 2,400반달을 36,000밤으로 바꾸고 겨울·여름·우기에 각각 12,000밤을 둡니다. 여기서 밤은 낮과 별도로 세는 단위입니다. 전체와 세 몫의 합이 각 단계에서 정확히 맞아야 하며, 계절에서 달, 반달, 밤으로 단위를 줄일수록 한 생의 시간이 추상적인 백 년에서 실제로 지나가는 밤의 횟수에 가까워집니다.

묵상

삼만육천 밤 가운데 이미 지나간 밤과 아직 오지 않은 밤을 떠올리면 오늘 밤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반복되어 온 밤 하나의 소중함만 살펴보세요.

12 삼만육천 밤을 칠만이천 끼니와 다섯 결식으로 세다 1구절

백 년 동안 먹는 끼니를 칠만이천 번으로 계산하고 젖먹이 때와 끼니를 거르는 다섯 사유까지 포함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삼만육천 밤을 사는 사람은 칠만이천 끼니를 먹는다. 겨울 이만사천 끼니, 여름 이만사천 끼니, 우기 이만사천 끼니이며 어머니의 젖을 먹는 때와 끼니를 거르는 때도 포함한다. 끼니를 거르는 경우는 이러하다. 잠깐 졸아서, 괴로워서, 병들어서, 포살을 지켜서, 또는 음식을 얻지 못해서 먹지 않는다.”

Chattiṁsaṁ kho pana, bhikkhave, rattisahassāni jīvanto dvesattatiyeva bhattasahassāni bhuñjati— catuvīsati bhattasahassāni hemantānaṁ, catuvīsati bhattasahassāni gimhānaṁ, catuvīsati bhattasahassāni vassānaṁ saddhiṁ mātuthaññāya saddhiṁ bhattantarāyena. Tatrime bhattantarāyā kapimiddhopi bhattaṁ na bhuñjati, dukkhitopi bhattaṁ na bhuñjati, byādhitopi bhattaṁ na bhuñjati, uposathikopi bhattaṁ na bhuñjati, alābhakenapi bhattaṁ na bhuñj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마지막 환산은 36,000밤에 하루 두 끼를 대응해 72,000끼니를 세고, 세 계절에 각각 24,000끼니를 둡니다. 이 수에는 어머니의 젖을 먹던 시기와 실제 식사를 하지 못한 때까지 포함됩니다. 이어 결식 사유 다섯을 따로 밝힙니다. 다섯 가지 결식 사유는 잠깐 쪽잠이 든 상태, 고통, 질병, 포살을 지켜 먹지 않음, 음식을 얻지 못함입니다. 생애의 수유와 여러 결식까지 헤아린 계산입니다.

묵상

삶을 칠만이천 끼니로 세면 오늘 먹는 한 끼가 어떻게 달라 보이나요? 먹을 수 있었던 끼니와 여러 이유로 거른 끼니가 함께 한 생을 이룬다는 점과 한 끼의 고마움을 천천히 살펴보세요.

13 모든 시간을 세고 나무 아래와 빈집에서 명상하라 당부하다 1구절

부처님께서 백 년의 수명과 모든 시간·끼니를 헤아렸다고 정리하고, 스승의 할 일을 마쳤으니 방일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백 년을 사는 사람의 수명·수명의 한계·계절·해·달·반달·밤·낮·끼니·결식까지 모두 세었다. 수행자들이여, 제자의 이익을 바라고 연민하는 스승이 연민으로 해야 할 일을 내가 그대들에게 다했다. 수행자들이여, 여기 나무 아래가 있고 빈집이 있다. 수행자들이여, 명상해라. 게으름 피우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가르침이다.”

Iti kho, bhikkhave, mayā vassasatāyukassa manussassa āyupi saṅkhāto, āyuppamāṇampi saṅkhātaṁ, utūpi saṅkhātā, saṁvaccharāpi saṅkhātā, māsāpi saṅkhātā, addhamāsāpi saṅkhātā, rattipi saṅkhātā, divāpi saṅkhātā, bhattāpi saṅkhātā, bhattantarāyāpi saṅkhātā. Yaṁ, bhikkhave, satthārā karaṇīyaṁ sāvakānaṁ hitesinā anukampakena anukampaṁ upādāya; kataṁ vo taṁ mayā etāni, bhikkhave, rukkhamūlāni etāni suññāgārāni. Jhāyatha, bhikkhave, mā pamādattha;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Ayaṁ vo amhākaṁ anusāsan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 숫따

배경

부처님은 앞의 계산을 수명과 수명의 한계에서 시작해 계절·해·달·반달·밤·낮·끼니·결식까지 열 가지로 다시 짚어 줍니다. 이 계산은 제자의 이익을 바라고 연민하는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마쳤다는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이제 남은 것은 청중의 실천입니다. 부처님은 나무 아래와 비어 있는 거처가 마련되어 있다고 가리키고, 명상하며 게으름 피우지 말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세 명령을 잇습니다. 마지막에는 이것이 자신의 당부이자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긴 수명 계산은 지금 물러나 수행하라는 짧은 결론으로 모입니다.

묵상

계절과 끼니까지 모두 센 뒤 “여기 나무 아래와 빈집이 있다”는 말이 어떻게 들리나요? 시간을 더 계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금 해야 할 한 가지로 돌아온다면 무엇이 될지 살펴보세요.